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好朋友
글쓴이 : 好朋友 원글보기
메모 :
 
탈북한 오영철(장성) 충격의 증언
(日本 월간지 『겐따이』6월호 030524)

 

탈북한 오영철(인민군 장성)에 의해 베일 벗긴 인민군 최고사령부의 심장부(전시사령부)'철봉각'과 핵기 수입-북한군과 김정일 최고기밀 공개 북한은 83년에 舊소련으로부터 핵무기를 수입했다!

이라크전쟁이 예상외로 조기에 종결되고, 「다음은 북한」이라는 기운이 미국 정부내에서 높아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핵문제를 둘러싼 미중(美中)과의 3개국 협의에서도 강경한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아, 한반도의 긴장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세계가 주시하는 핵개발을 위시하여, 북한인민군의 전모를 알고 있는 전 북한인민군 최고 간부의 한 사람이, 작년에 비밀리에 북한을 출국하였다. 1997년에 황장엽 비서(당시)가 한국으로 망명한 이래, 최고위급 탈북자이다.

본지는 세계에서 제일 먼저, 이 중요인물인 안영철 장군(가명)과의 장시간에 걸친 독점 인터뷰에 성공했다. 다음은 안 장군이 밝힌 조선인민군의 충격적인 최고기밀이다.(독립신문)

=========================================================================

나는, 조선인민군으로 30년 이상 근무하고, 특히 지난 10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주 가까이에서 일해왔습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의 사망 후에는,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우대를 받아 온 군인들도, 기아라던가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살려는 기력을 잃고 있습니다.

이러한 참상에 나는, 중요 회의장 등에서, 「군(軍)이 이대로는 오래 못 간다」 「보다 정직한 보고를 합시다」라고 바른 말을 토로해 왔습니다. 김정일 위원장과 면회하는 기회도 연중 여러 번 있었는데, 나는 솔직하게 군의 실상을 개진하고, 개혁안도 제시해왔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정치적 단속을 강화할 뿐으로 근본적인 개혁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신(保身)에 빠르게 빌붙는 간부들이 나를 소외시킬 생각으로, 배척하려 하기 시작했습니다.

軍에서의 실각(失脚)은,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거기서 나는, 이대로 암담하게 있기보다도, 밖으로 나가 진실을 증언함으로서, 김정일 체제에 동요를 일으키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애착을 지닌 人民軍을 배반하고, 가족을 남기고 출국하는 데에 심한 갈등이 있었지만, 나는 감히 위험한 도박으로 나간 것입니다.

「철봉각」에서 이라크전쟁 분석

탈북후에도 김정일 가족과 선을 지닌 나의 앞에는, 북한의 핵심 정보가 들어 왔습니다. 최근에 접한 것은 이라크전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라크전쟁은, 북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개전 바로 전부터, 김정일은 자신의 동정을 보도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리고 전쟁중에는, 조선인민군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野戰指揮所)라는, 지하(地下) 깊숙이 있는 극비(極秘)의 사령실(司令室)에 틀어박혀서, 「작전조」(作戰組)로 불리는 김정일 군사작전보좌실(金正日軍事作戰補佐室) 멤버를 모아서 전황을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작전조의 멤버는, 김두남 작전조장, 조명록 최고사령부 총정치국장, 김영춘 총참모장, 김명섭 조선노동당 작전부장 이하, 군(軍)과 당(黨)의 우두머리 120명 정도입니다.

작전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김두남 대장입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의 3남(男)으로서, 김정일로부터 군(軍)의 감시역의 명(命)을 받았습니다. 김정일 다음으로 군의 실질적인 제(第)2인자입니다. 작전조에는 또, 미사일이나 레이다 같은, 어느 분야의 고도의 전문가들로 차 있음이 특징입니다.

인민군의 최고기밀로 되어 있는 이 야전지휘소는, 김일성광장으로부터 북동(北東)쪽으로 15km 지점의 지하에 있습니다(지도 참조). 지휘소의 입구(入口)는 문문리(聞文里)와 장수원(長壽源) 저수지에 두 개소이며, 어느쪽 입구로부터도 12m정도 지하로 내려가면, 폭 9m, 높이 4.5m, 길이 600m의 터널에 겨우 다다릅니다. 터널의 벽면은, 방사선(放射線)을 차단하기 위해, 아여(亞鉛)으로 도장되어 있습니다.


이 터널모양의 지하요새야 말로, 조선인민군(朝鮮人民軍)의 사령탑(司令塔)인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最高司令部 野戰指揮所), 통칭 「철봉각」(鐵蜂閣)입니다.

「철봉각」은 상하 2층의 구조로 되어 있고, 지하1층에는 9개의 야전지휘소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인,「감시실」(監視室)에서는, 러시아의 정찰위성이나 세계의 텔레비전 영상의 화면이 커다란 전광패널에 시시각각 방영(放映)되어 나오고, 15명정도의 전문(專門) 스텝들이 24시간 태세에서 분석에 대처하고 있습니다. 화상(畵像)시스템은, 이 「감시실」설비를 위시하여, 후술(後述)될 평양지구 반항공사령부(反航空司令部)의 야전지휘소, 그 관할(管轄)에 있는 여단(旅團)이나 연대(聯隊), 대대(大隊), 중대(中隊)의 전투지휘소에 이르기까지 각처에 정비되어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화상시스템의 기재(器材)는 모두 일본제(日本製)입니다.

지하 2층은, 16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최고 간부들의 집무실로 되어 있습니다. 김정일의 집무실은, 입구부터 세어서 오른쪽의 4번째 방입니다.

넓이는 약 200평방미터로, 대형전광패널이나 컴퓨터 등 최신의 기재가 완비되어 있습니다. 또, 전시(戰時)에는 여기가 생활 거점으로 되기 때문에, 침대나 식사용 테이블, 샤워실에서 전용화장실까지 붙어있습니다.

김정일이 현재 거처하고 있는 곳은,「55호 관사」로 불리는 본택이 아니고, 「501호 관사」라는 별장입니다. 그리고 「501호 관사」와 「철봉각」 지하2층이 지하터널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어느 때, 「감시실」에서 미군의 이라크 공폭의 모습을 보고 서, 「미제(美帝)도 별것이 아니지 않는가」고 큰소리쳤다고 들었습니다. 불가사의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김정일은 이라크전쟁을 보고, 오히려 안심(安心)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라크군이 미군(美軍)에 분쇄(粉碎)당한 것은, 이라크가 사막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김정일의 지적이었습니다. 발견(發見)이 용이한 사막(砂漠)지대에서마저, 미군은 이라크군의 지하군사거점(地下 軍事據點)을 찾는데 4고8고(四苦八苦)했습니다.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山岳)지대인 북한(北韓)에는, 각지(各地)에 구축된 지하요새는 발견(發見)당하지 않는다. 즉 「제2의 이라크」로는 되지 않는다는 자신감(自信感)을 굳혔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의 이런 자신감(自信感)은, 이번에 내가 국내(國內)의 모든 주요한 지하요새의 위치를 처음으로 폭로함으로서 무너져 가겠지요. 왜냐하면, 미군이 이러한 요새를 공폭(空爆)하고, 파멸적 타격을 준다면, 북한군은 붕괴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조선인민군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것이,「철봉각」입니다. 이 지하요새가 만일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김정일은 비상구(非常口)로 마련된 별도의 지하터널로부터 탈출할 계획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비상용 지하터널은, 서해연안(西海沿岸)의 남포항(南浦港)까지 약 80km나 이어져 있습니다.

