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장. 교회건축
교회건축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교회에 주어진 당면 과제이다. 교회는 언제나 교회건축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그 문제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로마의 기독교 탄압이 종료되고 콘스탄틴 대제에 의하여 교회건축이 시작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교회건축은 교회의 역사와 더불어 공존하면서 발전하여 왔다. 기독교에 자유가 보장 되어지면서 기독교는 교회건축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기독교의 위대함을 증거 하려고 하였고, 그러한 과정에 인간적인 욕심이 개입되어 갖가지 폐단이 발생 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면제부> 사건을 이끌어 낸 교회건축 이었다. 로마 카토릭 교회는 최고의 교회건축을 하려는 야심으로 인하여 대량의 면죄부를 판매함으로서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오류를 범하였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잘 아는 현대교회 목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토릭 교회의 오류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대교회 건축에 대한 비 진리적 실태를 고찰 하면서 아울러 교회건축에 대한 바른 개념을 정립하기로 한다.
1. 교회에 대한 개념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건물 자체를 신성시 하여 <성전>이라고 호칭하고 있으며, 교회 내의 각종 기물들을 또한 신성시하여 <성물>이라고 호칭한다. 교회와 교회 기물에 대한 이와 같은 개념은 구약시대 이후 지금까지 전승되어진 신앙적 개념이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신앙적 개념을 오류라고 지적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오류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신앙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념은 신앙적으로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정당하지 않다. 교회 건물은 건물 자체로서 성스러운 성전이 아니며 교회 기물도 그 자체로서 성스러운 성물이 아니다. 교회 건물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장소이며 또한 기도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교회의 기물들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사용 되어지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성스러운 것 즉 신성한 것은 그러한 장소와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그 자체이다. 만약에 교회의 건물이나 도구들이 신성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들을 만지거나 또는 그것들에 앉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들을 우리 마음대로 만들거나 고치거나 할 수도 없으며, 특히 지하실이나 또는 협소한 곳들을 교회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의 언어행동도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의 건물이나 교회의 도구들을 신성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구약시대의 그것은 분명 신성하게 취급 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물질적인 것에 신성함을 부여하지 않고 영적인 것 신앙적인 것에 신성함을 부여하셨다.<요4:20-24> 교회와 교회의 기물을 신성시하여 그것들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논증 할 때에 사실상의 우상 숭배적 개념이 된다. 따라서 그러한 시설이나 도구들에게 신성을 부여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 행위에 신성함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2. 교회건축 목적
교회에 대한 오류 된 개념으로 인하여 교회 건축의 목적이 오류 된 경우가 많다. 많은 목사들이 교회를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저들 중에는 <교회를 몇 개 건축 한 것>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하여 그것을 자랑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자들은 <교회 하나도 건축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 앞에 갈 자격도 없다>고 까지 주장한다. 이러한 잘못된 개념 때문에 되도록이면 최고 최대 최상의 아름답고 훌륭하고 화려한 교회를 건축 하려는 열망이 아름다운 신앙으로 인식되고 그리하여 심지어는 불법 편법 위법도 마다하지 않는 교회건축 들이 도처에서 시행되어지고 있다. 과거 로마 카토릭의 <면죄부> 판매와 같은 불의한 일까지 마다않고 행하는 것이다. 저들의 이러한 오류 때문에 성도들은 심지어 사채 빚까지 지게 되며, 그로 인하여 여러 가지 심한 후유증을 겪는 가운데 가정 파탄을 맞거나 또는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성도들도 있다. 그러나 교회건축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저들에게 그러한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저들에게는 오직 교회건축을 통하여 자신의 과업<?>을 완수하여 하나님 앞에 와 사람들 앞에 그 이름을 과시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저들의 오류는 교회건축이 끝나고 입당예배 또는 봉헌예배를 드리게 될 때의 그 감격스러운 자부심과 자랑스러운 태도를 통하여 확인된다. 저들은 교회건축 과정에서 발생한 성도들의 고통과 상처 등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의 과업을 이룩했다는 감격과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으로 인하여 교계의 많은 동료들을 초청하고 크게 잔치를 벌이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교회건축은 이러한 오류 적 개념에 의하여 시도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건축은 교회에 부여된 사명을 능률적으로 그리고 충실하게 완수하기 위한 절대적 필요성에 의하여 시도 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교회건축의 필요성 또는 교회건축의 목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경건한 예배를 위하여.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장소로서의 제반 기능을 필요로 하게 된다. 교회가 너무 작고 좁으면 교회학교 교육을 비롯한 각종 기능을 발휘 할 수 없게 되며 예배에도 지장을 받게 된다. 또한 교회가 너무 춥거나 덥거나 또는 비가 새거나 하면 거룩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교회 주변 환경이 너무 시끄럽거나 불결하거나 또는 유흥업소들이 밀집되어 있어도 거룩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다.
