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골자치구(NEI MONGOL)의 몽골족 이해
내몽골 자치구
중국 북부의 몽골족의 자치구. 면적 118만 3000㎢, 인구 2284만(1995).
북동쪽에서 남 동쪽으로 길게 가로 놓여 있으며, 동에서 남에 걸쳐 둥베이[東北]·화베이[華北]의 여러 지방과 접하고 있고, 북에서 서에 걸쳐서는 몽골과 인접해 있다. 행정구획은 9맹(盟) 10시(市) 22현(縣) 54기(旗) 3자치기(自治旗)로 되어 있고, 주도(主都)는 후허하오터[呼和浩特)이다. 이 지역은 몽골과 나란히 고도 1000∼2000m의 기복을 이루는 고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에는 표고 1500m의 대싱안링산맥[大興安嶺山脈]이 남북으로, 남쪽으로는 1000∼2000m의 인산산맥[陰山山脈] 남쪽 기슭으로 해발 900∼1000m 높이의 허타오평원[河套平原]이 펼쳐지며, 황허강[黃河] 이남의 오르도스고원은 사막지대를 이룬다.
기후는 대륙성기후로 1월평균 기온이 서부는 -10℃, 중부는 -20℃ 전후, 북동부는 -30℃이고, 7월 평균기온은 서부는 25℃ 전후, 중부·북동부는 20℃ 전후로 연교차가 크다. 연강수량은 200∼400㎜로 건조한 편인데 특히 서부는 150㎜ 정도로 매우 적으며, 대싱안링 동부 및 자치구 남동부는 400∼500㎜ 정도가 내린다. 이 지역이 역사에 등장한 때는 오래 전의 일로, 1634년 중국 청(淸)나라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부터 내몽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후 한족의 이주가 급증하면서 18세기 말에는 한족 인구 수가 몽골족을 훨씬 앞지르게 되었다. 1947년 자치구로 설정되어 지금에 이른다. 서부에 위치한 내몽골고원의 드넓은 초원지대에서는 소·양·말·돼지·낙타 등의 목축이 성하며, 동부 산지와 쑹랴오평원[松遼平原] 서쪽에서 북부에 걸친 농업지역에서는 조·수수·콩·밀 등이 재배되고 있다.
독립 이후 주요 산업인 목축에 주력하여 지금은 특히 양털의 생산량이 많다. 공업으로 철강·농목기계·전자기기·피혁·모직물·낙농제품 등이 생산되고 있으며, 전통공업도 성하다. 삼림자원이 풍부하며, 금·철·석탄·소금·석면·운모 등도 산출된다.
면적 : 1,183,000㎢
인구 : 20,660,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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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륙북부에 위치하는 소수민족 자치구역으로 북쪽은 몽고인민공화국과 국경을 이루고 동쪽은 길림성 서쪽은 영하회족자치구와 접경하며 남쪽으로는 요녕, 하북, 산, 섬서의 각성과 접경하고 있다. 이 지역을 통상적으로 내몽고라고 한다. 중국에 있는 몽골의 수는 최근까지도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몽골 인민공화국(MPR)에 사는 인구의 두 배가 넘는다. 내몽골 자치구에 285만의 몽골인들이 살고 있다. 나머지는 북부 중국 전체에 흩어져 살고 있다. 주민은 한(漢)족 90% 몽고족 15%이외에 회(回)족, 만주(滿洲)족, 조선족, 씨버족 등 10여 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후는 연평균 기온은 -1℃(동북지역)∼24℃(서남)이며, 연평균 강우량은 400(동북)∼150㎜(서남)이며 여름철의 강수량이 연간 강수량의 70%이상을 차지한다.
(1) 주요산업
농업은 자연조건이 좋지 않아 주로 소맥, 귀리, 기장, 감자등을 경작하나 생산량이 비교적 높은 편이어서 잉여분을 다른 성(省), 시(市)로 보내고 있다. 목축은 초지가 총면적의 50%이상이기 때문에 상당히 활발하여 주로 면양, 염소, 소, 낙타 등을 방목한다. 공업도 모방직, 면방직, 제당, 제지, 담배공장 등이 곳곳에 건설되었다.
