【뉴질랜드, 이태희】
국가간 차세대 지도자들의 네트웤 필요성
21세기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하는 우리 젊은 해외동포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비록 다른 나라에서 또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지만 우리는 한 민족이요 우리의 미래는 조국의 미래와 한 연결선상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고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여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작년 10월에 한국의 밤 행사가 그곳 교민회 주최 하에 열렸는데 많은 외국인들이 함께 관람하였습니다. 그 행사가 끝났을 때에 제 옆에 앉아 있던 한 외국인인 제게 "너희는 참 많은 재능을 가진 민족이구나"라고 말했을 때 저는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우수한 전통 문화와 재능을 가진 민족의 일원으로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를 더욱 본완해 주고 서로 뭉쳐 하나가 된다면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진정 세계 속의 한민족으로서 우리의 역할과 위상을 높여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간 차세대 지도자들의 네트웤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 회복입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이긴 하겠지만 외국에서 생활하는 해외동포들의 경우
더욱 더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에 익숙해지게 되고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소속감이 없으며 또한 편리함만을 추구하다보면 문화와 풍습, 언어의 차이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이겨나가기 보다는 피하려고 하고 또 우리의 것들을 쉽게 포기하고 사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유태 민족이 2천년 이상 나라 없이 세계 곳곳에 흩여져서도 존재할 수 있었으며 그들이 결국은 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그들의 문화와 풍습과 언어를 지키며 한민족임을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항상 깨우쳤기 때문이며 그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이 살고있는 지역, 나라, 나아가서는 전세계에 이르는 그들의 조직을 만들고 서로 연결하여 끊임없이 서로를 격려하며 민족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해외에 많은 한인단체들이 많지만,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우리도 재외동포 차세대 지도자들을 네트웤화함으로서 젊은 해외동포 청년들을 차세대의 지도자로 세우고 그들을 엮어 하나의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을 통하여 확고한 민족의식을 배양한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들이 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한민족 젊은이로서 삶의 뿌리가 민족으로부터 뻗어져나오며, 각자의 생활 환경이 판이하게 다를지라도 그 삶을 이끌어 가는 근원적인 힘은 민족의식임을 잊지 않고 더욱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둘째, 민족의 미래에 대한 사고와 통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재외동포 청년 지도자들이 민족의식을 갖게
되고 자기 삶의 뿌리가 민족으로부터 비롯됨을 깨닫게 되면 그 한사람 한사람이 모든 환경 속에서, 특히 다른 문화 속에서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책임감 있는 역할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 한사람 한사람은 민족의 장래가 번영하고 조국이 부강해 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그것을 위해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한 개인안에 머물게 되면 그것은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며 단지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수준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여러 사람이 각자의 생각이 나올 수 있음을 누구나 한 두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특히 국내가 아닌 국외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각자가 살고 있는 지역 또는 이민족의 문화와 그들의 생활방식과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습관, 문제점들을 비교하여 볼 수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해외동포들인 것입니다.
이런 해외동포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네트웤화한다면 조국과 민족을 위한 그리고 해외동포 사회를 위한 발전적인 제안들이 풍성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네트웤화함으로서 그들 서로가 교환한 의견들을 각자의 삶에 적용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다가오는 세대에서는 보다 건설적인 교포사회가 형성될 것입니다.
셋째는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준비를 위해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께 한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자신이 차세대 지도자로서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대답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스, 노우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참된 리더는, 그 분야가 어떠한 것이든 지간에 한 순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잘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훈련 없는 지도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많은 스스로의 노력도 요구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훈련될 수 있는, 그리고 나름대로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간 차세대 지도자들을 네트웤화하는 것은 재외동포 차세대 지도자워크샵에 참가한 사람들이 자신을 진정한 차세대의 지도자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이후부터는 자신을 차세대 지도자 훈련생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부여하는 데에 큰 역할중의 하나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유대인 랍비(선생)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 제자들을 격려하곤 합니다. "만일 당신 주위에 뛰어난 인물이 없다면 너 자신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한사람 한사람이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을 준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 역사에서 진정한 지도자 의식을 갖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민족 전체가 얼마나 큰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를 생각해 볼 때 바른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인 것이며 우리는 바로 그 출발점에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자신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도 물론 필수적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 지도자들이 책임감 있는 역할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 줄 수 있는 국가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 그 지도자들이 교포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외국현지에서도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또 하나의 외교관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
넷째, 지역사회 교포 청년모임 활성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차세대 지도자 워크샵에 참가한 이들이 지도자로서
준비되어 진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같은 지역 또는 같은 국가에 사는 교포청년들이 뭉쳐질 수 있으며 국가간 차세대 지도자들간의 조직은 교포 청년들의
모임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임을 통하여 재외동포 2,3세들간의 단결력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한 지역 또는 한 국가에서 그러한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축적하면 국가간 차세대 지도자 네트웤을 통해서 다른 지역에 그러한 경험을 나눌 수 있게 되고 이러한 모임들이 국가마다 생겨난다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연결된 각국의 재외동포 청년들은 이 모임을 통해 결속력을 더욱 굳게 하여 조국에 대해 민족에 대해 한 마음으로 사랑과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런 모임들은 각각의 지역 국가에서 또 하나의 한국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리라 생각됩니다.