「철봉각」에는 비상구가 하나 더 있고, 여기는 5km 북측의 백족산(百足山, 표고(標高) 393m)에 있는 보위사령부 야전지휘소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도중(途中)에, 3km정도 나간 지점(地點)에 지하변전소(地下 變電所)가 있습니다. 또, 국사봉(國士峰)에서 봐서 북동 방향(北東 方向)에 펼쳐있는 산맥(山脈)의 지하에는, 보위총국(保衛總局)의 전차사단(戰車師團)의 기지(基地)가 있어, 이 같은 가장 중요한 거점을 방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의 입체전쟁에 적응하라

후술(後述)하겠지만, 북한은 이 「철봉각」을 위시해서 국토(國土) 전체를 지하요새화(地下要塞化)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제2차 조선전쟁(朝鮮戰爭)」의 공격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① 보병 3개군단을 가진 전선사령부(前線司令部)와 해공군 전력(海空軍 戰力)의 50%, 특수(特殊) 게릴라 12개 여단(旅團)이 주한미군(駐韓美軍)의 최전선(最前線)과 최후방(最後方) 라인에 대하여, 동시(同時)에 신속(迅速) 돌파한다.

②해공군(海空軍)의 나머지 5할의 전력과 장거리(長距離) 미사일 부대로서 공해상(公海上)에 집결(集結)되어 있는 미군 함대(美軍 艦隊)나, 오키나와 미군기지(美軍基地)를 집중 공격(集中 攻擊)한다.

③ 북한내(北韓內)에서의 적군(敵軍)의 공격 등에 대해 민병(民兵)이 중심이 되어 장기간(長期間) 방어한다.

④ 전 병력(全 兵力)의 40%에 해당하는 특전(特戰)부대, 기계화 보병, 중장거리 포병(中長距離 砲兵), 공병(工兵)부대 등은, 최고사령부(最高司令部)의 직속부대로서, 임기응변으로 적군을 타격한다.




조선인민군은, 1980년대까지는, 3개 군조직 관할 아래 10개의 보병군단(步兵軍團)을 두고, 육해공군(陸海空軍)이 각각(各各) 개별(別個)로 전투(戰鬪)에 임한다는 오소독스한 전략을 취해왔습니다. 그러나, 91년의 걸프전쟁에 큰 충격을 받은 김정일은, 「현대의 입체전쟁(立體戰爭)에 적응(適應)할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난 10년간에, 소규모(小規模) 기동(機動)에 유리(有利)한 여단(旅團)으로 변경하기도 하고, 그때까지 보병군단에 포함되어 있던 반민간부대(半民間部隊)나 미간부대(民間部隊)를 9개의 지방방위사령부(地方防衛司令部) 관할로 옮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군조직의 전반적(全般的) 재편(再編)까지 행했습니다.

쿠바의 비밀 핵기지, 핵미사일 4기 양강도 삼지연군 지하에 격납

구체적으로 근년에, 전략적으로 강화되어 있는 것은, 다음의 다섯 가지 부문입니다.

첫째 부문은, 대량파괴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최신예 무기의 도입입니다.

우선은 핵무기에 관하여 말합시다. 탈북이래. 매스컴에 처음으로 밝히는 최고기밀입니다만, 실은 북한은 1983년에, 유조선을 꾸며 구(舊)소련으로부터 핵(核)무기를 극비리에 수입했습니다. 현재, 구소련제의 4발(發)의 핵미사일이, 양강도 삼지연군(三池淵郡) 포태리(胞胎里)의 지하의 미사일 시설에 격납되어 있습니다(지도 참조). 이 핵미사일의 사정거리는 8000km인데, 미본토(美本土)에 조준을 맞추고 있습니다.

북한군은, 구소련제만이 아니고, 자체 개발한 核무기도 이미 수십 발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주로 동해안(東海岸)의 부대에 배치되어 있고, 사정거리는 4000km. 최대의 표적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美軍基地)입니다.

핵무기에 관해서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쿠바의 비밀기지(秘密基地)의 존재입니다.

北韓은 70년대 초두부터, 동맹국인 쿠바에 유학생으로 위장하여 1,000명 이상의 軍기술자들을 들여보내 왔습니다. 그 중에는 쿠바 사람과 결혼한 기술자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구소련의 지도(指導) 아래, 쿠바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軍人이나 그 자녀를 합쳐서 수십명이 구소련으로부터 극비리에 핵무기를 수입하여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만든 것입니다. 미국으로부터 경제 제재(制裁)를 받고 있는 쿠바는, 핵탄두가 미국본토를 향하고 있는 이 북한의 군사기지 덕택으로, 미국에 대한 힘의 억지(抑止)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

생물화학무기(生物化學武器)에 관해서는, 호위총국(護衛總局)산하에 전문(專門)의 1개(個) 여단(旅團)을 두고 있습니다. 이 여단은, 화학무기를 5000톤 이상 보유하고 있습니다.

생물무기는 현재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배양시스템을 완성시켰고, 유사시에는, 언제라도 배양하여 탑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생물화학무기의 연구도 구(舊)소련 유학(留學)팀이 중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금괴로 전투기를 구입(購入)

이와 같이 북한은 전통적으로, 무기(武器)라든가 군시설(軍施設) 등을 구 소련에 의존해 왔지만, 러시아로 된 지금에도, 미그전투기 등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생전(生前)에, 「우리 軍에는 초고속 전투기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필시 본심은 아니겠지만, 아주 고가(高價)이므로 제지(制止)한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미그전투기에 의외의 집념을 가지고, 2000년 초에는, 극비리에 최신형의 미그31 전투기 20여기를 구입하여, 평양 북쪽 30km 지점에 있는 순천(順天)공항에 배치하였습니다. 심각한 경제난 가운데, 「내가 지불(支佛)하겠다」는 「학(鶴)의 일성(一聲)」으로 결정되어 버렸습니다.

김정일은, 군사예산으로가 아니라,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금괴를 지불에 충당했던 것입니다. 북한에 연간 30톤 정도 채광되는 금광석(金鑛石)은, 본래(本來)대로라면 국가재산(國家財産)임에 틀림없는데도, 전부 김정일에게 헌상되도록 결정되어 있어서, 인민(人民)은 金의 소유·매매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北韓軍은 또, 신형 포탄의 개발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래형(在來型) 포신(砲身)을 북한의 지형에 보다 적합하도록 하여, 함경남도 함흥시의 용성(龍城)기계공장에서 230mm 대형 포신을 증산하는 한편, 포탄을 잇달아 개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최근, 105mm 방사포(放射砲)와 122mm 방사포의 포탄을 개조하였습니다. 개조후의 포탄은, 전시용(戰時用)으로서 노란색 마크를 표시한 케이스에 넣어서, 별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37∼57mm 고사포탄도, 2000년 초두에 개조품(改造品)이 완성되어, 구식의 포탄과 순차적으로 교환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구식 포탄의 회수처인 자강도(慈江道) 전천군(前川郡)의 군수공장에 반환한 부대는, 620훈련소와 포병사령부 소속부대, 거기에 전차(戰車)사단입니다.

북한군(北韓軍)이 강화하고 있는 두 번째 부문(部門)은, 공해상(公海上)에서의 공격입니다.

해주(海州)의 제4군단(第4軍團)의 절반을 서해안(西海岸)의 해안선(海岸線) 방어부대로서 고정시키고, 잔여 절반은 황해북도의 제2군단(第2軍團)과 연동(連動)시켰습니다. 또, 동해안(東海岸)의 함경남북도를 각각 방어하는 제7군단(第7軍團), 제 10군단(第10軍團)의 중거리포(中距離砲)부대를, 해군사령부(海軍司令部)로 이전시켜, 공해상(公海上)에서의 공격을 해군부대가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공해상에의 공격에 대비하여, 金正日은 2000년에, 지대함(地對艦) 미사일의 증산을 명령했습니다. 그 때문에, 청진시(淸津市)의 군수공장에는 230mm의 지대함 미사일을 대량생산하여, 지대함포 6문(門)을 1個 中隊로 하는 40個 中隊를 東海岸에 배치했습니다. 또, 70년대말(年代末)부터 대공(對空)방어를 위해 평양에 배치되어 온 대구경(大口徑) 고사포(高射砲)(85∼100mm)를, 지대함(地對艦) 미사일로 사용하게 되었고, 동해안(東海岸)의 100여개의 中隊에 재배치하였습니다.

