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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세례와 충만은 어떻게 다른가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장·조직신학)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께서는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성령받기를 기도하여 성령이 임하게 하신 일이 있다(행 8:14-17) 그리고 사도 바울께서도 에베소에 있는 제자들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물음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답하는 것을 듣고는, 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후, 그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시게 함으로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하신 일이 있다(행 19:2-8).
그렇다면 성령을 받는 것과 세례를 받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함은 또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살펴보자.
1. 성령과 세례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들이 죄를 씻음 받고 의인이 됨으로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표하고 인치는 의식이다. 그래서 세례는 물을 사용하여 죄 씻음을 표시한다. 그러나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믿음을 가지고 신앙고백을 하거나 거짓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물세례는 진정한 믿음에서 나온 구원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물세례 이외에 성령의 세례를 말하기도 한다.
성령의 세례는 모든 것을 정확히 통달하고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베풀어지는 세례이다. 따라서 물세례에서 있을 수도 있는 오해나 거짓이 있을 수 없다. 성령께서는 사람에게 임하시어, 믿음의 내용을 확증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신다. 또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성도의 마음속이나 밖에서 특별한 능력이나 현상이 나타나게 하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임하셨다는 표현을 한 가지 의미로만 생각할 수 없다. 성령이 임하셨다는 표현은 문맥에 따라 중생케 하시는 은혜를 베푸심, 중생을 확증하는 증거를 보여주심, 중생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심, 중생의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되고 섬겨지도록 하심 등의 의미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임하심은 성령의 세례나 성령의 충만이라는 말로 설명되기도 하므로, 성령의 세례와 충만에 대해 각각 살펴보기로 하자.
2. 성령의 세례
성령의 세례는 물세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물세례는 성령의 세례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가르쳐주는 예표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말씀이나(행 1:5), 세례 요한께서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막 1:8)고 하신 말씀에서 잘 드러난다.
물세례를 살펴보면, 세례는 다음과 같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례는 예수 믿는 사실을 시인하는 사람에게 맨 처음으로 행해지는 의식이다(최초성). 한 번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 효력이 일생동안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반복해서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단회성, 지속성) 세례는 죄 씻음 받았음을 표하고 인치는 의식이다(정결성).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세례를 받는다(보편성). 세례를 주라는 명령은 있으나 세례를 받으라는 명령이 없는 것을 보면, 세례는 사람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성질을 가진다(하나님의 주권성).
물세례에 나타난 특성들은 성령의 세례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도 베드로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고낼료가 믿게 된 사실을 말씀하면서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행 11:15,16)고 하셨다. 이것은 자신이나 고낼료에게 있어서 성령의 세례가 최초성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한 것이었다.
사도 바울께서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행 22:16)고 하신 말씀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고 하신 말씀을 비교해 보면, 우리는 성령의 세례에 정결성이 있음을 본다. 또 사도 바울께서는 고전 12:13에서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고 하심으로서, 성령 세례의 보편성에 대해 말씀했다. 우리는 성경에 성령의 세례는 받으라는 명령이 없는 사실과, 한 번 성령의 세례를 받았던 사람이 다시 받았던 예도 없었던 사실을 통해, 성령의 세례가 하나님의 주권성과 단회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 중에서 이러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회심과 중생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세례란, 죄인을 회심시켜 중생케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3. 성령의 충만
성경에는 브사렐(출 31:3), 여호수아(신 34:9), 세례 요한(눅 1:15), 엘리사벳(눅 1:41), 사가랴(눅 1:67),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였던 제자들(행 2:4), 베드로(행 4:8), 바울(행 9:17), 스데반(행 6:5), 바나바(행 11:24) 등 성령에 충만했던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브사렐의 경우는 성령께서 그에게 회막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주셨음을 의미하기에 성령의 일반사역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다른 경우들은 모두 영적인 의미, 즉 성령의 특별사역과 관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은 일반적으로 성령의 특별사역과의 관계에서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
성령의 세례는 죄 씻음을 인치려고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두 가지의 목적, 즉 도덕적 개선이 있는 생활과 효과적인 사역의 감당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성령에 충만한 생활이란 어떤 이적적인 현상을 경험하는 생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령의 충만이란, 성령에 사로잡혀서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성령의 지도를 따라 사는 생활, 즉 날마다 죄를 멀리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거룩하게 사는 것이 그 핵심적인 의미이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도 도덕적인 면에서는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더욱 거룩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전 3:1-4) 성령에 충만한 사람에게서는 이적적인 현상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적적인 현상은 성령 충만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 단지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본질적인 요소는 도덕적인 변화, 즉 죄를 멀리하고 더욱 거룩해져 가는 성화(聖化)의 삶이다. 스데반과 바나바의 성령 충만 경우가 이 사실을 잘 말해준다.