다섯째, 정보 교환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며 그 변화하는 세계에 맞추어 발빠르게 적응하며 앞서나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특히 요즘은 더욱더 그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해외동포 지도자들을 네트웤화한다면 유익하고 다양한 실제적인 정보들을 손쉽게 교환하며 앞으로의 세대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누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입니다. 그러한 세대를 살아가야 하는 청년들에게 있어 정보를 수집하고 교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민족의 미래, 나아가서는 세계의 미래까지도 짊어지고 나가야 할 청년들이 서로 만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 다른 지역의 모범적인 일들을 배울 수 있도록 국가간 차세대 지도자 네트웤은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천연자원은 부족하지만 많은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인적자원을 잘 활용하여 오천년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21세기에 국내에서, 국외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현재의 모든 역경을 이기고 다시 한번 민족의 번영과 중흥을 가져올 것입니다.
사람을 조직화하고 그 조직을 통해 나아가야 할 하나의 목표를 이끌어 내어서 공동의 목표를 바라보며 장래를 위해 고민하며 바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서로가 잘 꼬여진 동아줄처럼 엮어져서 결코 끊어지지 않는,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우리 한민족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호놀루루, 최세철】
하와이 거주 1.5 및 2세 한국인들의 상황은 미국 본토의 상황과 하와이 고유의 다른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다. 하와이 주재 한국인들은 2가지 부류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적인 부류는 1900년대초 사탕수수 농장의 도래로 온
사람들이고 두 번째 부류는 1970년대초 친척들의 이민이 허용된 이민법의 변화로 온 사람들이다. 이번 발표에서 나는 한국인 이민의 두
번째 부류에 관해서 중점적으로 토론하겠다.
하와이에 사는 인종집단이 다양하고, 다른 지배적으로 많은 다른 인종집단이 없어서 하와이의 한인들은 본토에 사는 한인보다 신속하게 동화될 수 있었으며, 또한 하와이 주류사회에 참여하는데 어떠한 장애도 없었다. 주류사회의 동화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민온 부모들은 영어가 짧았지만 더욱더 주류사회에 포함될 가능성이 많았고, 또한 하와이의 이민인구가 많아서 사람들은 이민자들의 궁핍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의 짧은 영어실력을 너그러이 받아들였다. 1세대들은 매우 초라하게 시작했는데 이들은 호텔에서의 잡부나, 식당 요리사와 같은 하급 직업을 수행했으며, 나중에 택시 운전사나 다른 노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내하며 돈을 저축하고, 신용을 쌓았으며, 그들의 삶을 향상하기 위해서 자신의 상점들을 세웠고, 자식들을 위한 더 나은 미래 환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1.5세대와 새로 태어난 2세들은 장애가 별로 없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개방된 의무 교육을 받았으며, 이들은 신속하게 영어를 이해하고, 다른 인종집단의 아이들과 사귀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중국인, 일본인, 필리핀 출신들과 외모상 많은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신속하게 동화되는 원인이 되었으며, 그것과 더불어 그들의 한국과의 관련성이 차츰 퇴색되기 시작했다.
이민 1세 부모들이 가족을 희생해 가면서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사이에 한국과의 유대가 점차 퇴색되어 갔다. 그들이 상점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많은 시간 때문에 많은 가족들은 서로간에 함께 보낼 시간이 없었으며, 어머니들 역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어쩔수 없이 먹게 되는 한국음식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한국적 전통과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때때로 그들은 피자, 햄버거, 스테이크 등이 그들의 입맛을 유혹할 때 한국문화와의 모순을 느끼곤 하였다. 한국말을 사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자녀들은 한국인 부모와 어떤 공통점도 찾을 수 없었고, 차츰 정체성이 변하여 서구의 가치관과 동화하게 되었다. 정체성은 한국인 이민자들에게는 중요한 잇슈가 아니였으며, 1.5세나 2세 한국인들에게는 중요한 잇슈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장시간을 일하였으며, 여가시간을 갖지 못하고 문화행사나 지역사회 행사에 참석할 엄두도 못하였다. 이민 1세대들은 지역사회 공동체 의식을 갖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했지만 경제적인 궁핍과 문화적 또는 국가적인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사람들은 이러한 행사를 무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단체들이 생겨났고, 또한 이러한 노력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한인 지역사회 단체들이 이러한 시기에 생겨났다. 이러한 단체들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하와이 한인 연합회로서
이것은 이미 하와이 이민 1세들이 만든 하와이 한인회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비록 이러한 한인단체들이 한국인의 목소리를 하나로 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은 종종 한국인의 진정한 의견을 반영하지 못했다. 그리고 많은 한국인들은 그들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까지도 계속 되어왔다.