북한군은, 금년 2월 24일과 3월 10일에, 동해안에 地對艦미사일의 발사실험을 행하였습니다. 이것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美軍基地)로부터 공해상(公海上)으로 나오는 항모(航母)를 저격하는 훈련(訓練)의 일환입니다.

다만, 평양으로부터 나온 정보에는, 4월 1일에 西海岸에 착탄(着彈)한 미사일은, 남포(南浦)로부터 東海쪽으로 육로(陸路)이송중에 실수로 발사된 것이라고 듣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개발된 미사일은, 일단 남포(南浦)로 가져가서, 전자(電子)장비를 덧붙이는 것입니다. 또, 금년 2월 20일에, 북한군의 미그19 전투기가 처음으로 西海岸의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침(南侵)하였고, 또 3월 2일에 東海岸에서 미그29 전투기가 미공군의 RC135S 정찰기에 급(急)접근하였습니다. 이것도 같은 훈련이었습니다.

북한군은 물론, 휴전선의 공격도 종전과 같이 중시하고 있고, 편제 개편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게릴라부대인 12個의 특공여단(特攻旅團)은,해공군( 海空軍)으로부터 분리되어,교도대지도국( 敎導隊指導局)의 직접 지휘하(指揮下)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한국내(韓國內)의 각기 담당할 지역(地域)에, 보다 신속하고도 괴멸적인 타격을 줄 수 있도록 훈련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기계화포병보병(機械化砲兵·步兵)의 6개 훈련소 가운데, 620 훈련소, 806 훈련소, 815 훈련소의 3개소를 전선사령부(前線司令部)의 지휘하로 하고, 임전태세를 취하도록 했습니다.

3중(三重)의 동심원(同心圓)으로 평양을 방위

전략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세 번째 부문(部門)은, 수도(首都) 평양의 방위입니다.

걸프전쟁에서 새삼스럽게 통감한 것이, 미군공폭(美軍空爆)의 공포였습니다. 그래서, 수도 평양을 공폭(空爆)으로부터 방위하기 위한 대규모적인 훈련을 매년 1회 행하면서, 연구(硏究)를 쌓았습니다.

그 결과, 99년 초에, 평양지구고사포사령부(地區高射砲司令部)에 고사포병55사단(高射砲兵55師團)과 7個의 對空로케트연대(聯隊)를 추가하여, 평양지구반항공사령부(地區反航空司令部, 고사포병(高射砲兵) 7개사단(個師團), 기동고사포(機動高射砲) 2개연대(個聯隊), 對空로케트 7個聯隊)를 편제(編制)로 하여, 「원형장벽화력(原形障壁火力)체계」를 완성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평양시내(市內)를 3중(三重)의 동심원상(同心圓狀)으로 지킨다는 시스템입니다. 가장 바깥쪽의 원(圓)위에 중구경포(中口徑砲)를 배치하고, 두 번째 圓위에는 수구경포(小口徑砲)를, 그리고 가장 내측원(內側圓)에는, 대동강(大洞江) 하류(下流)에 고사포(高射砲)를 집중(集中) 배치했습니다. 이로써 한번에 6만발(萬發)의 고사포탄(高射砲彈)을 평양 상공으로 발사한다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력부족(火力不足)으로 인하여, 현재 발사할 수 있는 밀도(密度)는 3만 5천발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상전에 대비한 수도 방위는, 호위총국, 인민무력부, 인민보안성의 3자가 일체가 되어 실시하고 있는데, 주력은 호위총국(護衛總局) 제2국 소속의 전투부대입니다.

평양시 주변에는, 第3 軍團 소속의 보병부대와 425훈련소(訓練所) 소속의 기계화부대, 여기에 전차지도국(戰車指導局) 소속의 5개 전차사단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차사단 가운데, 105師團과 106師團은 동부전선(東部戰線)을 담당하고, 107師團과 108師團은, 평양-남포고속도로를 따라서 서부전선을 담당합니다.

해군부대(海軍部隊)에 육군복(陸軍服)을 착용시키다

북한군이 전략적 역점(力點)을 두고 있는 네 번째 부문(部門)은, 기밀보지(機密保持)의 철저화(徹底化)입니다.

김정일은 軍의 간부기술자들 대하여, 「敵의 정찰위성으로부터의 空中촬영을 막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거듭 命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장의 대책으로서 「위장 행동」을 장려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재작년 초두에 전장(全長) 80km의 평양-南浦고속도로를 건설할 때의 일입니다. 그 공사(工事)와 병행하여, 비밀리에 다음의 세 가지 군무(軍務)를 수행했습니다.
① 부근의 군사시설의 개조공사
② 815훈련소와 평양방위사령부(防衛司令部)의 육상부대(陸上部隊)의 해산과 제3군단에의 편입
③ 기동(機動)기계화부대의 415 훈련소의 신설

그 때, 이 세 가지 군무(軍務)를 야간에 조명(照明)없이 행하고, 대신에 낮에는 민간인부대(民間人部隊)를 다수 동원하여, 전혀 관련이 없는 「위장 행동」을 취했던 것입니다.

기밀유지의 중요성은 해군(海軍)으로서도 같습니다. 작년 1월에, 동해안(東海岸)의 신포시(新浦市)의 외항에 솟아 있는 마양도(馬養島)를 극비 시찰한 김정일은, 「동해안(東海岸)의 전력(戰力)을 은폐(隱蔽)하라」는 중요 지령을 내놓았습니다. 그 이후, 잠수함부대와 해상미사일부대는 기동을 중지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군복을 해군복에서 육군복으로 바꾸어 육군과 분간할 수가 없도록 한 것입니다.

전략강화(戰略强化)의 다섯 번째 부문은, 군사교육의 개편입니다.

2000년에 인민무력부(人民武力部) 교육국(敎育局)은, <인민군대 내의 군사학교(軍事學校)의 교육과목(敎育科目)을 일부(一部) 변경(變更)하려고 합니다>라는 표제의 문서를 김정일에게 제출했습니다. 거기에는 다음의 두 가지 점이 적혀 있었습니다.

