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장. 부흥집회
1. 부흥집회의 역사.
기독교 부흥집회의 역사가 언제 누구로부터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이미 초대교회 시대부터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복음 선교과정에서 대중 집회를 인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인물은 감리교를 창설한 <웨슬레>와 <무디>일 것이다. 한편 한국 기독교의 부흥집회 역사는 1903년 원산에서 의료 선교사로 활약하였던 하디<R.A.Hardie,M.D> 목사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반면에 한국인 최초의 부흥사는 아마도 새벽예배를 창설한 길선주 목사일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는 웨슬레, 무디, 길선주 목사와 같은 부흥사들의 후예들이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는 웨슬레, 무디, 길선주 목사와 같은 훌륭한 부흥사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학, 신앙, 사명감 등등이 전혀 없는 자들이 더 많았다. 저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는 구호를 내세워 자신들의 유익을 챙겼고 그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신학적 오류와 신앙적 비 진리를 양산하였다. 특히 한국 기독교는 1960년대 이후부터 등장한 사이비, 이단적 부흥사들에 의하여 극심한 신학적 오류와 비 진리적 신앙의 범람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3류 무속종교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다.
2. 부흥집회의 필요성과 중요성.
1) 복음전파.
부흥집회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된다. 부흥집회의 설교는 정규 예배의 설교가 채워줄 수 없는 요소들을 채워준다. 정규 예배의 설교는 예배의 성격 때문에 시간이나 내용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제약을 받으며 따라서 신앙적이기 보다는 신학적이 된다. 반면에 부흥집회의 설교는 시간적, 내용적인 면에서 보다 자유롭다. 따라서 신학적이기보다는 신앙적인 설교를 하게 되며 특히 간증을 포함한 여러 가지 예화를 적절하게 적용함으로서 복음을 처음 접하는 자들이나 신앙적인 정립이 아직 안된 자들의 감성과 감정을 자극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흥 집회를 통하여 질병을 치유하시거나 각종 은사들을 체험하게 하심으로 그러한 역사를 실제로 체험하는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보고 듣고 깨달아 하나님께 귀의하는 것이다.
2) 신앙의 정립.
신앙생활을 꾸준히 하면서도 아직 신앙의 확신이 없던 성도들이 부흥집회를 통하여 말씀의 은혜를 받거나 또는 각종 신앙적 체험을 하는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인하고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확신하게 된다. 특히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신앙이 침체되거나 또는 낙심과 절망으로 신앙적 삶에서 벗어나 있던 성도들이 부흥 집회를 통하여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 더욱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한다. 때문에 교회는 주기적으로 부흥집회를 열어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성도들의 신앙을 다독여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3. 부흥집회의 오류.
부흥집회가 한국 기독교 성장에 많은 발전을 준 반면에 부흥집회로 인한 폐단도 매우 심각하다. 부흥 집회로 인한 폐단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차원에서 발생하였다.
1) 순수하지 않은 목적에 의한 부흥집회.
교회가 어떤 특별한 목적 하에 부흥집회를 개최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에 있어서 교회 전체 또는 교회 지도자들의 동의를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목사의 독단에 의하여 부흥집회가 열리는 것이 상례다. 저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야심과 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부흥집회를 개최하기 때문에 교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의사를 전혀 무시하고 독단으로 부흥집회를 개최한다. 따라서 자신의 목적을 채워줄 수 있는 강사를 초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묘히 위장된 비 진리를 전개하는 가운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현대 기독교 성도들은 저들의 의도적인 부흥 집회 개최를 이미 알고 있다. 이제 성도들은 부흥강사의 이름만 들어도 부흥집회의 성격과 목적을 안다. 그러나 목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적 부흥집회를 강행하여 각종 물의를 일으킨다.
(1) 건축헌금을 유도하기 위한 부흥집회.
