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골자치구(NEI MONGOL)의 몽골족 이해

 

내몽골 자치구

중국 북부의 몽골족의 자치구. 면적 118만 3000㎢, 인구 2284만(1995).

북동쪽에서 남 동쪽으로 길게 가로 놓여 있으며, 동에서 남에 걸쳐 둥베이[東北]·화베이[華北]의 여러 지방과 접하고 있고, 북에서 서에 걸쳐서는 몽골과 인접해 있다. 행정구획은 9맹(盟) 10시(市) 22현(縣) 54기(旗) 3자치기(自治旗)로 되어 있고, 주도(主都)는 후허하오터[呼和浩特)이다. 이 지역은 몽골과 나란히 고도 1000∼2000m의 기복을 이루는 고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에는 표고 1500m의 대싱안링산맥[大興安嶺山脈]이 남북으로, 남쪽으로는 1000∼2000m의 인산산맥[陰山山脈] 남쪽 기슭으로 해발 900∼1000m 높이의 허타오평원[河套平原]이 펼쳐지며, 황허강[黃河] 이남의 오르도스고원은 사막지대를 이룬다.

기후는 대륙성기후로 1월평균 기온이 서부는 -10℃, 중부는 -20℃ 전후, 북동부는 -30℃이고, 7월 평균기온은 서부는 25℃ 전후, 중부·북동부는 20℃ 전후로 연교차가 크다. 연강수량은 200∼400㎜로 건조한 편인데 특히 서부는 150㎜ 정도로 매우 적으며, 대싱안링 동부 및 자치구 남동부는 400∼500㎜ 정도가 내린다. 이 지역이 역사에 등장한 때는 오래 전의 일로, 1634년 중국 청(淸)나라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부터 내몽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후 한족의 이주가 급증하면서 18세기 말에는 한족 인구 수가 몽골족을 훨씬 앞지르게 되었다. 1947년 자치구로 설정되어 지금에 이른다. 서부에 위치한 내몽골고원의 드넓은 초원지대에서는 소·양·말·돼지·낙타 등의 목축이 성하며, 동부 산지와 쑹랴오평원[松遼平原] 서쪽에서 북부에 걸친 농업지역에서는 조·수수·콩·밀 등이 재배되고 있다.

독립 이후 주요 산업인 목축에 주력하여 지금은 특히 양털의 생산량이 많다. 공업으로 철강·농목기계·전자기기·피혁·모직물·낙농제품 등이 생산되고 있으며, 전통공업도 성하다. 삼림자원이 풍부하며, 금·철·석탄·소금·석면·운모 등도 산출된다.

                                                         (내몽골 사막)



수도 : 후허하오터(Huhehawte)        

면적 : 1,183,000㎢
인구 : 20,660,000명

 
                                                                              
                                                     (내몽골 겨울 풍경)
1. 내몽골자치구의 개관

중국대륙북부에 위치하는 소수민족 자치구역으로 북쪽은 몽고인민공화국과 국경을 이루고 동쪽은 길림성 서쪽은 영하회족자치구와 접경하며 남쪽으로는 요녕, 하북, 산, 섬서의 각성과 접경하고 있다. 이 지역을 통상적으로 내몽고라고 한다. 중국에 있는 몽골의 수는 최근까지도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몽골 인민공화국(MPR)에 사는 인구의 두 배가 넘는다. 내몽골 자치구에 285만의 몽골인들이 살고 있다. 나머지는 북부 중국 전체에 흩어져 살고 있다. 주민은 한(漢)족 90% 몽고족 15%이외에 회(回)족, 만주(滿洲)족, 조선족, 씨버족 등 10여 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후는 연평균 기온은 -1℃(동북지역)∼24℃(서남)이며, 연평균 강우량은 400(동북)∼150㎜(서남)이며 여름철의 강수량이 연간 강수량의 70%이상을 차지한다.