① 김일성(金日成) 정치대학(政治大學)에는,정치군관( 政治軍官)의 군사실무능력향상(軍事實務能力向上)을 위해, 일반교양과목(一般敎養科目)의 시간을 절반(折半)으로 하고, 대신에 군사전문과목(軍事專門科目)을 대폭으로 증가시킨다.
② 김일성군사종합대학(金日成軍事綜合大學)의 연구생(硏究生)제도를 폐지하고, 연구생들 전원을 미림대학(美林大學)(평양에 있는 이과계(理科係) No.1 大學)으로 전교(轉校)시켜, 現代의 하이테크전쟁에 대응(對應)할 수 있는 연구(硏究)에 종사시킨다.
타대학(他大學)에서도 개혁(改革)은 진행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해군대학(海軍大學)에서는, 99년도부터 「해안포병강좌(海岸砲兵講座)」를 신설하여, 증강된 해군의 포병들을 교육할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강건(姜健)종합군관학교에서는 특수보병부대(特殊步兵部隊)로의 임무확대에 대처하여, 「특수보병강좌(特殊步兵講座)」를 두게 되었습니다.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에 있는 비횅군관학교(飛行軍官學校)에서도, 초고속비행기에 의한 저공비행훈련의 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金正日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같이 北韓은, 정전(停戰)이 되고, 만 50년이 된 지금에도, 한반도(韓半島)의 무력톧일(武力統一)을 향해 오로지 달리고 있습니다. 軍이 金正日에게 제출한 금년(今年) 1월 10일 현재의 통계에 의하면, 직업군인(職業軍人)은 1,943,881名이나 됩니다. 人口는 2300만명에 지나지 않는데, 軍人의 비율(比率)을 말하자면 발군(拔群)으로 세계 제일입니다. 바로「군사(軍事)가 만사(萬事)」라는 국체(國體)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金正日은 「제2의 한국전쟁」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현재 인민군에서 강력한 부대로 인정받고 있는 부대는, 12개의 게릴라여단, 장거리포(長距離砲)부대, 거기에 쿠바의 核미사일 기지 등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人民軍의 약점(弱點)은, 주로 4가지입니다.

金日成시대에는, 軍人의 평균 체중 목표 62.5kg을 국가차원에서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던 것이, 95년부터 식량사정이 악화되어, 金正日시대가 되고 실시한 98년의 전군체중조사(全軍體重調査)에서는, 평균체중은 뜻밖에도 43.5kg이었습니다.

98년에는 영양실조로 一時 귀향(歸鄕)하여 치료를 받은 군인이 11만명, 완전 제대가 된 군인이 27,000면, 군부대내에서 요양하는 군인이 20만명에 이르렀습니다. 96년부터 2002년까지의 7년간에, 영양실조로 인해 완전제대한 군인은 15만명에나 이릅니다. 이는 군 임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원래, 군인에게는 백미(白米)를 지급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는 3식 모두 강냉이라는 것이 정착되어 있습니다. 그것이라도 3食 공급이 되면 다행인 편인데, 하루에 강냉이 한 개인 때도 있습니다.

예외(例外)로는, 金正日 직속의 특전부대(特戰部隊)인 12개의 게릴라여단과 공군의 2개 사단, 거기에 핵무기를 담당하는 4개의 특수부대입니다. 특전부대만은 「3끼분의 쌀을 공급하라」는 金正日의 엄명이 내려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는, 해외(海外)로부터의 식량원조미(食糧援助米)에 의존하게 된 95년 이후, 원조미의 배급은 군우선(軍優先)이라는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한다면, 원조미(援助米)는 군인에게 건네는 것이 아니고, 주로 전쟁비축미(戰爭備蓄米)로서 창고에 비축되는 것입니다. 특례조치로써 전쟁비축미를 모두 방출한 것은 95년뿐입니다.

軍이 金正日에게 제출한 금년 1월 10일 현재의 최신 데이터에 의하면, 2003년 한해 동안에 필요로 하는 전쟁비축미는 764,500톤이라 합니다. 이에 대하여 현재의 확보량은 527,800톤으로, 확보율은 69%입니다. 작년 같은기간의 확보율은 43%였는데, 상황은 제법 개선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외국으로부터 원조미가 늘었고, 그것을 그대로 전쟁비축미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北韓에 식량원조를 하면, 그만큼 전쟁의 위기가 높아진다는 이치입니다.

둘째 약점(弱點)은, 사상(思想)의 악화(惡化)입니다.

金日成시대의 북한에는, 물질적 부족을 메우고도 남을 강인한 정신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95년부터 식량부족(食糧不足)이 심각화(深刻化) 됨으로써, 軍의 사기(士氣)가 현저히 저하(低下)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유주의(自由主義)」라는 은어(隱語)가 군대내부(軍隊內部)에서 유행(流行)하였습니다. 그것은 軍人이 民間人 집에 강도로 침입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전국(全國)의 軍주둔지에서 군민(軍民)관계가 악화(惡化)되었습니다.

또한, 김정일이 어떤 부대를 시찰할 때에는, 그 부대(部隊)의 장군(將軍)이 창고의 비축미를 병사들에게 마음껏 대접하여, 그 날만 감싸준다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인데, 이제는 장군(將軍)에서부터 一兵에 이르기까지, 金正日에게 충성(忠誠)을 서약하는 군은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가, 자기의 직무만을 수행하면, 그 다음은 내가 알 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하기보다, 하루라도 빨리 제대하고 싶다는 것이 軍人들의 속마음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金正日 자신도 살펴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思想的 단속을 한층 더 강화함과 동시에, 최근에는 간부들을 모아놓고, 「이러한 정신상태(情神狀態) 戰爭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고 격문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개전후 1주일분 밖에 없는 연료油

북한군의 세번째 약점은, 연료油가 결정적으로 不足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北韓軍이 보유하고 있는 비상시(常時의)연료油보유량은, 「戰鬪定量」뿐입니다. 「전투정량」이란, 개전(開戰)부터 1주일분(週日間分)의 보유량(保有量)인 것입니다. 즉, 장기전 따위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입니다.

97년부터는, 연료 부족 때문에 중장비(重裝備)를 가동할 수 없게 되었고, 대부대(大部隊)의 기동훈련을 중지하고 있습니다. 또, 東西 해안에 연한 부대에서는, 포사격장에서 실탄사격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연료油 소비량이 큰 공군(空軍)의 비상훈련도, 연간계획(年間計劃)의 10%까지 떨어졌고, 비행상(飛行士)의 전투능력은 현저하게 저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참상에 속을 태웠던 金正日은, 2000년에, 「내년부터 군사비(軍事費)의 지출을 50억 달러 대로 올리겠다」고 허세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2001년의 군사지출은, 반액(半額)에도 미치지 못한 23억 달러였습니다.

金正日은, 2001년 정월에, 전부대에 대해, 「전시용(戰時用) 연료를 1개월분 확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은, 군무는 거들떠보지 않고 海外로 나가서 「달러벌이」에 매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연료油이외의 수입(輸入)을 표면상 금함으로서, 점점 뇌물이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군간부(軍幹部)들 간에서도 연료유(油) 강도(强盜)라던가 밀매가 횡행하여 혼란이 극심해지는 편입니다.

현재는, 최중요 거점인 평양시(平壤市)에서조차, 형제산구역(兄弟山區域), 순안구역택암리(順安區域澤岩里), 용성구역용추동(龍城區域龍秋洞)에 있는 3개소의 지하(地下) 연료油 창고의 合計 보유량(保有量)은, 80年代 末에 비교하여 4할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24時間 가동이 의무화(義務化) 되어 있는 전국 63개소의 군수공장(軍需工場) 중 38개소가, 연료油부족 때문에 현재, 완전히 스톱되어 있습니다.

네번쩨로, 통신지휘망(通信指揮網)이 극히 취약(脆弱)한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현재, 북한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長距離) 무선통신기기(無線通信機器)의 대부분은 舊소련제로서 내용기한(耐用期限)이 벌써 지났습니다. 또, 구산 중장거리(中長距離) 단파 초단파(短波·超短波)무선기는, 장애파로 인한 통신마비가 빈발하고, 교신거리(距離)도 아주 짧기 때문에, 대부분 무용지물(無用之物化) 되어 있습니다. 유선(有線)통신기재도 성능이 열악하여, 낡은 통신선(通信線)이 약간 있을 뿐이기 때문에, 「전시(戰時)에 유선통신(有線通信)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라는 통달(通達)이 전군(全軍)에 나와 있을 정도입니다.

이에 더하여, 충전기의 성능도 극히 열악하기 때문에, 통신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

그러한 사태에 접하여, 북한군에서는, 전시에 통신기기를 통하여 전투명령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대비해서, 다음 3종류의 방법을 통달하고 있습니다.

