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음악기행-북방에서 나를 찾다
몽골과 한국 판소리와 벤니스울게르
박소현(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강사)
몽골에 가면...
몽골고원은 건조한 스텝지역으로 북쪽에는 홉스골과 같은 호수와 강이 많고, 서쪽에는 알타이산맥과 같은 산악지형이며, 동쪽에는 대 평원이고, 남쪽에는 고비사막이 있다. 그곳의 겨울은 혹독하고도 길며 평균 해발고도는 1,000m 이상이다. 연간 강수량은 약200mm 정도이며 연간 온도차는 70℃이상이다.
고대부터 몽골은 이러한 혹독한 기후환경에서 유목생활을 해 왔다. 몽골인을 정착생활로 이끈 사회적 현대화에도 불구하고 가축은 여전히 몽골의 1차 산업이다. 본래 몽골음악의 전통은 유목생활로부터 더욱 풍성해졌는데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그 생명력을 다하고 있다.
몽골인들이 가축을 길러 주식으로 삼는다는 것에 근거하여, 유목 생활방식은 동물과 그것을 지키는 인간 사이에 영원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준다. 특히 다섯가지 가축은 몽골인의 일상 생활과 분리될 수 없다. 몽골인들이 주로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말, 낙타, 소, 산양, 양 등이 바로 그들의 다섯가지 가축이다. 이중에서 몽골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동물은 말이다. 소중한 만큼 그 가치를 부여하기 위하여 말머리 형상을 장식한 '모링 호르'(마두금: 馬頭琴)와 같은 악기도 존재하는 것이다. 몽골인들은 주로 '모링 호르'와 같은 악기 반주에 다양한 성악곡을 즐겨 부른다.
몽골인들은 '모링 호르'만 있다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대규모의 관현합주단 없어도 충분히 화려하고 매혹적으로 그들의 음악을 표출할 수 있다. 이러한 음악문화는 유목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몽골음악은 성악이며, 기악반주가 있는 곡조차 악기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이것은 이 캠프에서 저 캠프로 계속 이동함에 짐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바로 유목민의 음악문화이다.
가슴에 스며드는 서정노래 '오르팅 도'
몽골 동쪽의 대평원에 가면,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이는 마치 한국의 '정선아라리'나 '수심가'를 듣는 듯한 느낌이다. 내 가슴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풀어주는 듯한 감성적인 서정가요 '오르팅 도'(urtyn duu, long song, 長歌)는 몽골 민요의 한 장르이다.
'오르팅 도'는 전문적인 민요가수가 아니면 부르기 어렵다. 이는 발성법에 있어서 고도의 기술을 요하기 때문이다. 긴장된 목청에서 나오는 발성이 독특하기 때문에, 듣자마자 몽골의 노래임을 알 수 있다. 호흡은 민요가수의 재량에 따라 자유롭게 하지만 가능한 한 적게 하여 장식의 맥을 끊지 않도록 한다. 음역은 보통 3옥타브까지 발성되며, 기량이 좋은 가수는 그 이상의 음역까지 발성하기도 한다. 이는 인후성(咽喉聲)에서 가성으로 통과하면서 자주 강조된다. 노래 가사의 내용은 다섯가지 가축 특히 말에 대하여, 아름다운 자연에 대하여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며, 좋은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노래 등이 있다.
신(神)에게 호소하는 인간의 울부짖음
몽골 서쪽 산악지형에 가면, 독특한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그것은 바로 '후미'(xoomii) 창법이다. 후미 가수는 목안에서 지속적인 저음(低音)을 발성하는 동시에 구강 모양을 변화시키면서 하모닉스(harmonics)와 같은 효과의 고음(高音)을 낸다.
또한 후미 창법에서 저음부만을 발성하는 '하일라흐'(xailax)창법이 있다. 이 창법은 서몽골 알타이산 주변 민족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발성법이다. 목의 근육을 긴장시켜 걸걸한 목소리를 발성하는 것으로서 마치 우리나라 판소리창법과 흡사하다.
서몽골 알타이산 주변 민족들은 후미하일라흐 창법을 이용하여 천신(天神)과 산신(山神), 자연신(自然神) 등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거나, 영웅서사가를 부르기도 한다. 이를 듣노라면 저음의 목소리로 신에게 호소하는 간절한 인간의 울부짖음이 느껴진다.
<적벽가>와 <수궁가>를 노래하는 벤스니 울게르
서몽골인들이 후미하일라흐 창법으로 신에게 호소하는 듯한 서사가를 부른다면, 이와 같은 창법으로 동몽골에서는 '벤스니 울게르'(Bensnii Ulger)라는 서사가를 부르기도 한다.
'벤스'는 중국어 본(本) 혹은 책자라는 단어를 내몽골 방언으로 '벤스'라고 불리는데서 유래했고, '울게르'는 설화(說話)라는 뜻이다. 17세기 경에 생겨나 18,19세기에 널리 유행하였다. 주로 내몽골자치구의 호르칭, 짜로드, 길림성, 외몽골의 다리강가와 중앙의 일부 지방에 존재한다.
어린시절 할머니께 '옛날 옛적에...' 하면서 시작하는 옛날 이야기를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몽골의 '울게르'는 이런 이야기들에 선율이 입혀져 하나의 예술음악장르로 승화된 것이다.
'벤스니 울게르'는 과거 구비전승된 설화적 내용에서 18세기 전후에는 중국의 <적벽가>와 같은 내용을 수용하여 노래한다. 주요 내용들 중에는 여러 역경을 헤쳐나가며 주인의 품으로 돌아오는 갈색 말 이야기가 있는데, 몽골의 사회상과 효(孝)의 중요성, 지배계층의 탐욕스러움에 맞서는 서민들의 이야기 등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판소리 또한 이런 이야기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설화나 전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일종의 서사 문학이자 공연 예술이다.
'벤스니 울게르'와 판소리가 비교되는 점은 똑같이 <적벽가>와 <수궁가>를 사설로 부른다는 것과 걸걸하고 허스키한 창법, 그리고 가창방식이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야기 구조로만 보면 한국과 몽골의 1인 구비 서사가는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서민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있고, 효(孝)와 충(忠), 신의(信義) 등이 바탕에 깔려 있으며, 선(善)과 악(惡)이 분명하게 대별되고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해피엔딩을 맞는 것까지 그러하다.
지금까지 2회에 거쳐 몽골의 음악기행을 함께 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