(1) 주요산업

농업은 자연조건이 좋지 않아 주로 소맥, 귀리, 기장, 감자등을 경작하나 생산량이 비교적 높은 편이어서 잉여분을 다른 성(省), 시(市)로 보내고 있다. 목축은 초지가 총면적의 50%이상이기 때문에 상당히 활발하여 주로 면양, 염소, 소, 낙타 등을 방목한다. 공업도 모방직, 면방직, 제당, 제지, 담배공장 등이 곳곳에 건설되었다.

(2) 기독교 상황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역적 특성과 몽고인들과 한족 중국인들 사이의 거대한 문화적 차이들, 그리고 여기 주민들이 믿고 있는 이방 종교들로 인해, 내몽고는 역사적으로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매우 "완고한" 지역으로 남아 있어 왔다. 여기에서는 아주 소수만이 뿌리를 내려 결실되었다. 높은 문맹률도 또한 이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많이 생겨나지 못하게 되었다. 높은 문맹률도 또한 이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많이 생겨나지 못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여기에서도 그를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들의 흔적을 남겨 놓으셨다. 1960년대에 이 지역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종교를 통제하기 위한 중국 공산당의 시도의 일부로서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2. 몽골족의 문화와 풍습

              

                (내몽골 자치구의 초원에서 몽골족 남녀가 전통의상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1) 몽골족의 풍습과 언어

몽골의 다섯 종류의 동물들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그 동물들은 - 양, 염소, 말, 소, 낙타 -사람들 수의 12배를 능가하며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나라의 45%가 한 그루의 나무조차 보이지 않는 대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진 스텝 지역이다. 남쪽으로는 고비사막이 있으며 북으로는 숲과 산악 지대가 있다. 여름에만 비가 오기 때문에 습기가 거의 없고 평원들은 먼지로 뒤덮여 있다.

몽골인의 40%(1,200,000명)이상이 그 들의 가축떼와 더불어 1연중 대부분의 시간을 이동하며 지내는 유목민들이다. 그들은 펠트로 만든 저스라고 부르는 원형천막에서 산다. 심지어 수도인 올란바토르의 많은 사람들도 이 저스에서 살며 유목민 목축 생활과의 연계성을 유지하고있다.(5,200,000명 더 되는 몽골인들이 중화 인민공화국에 살고 있고, 시베리아의 부르야츠와 투바스도 목축을 하는 종족들과 관련이 있다.)

남자들은 가축떼를 돌보는 것과 사냥, 장비를 수리하는 등의 책임을 진다. 여자들은 우유 짜는 일과 매 끼니를 준비하는 일을 포함하여 대부분 캠프 내에서 일을 한다.

몽골인들은 라마 불교를 믿으며 티벳과 근접하여 종교적인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우주를 하늘에 의해 감독되는 포괄적이며 조화로운 구조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삶들을 비롯하여 각각의 피조물들이 존재해 필요한 것들을 취할 수 있는 권리는 가지고 있으나 자원들을 악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조화를유지하기 위하여 사람은 가축을 돌봐야한다.

3. 몽골족의 종교와 기독교

최초의 복음은 비단길을 통해 10세기경 중국의 당으로 들어와 활동하던 페르시아의 네스토리우스인들이다. 당의 쇠퇴시기에 중국에서 도피한 수많은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인들은 북부 지역의 몽골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이 전해진 300년후 1280년경 몽골족은 위대한 징기스칸의 영도하에 동유럽에서 중국에 이르는 제국을 이룩하였다. 몽골족의 원(元)나라는 1368년까지 지속되었고,이 기간 동안 네수토리우스파 그리스도인들은 중국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로마 카톨릭의 선교사들도 들어왔다. 이러한 선교 활동들은 몽골 제국이 몰락하기까지 번영하였다. 몽골제국은 종교에 대해 비교적 관용했던 것에 주로 기인한다. 황제는 포고를 내려 모든 종교가 각기 나름대로 존중받을 것을 보장했다.
 더불어 사는 것임을 발견한다. 움직여지는 라디오와 TV가 있다. 그것들은 라디오 프로그램과 비디오, 카세트 사역을 통해 유목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있는 가능성을 주는 것들이다. 도시에는 얼마가 몽골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인구의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다. 1990년, 극동 방송사가 몽골어로 복음 방송을 재개했다. "예수 영화"가 최근에 몽골어로 제작되어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근년에는 해외에 있던 많은 중국인들이 여기에 있는 그들의 친척들을 방문하여 성경과 다른 기독교 서적들을 그들에게 전달해 주었으며 굶주린 영혼들을 채워 주고 있다.
그들의 천막에서


