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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이해
귀순용사, 탈북자에서 이탈주민까지 |
윤인진 교수(고려대 사회학과)
1. 북한이탈주민은 누구인가?
우리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은 한때는 ‘귀순용사’라는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그 수가 매년 수 천 명 규모로 증가하면서 별로 새롭지 않은 그러면서도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기존 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적응이 순조롭지 않은 상황에서 매년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자(1999년의 148명, 2000년의 312명, 2001년의 583명, 2001년의 1,141명, 2003년의 1,218명, 2004년에는 1,894명이 입국)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덧 ‘탈북자 문제’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게 되었다. 이제는 남한 주민들뿐만 아니라 북한이탈주민 자신들도 ‘탈북자 문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상황을 정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사회문제가 그렇듯이 어느 사회현상이 문제로 인식되면 그때부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탈 또는 이상 상태로 간주된다. 그리고 문제라는 개념 속에는 현 상태를 바꿔야 한다는 의식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탈북자 문제’라는 개념에는 북한이탈주민 상황에 대한 남한 주민의 부정적 평가와 현 상태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남한 주민들이 북한이탈주민과 관련한 현 상황에 대해서 갖는 문제의식은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로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수가 매년 급증한다는 우려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두 자리 숫자로 입국하던 북한이탈주민들이 1998년부터는 세 자리 수로 입국하였고, 2001년에 들어서서는 천 명 단위로 증가하였다. 이런 추세라면 2004년 12월 현재 6,019명의 북한이탈주민의 규모는 2007년에는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1인 가족 평균 3,300만 원에 달하는 정착금을 고려하면 신규 입국자의 수가 증가할수록 이들의 정착을 돕기 위한 국민의 재정부담은 따라서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둘째, 우리 사회에는 북한이탈주민말고도 실업자, 노숙자,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층이 있는데 이들을 특별 대우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다. 북한이탈주민은 국내 입국 시 ‘하나원’이라는 시설에서 3개월의 사회적응교육을 받고 사회에 편입할 때 영구 임대 아파트 입주(1인 가족 기준으로 13평 아파트의 임대보증금 754만원)와 정착금을 지급 받는다. 이 외에도 직업훈련교육, 취업 알선, 고용 지원금, 사업자금 대출 등의 혜택을 받는다. 만약 북한이탈주민들의 특수한 신분과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실업자와 노숙자들과 단순 비교한다면 특혜 시비가 일어날 소지는 충분히 있다.
셋째, 국가차원의 관심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북한이탈주민들이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원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여러 최근 실태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실업률은 40% 가량으로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이금순 외, 2003; 윤인진, 2005).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소득에 관해 응답한 688명의 응답자들의 95.4%가 국민기초생활보장에 따라 생계비를 지급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의 지원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정부 정책이 북한이탈주민의 자립정착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근로의욕을 감퇴하고 의존심만 키운다고 주장한다.
넷째, 10~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재외 북한이탈주민들의 처리 방안에 대한 논란이다.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와 ‘좋은 벗들’과 같은 NGO들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이들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 정부는 북한이탈주민 처리 방안은 현지국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현지국과 외교적 마찰을 피하고 현지국의 협조를 얻어 조용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북한이탈주민을 보호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즉 북한이탈주민 문제를 국제 여론에 호소해서 공론화함으로써 중국, 러시아, 북한에 압력을 가해서 북한이탈주민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과 그 반대로 주변국들과 ‘조용한 외교’를 통해서 처리하려는 방안 사이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듯 탈북자 문제의 진단과 처리 방안을 놓고 우리 사회에서 상이한 문제인식, 가치관, 해결방안들이 충돌하고 있다. 이런 혼란의 근본 원인은 ‘북한이탈주민은 누구인가?’, ‘북한이탈주민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고 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과 우리와의 관계,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해야 하는 사회철학적 논리, 정착지원의 기본원칙을 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정체성은 여러 가지 상이한 신분과 역할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첫째, 이들은 이주자이다. 여타 이주자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은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새로운 환경과 체제에 적응해야 한다. 둘째, 이들은 소수자이다. 이들은 수적으로 열세이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남한 주민들로부터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셋째, 이들은 북한출신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군사적으로 위협이 되는 동시에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가지면서도 식량난으로 어려워 할 때는 연민의 감정을 갖는다. 이렇게 북한에 대해 남한주민들이 갖는 이중적인 감정은 북한이탈주민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경향이 있다. 넷째, 이들은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준비하는 선발대이다. 이들의 남한사회 적응은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문화적 통합의 예비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사회적응에 관심을 갖고 성공적인 자립정착을 위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해야 하는 사회철학적 논리는 첫째, 이들이 남한사회에 적응하는데 준비기간이 필요한 사회약자층이기 때문에 이들이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지원을 하는 것은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온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아무런 준비기간 없이 남한주민들과 동등한 수준에서 경쟁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드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출발선상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평가기준을 적용해야 하고, 외생적 요인들(인종, 성, 종교, 출신지역 등)에 의해 처음부터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를 통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사회를 정의롭고 안정되게 만드는 일이다. 둘째, 북한이탈주민은 남북통일과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통합을 이룩하는데 주역이 될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아직 적은 수에 불과한 이들이 원만하게 사회적응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통일을 대비한 현명한 투자라고 볼 수 있다. 서독의 난민 수용정책이 독일 통일을 촉진했다는 경험에 비추어 보아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사회적응은 민족화합의 예비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북한선교를 목표로 하는 한국 기독교는 북한이탈주민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선교를 목표로 하는 한국 기독교계는 통일 이후 북한주민들에게 북한선교의 명분을 위해서 현재 중국 등 제3국에서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불안하게 생활하는 재외 북한이탈주민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둘째, 북한이탈주민은 통일 후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 있는 예비선교사이다. 이들은 남북한의 체제와 사회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에게 거부감을 줄여가며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 중 선교의 역량과 소명을 가진 사람들을 선발하여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북한이탈주민의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특성
최근 국내로 입국하는 탈북자들의 입국 현황과 이들의 배경특성은 탈북의 제도화, 입국의 가속화, 배경특성의 다양화, 여성 및 가족동반 입국의 증가로 요약할 수 있다(윤인진, 2000). 이외에도 재외 북한이탈주민들의 해외 체류기간이 장기화되고, 국제결혼의 성격을 갖는 입국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점들이다(이금순 외, 2003). 10~20만 명의 재외 북한이탈주민의 존재는 강력한 인구압력으로 작용하여 계속해서 국내로 입국하려는 사람들을 증가시키고 있다. 국내 입국자들이 증가하면서 북한이나 중국 등지에 남겨두고 온 가족을 남한으로 데려오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 중국, 북한을 연결하는 전문 브로커의 도움으로 500~1,000만원이면 잔여 가족을 입국시킬 수 있다. 탈북이 연쇄이동의 성격을 띠고 전문 브로커와 알선단체의 등장으로 탈북과 국내 입국은 제도화의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특성들은 다양화되어가는 추세이다. 출신성분에서 1990년 이전에는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군인출신들이 주류였으나 1990년 이후에는 유학생, 외교관, 무역종사자, 고위인사들이 포함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학력, 직업, 계층지위가 점차 하락하는 추세이다. 최근 입국자들의 반 수 가량은 북한에서 벌목공?노동자?농장원에 종사했던 사람들이다. 학생?무직?기타 등 북한에서 특별한 직업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의 비율도 30% 가량에 달한다. 반면 북한에서 지도층에 속했다고 볼 수 있는 해외상사원?외교관?지도원?당정무원?교사 등의 비율은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전체적으로 북한에서 하류층에 속했던 사람들이 비율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출신지역별로는 여전히 국경지역인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이 지배적이지만 평양 출신 등 타지역 출신들이 증가하였다. 2002년에 국내 입국자의 77%가 함경도였고, 나머지는 평안도(8.3%), 양강?자강도(4.5%), 황해도(3.4%), 기타(4.6%)의 순서로 분포되었다. 출신배경과 출신지역이 다양화되면서 탈북의 경로도 다양화되고 있다. 1994년 이전 탈북 경로는 대체로 제3국(55%), 육상(31%), 해상(13%)의 순서로 나타난다. 이처럼 1960년대 입국자의 50%가 휴전선이나 해상을 이용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는 제3국을 통한 탈북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중국과 러시아, 몽골 그리고 동남아 지역 국가들은 주요 입국 경로가 될 전망이다(윤여상, 2003).