목회자들이 교회 건축헌금 작정을 유도하기 위하여 부흥집회를 개최하는 경우가 있다. 교회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부흥집회를 개최하는 것을 모두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교회전체가 교회 건축을 열망하는 가운데 신앙적 결단을 하기 위하여 그리고 건축 헌금을 스스로 작정하기 위하여 부흥집회 개최를 촉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고 목회자와 일부 몇몇이 교회 전체의 의사를 무시하고 건축헌금 작정을 유도하기 위하여 부흥집회를 개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건축헌금 작정을 유도하기 위한 부흥집회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교회 건축을 반대하는 반면에 목회자와 몇몇이 그것을 강행하려 할 때에 의도적으로 열리게 된다. 이때에 초청된 강사는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요란한 박수를 동원한 열정적인 찬양을 계속하는 가운데 분위기를 고취시키고, 하나님의 강복을 미끼로 하여 성도들의 감정을 자극함으로서 그들이 일시적인 감정에 의하여 건축헌금을 작정하게 한다.
어떤 부흥강사는 아예 의도적인 계략으로 성도들의 감정을 충동한다. 에를 들면 금반지를 사서 끼고 간 후에 그것을 건축헌금으로 내놓는다거나 또는 자신이 먼저 거액의 건축헌금을 내놓아 성도들의 건축헌금 작정을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저가 내놓은 금반지나 건축헌금은 모두 계산하여 돌려받는다. 감정에 약하고 감동받기를 잘하는 성도들은 이와 같은 부흥강사의 계략에 휘말려 계획에도 없는 건축헌금을 작정한다. 그리고 부흥집회가 끝난 후에 자신이 일시적인 감정에 치우쳐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작정한 것은 절대 되물릴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의하여 작정한 건축헌금을 낸다. 그러나 그들은 건축 헌금을 내면서 여러 가지로 무리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각종 문제들이 발생하는 가운데 심지어는 가정파탄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교회건축이 종료되거나 또는 교회건축이 계속되는 과정에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비 진리들 때문이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작정한 헌금을 최선을 다하여 마련하는 대신에 더 이상 그 교회에 남아있지 아니하고 떠나는 것이다.
(2) 자신의 수입을 위한 부흥집회.
목회자들이 자신의 개인적 수입을 위하여 부흥집회를 개최하는 경우가 있다. 목회자들이 부흥집회 때 드려진 헌금 중에 일부를 챙기기 위하여 부흥집회를 개최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흥강사들이 기도원이나 운동장 같은 시설을 임대하여 부흥 집회를 개최하고 그 집회에서 수집한 헌금을 자신의 수입으로 챙기는 경우가 있다. 뿐만 아니라 아예 목회자와 부흥 강사가 헌금을 나누어 같기로 밀약하고 부흥집회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의 부흥 집회에서는 헌금에 대한 강조가 지나쳐서 반감과 분노를 일으키게까지 한다.
(3) 자신의 입지강화를 위하여.
목회자들 중에 어떤 자들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부흥 집회를 개최한다. 이러한 차원의 부흥집회에는 다음과 같은 계략과 계산이 숨겨져 있다.
① 목회자가 곤경을 벗어나기 위하여.
목회자가 어떤 이유로 인하여 곤경에 처하였거나 또는 성도들로부터 불신 당하여 사임압력을 받게 되었을 때 성도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부흥 집회를 개최하는 자들이 있다. 성도들은 대체적으로 눈물과 용서와 사랑이 많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특성이 있다. 교활한 목회자는 이러한 성도들의 특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 즉 부흥집회를 개최하고 사랑, 용서, 관용, 등등의 방면에 탁월한 부흥강사를 초청하여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유하는 것이다. 이때에 특히 간특한 자들은 부흥회 기간에 자신이 철저하게 회개하고 은혜 받는 것처럼 위장하여 성도들의 동정심과 관용을 끌어내어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슬그머니 넘겨버린다. 이것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방법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고 진심으로 회개한 후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각오로 목회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름다운 자세일 것이다. 반면에 저들은 얼마 후 다시 악한 모습을 보이므로 오히려 성도들을 기만한 것이 발각되어 더욱 어려움을 당한다.
② 목회자에게 순종할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성도들이 자신에게 충성,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에게 충성, 순종하지 않는 성도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부흥집회를 개최하는 자들이 있다. 저들은 부흥강사에게 자신에게 충성, 순종하지 않는 성도들을 일일이 가르쳐준 후 부흥강사로 하여금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하게 한다. 부흥 강사들은 목회자를 대신하여 특정인들을 공격하는가 하면 목회자에 대한 충성과 순종을 강요한다. 부흥강사들은 목회자의 권위를 하늘높이 추켜세운 후 목회자에게 충성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복 받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부흥강사들이 목회자에 대한 충성과 순종을 강조하는 내용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민12장>과 저유명한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다. 우리는 부흥 강사들의 오류를 잠재우기 위하여 특별히 이 문제를 정립한다.