낙농 (목축 & 농업)

   
   
다싱안링산맥 서쪽에서 인산산맥 북쪽에 걸친 네이멍구 고원 및 오르도스고원 북서부 등지의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양, 소, 말, 낙타, 돼지 등의 사육이 활발하므로 네이멍구자치구는 중국의 주요 목축업 지역이 된다. 본래 유목으로 이루어지던 목축업이 오늘날에는 정착경영으로 바뀌었고, 특히 양털의 산출이 많다.

  자치구 남동부의 허베이, 산시 양성의 경계부근에서 후허하오터고원에 걸친 지역과 황허강 북안의 허타오평원 및 오르도스고원 남동부는 주요 농업지역을 이루며, 조, 수수, 콩, 밀, 깨, 사탕무 등의 생산이 많다. 특히 남동부 지역과 허타오평원은 일찍부터 한족 농민이 이주하여 개발한 곳이며, 자치구 총면적의 20%에 불과한 그 지역에 총인구의 약 80%가 집중되어 있다.

내몽골과 몽골이 나뉜 역사

몽고가 내몽고와 외몽고로 나뉜 때는 사실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다.

  2백여년동안 몽고에게 조공을 바쳐왔던 러시아가 강대해지자 몽고를 거쳐 남진하게 되고,이때 러시아와 청조는 몽고를 완충경계 지역으로 삼게되는데 청(淸)조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외몽고 지역의 몽고인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내몽고 지역까지도 병합 하나의 몽고제국을 재건하련느 노력을 하게되나 결구 중국과 러시아의 압력으로 좌절되고 만다.

 그리고 나서 1917년 러시의 볼세비키 붉은혁명이 성공된 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외몽고는 독립권 확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백군-반혁명세력)의 지원을 받고 있는 몽고의 활불 정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독립을 하게되는데 일렇게 됨으로 반쪽의 독립국가가 생성된다.

 그런 상황에서 1945년 중국을 대표하던 장개석 정부와 스탈린은 대일본 전쟁을 위해 외몽고 를 끌어들이고,.당시 대장정을 마치고 섬서성연안에 머무르고있던 모택동은 일본의 점령지 내몽고에 대해서 이후 자치구로 인정할 것을약속 하게된다.  이 약속은 1947년 5월 1일 지켜져 내몽고가 중국에서 첫번째 자치구가 되었다.

 그렇지만  1924 몽골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독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외몽고 지역은 당시까지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정부에서도 외몽고 지역에대한 특별한 언급을 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은 몽골국(외몽고) 또한 중국의 일부란 생각을 갖고있다.

                                       (아름다운 내몽골의 게르와 일출 광경)

몽골족 문화, 내몽골 관광업의 열점으로 부상 
 

해내외 유람객들은 떠들섞하던 도시로 부터 광활한 내몽골로 찾아옴으로 하여 내몽골 문화가 내몽골자치구 관광업에서 가장 큰 열점으로 되였으며 문화자원의 발굴은 전에 없는 열점으로 되고 있습니다. <10월1일> 황금주가 금방시작되면서 부터 내몽골 각 지역은 벌써 유람객들로 붐비였습니다.

내몽골자치구 관광국의 통계에 의하면 내몽골관광업분야가 전자치구에서 상반년에 국내외 우람객 587.5만명을 접대했으며 관광업의 총 수입은 인민페로 58.6억원에 달해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33.5% 늘어났습니다.

