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착 혹은 자립에 관해 의미 있는 논의를 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되며, 그에 관한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탈북자의 정착, 나아가 안착에 대해 갑론을박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의 의견은 경제적 측면, 사회적 측면, 탈북자 개인적 측면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경제적 측면은 탈북자의 경제적 안정을 통한 정착에 관한 것으로 대부분 취업과 관련된 것이며, 사회적 측면은 탈북자들이 동화되기 위한 여러 가지 맥락에 관한 것이다. 개인적 측면은 육체적·정신적 건강문제, 가족문제, 성향문제 등이다. 열거한 하나하나가 중요한 주제이며 광범위한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의견은 탈북자 지원정책과 연관되어 설명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는 탈북자 정착에 관한 여러 가지 제도의 미비나 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한국 사회의 준비부족에 기인하며, 무엇인가 잘못됐으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 결론에서 주장되고 있다. 탈북자의 우리 사회 정착에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당연히 정부 주도의 정착지원제도다. 그중 경제적 지원제도가 가장 중요하다. 정부의 정착지원제도는 크게 네 번의 변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탈북자들의 국내에서의 신분과 경제상황에 수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를 필자가 정한 카테고리로 살펴보면 첫 번째가 귀순용사시대로 1960~80년까지로 볼 수 있다. 이때는 국가보훈처에서 이들의 처우를 관장했으며 보상금, 취직, 학비, 주택, 연금 등을 풍족하게 지원했다. 그리고 국민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던 시기로 귀순자의 황금시대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귀순북한동포시대로 1993년 러시아 벌목공 수십 명의 귀순을 계기로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을 제정하고 관할을 보건복지부로 변경했다. 이때는 경제적 난민의 생활보호대상자적 처우 수준으로서 9평짜리 영구임대주택(보증금 700만원)과 월 최저임금의 30~100배 수준의 지원금 및 북에서 가져온 물자의 기여금을 제공했지만 그 지원범위가 대폭 축소되었다. 사실 이 시점부터 현재 탈북자가 느끼는 이등국민, 남한사회의 이방인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북한이탈주민시대로 1997년 ‘북한이탈주민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의 시대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시대임에 불구하고 성인 1인당 총 3590만원의 지원제도를 수립하여 현재 탈북자 지원제도의 근간을 수립했다. 네 번째는 인센티브시대로 2005년 1월 이후 입국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근간은 정착금 지급수준은 유지하되 기본금과 취업노력을 유도하는 장려금으로 구분하여 지급하였다. 장려금은 총 정착금 중 1540만원을 자격증 취득, 직업훈련교육수혜자, 직장 장기근무자를 대상으로 일정금액을 나누어주는 인센티브 제도다. 정부는 위의 4가지 금전적 정착지원제도 외에 신변, 취업, 정착에 관련되는 담당관제, 도우미제도 등을 민간(적십자)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국내입국 탈북자 지원제도는 정치적 맥락, 대량탈북 및 이들의 대규모 입국에 관한 우려감과 이로 인한 예산문제, 인도주의, 남북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그동안 변화를 겪어왔다. 지원제도 변화의 중요 목표점은 이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고 정착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이 성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난민이나 망명자에게 현금을 지급하고, 사는 터전을 제공하며, 각종 지원프로그램까지 동시에 제공하는 나라는 없다. 그렇지만 왜 그들은 그들대로 불만을 토로하고 또 우리는 왜 그들을 걱정하는가?
안정적인 직업 확보가 가장 중요한 정착과제 최근 2000년 이후의 대량입국시대를 겪고 국내 거주 탈북자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실질적인 의미에서 한국 사회 일원이 되게 하기 위한 적응·정착·안착·자립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탈북자 정착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들의 경제적 정착 혹은 자립에 관한 논의다. 실제 이들과 접촉, 사정을 들어보면 가장 큰 문제가 생계유지에 대한 고민이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 결론은 한국 사회 적응에 안정적인 직업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집 문제(임대아파트 입주)는 그렇다 해도 다른 정착지원금과 제도보다 취업만 보장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아주 많다. 실제로 2005년 12월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조사한 탈북자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경제활동참가율(만 15세 이상의 인구 중 취업자와 실업자 합의 비율)이 58.1%, 고용률(만 15세 이상의 노동가능인구 중 취업자 비율) 36%, 전체 실업률(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의 비율) 27%, 수도권 거주 탈북자의 실업률 19.7%, 지방 거주자 실업률 38%로 조사된 적이 있다. 동일기간에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을 보면 경제활동참가율 61.1%, 고용률 59.0%, 전체 실업률 3.5%, 수도권 실업률 4.2%, 지방 실업률 2.9%로 조사되어 이를 비교하면 이들의 경제사정이 얼마나 힘든지 짐작된다. 취업자의 종사상 지위를 비교해보면 상용근로자가 22.4%, 임시근로자 13.3%, 일용근로자 44.8%, 기타 7.3%로 조사되었는데, 동일기간 통계청 고용동향을 보면 상용근로자가 35.1%, 임시근로자 22.7%, 일용근로자 9.5%로 조사되었다. 수입규모를 살펴보면 100만원 이하 소득자가 63.1%로 나타났으며, 150만원 이하 소득자 78.8%로 조사되었다. 가계소득의 경우 65.3%가 100만원 이하 소득으로 조사되었다. 종합해보면 탈북자는 취업에 있어 그들의 주장처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상당히 열악한 상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 외래어, 한자, 컴퓨터 지식, 직업능력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필자가 만난 탈북자 중 한 사람은 상사가 ‘자동차 콘솔박스 안의 헤어스프레이 샘플’을 가져오라는 말을 못 알아들어 야단맞고 모멸감을 느껴 직장을 그만두었다. 또 어떤 대학생 탈북자는 필자의 인터넷 이메일 주소를 못 받아 적는 사례도 있었다. 물론 북한에서 영어보다는 러시아어를 배웠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주체사상에 의해 대부분 외래어가 북한식 한글로 만들어져서 그렇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까지 우리는 이해해야 하고 그들은 그렇게 남아 있어야 하는지 문제다. 