성령의 충만은 특별한 사역이나 봉사를 효과적으로 감당케 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는 성령에 충만했기 때문에, 적개심과 성경 지식으로 가득한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 앞에서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의 용기와 성경지식으로 담대하게 복음의 진리를 말할 수 있었다(행 4:8). 사도 바울은 성령에 충만했기 때문에, 지혜가 뛰어난 총독 서기오 바울 앞에서 예언을 하고, 그를 믿게 만들었다(행 13:9).
엘리사벳은 성령에 충만했기 때문에, 마리아의 배 안에 있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언을 할 수 있었다(눅 1:41). 성령에 충만하게 되면, 누구라도 지혜와 용기와 능력 등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사역(봉사)에 효과적으로 임할 수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셨다(엡 5:18).
성령의 충만은 모든 성도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이 동일한 수준의 충만함에 도달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의 경우에도, 그 충만함의 정도가 시간이나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때로는 성령이 충만했던 사람이 충만함에서 멀어진 나머지, 성령을 소멸하고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기에 성령의 충만은 단회적이고 지속적이며 보편적인 성령의 세례와는 달리, 반복적이고 일시적이며 개별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은 여러 면에서 성령의 세례와 구별이 되어야 한다. 죄 씻음의 인침인가 성화 또는 사역의 강화인가, 단회적인가 지속적인가, 보편적인가 개별적인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인가 사람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역사인가 하는 등에서 서로 뚜렷하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4. 성령 충만케 되는 방법
성령의 충만을 명령하셨다는 것은, 성령 충만이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일방적으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편에서도 힘써야 할 부분이 있음을 의미한다. 성령의 충만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 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므로 성령을 소멸하거나(살전 5:19) 근심케 하지 않고(엡 4:30),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다(고후 12:18, 갈 5:16).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성령의 충만을 위해, 악한 세월을 따라 살지 않고 지혜롭게 분별하여 세월을 아끼는 것, 주의 뜻을 분별하는 것, 술 취하는 것 같이 어떤 것에 빠져 끌려 다니지 않는 것, 신령한 찬송을 부르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 피차에 복종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고 말씀했다(엡 5:15-21).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는 기도를 빼놓을 수 없다.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했던 제자들의 경우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행1:14). 성령의 충만을 위해 힘써야 할 기도는 특히 회개의 기도이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담을 헐어내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거하시면서 우리를 지배하시도록 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 먼저 힘써야 할 우선적인 기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남종과 여종을 포함한 만민에게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실 것을 예언하셨다(욜 2:28). 그 예언대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아 회심하고 중생하여 주께로 돌아오고 있다. 또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 살면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되고, 주어진 사명과 봉사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그 정도에 있어서 발전이 있을 수도 있고 소멸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성령에 충만한 삶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항상 깨어서 주의 뜻을 지혜롭게 분별하여 실천에 옮기려고 하는 노력을 기우려야 할 것이요, 아울러 무릎 꿇어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을 간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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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의 유래
-한국교회와 1907년 대 부흥-
1. 대 부흥(復興)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사들은 일찍이 1905년 6월 25일 서울에서 한 위원회를 조직하고, 남장로교 레이놀즈(W. D. Reynoldes)의 동의를 만장일치로 가결한 바 있었다. 그 동의에 의하면 "이제 때가 성숙하였으니, 하나의 한국 민족교회를 창설하여 그 이름을
[한국기독교회]라 하리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의 자립·자주적인 민족교회의 형성, 그것도 교파의 구별이 없는 단일한 기독교회의 형성에 대한 범주적인 요청은 이렇게 해서 널리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에 한 획기적인 모멘트가 그 형성력에 부여되기만 하면 된다고 보았다,
그것이 바로 1907년도의 한국 교회의 대 부흥이었다.