A. <민12장>
<민12장>에 나오는 모세에 대한 아론과 미리암의 항의와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는 목사들의 권위, 목사들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순종, 목사들에게 항의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등등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부흥강사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차원이 아니다. <민12장>에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섭리가 선포되었다.
a.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권위.
하나님 종들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된 것으로서 절대적이다. 본인은 언제나 종의 위치에서 겸손해야 하지만 그의 인도를 받는 성도들은 그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절대적 순종을 요구받는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에 대하여 책망하는 것은 선지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지만 그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는 민족적 구심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했다. 따라서 그들은 모세의 잘못을 비판하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모세의 권위를 세워주면서 잘못을 하나님의 법으로 충고하고 권면해야 하는 것이다.
b. 하나님의 종들 간에 존재하는 사역적 질서.
모세, 아론, 미리암은 모두가 선지자였고 따라서 그들 사이에는 계급적 서열이나 우열이 없다. 그러나 같은 선지자라 하여도 그들 사이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적 질서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선지자였고 아론과 미리암은 모세의 동역자였다. 같은 선지라 할지라도 대표와 동역자 사이에는 지켜야 할 질서가 있다. 그러나 아론과 미리암은 그러한 질서를 무시하였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그들에게 징계를 내리셨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아론과 미리암이 같은 잘못을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미리암만 징계하신 것에서 나타난다. 아론은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워주시기 위하여 미리암만 징계하셨던 것이다.
c. 하나님의 종들의 비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모세의 비 진리를 용납하시지 않으신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은 지도자로서 결코 범해서는 안 되는 과오였다. 모세가 아직 건강하여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가나안 입성을 금지하시고 퇴진시키신 것은 모세의 과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 물론 모세의 퇴진은 자신의 일생을 오직 하나님께 바친 모세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고 하나님께서도 분명히 마음 아프신 일이었으리라. 때문에 우리는 모세의 퇴진을 모세에 대한 징계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교훈이며 경고라고 받아들인다. 따라서 <민12장>은 <목사를 섬기고 목사에게 충성 순종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종들의 권위>를 강조하시면서 <하나님의 종들 간의 질서>와 그것을 위반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원리를 가르치시고 경고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B.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
부흥 강사들이 목사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기 위하여 적용하는 예화 중에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다음은 광주개혁 신학원 이사장이며 광주 중앙교회 담임 목사인 변한규 목사가 1994년 9월 15일에 한국 로고스 연구원을 통하여 발행한 <짤막한 신학>이라는 주제 하의 저서 <목회신학> 제3장. 관계신학 제3항 <장로와의 관계-P.265>에 실린 것이다.
*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순국자 조만식 장로와의 유명한 일화에서 우리는 커다란 교훈을 얻을수 있다.
본래 조만식 장로는 주기철 목사의 스승이요 후에는 주기철 목사가 조만식 장로의 목사가 되었다. 어느 주일 낮 예배시에 조장로가 공중기도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어느 인사를 만나는 일로 예배시간에 늦게 되었다. 현관에 서서 들어오는 조장로<스승>에게 주목사는 추상같은 불호령을 내려 현관에다 벌을 세웠다. 설교가 끝난 후에야 헌금 감사기도를 시키니 이때 조장로가 드린 참회의 기도는 너무나 유명하다.
하나님이여! 제가 거룩한 주일날 하나님 만나는 일 외에 세상사람 먼저 만나다가 오늘 이 거룩한 시간에 지은 죄를 용서하소서. 하나님이여! 제가 잠시나마 주의 종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을 용서하소서. 하나님이여! 제가 이 모든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한 것을 용서하소서.