탈북 후 국내 입국까지의 체류기간이 장기화되고 있다. 2003년 입국자들의 해외체류기간은 4~5년이 28.2%로 가장 높았고, 5~6년이 25.7%, 1년 미만 12.1% 순서이며, 개인당 평균 체류기간은 3년 11개월이었다(이금순 외, 2003: 11). 이런 수치는 2002년 입국자의 평균 해외체류기간 3년 2개월과 비교하여 9개월 증가한 것이다. 해외체류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이 기간 중 경험이 한국에서의 사회적응에 미치는 영향력이 증가한다. 대다수의 재외 북한이탈주민에게 해외체류는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지만 그 중 일부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체험하기도 한다. 이들은 일찍이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습득하고 남한에서 자영업과 무역업에 종사하며 자본주의적 인간으로의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반면 제3국에서 유랑과 도피로 일관하거나 또는 매매춘에 종사하면서 정신적 외상을 연속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각종 질병으로 후유증을 앓고 사회적응에 전념하기 어렵다.
해외체류기간이 증가하면서 국제결혼의 성격을 갖는 입국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재외 북한이탈주민이 조선족 또는 중국인과 결혼하여 생활하다가 자신이 먼저 입국하고 후에 배우자를 초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탈북과 입국 동기와 목적이 변화하고 있다. 1960~70년대에는 남한체제와의 비교인식, 북한체제에 대한 불만 등 체제 저항적인 성격이 강했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처우불만, 성분분량, 처벌우려, 동반귀순, 이성문제 등 개인적 수준의 이유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증가한 북한이탈주민들의 탈북 이유는 대부분 경제난과 식량난 때문이었지만 2000년 이후에는 단순히 식량구입만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한 이주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가족구성 면에서 가족동반 입국자의 비율이 늘어가고 있다. 2001년 입국자 중 가족 동반 입국자의 비율은 56.4%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국내에 정착한 사람들이 잔여 가족들을 입국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다. 정착금의 일부를 사례비로 받고 잔여 가족들을 입국시키는 전문 브로커들도 가족단위 입국자들이 증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가족단위 입국이 증가하면서 여성, 아동, 장년층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1990년 이전에는 여성의 비율이 10% 미만이었으나 2001년에는 전체 입국자 중 여성의 비율이 50%로 증가하였다. 2003년 1월부터 8월까지 입국한 781명의 신규입국자 중 여성이 485명으로 62.1%를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 여성 입국자의 비율은 60~7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의 입국 증가는 중국과 러시아 등지의 재외 북한이탈주민 중 여성의 비율이 70% 이상으로 매우 높은 것과 관련이 있다.
3. 적응실태
원래 적응이란 생물생태학에서 사용하던 개념으로 “생물유기체가 생존을 위해 주어진 환경 조건에 적합하도록 자신을 변용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적응의 개념을 확장하여 주체적 의지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환경에 대처하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 양상이나 인간과 환경과의 상호작용도 포함시키고 있다(김귀옥, 2000: 327). 따라서 사회적인 의미로서의 적응은 한 개인이 사회의 다양한 상황이나 조건과 잘 어울리는 상태 및 과정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개인의 내적?심리적 욕구와 외적?사회적 환경과의 사이에 조화를 이루어 일상생활에서 좌절감이나 불안감 없이 만족을 느끼는 상태를 가리킨다. 기존 연구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적응은 크게 정치사상적 적응, 경제적 적응, 심리적 적응으로 구분된다(전우택, 1997). 여기서 정치사상적 적응은 북한의 공산주의 사상, 주체사상의 획일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을 수용하는 정도와 과정을 가리킨다. 경제적 적응은 자본주의체제의 이해 및 독립적이고 적정 수준의 경제생활의 영위를 가리킨다. 사회심리적 적응은 새로운 사회에의 만족감, 적응능력의 자신감, 사회의 정식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회심리적 적응 개념에는 다양한 적응차원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각 하위차원에서의 적응실태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를 문화적 적응, 사회적 적응, 심리적 적응으로 세분하고, 각 형태의 적응을 경험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문화적 적응은 고든이 제시한 동화이론의 문화접변(acculturation)과 같은 의미로 새로운 문화와 접촉하여 문화변용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문화적 적응 수준은 남한의 언어, 가치관, 생활양식 등을 습득하고 수용하는 정도와 북한과 남한의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도로 측정할 수 있다. 사회적 적응은 동화이론의 구조적 동화(structural assimilation)와 같은 의미로 새로운 사회의 다양한 제도, 조직, 단체 등에 가입하고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활동을 하는 과정이다. 사회적 적응 수준은 남한주민과 일차적 관계를 맺는 정도, 다양한 제도, 조직, 단체에 참여하는 정도로 측정할 수 있다. 끝으로 심리적 적응은 동화이론의 정체성 동화(identificational assimilation) 및 태도수용적 동화(attitude receptional assimilation)와 같은 의미로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일시, 소속감, 만족감을 갖는 과정이다. 이때 북한출신이라는 정체성과 남한주민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의 조화로운 통합이 심리적 적응의 관건이다. 심리적 적응 수준은 남한사회에의 동일시, 소속감, 만족감, 사회적 인정, 적응능력의 자신감을 갖는 정도로 측정할 수 있다.
1) 정치사상적 적응
기존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은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남한의 자유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집단주의적이고 일당독재의 북한체제가 싫어서 탈북한 사람들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그리고 강한 신분상승의 욕구로 인해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물질적 성공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기대를 갖고 있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들의 가치정향(value orientation)에 관한 독고순(2001)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탈북자들이 남한주민들에 비교해서 더욱 높은 수준의 수직적 개인주의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서 구직활동을 하고 사회적응을 시도하면서 기대와 현실사이에 커다란 괴리를 발견하면서 이들은 남한의 자본주의체제에 대해서 이중적인 태도를 형성한다. 이들은 남한사회가 북한사회에 비교해서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생산성이 높은 것은 인정하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자신들과 같은 사회의 약자 층에게는 전혀 배려를 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사회로 인식한다. 그러한 남한사회에 비교해서 북한사회는 비록 못살더라도 서로가 나눌 줄 알고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정이 있는 사회라고 평가한다.
같은 맥락에서 신예정(2001: 78?79)의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적 삶과 적응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이 한국이 자유롭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으며,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자유경쟁사회라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있고, 자신도 이 속에서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주의와 업적주의에서 밀려난 사회의 약자층에게는 무정하고 이기적인 사회라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체험하면서 한국이라는 사회가 결코 평등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01년 북한이탈주민후원회 실태조사에 의하면 북한이탈주민들이 볼 때 ‘남한사회는 열심히 공부하며 일하면 스스로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고 인식하는 응답자들은 총 응답자의 75%에 달해 남한사회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기대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남한사회에서는 돈이 최고인 것 같다는 생각에 96%의 응답자들이 동의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이 남한사회를 잘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50%만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즉 남한사회는 돈이 최고이고 자기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인 것 같지만 너무 복잡하여 이것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북한이탈주민후원회, 2001: 27).