① 전령이 문서나 구두로 전한다.
② 봉화를 올려서 신호한다.
③ 이미 정해진 전투명령서에 따라 주체적으로 전투행동을 일으킨다.
결국은, 반세기전(半世紀前)의 조선전쟁(朝鮮戰爭) 당시와 전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통신기기 외에도, 지하에 보관되어 있는 戰時用의 化學物質이나 의약품(醫藥品)은, 변질이라든가 열화(劣化)가 심하여, 다수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보유화학무기 5000톤」이라 해도, 대부분은 내용기한(耐用期限)이 끝나서 실전(實戰)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북한군은, 金正日의 호령일하(號令一下),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북한군은 현재, 「철봉각」 외에, 다음과 같은 비밀지하(秘密地下) 요새를 전국에 만들었습니다.

최고사령부

○ 예비지휘소
慈江道 中江郡  頭山(표고 1238m)의 地下에, 2층구조. 入口인 五佳山(표고 1227m)으로부터 지하터널로 약 20km 앞의 雙頭山까지 연결. 1 개 聯隊가 주둔하여,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
○야전병원
平壤市 龍城區域 御恩洞(표고 430m의 隆骨山)에 있는 禦恩洞 史蹟의 建造物內가 비밀 입구. 폭 5m, 높이 4.5m의 터널안에는, 방 하나에 50㎡이상인 방 수십개가 연결되어, 설비를 갖춘 간부전용의 야전병원으로 되어 있다.
○ 地下貯藏庫(4개소)
제1저장고는, 平壤市 江東郡 帝釋山(표고 421m)의 지하. 2층 구조로 된 터널을 만들어, 戰時用 火力裝備를 보관.
제2저장고는, 平壤市 牡丹峰區域에 있다. 역시 2층구조로 된 지하저장고로서, 입구는 金日成競技場의 오른쪽에 있는 평양橋梁建設作業所의 正門. 지하1층에 高射砲를, 지하2층에는 戰時用 機動裝備를 보관.
제3저장고는, 平壤市 三石區域에 있는 靑雲山(표고 365m)의 지하. 東西南北 4個所의 入口를 가진 保衛總局管理下의 저장고로서, 食糧, 衣服, 醫藥品 등, 대량의 生活必需品을 보관.
제4저장고는, 平壤北郊의 平城市 靑龍山(표고 547m)의 지하. 鐵製의 巨大容器에, 약 5만톤의 연료를 저장.

인민무력부

○ 野戰指揮所
平壤市 西城區域 西山洞. 出入口는 3個所로서, 2층 구조의 지하터널이, 人民武力部의 사령탑으로 된다.
○ 豫備指揮所
慈江道 熙川市에 있는 熙川전자기계공장의 지하.
○ 野戰病院
南浦市 千里馬區域 大平里(표고 327m의 大砲山)의 지하에, 人民武力部 11호 病院이 移轉가능한 규모의 야전병원이 있다. 폭 5m, 높이 4.5m의 구조로, 入口는 2개소.
○ 地下저장고(3개소)
제1저장고는, 平壤市 祥原郡 中里. 半地下 터널과 地下터널의 2층구조로 되어 있으며, 戰時에 豫備로 使用할 機動器材를 저장
제2저장고는, 平壤市 龍城區域 中二洞 임불산(표고 210m)의 지하에 있고, 역시 2층구조. 人民武力部 兵器局이 관리하는 兵器 및 砲彈의 저장고.
제3저장고는, 慈江道 前川郡 非三峰(표고 1830m)의 지하. 2개소의 출입구를 가진 衣服의 총합창고로서, 인민무력부의 文書保管庫도 겸하고 있다.
軍團(人民軍의 軍團野戰指揮所는, 폭4m, 높이 4.5m의 터널로 出入口는 2개소라는 것이 표준 규모)

○ 第1軍團
기본지휘소는, 江原道 淮陽郡 鐵嶺(표고 1677m)의 지하. 豫備指揮所는 江原道 金剛郡 지구동嶺(표고 932m)의 지하
○ 第2軍團
기본지휘소는, 黃海北道 平山郡 滅惡山(표고 818m)의 지하. 豫備指揮所는 黃海北道 鳳川郡 主之峰(표고 813m)의 지하.
○ 第3軍團
기본지휘소는, 南浦市 龍罔郡 陽谷里의 지하. 豫備指揮所는 黃海南道 殷栗郡 九月山(표고 954m)의 지하.
○ 第4軍團
기본지휘소는, 黃海南道 海州市 首陽山(표고 946m)의 지하. 豫備指揮所는 黃海南道 甕津郡 國師峰(표고 527m)의 지하.
○ 第5軍團
기본지휘소는, 江原道 平康郡 梨木里(표고 623m)의 지하. 豫備指揮所는 江原道 平康郡 五聖山(표고 1050m)의 지하.

○ 第6軍團
기본지휘소는, 慈江道 江界市 斗興里(표고 1241m)의 지하. 豫備指揮所는 慈江道 楚山郡 文德里 柏彼峰(표고 982m)의 지하.
○ 第7軍團
기본지휘소는, 咸鏡南道 咸興市 東興山 언덕의 지하. 豫備指揮所는 咸鏡南道 咸州郡 泗水山(표고 1752m)의 지하.
○ 第8軍團
기본지휘소는, 平安南道 陽德郡 霞嵐山(표고 1485m)의 지하. 豫備指揮所는 黃海北道 新坪郡 石岩里 살峰(표고 1181m)의 지하.
○ 第9軍團
지하시설이 없는 野外指揮所에 常駐.
○ 第10軍團
기본지휘소는, 咸鏡北道 鏡城郡 冠帽峰(2540m)의 지하. 豫備指揮所는 咸鏡北道 漁郞郡 白沙峰(1478m)의 지하.
○ 第11軍團
기본지휘소는, 平安北道 義州郡 角狗峰(표고 668m)의 지하. 예비지휘소는 없음.
○ 第12軍團
기본지휘소는, 黃海北道 沙里院市 正方山(표고 481m)의 지하. 豫備指揮所는 黃海北道 瑞興郡 夫人堂山(표고 659m)의 지하.

空軍司令部

○ 野戰指揮所
평양市 中和郡 馬場山(표고 309m)의 지하. 여기에서는 러시아의 偵察衛星을 통해, 오키나와의 美軍基地의 動向 24時間 實時間으로 監視하고 있다.

海軍司令部

○ 野戰指揮所
평양市 兄弟山區域 西浦2洞 烽燧山(표고 166m)의 지하.

平壤反航空司令部

평양市 萬景臺區域 仙內洞 仙內山(표고 207m)의 지하.
또한, 機動戰車軍團이나 戰車部隊를 爲始한 機動部隊는, 地下의 指揮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상이 두꺼운 베일에 가려진 朝鮮人民軍의 實態입니다.

이 程度의 軍事大國인데도 戰爭을 일으키지 않는 金正日은, 今後는 「美國 本土를 공격할 수 있음」을 담보로, 美國을 中心으로 한 多國間과의 協議를 진행하는 수밖에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國際社會가, 10年 前처럼 北韓 安易하게 타협해버려서는, 위험한 독재자를 되살릴 뿐입니다.

金正日 한 사람을 매장시키면, 200萬의 朝鮮人民軍은 붕괴되고, 2300萬의 北韓人民은 解放되고, 北東아시아에 平和가 찾아옵니다. 지금이야말로 國際社會가 결속하여, 金正日의 숨통을 멈추게 할 때인 것입니다.


