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은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몰도바·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 등 독립국가연합 내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들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용어이다. 러시아어(語)로 '까레이스키'라고도 부른다.

“까레이스키”는 korea(고려) + people(사람)의 합성어이다. 이 "고려인들"은 현재 연해주라고 부르는 "쁘리모리예변강" 즉, 블라지보스톡, 하바로브스크, 빠르찌란스크를 잇는 드넓은 극동 시베리아지역에 살거나, 또는 중앙아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 조선인들의 후예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명칭이다. 조선왕조 말엽의 조선사람들이 여러 가지 복잡한(가난과 기근 어지러운 나라사정)문제로 국경을 탈출해 연해주로 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러시아 사람들에게 고려 시대 때 국가의 땅이었다는 뜻을 전하려고 "고려사람"이라고 명칭 하였던 것으로 본다.

1860년 연해주 포세트지역 한인 13가구 최초 기록
1863년 한인 연해주 이주 시작
1867년 185가구 999명
1869년 한반도 북녘 대기근으로 이주 급증. (1만 명 급증)
1902년 한인 이민자수 32380명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후 의병 기지화
1908년 의병건수 1451건 참가인원 69800여명
1910년 경술국치 후 한인 이민 급증
1914년 교민 수 63000명으로 신한촌 건설 (블라디보스톡)
1918년 일본군의 연해주 점령
1922년 10월 일본군 연해주 철수, 친일 거류민단 5000명과 함께 귀국
1923년 재소 한인 공식 10여만 명 거주. 살자 25만 명 이상 거주
1937년 9월 21일-11월 15일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한인들 전원 중앙아시아(6천키로) 강제이주당함


1931년 일본군이 연해주 침략을 위해 한인들을 첩자로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았는데 그것이 이후 스탈린에게 강제이주의 구실을 주었다. 1937년.. 스탈린은 고려인을 포함한 소수 민족에 대한 강제 이주정책을 실시하게된다

 

출처 : 사랑과 용서
글쓴이 : 망구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