2) 경제적 적응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적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적 적응이다. 사회적응의 물적 토대가 되는 경제적 적응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리적 적응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이탈주민 중에 전문직, 기업의 관리직, 사무직 등의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무직이거나 단순노동직 또는 단순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한사회에서 하향신분이동을 경험하여 북한에서 축적한 경력과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2001년 통일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감사 당시 국내 거주자 전체 1,370명 중 북한에서 종사했던 직업이나 경력과 관련된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135명(9.9%)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이탈주민의 실업률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여러 선행 연구들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30~40% 가량이 실업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윤덕룡?강태규, 1997; 윤인진, 2000; 북한이탈주민후원회, 2001).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현재 직종에 대한 응답한 737명 중 무직(41.5%), 기타(20.6%), 학생(18.7%) 등 대부분(80.3%)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금순 외, 2003). 또한 취업자의 경우에도 정규직의 비율(36.1%)이 매우 낮게 나타났다. 취업자 중 생산직과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저임금, 고용불안정, 발전 가능성 부재 등의 이유로 현 직장에 대해 애착을 갖지 못하고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직 후 재취업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장기실업이 늘어나게 되어 결국 우리 사회의 밑바닥계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윤인진, 1999).
여성들의 취업문제는 남성들에 비교해서 더욱 심각한 상태에 있다. 가구주가 되는 남성들조차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여성들의 취업문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1999년에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1999)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4명의 여성응답자 중 10명(29.4%)만이 실질적으로 경제활동을 통해 소득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79%는 북한에서 모두 직업을 갖고 실질적인 경제활동을 했으며, 응답자의 82.4%는 일하고 싶다고 일에 대한 높은 의지력을 나타내고 있어서 이들이 느끼는 심리적 좌절감은 크다고 볼 수 있다. 2003년 통일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교해서 정규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자 중 남자는 41.4%가 정규직에 있는 반면, 여자는 26.8%만이 정규직 직장을 갖고 있다. 동시에 남자는 48.3%가 비정규직인데 비해 여자는 68%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하게 됨에 따라 소득도 자립에 필요한 만큼 충분히 벌지를 못하고 있다. 1998년에 통일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14명의 응답자중 가구당 한 달 평균소득이 50만원 이하인 경우가 36%이었으며, 100만 원 이하의 경우는 80.8%에 달하였다. 2001년 통일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1996년부터 2001년 5월말까지 입국하여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사회적응 교육을 이수하고 사회에 편입한 총 721명의 탈북자 중 626명(86.8%)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하여 생계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북한이탈주민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자들이 직장에서 받는 보수는 평균 98만원으로, 일반 남한 근로자 평균임금 171만원의 절반이 조금 넘는 57%수준으로 매우 낮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거형태를 보면 응답자의 78.4%가 영구임대주택에 살고 있어 아직 정부의 주택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기소유 6.5%, 전세와 월세가 11.2%를 차지하여 주거형태가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통계에 비추어 볼 때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이 경제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소득에 관해 응답한 688명의 응답자 중 45.6%가 51~100만원의 월평균 수입을 벌고, 50만원 이하가 41.3%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대다수(95.4%)가 국민기초생활보장에 따라 생계비를 지급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다. 수입의 충분성에 대해서 응답자의 반 수 이상(58.4%)이 ‘약간 부족’하거나 ‘매우 부족’ 한 것으로, 28.6%가 ‘보통’으로 보고하였다. 반면 ‘매우 충분’하거나 ‘충분한 편’이라고 보고한 사람들은 13%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북한이탈주민들은 수입을 보고할 때 생계비보조금 또는 종교 및 사회단체 지원금을 포함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 수입은 보고된 수입보다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정규직에 종사하게 되면 생계비 보조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에 종사하여 별도로 수입을 벌면서 생계비보조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정착금과 생계비보조금은 입국 후 5년간의 한시적인 지원이지만 이 기간 동안 기초생계가 보장되기 때문에 탈북자들이 취업하거나 또는 정규직에 종사하려는 동기가 약해질 수 있다.
3) 문화적 적응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사람들, 특히 직장동료나 담당형사와의 대인관계에서 언어나 가치관, 사고방식 또는 사회제도 등의 사회문화적인 차이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어투, 어휘, 뉘앙스가 상이한 용어 등의 요인 때문에 고충을 겪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언어를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데 걸리는 기간은 대략 3년이라고 보고해서 언어습득이 만만찮은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유교적 태도나 직선적, 경직적인 사고방식,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7월에 입국한 서학룡은 북한사람들이 제일 넘기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가 ‘자존심’과 직선적인 대인관계라고 보고하였다(서학룡, 2004: 26). 그는 “내 안에 자아가 죽어야 내가 한국에서 살아날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3년이라는 시간을 통하여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문화차이로 인해 탈북자들은 남북한 사람들이 통일 후 서로 이해하며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부정적인 응답(48%)을 긍정적인 응답(32%)보다 많이 하였다. 통일 후 예상하는 어려움으로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28.3%), 경제적 생활 수준의 차이(25%), 상호 이해의 부족, 편견 등으로 인한 화합의 부족(13.4%), 정치 이념, 사상, 제도의 차이(10.9%), 언어의 차이(10%), 지역 갈등(2%) 등을 언급하였다(전우택, 2004: 47-48).
4) 사회적 적응
남한에 연고가 없는 북한이탈주민들은 정보와 기회에 연결될 수 있는 사회연결망 부재의 문제를 안고 있다. 통일부의 1998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친목단체에 참여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전체 응답자의 14%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1999:21)의 설문조사 역시 탈북 여성들이 가족 외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정부관계자, 다른 북한이탈주민들, 종교인들이라고 밝힘으로써 사회활동의 정도와 인간관계가 매우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3년 통일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지원 연결망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주로 누구와 의논하는가에 대한 물음에서는 ‘가족 및 친척’(35.7%), ‘신변보호담당관’(24.2%), ‘없다’(14%), ‘탈북 동료’(11%), ‘기타’(6.8%), ‘거주지보호담당관’(3.4%), ‘동네이웃’(2.3%), ‘하나원 담당관’?민간단체(각 1.3%), ‘취업보호담당관’(0.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웃 및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매우 잘 어울린다’(13.4%), ‘잘 어울리는 편이다’(34.7%) 등 긍정적 응답비율이 48.1%인데 비하여 ‘어울리지 못한다’(8.5%), ‘전혀 어울리지 못한다’(4%) 등 부정적 응답을 한 비율이 12.6%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들과 잦은 접촉으로 그들의 실상을 잘 알고 있는 보호담당관들이 평가한 탈북자의 사회적응 실태는 본인들의 응답과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남한주민들과의 어울림과 관련, ‘조금 잘못 어울림’과 ‘매우 잘못 어울림’이 72.2%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잘 어울린다’고 보고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북한이탈주민들 중에는 남한사람들과 자매결연한 사람도 있는데 자매결연의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북한이탈주민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2.3%가 남한사람들과 자매결연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그런데 자매결연이 남한사회에서 정착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한 경우는 19.1%, “다소 도움이 되었다”라고 응답한 경우는 39.3%였다. 그러나 자매결연이 별로 도움이 안되거나 전혀 도움이 안되었다고 응답한 경우는 41.5%에 달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사회활동으로 가장 활발한 것이 종교활동이다. 이들은 중국, 러시아 등에서 체류하는 동안 남한 선교사들과 목사들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기독교로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2003년 통일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9.2%가 종교를 갖고 있다고 답하였고 기독교도가 62.3%를 차지하고 있다. 종교를 갖는 이유로 전체 응답자의 77.6%가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12.8%가 ‘주위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하였다.
교회를 제외하고 남한주민들과 긴밀하게 접촉할 수 있는 모임과 단체는 별로 없다. 이들은 남한주민들과 일차적 관계를 맺지 못하면서 결국은 동료 북한이탈주민들끼리 어울리게 된다.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북한이탈주민들밖에 없다고 말을 한다. 물론 처지가 같은 북한이탈주민들간에도 서로 다른 배경, 탈출 동기, 우려되는 불이익 등으로 인해 서로 융화하지 못하는 면이 있는 등이 있어 서로간의 관계에서 적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엄명용, 1997: 50). 이로 인해 사회적응 초기에는 탈북자들이 서로를 만나는 것을 기피하고 남한주민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적응의 어려움으로 힘들게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탈북자들끼리 어울리는 양상이 나타난다.
