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 좋은글 때문에 묻혀가는
3331.3332.3333.에 올린 글을 정리 하는 내용 입니다
"100년만의 귀향" 제작을 마치고 글을 올려 봅니다
1991년,
카자흐스탄 알마띠를 방문 하였을 때이다.
그
곳에서 나는 우연치 않게 고려인 김 콘슨탄틴씨(당시78세)를 만날 수 있었다.
김
콘슨탄틴씨는 나를 마주하는 순간,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덥석 내 두 손을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우리 아버지가 왜놈들과 쌈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 따라
영문
없이 이곳저곳을 한없이 떠돌아 다녀야만 하였다.” 고 하셨다. 오랫동안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아 더듬거리는 말을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 그리움은 절절하게
전해져
왔다. 그리고 불과 몇일 뒤, 다큐 제작을 마치고 한국으로 출발하려는 아침에
그
분이 운명을 달리 하셨다는 전갈을 받았다. 여덟 살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한 번
떠나온
고향에 끝내 돌아가 보지 못하고...
“감독님,
내가 죽거든 작은 뼈 한 조각만이라도 가져다 조국 산하에 묻어 줄 수는 없겠소?”
지금도
김 콘슨탄틴씨가 하던 말의 느낌이 생생히 잊혀 지지 않는다.
“내
뼈 한 조각을...” 이 말은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모든 고려인들 한 맺힌 삶의 마지막
말이라
했다.
그렇게
김 콘슨탄틴씨를 만났던 때문일까...
그
후로 나는 러시아를 방문하게 되면 달력이나 한국의 정서가 묻어나는 물품들을 힘닿는 대로
준비하여,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들에게 전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그리고
가능하면 독립투사와 그 후손들도 찾아보려고 수소문도 해 보았다.
그러나,
넓고 넓은 러시아에서 독립투사나 후손들을 찾는다는 일이 그리 용의하진 않아서,
마치
모래 속의 사금파리를 찾듯, 거듭되는 시행착오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일쑤였다.
하지만,
다큐 제작이 여러 차례 거듭되며, 입소문 덕분인지, 출발 할 적마다 고려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물품이 조금씩 늘어났고, 급기야는 너무 많은 양 때문에 몇 번이나 세관 검색에
걸려
고초를 겪는 해프닝도 발생하곤 하였다.
특히,
2001년에는 MBC의 “아주 특별한 아침 『키르키스탄 기행』”에서 초라한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르는 고려인들의 모습이 방영된 뒤에, 한 시청자의 도움으로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한복
950벌이 순식간에 모아졌다. 그리고 덕분에, 그렇게 모인 한복과 월드컵 캘린더 15000부 등을
항공편을
통해 고려인들에게 전달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MBC에서 “8ㆍ15 특집 심야스페셜 『100년만의 귀향』” 이란 제목으로 다큐가
방영되었다.
막상 작품이 완성되어 방영되고 있는 화면을 보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하고 가는 곳마다 음식물이 맞지 않아 오랫동안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던
최PD의
모습과, 수많은 제지로 촬영이 힘겨웠던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난민촌, 그리고
허
게오르기씨가 농사짓는 사라토프에서 벌떼같이 달라붙던 모기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는 것은, 물이 없어 늦게 파종하는 바람에 수확시기를
놓쳐버리고
동분서주하는 허 블라디슬라씨의 형, 허 게오르기씨의 처절한 모습이었다.
철을
놓친 농사는 아무리 애써본들 건질 것이 없으리란 사실을 불 보듯 뻔히 알면서도, 행여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사람들. 그 가슴 아픈 모습들...
드디어
허 블라디슬라씨가 우리 일행과 귀국하려던 날, 세대를 지나 100년 만에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일자리를
찾아가는 동생을 배웅하며, 허 게오르기 형은 동생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뒤돌아서서
연신 눈을 쓰다듬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매사 조심하여, 할아버지를 실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라는 말을 끝으로
손을
흔들며
점점 멀어져 가는 허 게오르기씨의 모습에, 필자 역시 60평생 처음으로 가슴이
뻐근하며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억제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여러 기회를 통하여, 국내 언론과 매스컴에서 고려인들의 아픔을 수차례 알려 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가시적 성과가 보이지 않았던 시점에서, 금번 방영된 ‘100년 만의
귀향’
은 시청자들에게 고려인들의 애환을 피부에 닿도록 크게 부각 시키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
한 예로 ‘100년 만의 귀향’을 시청한 지인들이 허 블라디슬라씨의 형 허 게오르기씨를 돕자는
모임을
결성, 12월 말에 허 게오르기씨와 그의 큰 아들, 그리고 부인을 한국으로 초청하려고
준비
중이다. 또한 그 밖에도, 많은 관심 어린 문의들이 다각도로 쇄도 하고 있다.
다만,
이번 방송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은, 심야 시간이라 방청을 놓친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가
한
번 더 있었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욱 많은 국민들에게 한 핏줄을 나눈 고려인들의 실상과 애환을 폭 넓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더불어, 고려인을 돕는 단체들이 예산부족으로 미처 홍보도 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의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다소의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다시 한 번 재방영의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100년만에 찾은 행복”을 현재 제작중이어 많은 격려를 부탁 드리고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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