내몽골 관광국 부국장 운대평은 기자에게 20여년의 발전을 통하여 내몽골 전자치구에서 직접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이미 6.7만명이며 성급 호텔이 152개, 여행사192개에 달해 관광업은 이미 일정한 산업의 규모를 갖추었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몽골족의 문화에 의거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활한 초원,무성한 삼림, 맑은 호수, 짙은 민족의 풍토인정은 내몽골 관광업의 독특한 위력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몽골족의 문화야 말로 내몽골관광문화의 정화라 할 수있습니다.>

운대평은 기자에게 해내외 유람객들이 내몽골에 유람온 것은 성급호텔에서 주숙하거나 싸우나를 몇번하기 위한것이 아니며 재즈음악을 듣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유람객들은 관광을 통하여 몽골족의 생산, 생활방식을 요해하고 몽골족의 풍속과 풍토인정을 요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것일 수록 생명력이 있습니다. > 말하자면 섬서의 병마용이나 호남의 상서, 해남의 바다와 같이 몽골족의 문화는 내몽골에서 가장 특이한 브랜드입니다. 몽골족의 초원 문화는 짙은 민족적인 특색과 지역의 특색, 몽골족의 풍토인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몽골 고원은 한해에 140일간 푸른 숲이 뒤덮여 있어 초원은 한낱 자원을 독점하고 있으며 몽골족의 문화 특점의 하나로 됩니다.

몽골족 문화가 내몽골의 관광문화 분위기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운대평은 유목민족이 창조한 찬란하고 휘황한 유목문명은 수많은 영웅인물들을 배출했다고 했습니다. 저명한 수학가 명안도, 저명한 작가 인짜나시, 원세조 투피열, 저명한 지리학가 이사광, 이런 민족 영웅호걸들은 중국과 전인류 문화 발전과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나다무와 몽골족 가무는 이미 유람객들을 흡인하는 브랜드로 되고 있습니다. 다알다싶이 나다무는 몽골족의 가장 대표적인 전통종목으로서 나다무 본신이 초원문화의 축소판인 것입니다.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나다무는 경마, 씨름, 활쏘기외에도 내용들이 날이 갈 수록 더 풍부하고 다채로워지며 형식도 갈수록 개방되여 지금은 경제무역, 정보, 외자유치, 예술공연 등 활동으로 늘어났습니다. 몽골족의 가무는 몽골족문화의 돌출한 표연의 하나로서 짙은 민족적 특점을 가지고 있으며 전세계에 알려졌 여러차례나 국내, 국외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번역, 편집, 이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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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자료: 아래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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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중국 네이멍구(내몽골) 자치구의 척박한 환경에서 한 해에 4m 이상 자라는 초속성 포플러 품종을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동국대 산림자원학과 강호덕 교수 팀은 지난 3년 동안 네이멍구 자치구의 덩커우와 경기도 남양주시 동국대 연습림에 양묘장을 만든 뒤 사막에서 잘 자라는 포플러 품종 개발에 나섰다. 포플러는 빨리 자라는데다 간척지나 오염지역을 정화하는 환경정화수로 최근 주목받는 수종이다.

황사의 발원지인 중국과 몽골의 사막지대를 녹화할 수종을 개발하는 게 강 교수 팀의 연구 목표다. 덩커우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우리나라의 10분의 1 가량인 144㎜인데다 연평균 기온은 7.6℃, 한겨울엔 영하 20℃까지 떨어진다. 게다가 토양은 허옇게 소금이 보일 정도로 염도가 높다. 보통 나무라면 금세 말라비틀어지는 이런 환경에서 잘 자라는 품종을 얻기 위해 연구팀은 중국은 물론 미국·유럽·우리나라에서 다양한 포플러 품종을 들여와 잡종교배와 조직배양을 거듭했다.

그 결과 중국 포플러를 개량한 ‘북항’ 품종은 연간 키가 4. 자라는 등 놀라운 성장속도를 보였다. 또 내한성 시험에서 90%의 생존율을 보였는데, 영하 35℃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품종은 우리나라에서보다 중국 사막에서 갑절 이상 잘 자랐다.