5) 심리적 적응
남북한간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 남한사람들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태도 등으로 인해 이들은 심리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자신들은 한국사회 적응 정도에 대해서 긍정보다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더 많다.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6%가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45.5%가 그렇지 못하다고 응답하였다. 부적응의 원인으로는 ‘자신의 노력없이 기대가 큼’(37.7%), ‘삶의 목표 불확실’(22.6%), ‘생활적응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에’(15.1%), ‘직업을 잘못 선택해서’(11.6%), ‘기타’(6.3%), ‘안이한 삶’(5.6%), ‘죄책감 때문에’(1.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2001년 북한이탈주민후원회 조사에 따르면 ‘남한사람의 편견과 차별’이 사회(직장)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구체적으로 직장생활을 통해 우리사회 정착정도를 묻는 “직장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남한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이 가장 힘들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218명으로 전체 응답자 973명의 22.4%를 차지하였다. 이는 남한사회에서 남한주민들과 융화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이다.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서는 남한주민들이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편견을 갖는 이유로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가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단지 출신지역이 북한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편견의 대상이 된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사고방식이 달라서’, ‘노력 없이 기대수준이 높아서’, ‘말투가 달라서’가 중요한 이유로 보고되고 있다. ‘능력이 부족해서 편견을 갖는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동의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심리적 적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에는 이들의 심리적 특성과 남한주민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있다. 전우택(2004)은 북한이탈주민들이 보이는 심리적 특성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시하였다. 첫째, 탈북과 남한에 들어온 행동에 대하여 공적인 가치와 명분을 앞세운다. 둘째, 타인을 의심하고 불신한다. 셋째, 극단적인 흑백논리를 주장하는 경직된 사고를 갖는다. 넷째, 법보다는 힘을 가진 사람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시각을 갖는다. 다섯째,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다. 여섯째, 공평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예민하다. 일곱째, 힘에 대해 예민하다.
같은 맥락에서 일선에서 북한이탈주민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의 김영자 사무국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북한이탈주민들의 적응상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김영자, 1999). 첫째,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다. 둘째, 사선을 넘는 극한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의 “살아야 한다는 강한 삶의 의지”와 또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강한 죄책감”이 상호 갈등한다. 셋째, 개인차가 있지만 성격이 도전적이거나 반대로 무기력함을 보인다. 넷째, 외부의 형식적 내지 댓가성 접근을 경험함으로 해서 그에 대한 의심 내지 배신감, 회의감의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다섯째,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여섯째, 외부환경에서부터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감에 사로 잡혀 있다. 일곱째, 민주시민으로써 지켜야 할 예법을 모른다. 이는 자유에 대한 개념과 법질서에 대한 개념부족으로 남을 생각하지 않거나 배려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또는 함부로 하는 것이 자유라는 굴절된 사고를 갖고 있다. 여덟째, 가정생활 및 일상생활의 방법을 모른다. 이는 특히 결혼한 북한이탈주민의 생활에서 잘 나타나는 현상으로 남성은 가부장적?봉건적 사고에 젖어 있어 여성 위에 군림하려는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 이것은 남한사회에서의 다른 면을 보고 느끼는 부인과의 가정생활에서의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나아가 북한사회와 남한사회의 가정생활 및 일상생활의 매너차이 내지 문화차이로 빚어지는 갈등에 대한 개선노력보다는 오히려 자존심으로 일관하여 이웃과의 교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위의 특성들은 일부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나 일반 북한이탈주민들과의 접촉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특성들은 오랜 기간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갑작스레 남한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게 되면서 사고의 전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과도기적 성격이 강하다.
남한주민이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서 갖는 태도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이들에게 전이되는 양상을 띤다. 그리고 북한주민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이들에게 투영되어 이들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바라보지 개성과 개별성을 갖춘 개인으로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김광억(1999)에 따르면 남한주민들은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해 자신들과 동등하고 동질적으로 보지도 않고 동정심과 호기심, 그리고 의심과 불신의 뒤섞인 감정으로 대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 국민은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서 태도와 행동간의 이중성을 보여서 관념적인 차원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정착을 위한 정부지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자신에게 어떠한 형태의 구체적인 피해나 비용이 부담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성향을 보인다.
4. 사회통합 차원에서의 북한이탈주민 지원대책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통합은 이인삼각 경기로 비유될 수 있다.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로서 함께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이때 어느 한쪽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다른 한쪽에게 짐만 되고 결국은 양쪽 모두 경주에서 낙오하게 된다. 따라서 양쪽 모두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하고 협력관계를 맺어야 한다. 같은 이치로 통일 후 남북한 사회통합과정에서 북한출신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능동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독일 통일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의 하나는 통일 후 동독출신 주민들의 잠재력을 활용하기보다 오히려 이 잠재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향으로 사회변혁이 일어나면서 동독출신 주민들이 ‘2등국민’이라는 열등감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동독정체성’이라고 하는 저항적 지역정체성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점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회통합 과정에서 북한출신 주민들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가치와 능동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깨달아 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고, 교육, 취업, 주거 등의 생활세계 영역에서 사회의 기회구조에 형평하게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자립정착을 위한 지원은 기본적으로 이들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세워져야 한다. 일시적이고 임시방편적인 지원정책이 아닌 장기적 자립 정착을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정책이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부 정책은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때만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노숙자, 실업자, 생활보호대상자와 같은 사회약자층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시혜적인 지원보다는 자립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스스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장비를 제공하는 것이 국민적 동의와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길이다. 그렇지만 형평성을 고려한다고 해서 이들을 단순히 사회약자 층으로만 간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은 사회적응의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의 민족과제인 남북통일을 준비하고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끌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자립정착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지원은 단순히 경쟁력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경제적 논리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보상과 배려와 같은 사회적 논리도 동시에 고려하며, 그 두 논리간의 접점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안한다.
첫째, 북한이탈주민들의 다양한 특성, 동기, 욕구를 살려 맞춤형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자활능력이 있는 사람은 대학에 진학하여 인적자본을 확충하거나, 직업훈련교육 또는 취업알선을 통해 일반 노동시장에 편입하거나, 고용장려금 제도를 통해 고용기회를 늘리도록 한다. 자영업의 경험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창업훈련과 창업지원금을 통해 자영업 진출을 도모하도록 한다.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은 사회복지차원에서 기초생활을 보장하도록 한다. 끝으로 근로능력은 있으나 일반사업체에서 일반고용이 힘든 사람은 보호사업체에서 근무하여 일정 수준의 소득을 얻고 자활능력을 증진하도록 하고 이후에 일반고용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인턴사원제를 활용하여 취업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둘째, 북한이탈주민 관리와 지원사업을 정부주도에서 벗어나 민간?종교단체와의 파트너십을 형성해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정착지원사업의 계획, 조정, 재정지원을 담당하고 민간?종교단체가 실제적인 지원사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민간?종교단체 역시 개별적으로 또는 경쟁적으로 지원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활동 중인 민간단체협의회를 중심으로 역할을 조정하고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북한이탈주민의 정착과 관련한 지원활동은 우리사회의 기존 사회복지체계와 연계하여 지역별로 존재하는 사회복지기관, 사회복지사, 민간?종교단체 등의 기존 시설과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지금까지의 정착지원 방안은 북한이탈주민을 지원의 수혜자로 보고 정부가 이들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의존성 증대, 다른 소수자집단과의 형평성 시비, 정부 재정의 부담 등의 문제로 인해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계속 증가할 경우 지속하기가 어렵다. 앞으로는 이들의 역량을 강화하여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립생활을 이루는 방향으로 정책의 방향이 세워져야 국민적 지지를 받아가며 지속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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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이탈주민은 누구인가?