과연 순국열사다운 조만식 장로와 그 스승의 그 제자인 주기철 목사이다. 그 목사에 그 장로이다. 장로 조만식은 사랑과 관용으로 교회와 민족 그리고 동포의 단결을 강조하고 비폭력과 무저항의 정신으로 조국을 자주독립의 길로 인도한 진실한 기독교인이다. 주님의 교훈대로 산성도요 장로이다. 그가 무저항으로 조국을 지킨 것은 주 예수의 교훈대로 순종한 바로 그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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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에 대한 일화를 들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위의 내용은 처음의 내용에 비하여 몇 가지가 추가되었고 변경되었다.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 같으며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를 심히 칭송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두 사람을 사정없이 매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근거없는 것으로서 누군가에 의하여 조작된 거짓말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사실을 1988년경 서울 반포의 남서울 교회의 담임목사였던 홍정길 목사<현재 남서울 은혜교회 시무>를 통하여 들었다. 당시에 홍정길 목사가 설교를 통하여 밝힌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만식 장로의 자녀에게 문의한 결과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었다. 조만식 장로의 자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와 같은 이야기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조만식 장로와 주기철 목사의 인격을 모욕하는 거짓말로서 장로들로 하여금 목사에게 순종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조작된 것이다. 조만식 장로는 평생 동안 단 한번도 예배시간에 지각한 일이 없으며 만약에 조만식 장로가 지각했다 할지라도 주기철 목사가 목사의 권위를 내세워 스승인 조만식 장로에게 그와 같은 결례를 하실 분이 아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 조작된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밝혀 달라.>
홍정길 목사의 이야기대로라면 조만식 장로와 주기철 목사에 대한 이야기는 부흥강사들 중에 누군가가 장로들이 목사에게 절대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거짓말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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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서 부흥 강사들이 조작해낸 이야기들 중에 매우 유명했던 또 하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것은 현신애 권사의 입신에 관한 이야기로서 다음과 같다.
<어느날 현신애 권사가 기도하던 중에 입신하여 천국에 갔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현신애 권사가 반가이 달려가 인사를 하자 예수님은 현신애 권사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에 서운한 현신애 권사가 자신이 현신애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모른다고 하셨다. 이때에 현신애 권사가 심히 답답하여 서울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를 아느냐고 묻자 예수님은 오히려 조용기가 누구냐고 되물었다. 이에 현신애 권사가 그러면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는 아느냐고 묻자 예수님이 한경직은 안다고 대답하셨다. 현신애 권사가 정신이 돌아와 놀라운 마음으로 조용기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야기를 하자 조용기 목사가 크게 놀랐고 그리하여 참회의 기도를 하면서 거액을 내놓아 하나님 사업을 하였다.>
당시에 홍정길 목사가 현신애 권사와 조용기 목사에게 사실의 진위를 직접 확인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누가 무슨 의도로 이러한 거짓 이야기들을 조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에 한창 명성을 날리던 조용기 목사를 폄하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가 추측하건데 위의 두 이야기는 누군가가 감동적이고 은혜스러운 설교를 하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어 낸 예화일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간단한 내용이었는데 점점 확산되면서 내용도 많이 추가되고 변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적하는 것은 그 이야기의 진위나 내용의 발전이 아니라 그것이 목사의 권위를 내세우고 성도들의 절대적 순종을 강조하기 위하여 장로들을 의도적으로 폄하하였다는 것이다.
③ 자신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의도적인 부흥 집회를 개최하는 자들이 있다. 목회자에 대한 섬김을 강조하는 전문 부흥강사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성경은 <왕상17:8-> 이하에 나오는 사렙다 과부의 엘리야 공궤이다. 저들은 목사의 섬김을 강조하면서 목사를 잘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대신 목사를 잘 섬기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는 공갈 협박까지 한다. 저들은 <목사를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목사를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께 복 받는 비결이다.> <보이는 목사를 섬기는 것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보이는 목사도 섬기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가?>라고 호통치면서 <자가용을 사주라> <양복을 사주라> <품위 유지비를 많이 주어라> <사모님 옷 사드려라>는 등등의 목사 섬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부흥집회의 마지막 시간에 목회자 섬기기를 작정하는 시간을 갖고 작정한 자들의 명단을 작성한 후 그들을 위하여 특별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수법이 과거에는 통하였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성도들이 지혜롭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로 나타난다. 성도들이 반감을 갖게 되어 오히려 목사들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나 부흥강사들이 그와 같은 성도들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와 같은 어리석은 망동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④ 자신을 과시하기 위하여.