한인사회가 오늘날
취해야 할 방향은 하와이 주류사회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참석하고 의견을 발표하며 우리가 벌어 놓은 돈과
두뇌로서 이러한 일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람은 정치, 문화, 활동을 포함하는 하와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전부 참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활동에 다른 인종 집단이 참가하도록 그들을 권유하고,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문화와 유산을 높게 평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우리는 한국방문 프로그램이나 학생, 학자, 기업가들의 교환방문을 통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와이와 한국을 계속적으로 연결시켜주고 미국에서 한인지역사회 서로간의 관계와 궁극적으로는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향상시켜주는 행사를 잘 조화시켜 개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들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한인 사회에서 강하고 성실하며
객관적인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인터넷 의 출현과 더불어 서로간의 의사소통에는 더 이상 장애가 없으며 서로 잘 협조하면 한국과 인연을
맺고있는 모든이의 의식을 향상할 수 있다.
우리가 한인사회나 문화를 더많은 친구들에게 인식시키면 그만큼 우리의 미래세대 들에게 이익이 되며
지역사회에서 우리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가 있다.
Networks를 형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내가 믿는 인터넷의
예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공사를 부르게 될 각 단체에서 고속도로의 연결이 부족합니다. 저는 이 연구위원회가 연결을
위한 촉매(작용)이라고 믿습니다. 만약에 이 상류사회의 모든 대표자들이 한국인들의 일치를 진전시키기 위한 진지하고 객관적인 대화를
위해 일치된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1세기 안에 Peninsula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우리 자신의 단체장들을 도와주게 될 아주 큰 다른
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연구위원회의 범위를 넘어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선, 우리는 인터넷상위에서 정부를 설립하고 이 그룹에서 교환과 생각들을 진전시키게 될 행사들을 계획해야만 합니다. 주인된 나라에서 연례적 모임은 지속적인 대화와 교환을 넓히는 좋은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틀란타, 최영돈】
한인회 활성화를 위한 제언
<정치력 신장을 중심으로>
한세기에 걸쳐 미주 한인사회는 160만이라는 양적 팽창을 가져왔으며, 부분적으로 한인들의 우수성과 경제력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구증가와 더불어 경제활동, 높은 교육열, 교회 및 사회단체의 증가는 특히 두드러진 성장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극히 외형적이고 단편적이며 구심점 없이 산재해 있을 뿐이다.
정신문화의 부재, 내부적 화합 및 정치력 미약 등으로 질적 성장에 대한 한계를 극명하게 노정시키고 있다. 특히 정치적 활동의 저조는 한인사회 발전의 가장 큰 장애로 이에대한 근원적인 대책과 연구, 개발이 시급한 시점이다. 국제화 시대,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 대변기구라 할 수 있는 한인회의 혁신적인 자기개발과 활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겠다. 어떻게 할 것인가?
주지하다시피 한인회는 지역한인들 스스로가 결성한 자생적 단체이며, 감정적 공유의 필요성을 그 바탕으로 해서 조직된 친목단체의 성격이 짙고, 그래서 장구한 시간이 지난 오늘에도 정치력을 발휘하는 파워집단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몇몇 감투욕에 사로잡혀 있는 인사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허나 복잡다기한 국제사회의 흐름이 이러한 한인사회의 자성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형성된 오늘, 특히 미 주류사회 여론의 흐름과 정책의 변화로 작용하고 있으나 문제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 리더의 부재현상이다. 이로인해 L.A, 뉴욕, 시카고등 일부 대도시의 한인회가 특정사안에 따라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으며 변화를 시도했으나 그것으로 만족해야했고, 상대적으로 군소지역의 한인회들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난 3-4년간 미주 한인사회는 주류사회의 급격한 정책변화로 인해 심한 몸살을 겪어야 했다.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 187(일명 SOS법안)"을 기화로 미국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보수화의 물결, 이는 결국 이민자의 복지혜택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사회복지법 개정안(HR4)"을 비롯 이민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40여개의 법안을 연방의회에 상정, 대부분 통과시켰으며 급기야는 지난 30년간 소수인종에게 특혜를 주어왔던 "소수계 권익옹호조치(Affirmative Action)"의 폐지로 한층 날을 곧추 세웠다.