우리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은 한때는 ‘귀순용사’라는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그 수가 매년 수 천 명 규모로 증가하면서 별로 새롭지 않은 그러면서도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기존 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적응이 순조롭지 않은 상황에서 매년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자(1999년의 148명, 2000년의 312명, 2001년의 583명, 2001년의 1,141명, 2003년의 1,218명, 2004년에는 1,894명이 입국)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덧 ‘탈북자 문제’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게 되었다. 이제는 남한 주민들뿐만 아니라 북한이탈주민 자신들도 ‘탈북자 문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상황을 정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사회문제가 그렇듯이 어느 사회현상이 문제로 인식되면 그때부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탈 또는 이상 상태로 간주된다. 그리고 문제라는 개념 속에는 현 상태를 바꿔야 한다는 의식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탈북자 문제’라는 개념에는 북한이탈주민 상황에 대한 남한 주민의 부정적 평가와 현 상태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남한 주민들이 북한이탈주민과 관련한 현 상황에 대해서 갖는 문제의식은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로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수가 매년 급증한다는 우려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두 자리 숫자로 입국하던 북한이탈주민들이 1998년부터는 세 자리 수로 입국하였고, 2001년에 들어서서는 천 명 단위로 증가하였다. 이런 추세라면 2004년 12월 현재 6,019명의 북한이탈주민의 규모는 2007년에는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1인 가족 평균 3,300만 원에 달하는 정착금을 고려하면 신규 입국자의 수가 증가할수록 이들의 정착을 돕기 위한 국민의 재정부담은 따라서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둘째, 우리 사회에는 북한이탈주민말고도 실업자, 노숙자,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층이 있는데 이들을 특별 대우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다. 북한이탈주민은 국내 입국 시 ‘하나원’이라는 시설에서 3개월의 사회적응교육을 받고 사회에 편입할 때 영구 임대 아파트 입주(1인 가족 기준으로 13평 아파트의 임대보증금 754만원)와 정착금을 지급 받는다. 이 외에도 직업훈련교육, 취업 알선, 고용 지원금, 사업자금 대출 등의 혜택을 받는다. 만약 북한이탈주민들의 특수한 신분과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실업자와 노숙자들과 단순 비교한다면 특혜 시비가 일어날 소지는 충분히 있다.
셋째, 국가차원의 관심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북한이탈주민들이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원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여러 최근 실태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실업률은 40% 가량으로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이금순 외, 2003; 윤인진, 2005).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소득에 관해 응답한 688명의 응답자들의 95.4%가 국민기초생활보장에 따라 생계비를 지급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의 지원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정부 정책이 북한이탈주민의 자립정착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근로의욕을 감퇴하고 의존심만 키운다고 주장한다.
넷째, 10~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재외 북한이탈주민들의 처리 방안에 대한 논란이다.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와 ‘좋은 벗들’과 같은 NGO들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이들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 정부는 북한이탈주민 처리 방안은 현지국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현지국과 외교적 마찰을 피하고 현지국의 협조를 얻어 조용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북한이탈주민을 보호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즉 북한이탈주민 문제를 국제 여론에 호소해서 공론화함으로써 중국, 러시아, 북한에 압력을 가해서 북한이탈주민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과 그 반대로 주변국들과 ‘조용한 외교’를 통해서 처리하려는 방안 사이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듯 탈북자 문제의 진단과 처리 방안을 놓고 우리 사회에서 상이한 문제인식, 가치관, 해결방안들이 충돌하고 있다. 이런 혼란의 근본 원인은 ‘북한이탈주민은 누구인가?’, ‘북한이탈주민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고 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과 우리와의 관계,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해야 하는 사회철학적 논리, 정착지원의 기본원칙을 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정체성은 여러 가지 상이한 신분과 역할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첫째, 이들은 이주자이다. 여타 이주자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은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새로운 환경과 체제에 적응해야 한다. 둘째, 이들은 소수자이다. 이들은 수적으로 열세이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남한 주민들로부터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셋째, 이들은 북한출신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군사적으로 위협이 되는 동시에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가지면서도 식량난으로 어려워 할 때는 연민의 감정을 갖는다. 이렇게 북한에 대해 남한주민들이 갖는 이중적인 감정은 북한이탈주민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경향이 있다. 넷째, 이들은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준비하는 선발대이다. 이들의 남한사회 적응은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문화적 통합의 예비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사회적응에 관심을 갖고 성공적인 자립정착을 위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해야 하는 사회철학적 논리는 첫째, 이들이 남한사회에 적응하는데 준비기간이 필요한 사회약자층이기 때문에 이들이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지원을 하는 것은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온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아무런 준비기간 없이 남한주민들과 동등한 수준에서 경쟁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드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출발선상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평가기준을 적용해야 하고, 외생적 요인들(인종, 성, 종교, 출신지역 등)에 의해 처음부터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를 통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사회를 정의롭고 안정되게 만드는 일이다. 둘째, 북한이탈주민은 남북통일과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통합을 이룩하는데 주역이 될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아직 적은 수에 불과한 이들이 원만하게 사회적응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통일을 대비한 현명한 투자라고 볼 수 있다. 서독의 난민 수용정책이 독일 통일을 촉진했다는 경험에 비추어 보아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사회적응은 민족화합의 예비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북한선교를 목표로 하는 한국 기독교는 북한이탈주민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선교를 목표로 하는 한국 기독교계는 통일 이후 북한주민들에게 북한선교의 명분을 위해서 현재 중국 등 제3국에서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불안하게 생활하는 재외 북한이탈주민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둘째, 북한이탈주민은 통일 후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 있는 예비선교사이다. 이들은 남북한의 체제와 사회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에게 거부감을 줄여가며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 중 선교의 역량과 소명을 가진 사람들을 선발하여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북한이탈주민의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특성
최근 국내로 입국하는 탈북자들의 입국 현황과 이들의 배경특성은 탈북의 제도화, 입국의 가속화, 배경특성의 다양화, 여성 및 가족동반 입국의 증가로 요약할 수 있다(윤인진, 2000). 이외에도 재외 북한이탈주민들의 해외 체류기간이 장기화되고, 국제결혼의 성격을 갖는 입국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점들이다(이금순 외, 2003). 10~20만 명의 재외 북한이탈주민의 존재는 강력한 인구압력으로 작용하여 계속해서 국내로 입국하려는 사람들을 증가시키고 있다. 국내 입국자들이 증가하면서 북한이나 중국 등지에 남겨두고 온 가족을 남한으로 데려오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 중국, 북한을 연결하는 전문 브로커의 도움으로 500~1,000만원이면 잔여 가족을 입국시킬 수 있다. 탈북이 연쇄이동의 성격을 띠고 전문 브로커와 알선단체의 등장으로 탈북과 국내 입국은 제도화의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특성들은 다양화되어가는 추세이다. 출신성분에서 1990년 이전에는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군인출신들이 주류였으나 1990년 이후에는 유학생, 외교관, 무역종사자, 고위인사들이 포함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학력, 직업, 계층지위가 점차 하락하는 추세이다. 최근 입국자들의 반 수 가량은 북한에서 벌목공?노동자?농장원에 종사했던 사람들이다. 학생?무직?기타 등 북한에서 특별한 직업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의 비율도 30% 가량에 달한다. 반면 북한에서 지도층에 속했다고 볼 수 있는 해외상사원?외교관?지도원?당정무원?교사 등의 비율은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전체적으로 북한에서 하류층에 속했던 사람들이 비율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출신지역별로는 여전히 국경지역인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이 지배적이지만 평양 출신 등 타지역 출신들이 증가하였다. 2002년에 국내 입국자의 77%가 함경도였고, 나머지는 평안도(8.3%), 양강?자강도(4.5%), 황해도(3.4%), 기타(4.6%)의 순서로 분포되었다. 출신배경과 출신지역이 다양화되면서 탈북의 경로도 다양화되고 있다. 1994년 이전 탈북 경로는 대체로 제3국(55%), 육상(31%), 해상(13%)의 순서로 나타난다. 이처럼 1960년대 입국자의 50%가 휴전선이나 해상을 이용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는 제3국을 통한 탈북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중국과 러시아, 몽골 그리고 동남아 지역 국가들은 주요 입국 경로가 될 전망이다(윤여상, 2003).