공명심에 눈먼 자들이 자신의 명예나 권위 등등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흥 집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자신의 <끼>를 발휘하는 가운데 만족과 쾌락을 얻기 위하여 부흥집회를 뛰어 다니는 자들이 있다. 이런 부류들은 자신을 선전하기 위하여 과장된 홍보활동을 전개한다. 자신의 집회 일정을 신문에 광고하며 해외 집회 일정을 과장되게 선전하거나 심지어는 거짓 광고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집회의 광고에까지 자신의 얼굴을 집어넣어 홍보한다.
이러한 자들의 부흥집회는 기독교의 부흥집회가 아니라 완전히 3류 풍각장이들의 공연장이다. 이제 우리는 저들의 괴악스러운 비 진리적 이단 사설들이 하나님의 강단에서 더 이상 난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한 자들을 부흥강사로 초청하지 않아야 하며 모르고 초청한 경우에는 즉시 중단 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기독교로부터 아예 추방시켜 버려야 한다.
2) 부흥 강사들의 무지에 의한 오류.
한국 기독교가 매우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기독교를 인도할 만한 성장을 이룬 이면에는 부흥 집회의 혁혁한 공로가 있었다. 반면에 부흥집회로 인한 폐해도 심각하다. 한때 명성을 날렸던 부흥 강사들 중에 신학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였고 그들의 신학적 오류와 비 진리에 의하여 기복신앙, 은사 체험주의 신앙, 신비주의 신앙 등등이 형성되었으며 그리하여 말씀 중심의 형이상학적 기독교가 현실위주의 3류 무속종교로 전락되었다.
4. 진리의 부흥집회.
부흥집회는 성도의 신앙 성장을 위하여 또는 교회의 부흥과 성장 발전을 위하여 필요하다. 그러나 부흥집회가 그러한 순수한 목적 이외의 어떤 다른 비 진리적 목적에 의하여 개최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부흥집회 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만 선포 되어야 한다. 따라서 부흥집회는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1) 순수한 목적으로 집회하라
부흥집회는 성도들과 교회의 영적 부흥성장을 위하여 회집 되어져야 한다. 하나님께 어떤 <은사>를 받기 위하여 부흥집회를 개최 한다거나 또는 건축헌금 선교헌금 등등을 위한 목적으로 부흥회를 개최 한다거나 또는 어떤 개인의 특정 목적을 위하여 부흥회를 개최해서는 안 된다. 은사는 부흥집회를 통하여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하여 부여되는 것이며, 건축헌금이나 선교헌금 등등도 부흥집회 같은 수단과 방법을 통하여 모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성도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흥집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과 교회의 영적 부흥성장을 도모하려는 순수한 목적 하에 개최되어야한다.
2) 하나님의 진리만 선포하라
부흥집회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만 선포해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선포 되어지는 가운데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감사 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가 어떤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긍휼 등등이 또한 어떤 것이며, 그 많은 것들을 무상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3) 하나님께 드린 헌금 갈취하지 말라
오늘날 대부분의 부흥강사들은 부흥집회를 마치고 일정액의 강사료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담임목사들도 부흥회가 끝난 후에 일정액의 사례비를 받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부흥집회에서 헌금을 유도하기 위하여 안수 기도가 성행하고 안수 기도는 반드시 헌금을 한 후에 받아야 한다고 강조되고 있다. 필자가 전도사 때 사역한 어느 교회 부흥집회에서는 <헌금 안하고 안수 받은 것은 하나님께 외상한 것이니 외상값을 내야 하나님께 징계받지 않는다.>는 부흥 강사와 담임 목사의 경고까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시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8>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안수기도를 내세워 헌금을 거두고 착복하는 것은 말씀을 팔아먹는 악행이다. 하나님께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0>라고 경고 하셨다. 목사는 돈으로부터 초월하고 자유 할 수 있어야 한다. 목사가 돈에 매력을 느끼게 되면 정신이 더러워지고 삶이 혼탁 해진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교회의 재정을 귀중하게 여길 줄 모르고 가볍게 사용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책망 받아 마땅한 행악이다. 이제 목사들은 이와 같은 악행을 중단하고 하나님께와 교회 앞에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들은 이와 같은 망령된 자 들의 부흥집회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살리는 길이요 교회를 살리는 길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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