(2) 기독교 상황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역적 특성과 몽고인들과 한족 중국인들 사이의 거대한 문화적 차이들, 그리고 여기 주민들이 믿고 있는 이방 종교들로 인해, 내몽고는 역사적으로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매우 "완고한" 지역으로 남아 있어 왔다. 여기에서는 아주 소수만이 뿌리를 내려 결실되었다. 높은 문맹률도 또한 이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많이 생겨나지 못하게 되었다. 높은 문맹률도 또한 이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많이 생겨나지 못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여기에서도 그를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들의 흔적을 남겨 놓으셨다. 1960년대에 이 지역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종교를 통제하기 위한 중국 공산당의 시도의 일부로서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2. 몽골족의 문화와 풍습
(1) 몽골족의 풍습과 언어
몽골의 다섯 종류의 동물들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그 동물들은 - 양, 염소, 말, 소, 낙타 -사람들 수의 12배를 능가하며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나라의 45%가 한 그루의 나무조차 보이지 않는 대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진 스텝 지역이다. 남쪽으로는 고비사막이 있으며 북으로는 숲과 산악 지대가 있다. 여름에만 비가 오기 때문에 습기가 거의 없고 평원들은 먼지로 뒤덮여 있다.
몽골인의 40%(1,200,000명)이상이 그 들의 가축떼와 더불어 1연중 대부분의 시간을 이동하며 지내는 유목민들이다. 그들은 펠트로 만든 저스라고 부르는 원형천막에서 산다. 심지어 수도인 올란바토르의 많은 사람들도 이 저스에서 살며 유목민 목축 생활과의 연계성을 유지하고있다.(5,200,000명 더 되는 몽골인들이 중화 인민공화국에 살고 있고, 시베리아의 부르야츠와 투바스도 목축을 하는 종족들과 관련이 있다.)
남자들은 가축떼를 돌보는 것과 사냥, 장비를 수리하는 등의 책임을 진다. 여자들은 우유 짜는 일과 매 끼니를 준비하는 일을 포함하여 대부분 캠프 내에서 일을 한다.
몽골인들은 라마 불교를 믿으며 티벳과 근접하여 종교적인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우주를 하늘에 의해 감독되는 포괄적이며 조화로운 구조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삶들을 비롯하여 각각의 피조물들이 존재해 필요한 것들을 취할 수 있는 권리는 가지고 있으나 자원들을 악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조화를유지하기 위하여 사람은 가축을 돌봐야한다.
3. 몽골족의 종교와 기독교
최초의 복음은 비단길을 통해 10세기경 중국의 당으로 들어와 활동하던 페르시아의 네스토리우스인들이다. 당의 쇠퇴시기에 중국에서 도피한 수많은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인들은 북부 지역의 몽골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이 전해진 300년후 1280년경 몽골족은 위대한 징기스칸의 영도하에 동유럽에서 중국에 이르는 제국을 이룩하였다. 몽골족의 원(元)나라는 1368년까지 지속되었고,이 기간 동안 네수토리우스파 그리스도인들은 중국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로마 카톨릭의 선교사들도 들어왔다. 이러한 선교 활동들은 몽골 제국이 몰락하기까지 번영하였다. 몽골제국은 종교에 대해 비교적 관용했던 것에 주로 기인한다. 황제는 포고를 내려 모든 종교가 각기 나름대로 존중받을 것을 보장했다.
더불어 사는 것임을 발견한다. 움직여지는 라디오와 TV가 있다. 그것들은 라디오 프로그램과 비디오, 카세트 사역을 통해 유목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있는 가능성을 주는 것들이다. 도시에는 얼마가 몽골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인구의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다. 1990년, 극동 방송사가 몽골어로 복음 방송을 재개했다. "예수 영화"가 최근에 몽골어로 제작되어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근년에는 해외에 있던 많은 중국인들이 여기에 있는 그들의 친척들을 방문하여 성경과 다른 기독교 서적들을 그들에게 전달해 주었으며 굶주린 영혼들을 채워 주고 있다.