이같이 사회전반에 걸쳐 엄습해 오는 반이민 물결로 인해 소수계 이민사회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에따라 미국내 흑인, 히스패닉, 중국, 일본등 인권단체들은 반이민법 반대 캠페인을 다각적이고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흑인인권단체로 유명한 National Association for Advancement of Coloned People, 히스패닉계의 Mexican American Legal Defence & Educational Fund, 중국인 단체연합(OCA), 일본시민권 자유연맹(JACL) 등의 단체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미국내 각 인권단체들과 연합하여 연방 상·하원을 상대로<사회복지법> 개정 반대 로비 활동은 물론 시민권 취득과 더불어 선거참여를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종교계, 사회단체들과 연계해 한인들의 정치참여 의식을 전환, 고양시키기 위한
계몽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치되 반드시 1.5세 및 2,3세들이 주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언어장애가 없고 미주류사회 문화속에 속해 있는
이들이야말로 이민 1세가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론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실행할 수 있는 의지요, 그 실천적 사고를 뒷받침 할만한 민족의식과 우국충정이 있느냐일 것이다. 이를 위해 본국 정부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교육시스템과 인적지원이 절실하다고 본다. 아울러 본국과 미주한인 지도자들의 정기적인 교류와 연구활동이 활발히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1.5세 및 2·3세들에게 민족의식과 정신문화교육을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하고, 그 확립된 정체성 위에서 복잡다기한 국제사회가 원하는 경쟁력을 갖춘 인재로 양성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여겨진다.
이를 위해 한국학교 시설의 현대화와 교사들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본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완벽한 이중언어를 구사하고, 미국과 한국의 양쪽 문화를 완벽히 습득 이해함으로서 오늘날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로 길러질 것이다.
또한 각 지역의 청년지도자 준비 모임을 결성해 미주 한인들을 하나로 묶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며, 정기적인
훈련프로그램을 통해 주류사회 각 계층으로 진출시킨다. 이럴 때 자연히 정치력 신장으로 발전될 것이다.
우선 이의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을 위한 정부차원의 연구요 교육이 필요하다. 오늘의 국제화 시대에서 한국과 미국을 따로 생각할 수도
없고, 본국인과 미주한인들을 구분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다름 아니다.
세계 각처에 산재해 있는 한인 이민자들은 세계가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변모한 오늘날 가장 큰 인적자원이라고 생각한다. 본국정부가 적극 나서서 한인 지도자들을 위한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자체를 모델로 한 한인회 운영 경영마인드를 전수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인회는 한인커뮤니터가 고립된 활동에서 벗어난 타 소수계 및 주류사회와 문화교류 및 연대활동을 통해 더불어 사는 한인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특히 내부의 감투욕을 지양하고 외부로 눈을 돌려 지역내 타 소수민족과의 관계개선에 노력함으로써 한인회를 이익단체로 변모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인회가 지역내 종교, 사회단체들의 힘을 결집시키는 창구역할을 맡아 화합을 바탕으로 정치력 신장에 주력할 때 과거 고무한 친목단체의 성격을 탈피해 이익단체로 거듭날 것이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교육으로 완벽한 인재양성을 도모하고 그들을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경쟁력을 제고할 때 밝고 건강한 미래와 더불어 명실상부한 한인사회의 중추적 기구로 입지를 굳게 할 것이다.
【카자흐스탄, 최 빠벨니콜라예비치】
중앙아시아 고려인사회 차세대 현황
이것은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지역 이주역사의 일부분입니다.
러시아제국(50년말-60년초 19세기) 당시 극동지역에 살았던
첫이주민들은 연해주 행정기관의 정책에 의해 농업에 생활기초를 두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고려인들은 값싼노동력과 국경수비대에 식료품을 공급할수
있었습니다. 대거이주는 일제체제의 가난과 압제로 고통받던 186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첫마을을 건설하고 내륙내부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 지역과 카자흐스탄에 공식적으로 정착되었다는 첫증거서류는 1897년 최초 러시아제국 인구조사서입니다. 이조사에 따르면, 최초 고려인들은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과 카자흐스탄 남쪽지역에 살았습니다.
러시아제국은 정치적으로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에 더 깊은 곳으로 투입시켰습니다. 수백여명의 고려인들은 위험인물이라는 이유로 카자흐스탄을 경유하여 놓여진 트란스시베리아 철도를 따라 더 깊은 곳으로 이주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정착했습니다.(1904년 - 1905년)
고려인들은 한국의 해방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많은 빨치산부대가 형성되었고 그들은 러시아 극동에서 투쟁했습니다. 그들은 극동에서 소련정권의 확립을 위한 투쟁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7년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1937년 8월 21일 소련정부는 전민족을 간첩행위 혐의로 고려인 주민들을 이주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일어났던 모든 일을 서술할 필요가 없고 모든 고통과 손실을 서술하기 불가능합니다. 단지 한가지 숫치뿐입니다. 당시 아이들의 사망률이 60%에 달했습니다.
9월말에 집단수송열차가 역사상 가장 큰 흉년의 비극을 겪고 있었고 이로인해 2백만이 넘게 죽게된 카자흐스탄에 도착했습니다.
카자흐인들은 열린 마음으로 고려인들을 받아주었고 공식적으로 정부에서 금지하는 데도 불구하고 할수 있는데까지 도와주었습니다.
사회주의 근로영웅이자 쌀 생산자인 김만삼은 그의 카자흐스탄에서의 첫 생활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국 민족이 우리에게 과연 문을 열어 줄까? 그러나, 카자흐인들의 밥상이 그들의 초원만큼이나 넓었다." 고문헌 자료에 의하면 당시 9,800명 이상이 이주되었습니다.