번역 성우회 박문규 / 독립신문 정리=유현녀

"북한에도 포털 사이트 있다"

 





[한국미디어]
2006-03-06
"최근 딱친구(단짝친구)와 빈번하게 정보통신기술판매소(PC방)를 드나들며 직결유희(온라인 게임)에 빠져있는 소학교(초등학교 1학년 ~ 4학년) 어린이들이 많아 당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북한식 표현으로 작성해 본 가상의 기사다.

만약, 괄호 안 설명이 없었다면 이 짧은 문장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남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보다 먼저, 북한에도 '중독'될만큼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는 한 것일까? PC방 요금은 얼마나 될까?지난해 11월 10일 '남북한 공통 정보화교육 용어사전'을 펴낸 정보통신부와 산하 한국정보문화진흥원(원장 손연기)은 남북한이 같은 말로 표현하는 정보통신 용어는 전체의 42% 수준이며, 18%는 전혀 다른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양측의 IT인프라 격차를 말하기 이전에, 사용하는 말 자체가 너무 달라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 남북한 IT용어 '이렇게 달라요'
남한말 북한말
노트북- 학습장형 콤퓨터
팝업 -튀여나오기
배너광고- 간판광고
네티즌- 망시민
인터넷- 서핑 망유람
드래그- 끌기
더블 클릭 -두 번 찰칵
온라인게임 -직결유희
키워드 -열쇠단어, 실마리어
PC방 -정보통신기술판매소, 기술봉사소
스크롤바- 흘림띠
디렉토리- 등록부
단축키 -지름건
드래그- 끌기
서버 -봉사기
부팅 -기동
데이터 베이스 -자료기지
램(RAM) -읽기 쓰기 기억기
롬(ROM) -읽기 전용 기억기
클립 아트 -오림 삽화철
백업 -여벌
근거리 통신망 -국부망

[ 참고 : 정보통신부, 한국정보문화진흥원 '남북한 공통 정보화교육 용어사전' ]

그러나, 기술적인 격차를 이야기하기 이전, 남북은 이처럼 서로가 이용하는 IT용어를 '사전' 찾아가며 이해해야 할 만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통일 이후의 정보격차 해소방안을 논하기 이전, '북한IT의 오늘'을 제대로 아는 일이 더욱 시급함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남한이 '안다고 믿는' 북한의 IT 현황은 어떨까? 이념의 38선이 한반도를 갈라, 반 세기를 등져온 남북. 이제 IT가 '21세기의 38선'이 되는 것은 아닐까.

북한의 IT와 IT로 조망해보는 통일 문제에 대해 지난 84년 북한 이공계 명문 김책공대를 졸업하고, 컴퓨터기술대학 등 북한 내 IT전문인력 양성기관에서 18년간 OS(운영체제)를 가르치는 교수로 근무하다 지난 2003년 겨울 남한을 찾은 새터민 김상명(46·가명)씨와 얘기를 나눠봤다.

이하는 김상명 씨와의 일문일답.

"북한에서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는 개인이라면, 더욱이 그 컴퓨터가 북한 전역을 잇는 인트라넷 '광명망'에 연결돼 있다면 컴퓨터를 가진 사람의 신분은 셋 중 하나입니다. 당의 고위급 간부이거나 외화벌이기관 근무자 혹은 일본을 거쳐 들어온 북송동포이거나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이후 많은 돈을 번 장사꾼이지요"*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 북한이 지난 2002년 단행한 대대적인 경제 조치. 북한 당국이 사실상 기존 경제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환율과 식량, 연료, 전력, 교통요금, 집세, 임금을 수십 배에서 수백배까지 인상, 실물경제를 반영했음. 그러나 수급 불균형으로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 현상 나타나고 있음.- 북한의 민관 컴퓨터 보급 현황은."함흥 등 몇 개 대도시의 경우 대규모 기업소(일종의 기업연합체. 유관 공장이나 기업소, 원료 및 연료생산기업과 이를 이용하는 기업을 하나로 묶어 계열생산체제를 형성하는 트러스트(Trust)의 한 형태')나 관공서의 30% 정도에 컴퓨터가 보급돼 있다.

지난 2003년 현재 북한 전역을 잇는 유일한 인트라넷 '광명망' 가입자는 기업소와 관공서가 전국 3천 700개 소였다.

개인이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일각의 편견처럼 '전무'한 것은 아니다. 보유 PC는 대개 486 수준. 기관에는 펜티엄 급 컴퓨터가 보급돼 있다. 2003년, 함흥 1개 도시에만 광명망 가입자가 400 가구 정도였다.

평양의 경우 타 지역에 비해 모든 인프라가 우수하다. 남한도 그렇지만, 북한에서도 도농간 정보격차가 현격하다. 평양은 타 지역 평균과 비교할 때 20~ 30% 정도 사정이 낫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관공서나 개인 보유 PC중 광명망에 연결돼 있지 않은 컴퓨터가 상당수다. 설치비와 종량제 이용료가 상당히 비싸기 때문이다. 때문에 통계에서 누락돼 있는 PC와 지난 3년 동안의 증가분 역시 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컴퓨터 외에 이동전화나 PDA, MP3P 보급 상황과 이용요금은."2002년 9월 북한 체신청은 태국의 록슬리사와 동북아시아전화통신회사(NEAT&T)를 설립해 유럽 방식(GSM) 이동전화망 구축을 시작했다.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지난 2004년 용천대폭발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내 이동전화 가입자는 한 때 2만 명까지 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탈북 이후인 2004년, 이동전화를 통해 사고 사실이 국외로 알려지면서 당국이 전화를 압수하고 서비스를 사실상 중단시켰다는 후문을 들었다.

2003년 기준 이동전화 한 대의 가입비는 500$ 였다. 이 돈이면 방 두 칸의 중형 아파트 한 채는 살 수 있다. 전화요금도 3분에 25원, 일반 주민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도 당의 고위 간부 정도만 지니고 있었으며, 이동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리를 지나가면 모두들 발 길을 멈추고 쳐다볼 정도였다.

PDA가 북한에서 조립돼 제3국으로 수출된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북한에서 실제로 PDA를 본 적은 없다. MP3P역시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기기 자체도 아주 귀하지만, 설사 들여온다 한들 MP3P내에 담을 수 있는 음악 파일을 거의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컴퓨터를 구매하려면."당성, 신분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다. 북한에서 '현아'라고 부르는 달러, 유료, 엔 등 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각 도에 한 두개정도 설치돼 있는 컴퓨터 판매소에서 컴퓨터를 살 수 있다.

평양에서는 외화상점을 찾을 수도 있고, 외제 컴퓨터를 들여와 직접 판매하는 신흥무역회사, 대성무역회사 등 직매사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그러나 워낙 가격이 비싸 일반인들이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하나, 개인은 프린터나 스캐너 등 작업 내용을 외부로 출력할 수 있는 기기는 보유할 수 없다."- 조립PC를 이용하기도 하나."그렇지 않다. 남한의 조립PC와 북의 그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북한에서 조립PC는 군사용 등 특수목적용 컴퓨터를 만들 때 이용된다."- 사양별 컴퓨터의 대당 가격은."펜티엄 이하 사양은 150$ 미만이다. 이런 컴퓨터는 거의 판매되지 않는다. 기타 펜티엄Ⅰ은 150$ 정도, 펜티엄Ⅱ가 250$ 이상, 펜티엄Ⅲ가 350$ 이상, 펜티엄Ⅳ가 600$ 이상이다."◆ 북한의 컴퓨터 가격, '싼' 걸까 '비싼' 걸까?

달러로 표현된 북한의 컴퓨터 가격은 남한 사람들에게 언뜻 '저렴해' 보인다.