2. 그 부흥의 원류(源流)
이 부흥회를 가능케 해서 전국을 휩쓸게 한 물결은 두 군데서 흘러 왔다. 한 흐름은 선교사들의 기도회에서 연원했다. 1903년 원산(元山)에 있던 감리교 선교사들이 기도와 성서 연구를 위한 기도회를 갖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장로교와 침례교 교인들까지 가세하게 되었고, 이때 남감리교 선교사 의사 하디(Dr. R. A. Hardie)는 몇 해 동안 애써온 자신의 선교 활동의 열매 없음에
고민하던 중 선교사로 오게된 자신의 동기에 대해 회개하게 되면서 급기야 뜨거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다.
1904년 원산의 집회는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삼파 연합의 사경회 도중 장로교의 로브(Rev. A. F. Robb)가 특별한 성령의 감화에 젖어, 한국인으로서 당시 은혜에 깊이 젖어있던 전계은(全啓恩)과 함께 원산 거리를 누비며 가슴을 치면서 통회 전도를 했고, 감리교의 정춘수(鄭春洙) 역시 그 부근을 왕래하면서 감격과 열의로 이 성령의 은사를 선포하였다.
또 하나의 흐름이 바로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깊은 신앙 생활의 경건에서 왔다. 사경회의 영향, 국가의 비운에 통회하는 기독교인들의 내성(內省), 그래서 하나님 밖에는 기댈 곳이 없다는 한국인들의 신앙에서 이 부흥의 물결은 도도히 흘러 왔던 것이다.
목사 영계(靈溪) 길선주(吉善宙)! 한국 최초로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던 그의 성령에의 뜨거운 열정이 바로 1907년 대 부흥의 직접적 동기가 되었다. 이처럼 부흥의 용솟음치는 성령의 샘은 원산의 전계은, 정춘수와 아울러 평양의 길선주 이 세 한국 목사의 신앙 체험에서 연원했고, 따라서 그 부흥 뒤의 한국 교회의 신앙도 이들의 영성이 농도 짙게 그 언저리에 스며있게 된 것이었다.
3. 1907년 1월 13일, 평양 장대현
전날 하디 선교사의 집회로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 부흥회는 다음 주일 밤 길선주가 인도한 집회에서 그 성령의 불길이 터져 올랐다. 교인들의 감동은 놀라웠다. 교회는 '신비스러운 경험'을 하였다. 교회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사이사이에 힘있는 영적 압력이 베어 구속하는 듯하였다.
다음날 월요일 밤에도 장중한 신비의 세력이 임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교회에 들어설 때 확실히 체감으로 거기서 성령의 임재를 압도당하듯 느끼고 있었다. 그 날 전형적인 평양 대 부흥의 분위기가 감격 넘치게 펼쳐지고 있었다.
런던타임즈의 기사에 의하면,
"나의 아버지여!라는 말을 하자마자, 밖으로부터 흠뻑 밀려드는 강대한 힘의 임재에 압도당했다"고 한다.
교인들은 눈물과 감격으로 밤새워 기도했고, 그 감동의 격류는 몇 일 밤낮을 계속했다. 통성 기도의 음성은 신비로운 조화와 여운을 가지고 있었으며, 통회의 울음은 성령의 임재에 압도되는 영혼의 넘치는 찬양의 물결 같았다. 그 통회 자복의 광경을 묘사하는 한 여 선교사의 기록에 의하면, "저런 고백들! 마치 지옥의 지붕을 열어 젖힌 것과도 같다. ... 이루 상상할 수도 없는 저 죄악의 고백들, 부끄러움도 없이! 사람이 무엇으로 이런 고백들을 강제할 수 있으랴? 많은 한국 교인들이 하나님에의 두려움에,
마루에 얼굴을 가리우고 슬피 탄식하였다"고 한다.