어떻든, 전혀 다른 환경인 카자흐스탄 땅에 들어오게 된 고려인들은 새로운 민족의 경제생활, 사회주의 문화, 언어와 기후환경에 적응해야만 힜습니다. 그리고, 카자흐 민족의 호의적인 도움을 힘입어 1세대들은 적응을 했습니다. 비록 문화재산은 거의다 상실했지만 말입니다.
소련정부는 선각자들과 지식인들을 탄압했습니다. 중학교, 대학교, 신문사들이 폐쇄되었고 교과서까지 야만적으로 소멸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대한 충성된 태도를 취했고 근면하게 일하여 카자흐스탄의 농업생산을 급속도로 성장시켰습니다. 40년 초까지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에 거의 완전하게 적응하였습니다. 협동조합과 집단농장에서 온힘을 다해 일하고 있을 때 세계 2차 대전이 일었습니다. 강제추방에 의한 모욕에도 불구하고 고려인들은 충성심이 가득하여 전쟁터에 나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중 일부는 전쟁을 했고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방어할 권리를 잃고 노동군이라고 불리면서 헌신적으로 노동분야에서 일을 했습니다.
참으로 1941년에 세계 풍작 신기록을 세웠던 유명한 쌀 생산자 김만삼은 노동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이로 인해 "존경"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그후 많은 상을 받았고 그는 "사회주의 근로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집단농장 고려인들은 전례가 없었던 영웅정신을 발휘하여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의 대가로서 수확량을 높이고 파종면적을 넓혔습니다. 이로 인해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후 시기에 흩어진 교포들은 정기적으로 구소연맹 극동정책에 이용되었습니다. 10년은 채 지나기도 전인 1946년에 쏘베트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 고려인들은 다시 극동으로, 북한으로 이주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렇게 많은 수가 아니었으나, 이로 인해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한국의 분단에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흩어진 교포중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분들이 이주되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었습니다.
전후 생활은 순조롭게 되어갔고, 그들은 다시 노동면에서 영웅적인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농업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고 이에 대하여 1949-1950에 고려인 수십명에게 근로영웅 칭호가 수여되었고 다른 훈장들도 수여되었습니다.
흩어진 교포들의 역사에 있어 여행제한이 완전히 폐지된 1953년은 중요한 역사적 단계가 되었고 고려인들은 삶에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70년도쯤에는 이미 공화국 대학에 교직원이 200명 이상에 이르렀습니다. 고려인들은 지도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대기업, 정부내각, 국가기관들에서 전문가들이 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훈장은 말할것도 없고 국가 표창을 받고 레닌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교포들의 부흥(고려인뿐만 아니라)은 정치개방의 시작과 함께 동시에 일어났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1986년 알마티에서 있었던 12월 혁명은 이런 개방과정에 강력한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오랜 기간이 지나고 고려인들은 자기 민족의 발전에 대한 문제, 무엇보다 먼저 언어와 문화의 보존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1988년에 카자흐국립대학과 예술대학에서는 고려인들의 삶을 전하는 언론기관과 고려인극장을 위한 요원을 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한국문화 명절은 통일을 위한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되었고,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탄압받았던 크즐오르다에서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반세기가 지나고 나서 처음으로 고려인들이 공개적으로 음력으로 설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해에 처음으로 카자흐스탄의 대표자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한민족 축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시기까지 이미 몇몇의 고려인 단체들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 공화국 고려문화중앙이 창립되었던 알마티에서 1990년 3월 17일 열린 제1회 카자흐스탄 고려인 창립집회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창립대회에 카자흐스탄 대표자들을 제외한 모스크바, 하바로스크, 타슈겐트등 여러 도시의 대표자들이 참석하였고 회장으로 한구리 박사님이 선출되었습니다. 그 이후 여러분야에서 고려인들의 활동이 활발해 졌습니다.
1990 - 1991년에 한국어 교사를 위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1990년에 제1회
연예, 예술단체들의 공연이 열렸습니다.
1992년에 한국어로 방송되는 <고려사람>TV방송국이
창립되었습니다.
1991년부터 한국교육원이 개설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모든 원하는 자들이 무료로 교육을 받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1994년 우수토베에서 8월 14-15일 이틀동안 열렸던 한국문화 축제는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카자흐스탄 공화국 나자르바예르 대통령과 대한민국 김영삼 대통령께서 고려인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카자흐스탄 강제이주 60주년 기념행사는 고려인들의 삶에 아주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마지막 행사에서 카자흐탄 공화국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경제와 문화에 있어 고려인들의 기여를 아주 높이 평가했습니다.
1995년 12월 고려문화중앙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로 개조되었고 회장에는 채유리안드레아비치가 선출되었습니다. 현재 카자흐스탄내에는 각 지역마다 9개의 협회지부와 10개의 한국센터가 있고 고려인협회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희극 극장인 고려극장, <고려일보>신문, <고려사람>TV방송 프로그램,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한국말로 일하고 있습니다. 과학협회도 있고 한국전문가협회, 과학기술협회, <카자흐스탄-한국>연방기업가협회 등이 있습니다.