그들의 천막에서
낙농 (목축 & 농업)
다싱안링산맥 서쪽에서 인산산맥 북쪽에 걸친 네이멍구 고원 및 오르도스고원 북서부 등지의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양, 소, 말, 낙타, 돼지 등의 사육이 활발하므로 네이멍구자치구는 중국의 주요 목축업 지역이 된다. 본래 유목으로 이루어지던 목축업이 오늘날에는 정착경영으로 바뀌었고, 특히 양털의 산출이 많다. 자치구 남동부의 허베이, 산시 양성의 경계부근에서 후허하오터고원에 걸친 지역과 황허강 북안의 허타오평원 및 오르도스고원 남동부는 주요 농업지역을 이루며, 조, 수수, 콩, 밀, 깨, 사탕무 등의 생산이 많다. 특히 남동부 지역과 허타오평원은 일찍부터 한족 농민이 이주하여 개발한 곳이며, 자치구 총면적의 20%에 불과한 그 지역에 총인구의 약 80%가 집중되어 있다.
내몽골과 몽골이 나뉜 역사 몽고가 내몽고와 외몽고로 나뉜 때는 사실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1945년 중국을 대표하던 장개석 정부와 스탈린은 대일본 전쟁을 위해 외몽고 를 끌어들이고,.당시 대장정을 마치고 섬서성연안에 머무르고있던 모택동은 일본의 점령지 내몽고에 대해서 이후 자치구로 인정할 것을약속 하게된다. 이 약속은 1947년 5월 1일 지켜져 내몽고가 중국에서 첫번째 자치구가 되었다. (아름다운 내몽골의 게르와 일출 광경) 몽골족 문화, 내몽골 관광업의 열점으로 부상
중국 네이멍구(내몽골) 자치구의 척박한 환경에서 한 해에 4m 이상 자라는 초속성 포플러 품종을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동국대 산림자원학과 강호덕 교수 팀은 지난 3년 동안 네이멍구 자치구의 덩커우와 경기도 남양주시 동국대 연습림에 양묘장을 만든 뒤 사막에서 잘 자라는 포플러 품종 개발에 나섰다. 포플러는 빨리 자라는데다 간척지나 오염지역을 정화하는 환경정화수로 최근 주목받는 수종이다.
황사의 발원지인 중국과 몽골의 사막지대를 녹화할 수종을 개발하는 게 강 교수 팀의 연구 목표다. 덩커우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우리나라의 10분의 1 가량인 144㎜인데다 연평균 기온은 7.6℃, 한겨울엔 영하 20℃까지 떨어진다. 게다가 토양은 허옇게 소금이 보일 정도로 염도가 높다. 보통 나무라면 금세 말라비틀어지는 이런 환경에서 잘 자라는 품종을 얻기 위해 연구팀은 중국은 물론 미국·유럽·우리나라에서 다양한 포플러 품종을 들여와 잡종교배와 조직배양을 거듭했다.
그 결과 중국 포플러를 개량한 ‘북항’ 품종은 연간 키가 4. 자라는 등 놀라운 성장속도를 보였다. 또 내한성 시험에서 90%의 생존율을 보였는데, 영하 35℃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품종은 우리나라에서보다 중국 사막에서 갑절 이상 잘 자랐다.
강 교수는 미국 포플러를 개량한 ‘디엔-34’와 이 품종을 사막에 심을 최적 수종으로 꼽았다. 그는 “국내에 우수한 사막 조림수종의 유전자은행을 만들어 중국과 몽골에 보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오는 13일 시민정보미디어센터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여는 사막화·황사 방지 토론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몽골을 사랑하고 내몽골에 오게 하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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