강 교수는 미국 포플러를 개량한 ‘디엔-34’와 이 품종을 사막에 심을 최적 수종으로 꼽았다. 그는 “국내에 우수한 사막 조림수종의 유전자은행을 만들어 중국과 몽골에 보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오는 13일 시민정보미디어센터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여는 사막화·황사 방지 토론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몽골을 사랑하고 내몽골에 오게 하자(사진)

(사진설명: 내몽골 매체회의 장면)

자원을 합리하게 개발하며 협조적인 국면을 형성하며 내몽골을 외부에 널리 선전하는 보도선전 사업을 더 활발하게 전개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내몽골을 찾으며 내몽골을 사랑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 싸고 내몽골자치구 대외 보도선전 판공실은 얼마전에 내몽골 자치구에서 좌담회를 열었습니다. 회의에서 내놓은 내몽골자치구 당위원회 상무위원이며 선전 부장인 막건성의 화제는 내몽골자치구에 주재하고 있는 보도 단위와 내몽골자치구 주요 보도 매체 책임자들의 열렬한 토론을 상기시켰습니다.

막건성이 친히 사회한 회의는 신화사 내몽골 지사에서 열렸습니다. 자치구 당위원회 선전부의 3명의 부부장들과 선전부 보도처, 대외 선전처의 책임일군들이 전부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매체 대표들로는 내몽골자치구 주재 중앙 보도단위들인 신화사 내몽골 지사, 인민일보, 중앙인민방송국, 경제일보, 광명일보, 노동자일보, 농민일보, 법제 일보, 과학기술일보, 중국부녀보, 중국개혁 등 단위의 책임자들과 자치구 주요 매체인 내몽골일보, 내몽골 텔레비죤 방송국, 내몽골 텔레비죤방송국, 내몽골 방송국의 책임자들, 대공보, 문회보 내몽골주재 판사처의 대표들입니다.

막건성은 이 몇년간 내몽골자치구는 국가에서 서부 대개발을 실시하고 세계 무역기구 가입과 거시적 조절을 실시하는 역사적인 기회를 틀어쥐고 우세를 발휘하고 형세를 바싹따라 비교적 좋은 발전 태세와 발전환경을 맞이하였습니다.

내몽골자치구의 12개 맹, 시에는 아주 좋은 발전 추세가 나타 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몽골의 쾌속적인 발전을 두고 <내몽골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적지않은 외부 사람들은 내몽골을 잘 료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지에 나가 보면 내몽골과 몽골을 혼동하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말하자면 내몽골에서 이동전화가 개통되였는가고 묻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내몽골을 요해하도록 하고 내몽골에 외자와 인재의 유동 국면을 형성하기 위하여서는 내몽골자치구 당위원회 선전부는 여러 보도 매체들이 내몽골자치구의 선전 역도를 진일보 강화하여 자치구의 쾌속적인 발전 창조에 양호한 환경을 마련할 것을 바랐습니다.

막건성의 발언은 매체 책임자들의 열렬한 반응 이르켰습니다. 회의 참가자들은 대외 보도 선전 사업을 더 잘 할 데 대하여 분분히 표시하였습니다.

(번역, 편집: 이정옥)  http://kr.chinabroadcast.cn/1/2005/04/29/1%40375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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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http://www.mongolsch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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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 사막으로 향하는 길

 

 

나무가 군데군데 자라고 있었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사막이 있다고 했다. 길에는 동글동글 양들의 똥이 여기저기 있었다. 

 

 

인적이 전혀 없었고 너무 조용했다. 이런분위기가 난 정말 좋다.

 

 

날씨도 정말 화창했다.

 

 

사막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막과 대지의 경계점 웬지 기분이 묘했다.

 

 

내몽골을 가로 지르는 고가철도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지, 정말 끝이 안보인다.

 

 

정말 여긴 사람이 없다.

 

 

공사를 위해서 덤프트럭이 모래를 쌓아놓은것 같았다.

 

 

그래 한번 올라가보자.