오늘의 고려인들은 민족적 자주성과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중요한 조직입니다. 고려인 대표자들은 카자흐스탄의 경제와 학문에 근본적으로 기여하고 공화국내의 민주주의 발전을 촉진하게 할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의 주 및 구역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는 협회와 문화센터, 각종 사회단체들의 부분적인 조직망이 민족문화 발전과 보존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노인세대의 사회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힘으로 권위를 세운 것입니다. 고려인 젊은 세대들은 아직도 사회의 지도자들로서 다른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어떤 한가지 목적 성취를 위해 단결하여 일할 수 있는 능력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젊은이들을 과거 역사를 시작했고 누가 그것을 계승할 것인지 관심이 많은 노인들과 함께 하는 역사를 이끄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를위해 올해 첫 차세대 대회가 열리고 차세대 센터가 창설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차세대 센터는 단지 젊은이들과 고려인협회 사이의 교량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문제를 제기하여 자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물론 많은 문제들이 있고 한가지 방법으로 해결해서는 안됩니다. 노인세대들은 우리를 도와줄 때에 세심한 주의와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센터는 또한 창조적인 젊은이들을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즉 공부할 수 있는 자리가 될 뿐만 아니라, 자기성취의 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센터는 고려인 젊은이들을 단결, 통일시켜야 할 것입니다.
벌써 취업센터, 프로듀서센터, 젊은 사업가들 지지안내소, 장학회 등을 창설할 계획이 세워져 있습니다. 차세대 학자학술회는 대학생들을 도와 줄 것이고 클럽은 휴식과 직접적인 교제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광고를 통해서 건전한 생활방식에 대한 선전이 전파될 것입니다. 또한 민속운동을 가르칠 것이고, 각종 경기 및 운동행사가 개최될 스포츠센터도 세울 계획에 있습니다.
센터는 카자흐스탄내와 외국에서의 이와 유사한 젊은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축전에 참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멀지않은 장래에 외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젊은이들을 초청하기를 바랍니다.
역사와 언어문화에 대하여 한국의 다른 단체들과 협력하여 여러행사들을 개최할 것이고 이는 젊은이들에게 민족문화에 새로운 신선한 관심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차세대 사업가들을 위해서는 유명한 전문가들을 학술회와 여러 교육프로그램에 초청하여 카자흐스탄-한국 사업 지점의 협조가 실현되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모두는 차세대 센터에 큰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 고려인의 미래가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호주, 최현정】
1. 차세대 네트웤 형성방향과 의의
중국과 이스라엘은 오래 전부터 해외교포의 숫자가 많고, 또 그 영향력이 큰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은 모두 530만명이며 아프리카 적도지역에서부터 에스키모인들이 사는 지역까지 172개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치는 전체 교포수의 절대적인 규모와 또 한국에 거주하는 전체 인구에 대한 비율면에서, 그리고 다양하고 광범위한 거주국가의 측면에서 단연 중국과 이스라엘을 앞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과 정치, 문화, 경제교류가 빈번하고 상대적으로 중요한 나라들, 즉 미국, 일본, 중국, 소련, 호주 등에 많은 수의 교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주시할만한 잠재력이다.
세계의 모든 한인교포사회가 해외무역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며, 세계를 잇는 민간사절단으로서의 가교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략적으로 조직화되지 못해서 일관성이 없고 그 효율성을 극대화시키지 못했다고 본다.
그것은 체계화된 네트웤 형성이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국내의 형편과 세계 각국의 교포사회의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맹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재외동포 1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도 있다. 가령 국제적인 안목이 좁고 언어 및 기술사의 한계가 있다는 점등이다.
그런 맥락에서 재외교포 2세 혹은 3세들을 중심으로 한 네트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이들은 보다 COSMOPOLITAN적인 감각과 통찰력이 있으며, 시간과 열정과, 네트웤을 위한 컴퓨터 사용 등 첨단기술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본다.
이러한 네트웤은 각 개인과 각 국가별 한인 교포사회는 물론 조국의 정부와 업체들에게도 유익한 채널이 될 것을 확신한다.
문제는 이런 네트웤 형성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유지하고 활성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 등이 중요한 과제이다.
이번 제1회 재외동포 차세대 지도자 워크샵 이후 수료자들과 기타 뜻있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재외동포사회 발전을 위한 모임"을 결성하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실제적이고 타당한 작은 일부터 시작했으면 싶다. 가령 COMPUTER INTERNET을 통해서 혹은 간단한 NEWSLETTER 등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네트웤을 다져 갔으면 싶다. 앞으로 재외동포 차세대 지도자 워크샵이 해를 거듭할수록 같은 비젼을 가지고 젊은이들이 더 많이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JEWISH AGENCY라는 기관을 통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국내 정부와 JEWISH AGENCY 두 개의 정부가 있다는 말까지 있다. 세계 화교들간의 끈끈한 네트웤은 또 다른 형태로써 상부상조의 기능을 넘어서 세계상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의 한인교포사회도 그 이상의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조직화되고 네트웤화되어야 된다고 믿는다.