그러나, 북한 현지 물가를 고려할 때 컴퓨터 값은 일반 주민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가다.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북한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2천 500원 ~ 3천 원 수준. 개선조치 이후 달러당 북한 원화의 공식환율은 150원 수준이다. 그러나 내부 거래시 적용되는 환율은 2002년 9월 현재 230원, 자본주의식 암시장인 장마당 환율은 달러당 290원 ~ 300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대외거래에 적용하는 공식환율로 펜티엄Ⅰ의 구매 가격을 계산해보면, 북한 돈 2만 2천 500원. 이는 노동자들이 10달 가까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다.

600$인 펜티엄Ⅳ를 사려면 한 달 2천 500원을 받는 노동자가 36개월, 3년 동안 벌어들이는 수익 전부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형 아파트 한 채 값이 500$ 수준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내부환율과 장마당 환율을 고려하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북한에서 개인용 컴퓨터가 상징하는 의미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 가장 많이 이용하는 컴퓨터 브랜드는. 자체 생산 컴퓨터는 없나."북한에 보급돼 있는 대부분의 컴퓨터는 외산이다. 미국의 셀러론을 가장 많이 사용하며, 일본 NEC의 중고 컴퓨터와 미국의 AMD 등도 많이 들어와 있다. 해당국 오리지널 제품이 직수입 통로로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개 중국이나 대만 등을 경유해 제3의 루트를 거쳐 유입된다.

한국에서 들어온 컴퓨터도 제법있다. 한국의 LG전자, 삼보, 주연테크, 삼성 컴퓨터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제품들은 과거 한국 기업들이 대북 지원 물품으로 제공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북한에서는 이렇게 들어온 물자를 모두 주민들에게 되팔고 있어 문제다.

재미있는 것은 당국이 아무리 눈가리고 아웅을 해도 그 제품들이 한국산임을 주민들이 대부분 알고 있다는 것. 대부분의 주민들은 IT의식이 상당히 낮지만, 한국의 삼성전자가 일본 유수 기업과 세계에서 겨룰만한 수준의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양컴퓨터조립공장에서 자체 생산하는 '아침 팬더' 컴퓨터도 있지만, 사실상 모든 부품을 들여와 최종 하우징, 즉 조립만 하는 수준이다. 대부분 펜티엄 펜티엄Ⅲ, Ⅳ 사양인 이 제품은 해외 수출용이다. 하청받아 조립만해서 국외로 내보내고 있다. 구매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최소 500$ 이상을 줘야 한다."- 북한에 전략 물자와 기술 수출을 금하는 각종 국제협정이 있는데, 컴퓨터 수입이 가능한가."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바세나르 체제를 비롯해 미 국무성내 규정 등을 이유로 북한에 고사양 컴퓨터를 자유롭게 반입시키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펜티엄Ⅱ급 컴퓨터의 반입은 크게 규제받지 않은 것으로 안다."- 미국 컴퓨터가 보급된다면, 운영체제로 윈도우즈도 사용하나."대부분의 컴퓨터에 MS 윈도우즈가 깔려있다. 2003년에도 윈도우즈XP가 설치된 PC가 적지 않았다."- 북한은 리눅스 기반 OS(운영체제)를 고려해오지 않았나."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 당국이 중장기적으로 리눅스 오픈 소스를 기반으로 한 독자 운영체제 구축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현재는 윈도우즈가 대부분이다.

워드 프로그램도 대부분 MS 워드를 기본적으로 사용한다. 윈도우즈를 구동시킨 이후 영문판 MS오피스 프로그램에서 조선어와 일어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북한 자체개발 프로그램 '단군'을 이용하면 우리글로 MS오피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외에 자체개발한 워드 프로그램으로 '창덕'과 '내 나라'가 사용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노트북이 더 많이 이용된다는데."잘못된 정보다. 학습장형 컴퓨터(노트북)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거의 드물다. 노트북을 직접 본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를 구입해서 사용하기 위한 절차는."컴퓨터를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세 가지 검사를 통해 확인증을 발급받지 않으면 설치가 불가능 하다.

개인과 기관을 막론하고, 북한내에서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하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먼저 데스크톱 컴퓨터를 구입한 영수증이 필요하다. 중국 등 접경지역 국가를 통한 밀수와 이를 통한 국내 정보의 대외 유출 혹은 반체적인 소위 '황색' 자료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영수증을 지참하고 먼저 할 일은 국가보위부 16국 '전파감독국'에서 '반전파검사'를 받는 일이다. 시스템 내에 이상한 발진을 일으키는 기능이 있는지를 검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위성이 감지할 수 있는 기가헤르츠 대역의 발진을 통해 교신을 시도한 사례가 적발된 일이 있었다.

두 번째로는 경찰기관의 검열이 기다린다. 해당 시, 도 인민보안성 분소에 가서 설비 등록을 해야 한다. 여기서 등록증을 받고 나서는 세 번째로 출판총국 출판검열국에 가서 하드디스크 검사를 받는다.

반사회주의적인 '황색' 자료가 하드에 몰래 저장돼 있지 않은지 검사하는 것이다.

이 처럼 세 번의 검열을 통과한 확인증을 붙여야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검사를 거친 이후에도 '황색' 자료 여부를 검열하는 세 번째 과정은 언제든 불시에 이뤄질 수 있다. 이 때 적발되면 먼저 컴퓨터를 압수당하며, 사안에 따라 형사처벌되기도 한다."◆ 남북 정보격차 해결위한 선결과제는 '전력'

김상명 전 교수는 기술적인 수준만 고려하면 북한에서도 사무 전자동화가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북한은 컴퓨터를 통한 자동화작업보다는 인력의 수작업이 더 많다. 이유는 바로 '전력 수급 불안정'.

북한의 전력사항은 알려진대로 상당히 불안정하다.

그러나 하루에도 많게는 10번까지, 한 번에 2시간 이상 전력이 끊어지는 상황에서 언제 전원이 꺼질지 모르는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할 수는 없는 일.

김 씨는 "따라서 자동화 작업이 편리함을 익히 알고, 고급 기술 인력도 적지 않지만 수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재직했던 한 대학에서도 30만 장서의 DB화를 끝내고 검색을 통해 책과 정보를 찾아내며, 자동 대출, 반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으나, 전력 사정이 나빠 구동 석 달만에 기존 방식으로 되돌리고 말았다는 것.

컴퓨터 자제도 부족하지만, 대단위 기업소나 관공서에서 개인에게 PC를 지급하는 대신 컴퓨터실을 만들어 놓고 문서작업이나 파일 업, 다운로드 등 간단한 작업에만 이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인트라넷 '광명망'은 어떤 기능을 하나. 인터넷 접속은 불가능한지."북한은 국가 단위에서 인터넷 접속을 거부하고 있다. 풍문에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 단둥 지역의 인터넷 선을 연결해 이용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대신 북한에서는 중앙과학기술통보사가 구축한 인트라넷 광명망을 이용하고 있다. 민관이 함께 사용하는 광명망에 접속하면 유일한 포털 사이트 '광명'도 이용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 광명의 주 목적은 데이터베이스화 돼있는 과학기술자료를 기업소와 개인이 열람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인트라넷인데다 이용자가 많지 않아 검색과 정보처리 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광명에는 조선중앙통신이나 '로동신문' 등 방송, 신문 발행기관 사이트 등도 링크돼 있다. 잡지 등 전자출판물도 상당 수 등록돼 있다. 이외에 간단한 게임, 교육 정보 등도 이용할 수 있다."- '광명망'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설치 및 사용 요금은."가입을 위해서는 집에 비섬유(광케이블) 전화가 설치돼 있어야 한다. 남한이 전화선에 모뎀을 연결해 쓰던 PC통신 시절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나 2000년대 초만 해도 북한의 전화보급률은 1천 가구당 1, 2대 수준이었다. 게다가 광명망 가입비가 5천 원, 종량제 요금이 3분당 5원 ~ 6원 이었다. 가입비만 노동자의 두 달치 월급 수준이니 컴퓨터를 어렵게 구입했다고 해도 굳이 활용도가 높지 않은 광명망에 가입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에도 초고속통신망이 설치되고 있다는데."환경은 열악하지만, 북한 당국은 정보화 추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한국에 온 후 2004년부터 북한에 초고속통신망을 통한 정보고속도로가 깔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해 평양내 설치를 끝내고 2005년에는 함흥까지 올라갔다는 후문을 들었다. 모뎀이 아닌 랜카드 방식으로 네트워크을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이다.