그리고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보통 기업은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모집과정에서 학력, 외국어 능력, 각종 검사, 면접 등의 방법으로 필요한 인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 중 학력은 고졸이면 고졸자, 대졸이면 대졸자로서의 기본적 능력이 있다고 예상하고 인재평가의 중요한 잣대로 사용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서 고등중학교 졸업자는 고졸자로 학력을 인정해주고, 대졸의 경우 극히 드문 경우 학력을 인정해주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의 고졸자를 한국의 고졸자 능력으로 동일하게 예상하고 이들을 취업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서로의 차이 인정하고 극복해 가야 탈북자는 북한주민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우리가 통일을 생각한다면 이들이 우리 사회에 유입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즉 차이점과 공통점을 철저히 파악하여 예측할 수 있는 혼란과 발생가능한 사건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 대한 측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인 학력인정으로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탈북자들에게까지 혼란을 주고 있다. 일부 청소년의 학력격차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청소년은 전체 탈북자 중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차이를 인정하고 보정해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차별하자는 게 절대 아니다. 탈북자와 우리 국민, 북한주민과 우리 국민 사이에 극복하기 힘든 이질성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차이는 정치의식의 차이, 직업능력의 차이, 사회제도 인식의 차이, 심리적 위축감 및 피해의식, 생활 및 인관관계 형성 방법 등이다. 우리가 남녀의 차이를 알고 서로 보완하고 살아가듯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그 인정은 우리가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고, 탈북자가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다. 그리고 차이를 인정하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차이 극복 프로그램은 통일부 주도의 정착지원제도와 별개로 운영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탈북자 지원 주무부서는 통일부가 아닌 보건복지부나 행정자치부가 되어야 한다. 또한 탈북자에 대한 각종 서비스와 프로그램 제공의 실무주체는 지방자치단체가 되어야 한다. 통일부가 하기에는 이제는 정도(인원, 일의 성격 등)를 넘어섰고, 대부분이 생계보조 프로그램인 지원제도 주무부서는 통일부와 성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간 활력을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 현재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후원회 등 통일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기관과 함께 탈북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지원하고 있다. 탈북자 지원에 관한 민관협력은 정부의 우월적 지위에서의 파트너십보다는 동등한 입장에서의 파트너십 형성이 필요하다. 정부는 주도권과 예산을 동시에 가진 우월적 기관으로서의 성격보다 여러 NGO, 탈북자 사업을 하는 복지관과 동등한 위치에서 탈북자 문제를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NGO와 복지관의 현장경험은 통일부 탈북자 지원정책 수립에 많은 정책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민간 활용, 실질적 적응 프로그램 정착돼야 탈북자 사회정착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사회적응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탈북자는 하나원의 3개월 교육과정을 거쳐 사회로 배출된다. 하나원의 교육과정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에 대해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개월 동안 우리 기준으로 탈북자가 알아야 된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너무 많다. 이들의 정착에 도움을 주기 위해 담당관제도와 도우미제도를 활용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 부분에도 민간의 활력이 필요하다. 복지관 수준의 생활도우미를 넘어선 ‘자유시민대학’ 같은 실질적인 적응 프로그램의 정착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를 위해 민간 활력을 발굴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또한 탈북자 지원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시행 중인 인센티브제도는 최근 문제되었던 브로커의 입국사례금 문제를 해결하고 탈북자의 자립·자활을 높이기 위해 개편되었다. 이것을 살펴보면 장려금 1540만원이 직업훈련장려금, 자격취득장려금, 취업장려금으로 구성돼 있다. 취업장려금은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1년 단위로 3년까지 근속한 사람에 한해 연차에 따라 200만, 300만, 40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필자가 현장에서 탈북자를 만나본 결과 탈북자가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장에 취직하는 것은 드물었다. 대부분은 일용직이나 임시고용직에 있고, 또 정규직으로 취업할 경우 생계지원금이 삭감되므로 고용주와 협의하에 보험을 들지 않은 경우도 있다. 따라서 취업장려금 수령자는 비율이 낮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자격취득의 경우 대부분이 직업훈련이나 기능대학 등을 통해 가능한데 이 경우 교육기간 동안 생계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편법으로 적만 올려놓거나 관심 없는 직업훈련에 억지로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들의 정착지원금 3540만원 중 1540만원은 받기 힘든 지원금이며, 기입국한 사람에 비해 생활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인센티브제의 취지는 좋으나 실질적인 혜택을 받기가 어려우므로 금액을 조정, 초기 정착비로 돌려 이들의 안정된 초기정착에 사용되어야 한다. 탈북자 1만 시대에 우리가 준비할 것이 많다.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준비해야 하고, 통일 준비 중 북한주민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탈북자는 중요한 관심대상이 될 수 있으며, 차이 발견과 그 차이를 메우는 지식의 획득, 그들과의 즐거운 공존은 통일 이후 북한주민의 통일한국 안착과도 연계하여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국민 누구도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남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탈북자 1만 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