 

 

모래에도 식물이 사는구나.

 

 

그것참 신기했다.

 

 

어디로부터 수분을 얻는걸까.

 

 

그래도 나무 크기는 작았다.

 

 

그만 구경하고 올라가자 아래에서 바라보니 사막이란것도 별것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올라가보니, 헉! 이란 탄성이 나왔다. 끝이보이지 않았다.

 

 

사실 여기 아무나 들어갈수 없었다. 입장료를 받는다. 60위안. 그런데 여기저기 철조망이 훼손되어 있다. 그냥 맘만먹고 누구나 넘어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걸리면 벌금문다.

 

 

관광객을 위한 케이블카다.

 

 

아래에서 바라봤던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사막위에 펼쳐져 있다.

 

 

정말 발자욱이라도 모래바람에 사라졌다면 동서남북 방향을 잃어버릴것 같은 끝없는 사막

 

 

부근에서는 민둥산을 깎아 중간중간 개발되고 있었다.

 

 

아까 걸어왔던 그 길이다.

 

 

모래언덕, 올라가려면 무척이나 힘들다.

 

 

모래결, 아시아 내몽골 사막이지만 웬지 아프리카 사하라에 있는 기분도 들었다.

 

 

아까 그 고가철도의 전경이다.

 

 

걸어왔던 발자욱, 흔적을 남겨보았다.

 

 

이길은 과거 실크로드(서역으로 가는 비단길)와도 이어져 있는 사막이다.  

 

 

몇날 몇칠을 계속 걸어도 똑같은 풍경만 계속 나올것 같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것은 홀로있다는 외로움, 공포감, 만약 밤이라면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사막을 걷는다는것 웬지 인생과 비유할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누구나 정체없는 목적지를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것 아닌가?

 

 

이것은 사구라고 불린다. 사막 한가운데 움푹 패인자리.

 

 

중국은 환경오염으로 사막화가 계속 진행된다고 하던데 이 질좋은 수억톤의 모래를 한국으로 가져가 공사자재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는 공사자재용 모래는 값이 꽤 비싸니까 말이다.

 

 

허허, 딱정벌레야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느냐?

 

 

 

관광객을 위한 사다리.  길을 안내하기도 하지만, 신발에 흙이 들어가기도 하니까 이것을 밟고 걸어가면 된다. 이 사다리를 걷고 있는 자신은 역시 인생을 향해 한걸음 나가가는 자아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내몽골 사막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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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들은 초원에 이동생활을 주로 하였는데 그들의 둥근 주거천막을 몽골빠오(蒙古包)라고 불렀다

 

 

지금은 개량형 천막이지만 몽골빠오의 특징은 지붕이 둥글다는점

 

 

지평선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생활이 편리할것 같기도하고 불편할것 같기도 하고...

 

 

몽골인들의 거주지역이다

 

 

말이 풀을 뜯어 먹고 있다

 

 

몽골의 말들은 토실토실하다. 대지가 기름지고 초목이 영양가가 많아서 그런것 같았다

 

 

복스럽게 생겼구나

 

 

관광객들은 몽골의 말을 탈수가 있다

 

 

끝없는 대지

 

 

기름지고 비옥한 토지

 

 

푸른 하늘

 

 

흰 구름

 

 

이곳에서는 거의 찾아볼수 없는 몽골인의 가옥이 하나 있었다

 

 

영화의 한장면 같지만, 실제로 양들을 풀어 자유롭게 방목하는건 일상화이다

 

 

양들과 말들이 살기에는 정말 천국인 곳이 몽골 초원이 아닐까 한다

 

 

얘들아 너무 멀리 가지는 말아라

 

 

콘크리트 바닥에 세워진 관광객을 위한 몽골빠오의 모습

 

 

후라이드 치킨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먹을 살점이 얼마 없는 느끼한 양고기

 

 

날씨가 푸르렀다가, 구름이 끼어서 흐렸다가 다시 맑았다가 기변의 폭이 아주 컸다

 

 