그러나 초고속통신망 이용에는 광명망 가입 및 이용요금보다 훨씬 더 많은 부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남한처럼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서핑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없으니 당분간은 광명망처럼 소수 특권층만 이용할 것이라 생각된다."-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이메일을 사용할 수는 없는지."광명과 광명망이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여러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남한처럼 개인용으로 홈피를 개설하고 전자상거래를 하는 등의 행위는 이뤄지지 않는다. 남한처럼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있는 자유로운 검색이나 블로그, 게시판을 통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메일 계정을 받을 수는 있으나, 이를 위해서는 광명망에 가입해야 하며, 원하는 사람에게 당국에서 일률적으로 메일 계정을 할당해 준다.

그러나 이메일을 주고 받자면 이용하는 사람이나 수신인 모두 광명망에 연결된 컴퓨터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다 모든 메일 내용이 보위부 10국을 통해 검열되기 때문에 개인용으로 이메일을 쓰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우체국에서 '이메일 봉사'를 통해 보내고자 하는 내용을 접수원에게 적어주면 대신 쳐서 보내주기도 하지만, 이용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기업소나 기관에서는 이를 통해 간헐적으로 경영 성과 등을 공유하는 일이 있다."◆ 북한에도 'PC방'과 '온라인 게임'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있다'.

북한에도 '정보통신기술판매소(PC방)'가 있다. 여기에서는 한 달에 북한 돈 2만 원에 컴퓨터 강습이 이뤄지기도 한다는 게 현지를 방문한 이들의 전언이다.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우리 청소년들처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새터민들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하드디스크 내에 게임을 저장했다가 그 때 그 때 즐기는 PC게임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나, 지난 2004년 이후에는 광명망 내에서 MMORPG(다중접속 역할수행 온라인게임)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북한에서 가장 널리 즐기는 게임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PC게임 '테트리스'라고. 전쟁게임인 '히틀러'와 공주를 구해내는 전형적인 무협 스토리의 게임들도 사랑받고 있다.

게임 프로그램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컴퓨터 구매 당시 내장돼 있는 PC게임을 그대로 즐기는 것이고, 두 번째는 조선콤퓨터센터와 평양정보센터 등이 개발해내는 게임을 구매하는 것. 게임당 구매 비용은 3천 원 ~ 5천 원 정도로 고가다. 이외에 중국 접경 지역에서는 중국을 통해 들여온 게임을 몰래 즐기는 경우도 있다.

게임도 검열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하드디스크 내 '황색' 자료를 수시로 검사하는 출판총국의 불시 검열을 통해 선정성이나 폭력성이 있는 게임을 즐기다 적발되면, 자료를 삭제당하는 것은 물론 컴퓨터를 압수당할 수도 있다.

- 북한의 정보화교육 현황은."앞서 설명했듯 북한 당국도 정보화의 중요성은 통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지난 2000년 이후 대단위 기업소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콤퓨터 배우기' 사업을 버리고 있다.

한, 두달에 한 번 정도 이뤄지는 교육은 칠판에 컴퓨터의 자판을 그려놓고 가상으로 자판 치기 연습을 하는 등 말로 가르쳐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걔중 사정이 나은 곳에서는 컴퓨터를 한 대 놓고 시연해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컴퓨터기술대학 등 전문기관에서의 교육과정은."전문 기관의 강의는 남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론부터 OS와 프로그래밍, 하드웨어 설계와 조립, 어셈블리어 등을 배운다. 다만 모바일 분야와 월드와이드웹(www)은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해 이 분야 강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새터민을 대상으로 한 남한의 정보화교육을 평가, 조언한다면."컴퓨터를 껐다 켜거나 자판을 익히고, 간단한 문서 작성법을 알려주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다. 새터민 대부분이 컴퓨터를 직접 이용해 본 일이 없음을 고려하면, 수준을 논할 단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처음 남한에 와서 한 달의 조사를 받고, 이후 머물게 되는 하나원 체류기간은 삼 개월이다. 이 때는 주당 4시간 씩 이같은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지만, 이후 노동부와 보건복지부, 거주지 관할 구청 등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정보화교육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당장 남한에서의 경제자립 문제로 부심중인 이들에게 '밥벌이'와 관계 없는 컴퓨터 놀이는 부질없는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IT는 이제 남한 사람들에게 생활의 일부와 같다. 여기에 새로 정착해야 할 새터민들이 IT를 제대로 알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 이유다.

이들을 IT와 보다 친숙하게 이끌어줄 수 있는 훌륭한 강사가 필요하다. 새터민 대상 IT교육에 나서는 강사들은 대부분 경험이 부족하거나 교수법에 익숙지 않은 분들인 듯하다. IT와 너무 먼 사람들이기 때문에, IT를 정말 잘 알고 새터민과 IT를 이어줄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해 줄 강사가 필요하다.

먼저 남한에 와서 각종 강의를 수료하고,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IT이해도가 높은 새터민들을 강사로 적극 활용한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이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새터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각 부처와 기관의 정보화교육이 보다 유기적으로 피교육자의 수준을 제고시켜줄 수 있도록 설계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한다.

같은 교육, 비슷한 수준의 형식적인 강의가 난립하고 있지만, 예산 투입대비 참여율과 강의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새터민을 열등하고 가난한 형님네 군식구로 여기지 말고, 통일 이후 남북한 사회가 겪을 충격을 완화시켜줄 완충재로 이해하면 이들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투자와 정책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 남북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정보격차 해소가 통일과 통일 이후 질서확립에 미칠 영향은."남한이 북한을 지원해 정보격차 해소 작업을 벌이자면, 가장 먼저 전력 수급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사양의 컴퓨터를 들여오고 초고속통신망이 전역에 보급된다 한들,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두번째 믿을만한 북한내 정보화 담당 파트너를 찾아내야 한다. 전언했듯 북한에 지원되는 각종 물자를 북한은 주민들에게 되팔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들이 실제로 컴퓨터를 접할 수 있도록 북한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교육성 등과 함께 일종의 대단위 '프로그램 센터'를 만들고 직접 컴퓨터를 설치해 여기서 정보화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강의 교재 등을 이곳에 지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렇게 북한 주민들이 컴퓨터와 보다 가까워지고, 이 컴퓨터가 다시 인트라넷에 연결돼 한정적이지만 의사소통이 보다 활발하게 이뤄진다면 주민들의 의식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본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북한 사회가 변화될 수 있는 하나의 동인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이같은 작업을 통해 통일 이후 지나치게 기울어 있는 남북 시소의 균형을 잡는데 들어갈 '통일비용'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삽합->도문 코스   삼합에서 바라 본 북한 회령시 전경.. (앞에 보이는 강이 두만강)   회령 세관   회령 국제무역장터(2006년 개장 예정)   ^&^   북녘마을   두만강변의 북녘마을   북녘 아이들  ...
출처 : 好朋友
글쓴이 : 好朋友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好朋友
글쓴이 : 好朋友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