탈북 후 국내 입국까지의 체류기간이 장기화되고 있다. 2003년 입국자들의 해외체류기간은 4~5년이 28.2%로 가장 높았고, 5~6년이 25.7%, 1년 미만 12.1% 순서이며, 개인당 평균 체류기간은 3년 11개월이었다(이금순 외, 2003: 11). 이런 수치는 2002년 입국자의 평균 해외체류기간 3년 2개월과 비교하여 9개월 증가한 것이다. 해외체류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이 기간 중 경험이 한국에서의 사회적응에 미치는 영향력이 증가한다. 대다수의 재외 북한이탈주민에게 해외체류는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지만 그 중 일부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체험하기도 한다. 이들은 일찍이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습득하고 남한에서 자영업과 무역업에 종사하며 자본주의적 인간으로의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반면 제3국에서 유랑과 도피로 일관하거나 또는 매매춘에 종사하면서 정신적 외상을 연속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각종 질병으로 후유증을 앓고 사회적응에 전념하기 어렵다.
해외체류기간이 증가하면서 국제결혼의 성격을 갖는 입국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재외 북한이탈주민이 조선족 또는 중국인과 결혼하여 생활하다가 자신이 먼저 입국하고 후에 배우자를 초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탈북과 입국 동기와 목적이 변화하고 있다. 1960~70년대에는 남한체제와의 비교인식, 북한체제에 대한 불만 등 체제 저항적인 성격이 강했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처우불만, 성분분량, 처벌우려, 동반귀순, 이성문제 등 개인적 수준의 이유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증가한 북한이탈주민들의 탈북 이유는 대부분 경제난과 식량난 때문이었지만 2000년 이후에는 단순히 식량구입만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한 이주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가족구성 면에서 가족동반 입국자의 비율이 늘어가고 있다. 2001년 입국자 중 가족 동반 입국자의 비율은 56.4%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국내에 정착한 사람들이 잔여 가족들을 입국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다. 정착금의 일부를 사례비로 받고 잔여 가족들을 입국시키는 전문 브로커들도 가족단위 입국자들이 증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가족단위 입국이 증가하면서 여성, 아동, 장년층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1990년 이전에는 여성의 비율이 10% 미만이었으나 2001년에는 전체 입국자 중 여성의 비율이 50%로 증가하였다. 2003년 1월부터 8월까지 입국한 781명의 신규입국자 중 여성이 485명으로 62.1%를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 여성 입국자의 비율은 60~7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의 입국 증가는 중국과 러시아 등지의 재외 북한이탈주민 중 여성의 비율이 70% 이상으로 매우 높은 것과 관련이 있다.
3. 적응실태
원래 적응이란 생물생태학에서 사용하던 개념으로 “생물유기체가 생존을 위해 주어진 환경 조건에 적합하도록 자신을 변용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적응의 개념을 확장하여 주체적 의지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환경에 대처하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 양상이나 인간과 환경과의 상호작용도 포함시키고 있다(김귀옥, 2000: 327). 따라서 사회적인 의미로서의 적응은 한 개인이 사회의 다양한 상황이나 조건과 잘 어울리는 상태 및 과정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개인의 내적?심리적 욕구와 외적?사회적 환경과의 사이에 조화를 이루어 일상생활에서 좌절감이나 불안감 없이 만족을 느끼는 상태를 가리킨다. 기존 연구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적응은 크게 정치사상적 적응, 경제적 적응, 심리적 적응으로 구분된다(전우택, 1997). 여기서 정치사상적 적응은 북한의 공산주의 사상, 주체사상의 획일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을 수용하는 정도와 과정을 가리킨다. 경제적 적응은 자본주의체제의 이해 및 독립적이고 적정 수준의 경제생활의 영위를 가리킨다. 사회심리적 적응은 새로운 사회에의 만족감, 적응능력의 자신감, 사회의 정식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회심리적 적응 개념에는 다양한 적응차원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각 하위차원에서의 적응실태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를 문화적 적응, 사회적 적응, 심리적 적응으로 세분하고, 각 형태의 적응을 경험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문화적 적응은 고든이 제시한 동화이론의 문화접변(acculturation)과 같은 의미로 새로운 문화와 접촉하여 문화변용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문화적 적응 수준은 남한의 언어, 가치관, 생활양식 등을 습득하고 수용하는 정도와 북한과 남한의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도로 측정할 수 있다. 사회적 적응은 동화이론의 구조적 동화(structural assimilation)와 같은 의미로 새로운 사회의 다양한 제도, 조직, 단체 등에 가입하고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활동을 하는 과정이다. 사회적 적응 수준은 남한주민과 일차적 관계를 맺는 정도, 다양한 제도, 조직, 단체에 참여하는 정도로 측정할 수 있다. 끝으로 심리적 적응은 동화이론의 정체성 동화(identificational assimilation) 및 태도수용적 동화(attitude receptional assimilation)와 같은 의미로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일시, 소속감, 만족감을 갖는 과정이다. 이때 북한출신이라는 정체성과 남한주민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의 조화로운 통합이 심리적 적응의 관건이다. 심리적 적응 수준은 남한사회에의 동일시, 소속감, 만족감, 사회적 인정, 적응능력의 자신감을 갖는 정도로 측정할 수 있다.
1) 정치사상적 적응
기존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은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남한의 자유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집단주의적이고 일당독재의 북한체제가 싫어서 탈북한 사람들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그리고 강한 신분상승의 욕구로 인해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물질적 성공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기대를 갖고 있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들의 가치정향(value orientation)에 관한 독고순(2001)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탈북자들이 남한주민들에 비교해서 더욱 높은 수준의 수직적 개인주의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서 구직활동을 하고 사회적응을 시도하면서 기대와 현실사이에 커다란 괴리를 발견하면서 이들은 남한의 자본주의체제에 대해서 이중적인 태도를 형성한다. 이들은 남한사회가 북한사회에 비교해서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생산성이 높은 것은 인정하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자신들과 같은 사회의 약자 층에게는 전혀 배려를 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사회로 인식한다. 그러한 남한사회에 비교해서 북한사회는 비록 못살더라도 서로가 나눌 줄 알고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정이 있는 사회라고 평가한다.
같은 맥락에서 신예정(2001: 78?79)의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적 삶과 적응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이 한국이 자유롭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으며,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자유경쟁사회라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있고, 자신도 이 속에서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주의와 업적주의에서 밀려난 사회의 약자층에게는 무정하고 이기적인 사회라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체험하면서 한국이라는 사회가 결코 평등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01년 북한이탈주민후원회 실태조사에 의하면 북한이탈주민들이 볼 때 ‘남한사회는 열심히 공부하며 일하면 스스로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고 인식하는 응답자들은 총 응답자의 75%에 달해 남한사회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기대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남한사회에서는 돈이 최고인 것 같다는 생각에 96%의 응답자들이 동의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이 남한사회를 잘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50%만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즉 남한사회는 돈이 최고이고 자기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인 것 같지만 너무 복잡하여 이것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북한이탈주민후원회, 2001: 27).