다만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조국 정부차원에서 획기적인 조치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가령 "이민청" 신설 같은 제도적인 결단을 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모든 것을 계획, 추진, 평가, FEEDBACK할 수 있으므로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줄 안다.
그러나 이처럼 중대한 정책적 변혁이 어렵다면 어떤 중앙정부에서 한두 명의 전담직원에게 NETWORK COORDINATION과 INTERNET까지 개설 및 관리, 국가별로 한인교포사회 백서 등을 발간하는 등 전략적인 임무를 맡기는 것도 매우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투자는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이 큰 유익을 조국과 세계의 모든 한민족공동체에 확실하게 되돌려 주리라고 믿는다.
2. 호주교포 차세대 사회아 민족정체성
호주의 한인이민 역사는 비교적 짧다. 본격적인 이민이 시작된 지 겨우 20여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98년 8월 호주 센서스(Census) 통계자료에 의하면 호주내 전체 한인수는 약 3만8천8백명 정도이다. 이 중에 약 50% 정도가 90년대 이전에 그리고 나머지 50%는 90년 이후에 호주에 입국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에 6개의 주가 있는데 한인교포들은 주로 시드니를 중심으로 한 NSW주에 전체한인의 74%가 거주하고 있다. 이처럼 호주내 교포인구의 총규모가 적고 정착시기가 일천하며 거주지가 편중되어 있는등 제측면에서 아직도 이민초기 단계에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한인교포의 밀집지역인 NSW주 한인가구수가 약 7300여 세대인데, 그중 57%(4200가구)가 임대주택에서 생활하며 25%(1800가구)만이 자기주택에서 살고 있다. 96년 8월 기준해서 한인전체의 실업률은 12.6%로서 당시 호주 전체 실업률 8.8%에 비해 훨씬 높다.
또한 호주 전체인구의 90%가 시민권자임에 반하여 한인교포의 45%만이 시민권자인 것 등은 아직 이민역사가 짧고 호주 내에서의 위치 정립이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체 한인교포의 12.5%(약4200명)가 호주에서 태어난 이민 2세·3세들이다. 호주 전체인구의 25%가 학생인데 반하여 한인 전체인구의 54%가 학생(유학생 및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는 이민 1세 포함)이어서 우리 민족의 높은 교육열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인구구성비를 볼 때 17세 미만의 학생들이 29%(약 900명)이며 18∼20세까지의 청년층이 31%(약 1만500명)이다.
이러한 인구구성은 호주 전체 인구구성과 비교해 볼 때 젊은 층의 인구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 이들은 대부분 학업중이거나 전문인력으로 경력을 쌓고 있다.
이러한 젊은이들은 자연기와 노년기의 사람들보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며 언어 소통에 유리하므로 앞으로 호주사회에 대한 참여의 폭과 질이 급격히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호주 내에서의 한인 교포의 위상이 높아지며, 그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 반면에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한국적 사고 방식의 부모와 호주의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며 개인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이들에게 건전한 가치관이 희박하다는 부정적인 일부 비판도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한국인으로써 혹은 한국계 호주인으로써의 자기 정체성이 부족(Self Identity Crisis)한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과 호주라는 두 개의 다른 가치관과 전통 속에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만을 선택하며 주장하는 얌체 젊은이들도 있다. 같은 젊은이들끼리도 단결력이 부족하고 공동의 단합된 견해나 비젼이 부족한 것 같다.
센서스 통계자료에 의하면 81년 이전에 이주한 한인들의 11.9%가 집에서 영어만 사용하여 한민족으로써의 정체성이 희박하다는 우려가 있는 반면에 90년 이후 최근에 이주한 한인들과 그 자녀들은 아직 언어문제로 불편을 겪고 있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최근(98년 6월)에 아시아 이민을 반대하며 호주 원주민을 과잉 보호한다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Pauline Hanson의 One Nation당이 Queensland주의 주선거에서 4분의 1의 지지를 얻었다. 그런 현실을 보면서 한국계 호주 시민으로서 과연 나의 정체성과 소명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해본다.
어떻게 하면 보다 분명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해서 긍지를 느끼며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호주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다니기 시작하고 대학 졸업반에 이르는 현재까지 계속되어온 나의 큰 질문이었다.
솔직히 여기에 대해 구체적인 방향이나 방법을 아직 제안할 수 없다. 이번 제1회 재외동포 차세대 지도자 워크샵에서 어떤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하기 소원한다.