천여년전의 몽골말은 기병대에게 빠른 기동력을 제공하여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는데 많은 힘이 되어주었지만 오늘날의 몽골말은 내몽고에게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관광자원이 되어버렸다

 

 

흑마와 백마

 

 

고삐가 묶어있는 백마의 뒷모습

 

 

낮잠자고 있는 조랑말

 

 

한폭의 그림

 

 

관광객을 기다리면서 쉬고 있는 말의 모습

 

 

너희들 둘이 나란히 사이좋게 있으니 외롭지는 않겠구나

 

 

정말 이곳 내몽골의 초원은

 

 

시간이 마치 멈춰버린 것 같은 정지해 버린것 같은 그런 느낌 이었다

 

 

오늘도 하루가 뉘엿위엿 가고 있었다. 대 자연과 나 그리고 홀로 버려져 있는 듯한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안녕 내몽골의 초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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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 사막으로 향하는 길

 

 

나무가 군데군데 자라고 있었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사막이 있다고 했다. 길에는 동글동글 양들의 똥이 여기저기 있었다. 

 

 

인적이 전혀 없었고 너무 조용했다. 이런분위기가 난 정말 좋다.

 

 

날씨도 정말 화창했다.

 

 

사막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막과 대지의 경계점 웬지 기분이 묘했다.

 

 

내몽골을 가로 지르는 고가철도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지, 정말 끝이 안보인다.

 

 

정말 여긴 사람이 없다.

 

 

공사를 위해서 덤프트럭이 모래를 쌓아놓은것 같았다.

 

 

그래 한번 올라가보자.

 

 

모래에도 식물이 사는구나.

 

 

그것참 신기했다.

 

 

어디로부터 수분을 얻는걸까.

 

 

그래도 나무 크기는 작았다.

 

 

그만 구경하고 올라가자 아래에서 바라보니 사막이란것도 별것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올라가보니, 헉! 이란 탄성이 나왔다. 끝이보이지 않았다.

 

 

사실 여기 아무나 들어갈수 없었다. 입장료를 받는다. 60위안. 그런데 여기저기 철조망이 훼손되어 있다. 그냥 맘만먹고 누구나 넘어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걸리면 벌금문다.

 

 

관광객을 위한 케이블카다.

 

 

아래에서 바라봤던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사막위에 펼쳐져 있다.

 

 

정말 발자욱이라도 모래바람에 사라졌다면 동서남북 방향을 잃어버릴것 같은 끝없는 사막

 

 

부근에서는 민둥산을 깎아 중간중간 개발되고 있었다.

 

 

아까 걸어왔던 그 길이다.

 

 

모래언덕, 올라가려면 무척이나 힘들다.

 

 

모래결, 아시아 내몽골 사막이지만 웬지 아프리카 사하라에 있는 기분도 들었다.

 

 

아까 그 고가철도의 전경이다.

 

 

걸어왔던 발자욱, 흔적을 남겨보았다.

 

 

이길은 과거 실크로드(서역으로 가는 비단길)와도 이어져 있는 사막이다.  

 

 

몇날 몇칠을 계속 걸어도 똑같은 풍경만 계속 나올것 같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것은 홀로있다는 외로움, 공포감, 만약 밤이라면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사막을 걷는다는것 웬지 인생과 비유할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누구나 정체없는 목적지를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것 아닌가?

 

 

이것은 사구라고 불린다. 사막 한가운데 움푹 패인자리.

 

 

중국은 환경오염으로 사막화가 계속 진행된다고 하던데 이 질좋은 수억톤의 모래를 한국으로 가져가 공사자재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는 공사자재용 모래는 값이 꽤 비싸니까 말이다.

 

 

허허, 딱정벌레야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느냐?

 

 

 

관광객을 위한 사다리.  길을 안내하기도 하지만, 신발에 흙이 들어가기도 하니까 이것을 밟고 걸어가면 된다. 이 사다리를 걷고 있는 자신은 역시 인생을 향해 한걸음 나가가는 자아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내몽골 사막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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