2) 경제적 적응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적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적 적응이다. 사회적응의 물적 토대가 되는 경제적 적응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리적 적응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이탈주민 중에 전문직, 기업의 관리직, 사무직 등의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무직이거나 단순노동직 또는 단순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한사회에서 하향신분이동을 경험하여 북한에서 축적한 경력과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2001년 통일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감사 당시 국내 거주자 전체 1,370명 중 북한에서 종사했던 직업이나 경력과 관련된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135명(9.9%)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이탈주민의 실업률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여러 선행 연구들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30~40% 가량이 실업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윤덕룡?강태규, 1997; 윤인진, 2000; 북한이탈주민후원회, 2001).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현재 직종에 대한 응답한 737명 중 무직(41.5%), 기타(20.6%), 학생(18.7%) 등 대부분(80.3%)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금순 외, 2003). 또한 취업자의 경우에도 정규직의 비율(36.1%)이 매우 낮게 나타났다. 취업자 중 생산직과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저임금, 고용불안정, 발전 가능성 부재 등의 이유로 현 직장에 대해 애착을 갖지 못하고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직 후 재취업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장기실업이 늘어나게 되어 결국 우리 사회의 밑바닥계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윤인진, 1999).
여성들의 취업문제는 남성들에 비교해서 더욱 심각한 상태에 있다. 가구주가 되는 남성들조차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여성들의 취업문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1999년에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1999)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4명의 여성응답자 중 10명(29.4%)만이 실질적으로 경제활동을 통해 소득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79%는 북한에서 모두 직업을 갖고 실질적인 경제활동을 했으며, 응답자의 82.4%는 일하고 싶다고 일에 대한 높은 의지력을 나타내고 있어서 이들이 느끼는 심리적 좌절감은 크다고 볼 수 있다. 2003년 통일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교해서 정규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자 중 남자는 41.4%가 정규직에 있는 반면, 여자는 26.8%만이 정규직 직장을 갖고 있다. 동시에 남자는 48.3%가 비정규직인데 비해 여자는 68%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하게 됨에 따라 소득도 자립에 필요한 만큼 충분히 벌지를 못하고 있다. 1998년에 통일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14명의 응답자중 가구당 한 달 평균소득이 50만원 이하인 경우가 36%이었으며, 100만 원 이하의 경우는 80.8%에 달하였다. 2001년 통일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1996년부터 2001년 5월말까지 입국하여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사회적응 교육을 이수하고 사회에 편입한 총 721명의 탈북자 중 626명(86.8%)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하여 생계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북한이탈주민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자들이 직장에서 받는 보수는 평균 98만원으로, 일반 남한 근로자 평균임금 171만원의 절반이 조금 넘는 57%수준으로 매우 낮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거형태를 보면 응답자의 78.4%가 영구임대주택에 살고 있어 아직 정부의 주택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기소유 6.5%, 전세와 월세가 11.2%를 차지하여 주거형태가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통계에 비추어 볼 때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이 경제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소득에 관해 응답한 688명의 응답자 중 45.6%가 51~100만원의 월평균 수입을 벌고, 50만원 이하가 41.3%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대다수(95.4%)가 국민기초생활보장에 따라 생계비를 지급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다. 수입의 충분성에 대해서 응답자의 반 수 이상(58.4%)이 ‘약간 부족’하거나 ‘매우 부족’ 한 것으로, 28.6%가 ‘보통’으로 보고하였다. 반면 ‘매우 충분’하거나 ‘충분한 편’이라고 보고한 사람들은 13%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북한이탈주민들은 수입을 보고할 때 생계비보조금 또는 종교 및 사회단체 지원금을 포함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 수입은 보고된 수입보다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정규직에 종사하게 되면 생계비 보조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에 종사하여 별도로 수입을 벌면서 생계비보조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정착금과 생계비보조금은 입국 후 5년간의 한시적인 지원이지만 이 기간 동안 기초생계가 보장되기 때문에 탈북자들이 취업하거나 또는 정규직에 종사하려는 동기가 약해질 수 있다.
3) 문화적 적응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사람들, 특히 직장동료나 담당형사와의 대인관계에서 언어나 가치관, 사고방식 또는 사회제도 등의 사회문화적인 차이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어투, 어휘, 뉘앙스가 상이한 용어 등의 요인 때문에 고충을 겪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언어를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데 걸리는 기간은 대략 3년이라고 보고해서 언어습득이 만만찮은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유교적 태도나 직선적, 경직적인 사고방식,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7월에 입국한 서학룡은 북한사람들이 제일 넘기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가 ‘자존심’과 직선적인 대인관계라고 보고하였다(서학룡, 2004: 26). 그는 “내 안에 자아가 죽어야 내가 한국에서 살아날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3년이라는 시간을 통하여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문화차이로 인해 탈북자들은 남북한 사람들이 통일 후 서로 이해하며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부정적인 응답(48%)을 긍정적인 응답(32%)보다 많이 하였다. 통일 후 예상하는 어려움으로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28.3%), 경제적 생활 수준의 차이(25%), 상호 이해의 부족, 편견 등으로 인한 화합의 부족(13.4%), 정치 이념, 사상, 제도의 차이(10.9%), 언어의 차이(10%), 지역 갈등(2%) 등을 언급하였다(전우택, 2004: 47-48).
4) 사회적 적응
남한에 연고가 없는 북한이탈주민들은 정보와 기회에 연결될 수 있는 사회연결망 부재의 문제를 안고 있다. 통일부의 1998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친목단체에 참여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전체 응답자의 14%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1999:21)의 설문조사 역시 탈북 여성들이 가족 외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정부관계자, 다른 북한이탈주민들, 종교인들이라고 밝힘으로써 사회활동의 정도와 인간관계가 매우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3년 통일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지원 연결망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주로 누구와 의논하는가에 대한 물음에서는 ‘가족 및 친척’(35.7%), ‘신변보호담당관’(24.2%), ‘없다’(14%), ‘탈북 동료’(11%), ‘기타’(6.8%), ‘거주지보호담당관’(3.4%), ‘동네이웃’(2.3%), ‘하나원 담당관’?민간단체(각 1.3%), ‘취업보호담당관’(0.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웃 및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매우 잘 어울린다’(13.4%), ‘잘 어울리는 편이다’(34.7%) 등 긍정적 응답비율이 48.1%인데 비하여 ‘어울리지 못한다’(8.5%), ‘전혀 어울리지 못한다’(4%) 등 부정적 응답을 한 비율이 12.6%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들과 잦은 접촉으로 그들의 실상을 잘 알고 있는 보호담당관들이 평가한 탈북자의 사회적응 실태는 본인들의 응답과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남한주민들과의 어울림과 관련, ‘조금 잘못 어울림’과 ‘매우 잘못 어울림’이 72.2%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잘 어울린다’고 보고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북한이탈주민들 중에는 남한사람들과 자매결연한 사람도 있는데 자매결연의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북한이탈주민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2.3%가 남한사람들과 자매결연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그런데 자매결연이 남한사회에서 정착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한 경우는 19.1%, “다소 도움이 되었다”라고 응답한 경우는 39.3%였다. 그러나 자매결연이 별로 도움이 안되거나 전혀 도움이 안되었다고 응답한 경우는 41.5%에 달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사회활동으로 가장 활발한 것이 종교활동이다. 이들은 중국, 러시아 등에서 체류하는 동안 남한 선교사들과 목사들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기독교로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2003년 통일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9.2%가 종교를 갖고 있다고 답하였고 기독교도가 62.3%를 차지하고 있다. 종교를 갖는 이유로 전체 응답자의 77.6%가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12.8%가 ‘주위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하였다.
교회를 제외하고 남한주민들과 긴밀하게 접촉할 수 있는 모임과 단체는 별로 없다. 이들은 남한주민들과 일차적 관계를 맺지 못하면서 결국은 동료 북한이탈주민들끼리 어울리게 된다.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북한이탈주민들밖에 없다고 말을 한다. 물론 처지가 같은 북한이탈주민들간에도 서로 다른 배경, 탈출 동기, 우려되는 불이익 등으로 인해 서로 융화하지 못하는 면이 있는 등이 있어 서로간의 관계에서 적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엄명용, 1997: 50). 이로 인해 사회적응 초기에는 탈북자들이 서로를 만나는 것을 기피하고 남한주민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적응의 어려움으로 힘들게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탈북자들끼리 어울리는 양상이 나타난다.