현재로써는 재외동포 차세대 지도자 네트웤 형성이 구체적인 대안의 하나라고 생각되어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일본, 최희섭
】
1. 재외동포 차세대사회와 민족정체성
국가별 차세대 현황과 미래에 대한 전망
지금 재일동포사회는 일제의 식민통치로 인하여 도일(渡日) 혹은 강제징용당한
제1세대는 인구동태상 1할을 밑돌고 있다. 2,3세대가 그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다. 현재 5세대까지 있다. 조국에 대한 무조건의
애착을 가진 세대부터 조국을 상대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세대가 재일동포사회를 짊어지고 있다.
조국을 상대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계속 민족정체성을 잊지 않고 자기 뿌리가 한민족에 있다는 사실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가혹한 민족차별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제1세대의
역사에서 그 근거를 찾아야 된다. 민족정체성의 확립은 한국인가 일본인가 하는 양분적인 접근이 아니라, 조선반도가 루트라는 확실한 인식을 가지고
일본사회의 선량한 지역 주민으로서 어떻게 살아나가느냐가 재일동포사회의 앞으로의 큰 과제라 할 수 있다.
한국적 풍습과 서양의 가치관 사이에서 생활하는 재외동포 2∼3세들의 가치관 정립
우리들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가리키는 [서양적 가치관]이 구라파쪽 동포들을 가리킨다면 저희는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대답할 수 없다. 또한 구라파외에 동포만을 상대로한
질문이라면 그 정도 인식 밖에 없는 질문자의 인식을 의심한다.
재일동포 입장에서 2∼3세들의 한국적 가치관의 정립을 논한다면 그것은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과 우리역사라는 객관적인 요소만으로 재일동포의 민족성을 논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우리말을 제대로 모르고 고향에조차 가본적이 없는 젊은 세대가 축구나 권투시합 때 목이 쉬도록 우리나라를 응원한다. 그것을 볼 때 결국 언어도 역사도 아니라 민족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이라 생각한다.
민족정체성 확인 및 거죽구내에서의 위치 정립
그전(88올림픽 개최이전)에는 우리나라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발전이
저희들의 일본내에서의 위상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나, 지금은 우리 재일동포 자신의 노력에 위상 정립이 달려있다고 봅니다. 우리들은
한국적(韓國籍)을 가진 시민으로서 지역사회에 어떻게든 기여하여 일본시민들에게 재일동포의 존재의의를 인정받아야 된다. 한민족의 피를 이은
재일한국인이 있기에 일본의 지역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면 저희들의 위상 향상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저희들은
현재 한국적을 가지면서 일본의 지방참정권 획득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2. 차세대 네트웤 형성 방향과 의의
재외동포 2∼3세의 단결력 제고 방안
재일동포 3∼4세 청년세대중의 7할이 가깝게 지낼 수 없는 동포 친구하고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청년회의 독자적인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젊은 세대의 단결력 제고는 아주 심각한
과제다.
단결력 제고를 위해서 첫째, 가정내에서 자기가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워줘야 된다. 둘째, 위에서 지적한
가정내 민족교육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민족단체를 비롯한 가정 밖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민족교육(민족학교, 시민단체등)인 사회민족교육을 촉진시켜야
된다. 그리고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조직적으로 제공해줘야 한다.
국가간 차세대 지도자들의 네트웤화 필요성
세가지 측면에서 당연히 필요하다.
첫째,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서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600만 동포는 화교, 유태인을 제외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존재다. 몇수십국에서 그 나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활하는 우리들은 우리나라를 정치·경제·사회면에서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고 사실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자기 생활을 희생마저해서 헌신해왔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해외동포에 대한 정책은 여태까지는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민족교육에 부진(있기는 하나 아주 질이 낮음), 정치적 분야에서의 격리상황(한국적을 가진 동포한테는 적어도 부재자 투표권을 부여해줘야 되지 않는냐)등을 들 수가 있다. 이러한 제약을 주지 않고 국익이라는 측면에서 차세대에 대한 넷트웍화를 우리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방향도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해외동포의 대다수가 우리나라의 불행한 역사의 산물이다.
우리나라가 근대화 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수모들이 해외동포들이 존재하는 큰 원인 중에 하나다. 이러한 불행의 산물인 해외동포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민족성을 유지시키는 의무(의무까지는
아닐지 모르겠다)가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는 우리나라에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젊은 세대는 그러한 넷트웍을 원하고 있고 현재 민간 차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GKN(GLOBAL KOREA NETWORK)이라는 모임이 있다. 해외동포간의 교류를 통해서 한민족에 정체성을 재확인하자는 취지아래 민간차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들 젊은 세대는 해외에 있는 청년 세대와의 만남과 교류를 원하고 있다. 우리들의 이러한 소망을 정부차원에서 추진해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생각해 본다.
모임에 바람직한 방향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젊은 리더들이 자주적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모임이 활성화 될 때까지 정부측의 절차·재정면에서 전면적인 협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모임의 필요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거꾸로 묻고 싶다. 이러한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모임]은 뜻있는
모임이 되겠다고 여겨진다.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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