2) 기관의 활동을 위하여.
교회가 성장하면 교회의 기관들도 함께 성장하게 된다. 교회의 기관들은 교회를 성장 발전시키는 중요한 부서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시키는 또 다른 하나님의 종들이다. 따라서 교회는 각 기관들이 부여받은 사명을 원활하게 진행 할 수 있도록 독자적인 영역을 마련하여 주어야 한다.
3) 교육을 위하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고 훈련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하나님의 종으로 양성해야 한다. 따라서 전천후 교육시설을 구비해야 할 절대적 필요성이 있다.
3. 교회건축 재정.
교회가 건축비를 마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부분 성도들의 헌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의 실정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교회 건축헌금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들과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성도들과 온 가족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성도들은 교회 건축헌금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 건축헌금으로 인하여 성도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혜롭게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교회는 교회 건축비를 마련함에 있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1) 건축 재정준비.
교회는 교회를 건축해야 할 절대적 필연성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교회 건축에 대한 재정을 미리미리 확보해야 한다. 교회건축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미리미리 예비함으로서 교회건축에 무리가 되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다.
2) 자원하는 헌금.
교회는 교회 건축비를 마련함에 있어 <출25:1><대상29:5-7>을 근거로 해야 한다.성도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하는 것에 대하여 기뻐하는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드리게 하며 또한 분수에 맞게 드리도록 하는 것이다. 성도들에게 부담되는 헌금이나 강제적인 헌금을 요구해서는 안 되며 특히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교회건축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열망 하면서 건축비를 적립해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건축헌금의 유무와 액수의 차이 때문에 성도들 간에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며, 모든 성도들이 사랑과 은혜 안에서 교회건축을 통하여 단합하고 단결하는 아름다운 교회건축이 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3) 불법으로 건축 재정을 마련하지 않는다.
교회는 교회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흥집회 같은 것을 열어서는 안 되며, 성도들의 집을 담보로 하거나 하여 은행이나 사채업자로부터 빚을 얻어서 교회를 건축해서는 안 된다. 교회건축이 시급하다하여 그러한 방법으로 건축비를 마련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여 오히려 교회가 크게 어려움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는 교회건축의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비가 마련되지 않았을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두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미 아시고 모든 대책을 세워 놓으셨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교회를 건축 할 때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거나 할 때를 통하여 그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따라서 무리하게 서두르다가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하지 말고 기도하는 가운데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따라 교회를 건축하여 아름다운 결과를 이루어야 한다.
4. 교회 건축
교회는 다음과 같이 건축 되어져야 한다.
1) 무리하지 않는다.
교회 건축을 하다보면 보다 더 낳은 교회를 세우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은 예산을 초과하는 무리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교회적 후유증이 발생하게 되며 심하면 교회건축이 중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설계 할 때부터 욕심을 내지 말고 형편에 맞게 건축하여 아름다운 결과를 이루어야 한다.
2) 교회로서의 기능을 발휘 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예배 위주의 기능적 교회로 건축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기관들이 업무를 수행 할 수 있는 교회적 기능이 발휘 될 수 있도록 건축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예배 위주의 교회를 건축하여 강단 위주의 교회를 건축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와 같은 교회건축은 잘못된 것이다. 교회건축은 교육관과 회의실 각 기관의 사무실 등등이 구비되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
3) 검소해야 한다.
교회는 아름다우면서도 검소하게 건축 되어져야 한다. 최소의 건축비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최소한의 공간을 활용하여 최대한의 실용성을 얻는> 교회건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치스럽거나 호화롭거나 하지 않아야 하며 화려하거나 거대하거나 웅장하지도 않아야한다. 외적 화려함 보다는 내적 기능을 발휘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재건축 하지 않도록 한다.
교회건축은 교회의 규모와 관계없이 범 교회적인 사업으로서 교회의 총력을 요구하는 역사적 사업 이다. 따라서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원칙 하에 설계에서부터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재건축이나 보수 보완을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조령모개<朝令暮改>식의 근시안적 설계로 인하여 수시로 설계를 변경 한다거나, 또는 2-3년 안에 보수 또는 보완하여 건축비를 2중 3중으로 낭비하게 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성급한 마음으로 예배위주의 교회를 건축 한 후에 교육관 기관 사무실 기도실 식당 등등을 재건축하여 2중 3중의 건축비를 낭비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것이다. 교회는 불편 하더라도 그것을 감내 하면서 기다렸다가 한번에 건축하여 교회 재정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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