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40)한국에 온 노동자들을 품어야하는 이유
-84년전, 몽골에 진 빚이 있다-

얼마 전 한 신문에서 몽골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몽골에도 외국인을 적대시하는 극우단체가 있는데 현금을 많이 지니고 다니는 한국인들이 주로 피해를 본다는 내용이다. 기자는 현지 교민의 입을 빌려 여러 피해 사례를 보고하면서 상황이 이런데도 대사관에서는 팔짱만 끼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람을 때리고 금품을 뺏는 것은 물론 몹쓸 짓이다. 대사관도 교민 보호라는 고유의 업무를 게을리했다면 마땅히 비판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한국인들이 극우단체의 표적이 된 것은 꼭 현금 소지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과 몽골과의 교류가 활발해면서 오히려 몽골인의 한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의 골은 점점 더 깊어가고 있는 듯 하다. 사진은 몽골 테를치 국립공원에서 연주하고 있는 몽골마두금합주단. /경향신문 자료사진

몽골 사람들은 원래 한국 사람에 대해 참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내가 처음 몽골에 간 1991년 무렵만 해도 분명히 그랬다. 한국인과 몽골인은 한 뿌리에서 나왔으니 잘 지내야 한다고 그럴 듯한 설명까지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호감은 확실히 같은 동아시아에 속한 중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감정과는 차이가 있다. 무슨 특별한 이익도 없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무조건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덕분에 나는 대접도 잘 받고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도 잠깐 1990년대 중반 이후 한-몽 교류가 활발해지고 한국인들이 대거 몽골에 진출하면서 몽골인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국내 언론에 자주 보도된 것처럼 울란바토르 시내를 질주하는 승용차 절반 이상이 한국 차다. 몽골을 찾는 외국 관광객 가운데도 한국 사람이 가장 많다. 몽골에 투자한 외국 업체도 회사 숫자로만 따지면 한국이 수위 그룹을 형성한다.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는 선교사도 숫자나 활동 반경에서 한국 출신이 가장 많고 가장 넓다. 당연하지만 1990년대 초 몇 십 명에 불과하던 교민 수도 1000여명으로 늘어났다. 다른 나라 교민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270여만 몽골 인구에 비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몽골 체류 한국인 중 절대 다수는 중소 상공인들이나 선교사 또는 선교 목적의 봉사단체에 속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학교, 병원, 복지 시설을 건립하여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척박한 환경에 자본을 투자하여 막 시작된 몽골의 시장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선교사들의 공격적인 선교 활동이 불교의 나라에서 나고 자란 가난한 몽골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안겨준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상공인들의 불법 탈법 행위는 기가 찰 정도다. 몽골에 퇴폐 유흥업소를 도입한 장본인들도 다름 아닌 우리 동포들이다. 그 주인들도 대부분 한국에서 간 사람들이다. 심지어 몇 년 전에는 한 대학 강의실에서 누드 사진을 찍다가 발각되어 몽골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몽골 정부에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가라오케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였다는 보도도 있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해서일까? 나는 매년 몽골에 갈 때마다 한국 사람에 대한 반감을 피부로 느낀다. 이는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다. 최근 몽골을 다녀왔다는 이주노동자 센터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도 그렇게 보고하고 있다. 자신이 탄 택시 운전사들이 모두 한국인을 싫어하더라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반감을 가진 몽골인 중에는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들겨 맞고 욕먹고 비인간적인 대우에 대한 서러움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부터 정확히 84년 전인 1923년 7월5일이다. 그 당시 몽골의 국가수반인 보그드 칸에게 한 통의 청원서가 도착했다. 자신을 소련 거주 한인노동자연맹의 위원장이라고 소개한 최치언이라는 사람이 보낸 글이다. 사연은 소련에 사는 한인 3000명의 몽골 이주를 허락해달라는 내용이다. 몽골 정부는 처음에 이 청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모스크바 주재 대사에게 진상 파악을 지시하고 각료 회의까지 열어 사태에 신속하게 대처했다. 그러다 모스크바 주재 대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사건을 종결해버렸다. 소련의 압력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 더 이상 자료가 없어서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몽골 각 기관 국립공문서 보관소에는 최가 올린 청원서 말고도 1920년대 몽골에서 살았던 한인에 관한 자료가 남아 있다. 대부분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중국이나 러시아를 떠돌다가 살길을 찾아 몽골에 간 사람들의 생활에 관한 기록이다. 주로 몽골에 귀화를 신청하거나 과태료 비용의 탕감을 요청하거나 호구지책으로 아편을 밀매하다가 적발되어 구속된 사람들이 선처를 청원하는 내용이다. 청원서에는 현지 몽골인들이 보증자로 등장한다. ‘몸이 다쳐 일을 못해 과태료를 마련하지 못했으니, 귀화만 허락해주면 국법을 준수하고, 추운 겨울이니 추방만을 면해주시기를’ 등 사연도 하나 같이 애절하다. 그들의 생활이 어땠을지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그중에는 더러 좋은 상전(몽골인)을 만나 그럭저럭 입에 풀칠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못된 주인의 구박과 굶주림에 허덕이다 제 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천지가 개벽하여 80여 년 전 한인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던 몽골인 후손들이 이제 돈벌이를 위해 한국에서 궂은일을 하고 있다. 물론 그 때 몽골 땅의 한인들과 지금 한국 땅의 몽골인들은 처지가 다르지만 먹고 살기 위해 남의 나라에서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하는 일도 현지 사람들이 꺼리는 3D 업종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아쉬운 사람들이라 별 도리가 없겠지만 두 나라 사람들이 시간을 사이에 두고 왜 그리도 똑같은 운명을 주고받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세상살인가 하는 묘한 생각마저 든다.