4. 새벽예불이 새벽기도로
한국의 최초의 영적 대각성운동이 식을 줄 모르고 빠르게 확대되면서, 한국교회역사의 새 불을 지폈다. 그토록 뜨거운 죄고백과 회개를 불러일으킨 성령의 역사는 식을 줄 모르고 밤을 새우는 게 보통이었고, 또 새벽부터 낮동안 계속 연장되었다.
지나가다가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 스스로 일어나 죄를 고백하며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하면서 예수를 영접한 그들에게 그동안 행해져 왔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신자가 되기 전에 이날 까지 해왔던 불교의 새벽 예불기간이었던 것이었다.
어떤 특정한 기간이 아니더라도 새벽만 되면 예불을 드려왔던게 그 당시에 비크리스쳔들에게 보편적으로 있었던 정기행사였다.
그때 길선주 장로는 이왕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그동안 행했던 새벽에불을 없애지 말고,
하나님께 새벽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이어가자고 나오게 되었다.
그것이 오늘날의 새벽예배의 원류이다.
선교의 토착화에 있어서 그 나라의 전통문화를 기독교적으로 토착화시킨 긍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새벽예배가 성경에 나온 것이며, 예수님도 행하셨다는 근거자료들을 내걸지만,
그것은 한국의 새벽예배를 교리적으로 합리화시키는 작업일 뿐이다.
그렇다고 치면, 현대에 생긴 종교적 산물을 성경의 문자로 들이댄다면 이단될 것이 뭐가 있겠나.
5. 토착화의 신앙화
토착화 신학을 이상한 이단쯤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낸다.
우리나라의 새벽예불을 새벽기도로 기독교가 더 좋게 활용한 예를 토착화라고 한다.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복음전파와 신앙인의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 충분히 기독교가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중동 아랍 땅에 기독교를 전파한다면, 그들의 언어로 하나님을 부르는 '알라'라고 부르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한국에 '엘'이나, 'God'로 전하지 않고, 우리의 고유 언어인 하나님을 썼으니 이 또한 선교언어의 토착화 작업이 아니겠는가?
새벽기도는 긴 세월을 거쳐 오늘날 산업사회의 불편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주5일근무제 확대로 인해 주일성수의 문제도 민감사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과연 토요일로 예배를 옮길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어떻게 해야하나 하며
신학자와 정치가들이 고민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예수님의 새벽기도와 초대교회의 축제적 예배의 전통을 따르는 자손으로서,
다시한번 이 시대로 토착화시킬 필요가 있다. 기존의 새벽예불 드리는 듯한 새벽예배가 아니라.
새벽예배 후, 아침식사와 출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여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건조한 사회에 살면서 영성의 유지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피폐된
조이조각처럼 허공을 날라다닐 지 모른다.
자신의 영성생활을 소중히 지키며,
급속도로 변하는 시대를 해석할 줄 아는 눈과,
성경을 통해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기울이는 귀와
기도를 통해 삶을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힘찬 발과
일기를 써내려가듯 섬세하게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손과
자신을 하나님 앞에 굴복할 줄 아는 무릎과
공동체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려는 아침의 달콤함을
그 어떤 바쁨과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을 시간과의 싸움, 잠과의 싸움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맘에도 없는 억지로의 참여가 자신을 더 타성에 젖게할 수도 있다는 것은 알려주고 싶다.
새벽기도를 드리고 있는 자신의 실존체험, 정체성 회복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자신은 새벽예불을 드리게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고 본다.
기독교는 당시에 새벽예불의 형식을 들여오면서
결코 감격적이고, 역동적인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출처: 국민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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