5) 심리적 적응
남북한간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 남한사람들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태도 등으로 인해 이들은 심리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자신들은 한국사회 적응 정도에 대해서 긍정보다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더 많다.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6%가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45.5%가 그렇지 못하다고 응답하였다. 부적응의 원인으로는 ‘자신의 노력없이 기대가 큼’(37.7%), ‘삶의 목표 불확실’(22.6%), ‘생활적응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에’(15.1%), ‘직업을 잘못 선택해서’(11.6%), ‘기타’(6.3%), ‘안이한 삶’(5.6%), ‘죄책감 때문에’(1.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2001년 북한이탈주민후원회 조사에 따르면 ‘남한사람의 편견과 차별’이 사회(직장)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구체적으로 직장생활을 통해 우리사회 정착정도를 묻는 “직장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남한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이 가장 힘들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218명으로 전체 응답자 973명의 22.4%를 차지하였다. 이는 남한사회에서 남한주민들과 융화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이다.
2003년 통일연구원 조사에서는 남한주민들이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편견을 갖는 이유로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가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단지 출신지역이 북한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편견의 대상이 된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사고방식이 달라서’, ‘노력 없이 기대수준이 높아서’, ‘말투가 달라서’가 중요한 이유로 보고되고 있다. ‘능력이 부족해서 편견을 갖는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동의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심리적 적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에는 이들의 심리적 특성과 남한주민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있다. 전우택(2004)은 북한이탈주민들이 보이는 심리적 특성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시하였다. 첫째, 탈북과 남한에 들어온 행동에 대하여 공적인 가치와 명분을 앞세운다. 둘째, 타인을 의심하고 불신한다. 셋째, 극단적인 흑백논리를 주장하는 경직된 사고를 갖는다. 넷째, 법보다는 힘을 가진 사람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시각을 갖는다. 다섯째,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다. 여섯째, 공평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예민하다. 일곱째, 힘에 대해 예민하다.
같은 맥락에서 일선에서 북한이탈주민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의 김영자 사무국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북한이탈주민들의 적응상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김영자, 1999). 첫째,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다. 둘째, 사선을 넘는 극한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의 “살아야 한다는 강한 삶의 의지”와 또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강한 죄책감”이 상호 갈등한다. 셋째, 개인차가 있지만 성격이 도전적이거나 반대로 무기력함을 보인다. 넷째, 외부의 형식적 내지 댓가성 접근을 경험함으로 해서 그에 대한 의심 내지 배신감, 회의감의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다섯째,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여섯째, 외부환경에서부터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감에 사로 잡혀 있다. 일곱째, 민주시민으로써 지켜야 할 예법을 모른다. 이는 자유에 대한 개념과 법질서에 대한 개념부족으로 남을 생각하지 않거나 배려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또는 함부로 하는 것이 자유라는 굴절된 사고를 갖고 있다. 여덟째, 가정생활 및 일상생활의 방법을 모른다. 이는 특히 결혼한 북한이탈주민의 생활에서 잘 나타나는 현상으로 남성은 가부장적?봉건적 사고에 젖어 있어 여성 위에 군림하려는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 이것은 남한사회에서의 다른 면을 보고 느끼는 부인과의 가정생활에서의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나아가 북한사회와 남한사회의 가정생활 및 일상생활의 매너차이 내지 문화차이로 빚어지는 갈등에 대한 개선노력보다는 오히려 자존심으로 일관하여 이웃과의 교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위의 특성들은 일부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나 일반 북한이탈주민들과의 접촉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특성들은 오랜 기간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갑작스레 남한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게 되면서 사고의 전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과도기적 성격이 강하다.
남한주민이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서 갖는 태도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이들에게 전이되는 양상을 띤다. 그리고 북한주민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이들에게 투영되어 이들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바라보지 개성과 개별성을 갖춘 개인으로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김광억(1999)에 따르면 남한주민들은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해 자신들과 동등하고 동질적으로 보지도 않고 동정심과 호기심, 그리고 의심과 불신의 뒤섞인 감정으로 대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 국민은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서 태도와 행동간의 이중성을 보여서 관념적인 차원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정착을 위한 정부지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자신에게 어떠한 형태의 구체적인 피해나 비용이 부담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성향을 보인다.
4. 사회통합 차원에서의 북한이탈주민 지원대책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통합은 이인삼각 경기로 비유될 수 있다.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로서 함께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이때 어느 한쪽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다른 한쪽에게 짐만 되고 결국은 양쪽 모두 경주에서 낙오하게 된다. 따라서 양쪽 모두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하고 협력관계를 맺어야 한다. 같은 이치로 통일 후 남북한 사회통합과정에서 북한출신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능동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독일 통일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의 하나는 통일 후 동독출신 주민들의 잠재력을 활용하기보다 오히려 이 잠재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향으로 사회변혁이 일어나면서 동독출신 주민들이 ‘2등국민’이라는 열등감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동독정체성’이라고 하는 저항적 지역정체성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점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회통합 과정에서 북한출신 주민들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가치와 능동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깨달아 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고, 교육, 취업, 주거 등의 생활세계 영역에서 사회의 기회구조에 형평하게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자립정착을 위한 지원은 기본적으로 이들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세워져야 한다. 일시적이고 임시방편적인 지원정책이 아닌 장기적 자립 정착을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정책이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부 정책은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때만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노숙자, 실업자, 생활보호대상자와 같은 사회약자층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시혜적인 지원보다는 자립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스스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장비를 제공하는 것이 국민적 동의와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길이다. 그렇지만 형평성을 고려한다고 해서 이들을 단순히 사회약자 층으로만 간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은 사회적응의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의 민족과제인 남북통일을 준비하고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끌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자립정착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지원은 단순히 경쟁력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경제적 논리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보상과 배려와 같은 사회적 논리도 동시에 고려하며, 그 두 논리간의 접점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안한다.
첫째, 북한이탈주민들의 다양한 특성, 동기, 욕구를 살려 맞춤형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자활능력이 있는 사람은 대학에 진학하여 인적자본을 확충하거나, 직업훈련교육 또는 취업알선을 통해 일반 노동시장에 편입하거나, 고용장려금 제도를 통해 고용기회를 늘리도록 한다. 자영업의 경험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창업훈련과 창업지원금을 통해 자영업 진출을 도모하도록 한다.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은 사회복지차원에서 기초생활을 보장하도록 한다. 끝으로 근로능력은 있으나 일반사업체에서 일반고용이 힘든 사람은 보호사업체에서 근무하여 일정 수준의 소득을 얻고 자활능력을 증진하도록 하고 이후에 일반고용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인턴사원제를 활용하여 취업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둘째, 북한이탈주민 관리와 지원사업을 정부주도에서 벗어나 민간?종교단체와의 파트너십을 형성해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정착지원사업의 계획, 조정, 재정지원을 담당하고 민간?종교단체가 실제적인 지원사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민간?종교단체 역시 개별적으로 또는 경쟁적으로 지원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활동 중인 민간단체협의회를 중심으로 역할을 조정하고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북한이탈주민의 정착과 관련한 지원활동은 우리사회의 기존 사회복지체계와 연계하여 지역별로 존재하는 사회복지기관, 사회복지사, 민간?종교단체 등의 기존 시설과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지금까지의 정착지원 방안은 북한이탈주민을 지원의 수혜자로 보고 정부가 이들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의존성 증대, 다른 소수자집단과의 형평성 시비, 정부 재정의 부담 등의 문제로 인해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계속 증가할 경우 지속하기가 어렵다. 앞으로는 이들의 역량을 강화하여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립생활을 이루는 방향으로 정책의 방향이 세워져야 국민적 지지를 받아가며 지속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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