몽골인들이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오기 시작한 것은 한국인들이 본격으로 몽골에 들어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다. 현재 한국 각지에서는 몽골 전체 인구의 1% 정도가 불법 또는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광희동 일대에 가면 아무 때나 몽골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 어느 한 건물은 말 그대로 한국 속의 작은 몽골을 방불케 한다. 그곳에 가면 음식점에서 미장원, 전화, 국제 우편물 취급소, 환전 등 몽골과 관련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몽골 세상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몽골 노동자 수는 다른 나라 노동자에 비하면 결코 많지 않다. 그러나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따지면 높은 편이고, 당연히 이들이 고국으로 보낸 돈은 몽골 경제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주노동의 폐해도 적지 않다. 지금 한국에 와 있는 몽골인들은 전체 이주노동자 중에서 학력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자기 나라에서 뭔가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몽골에서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구해봤자 임금이 낮아 그렇다고는 하나 지금 같은 추세는 몽골 장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아무리 돈벌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는 몽골 사람들의 삶은 고달프다. 이 땅의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듯이 몽골 친구들도 작은 공장이나 건설 현장 막일 또는 이삿짐센터 등에서 도우미 일을 한다. 대부분 몽골에서는 해보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은 일이다. 고달플 수밖에 없다. 사람대접은 고사하고 임금을 떼이는 일도 흔하고, 혹시 불법 체류자라면 불시에 들이닥치는 반속반의 눈을 피해야 하니 그 인생이 얼마나 팍팍하겠는가? 더구나 몽골 사람들이 한국에 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을 들인다. 나는 그 메커니즘을 알 수 없지만 중간 브로커를 경유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벌써 오래 전이다. 나는 몽골을 공부하면서 잊을 수 없는 비극을 경험했다. 한밤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경기도 일산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음주 운전을 하여 큰 사고를 낸 몽골 노동자가 붙잡혀왔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좀 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급하게 택시를 타고 일산경찰서에 도착하자 남루한 옷을 입은 한 중년 남자가 하얗게 겁을 먹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한국에 온 지 1주일밖에 안 되는 쓰레기 처리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일이 끝나면 한국 노동자들과 함께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한다. 사고 당일도 술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에 탔는데 한국 운전사가 물건을 사려고 잠깐 비운 동안 운전대를 만지다가 차가 전진하여 바로 앞의 승용차를 박살내 버렸다. 무면허에 음주운전이니 도리가 없었다. 구속되었다.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나 그의 처지가 너무나 딱했다. 한국에 온 지 1주일, 그것도 거금을 주고 왔다가 고된 일에 시달리다 음주로 사고를 내고 철창 신세까지 지고 추방되었다. 그 사람 개인으로 보면 엄청난 비극이다.

그래서 글을 마치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이 땅에서 일하는 몽골 노동자들에게 좀더 따뜻한 인심을 베풀어 보자고. 인간 평등 인권 등 거창한 구호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지금 한국의 몽골인들은 일제 때 시베리아를 떠돌던 한인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들의 후손이다. 따라서 그들은 선조들이 베푼 선행에 대한 보은을 향유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역시 이렇게 해야 과거 우리 동포들이 진 빚을 갚을 수 있다. 그래야 이 글 서두에 언급한 한국인에 대한 표적 테러도 사라질 것이다. 돌고 도는 것이 사람의 운명인데 100년 후 우리 후손들이 몽골에 가서 신세지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평래 | 한국외국어대 연구교수·몽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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