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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사 |
▣ 명령번호 1428-326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 인민위원회 및 중앙위원회는 아래와 같이 명한다. 일본의 간첩행위가 극동지방에 침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한다. * 연해주 극동국경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한인들을 카자흐스탄과 아랄해, 발하쉬 호수 및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으로 이주 시킨다. * 지체 없이 추방을 시작하여 1938년 1월1일까지 추방작업을 종결한다. * 한인들이 재산, 농기구 및 가축을 갖고 이주하는 것을 허락한다 * 이주자들이 남기고 가는 동산 부동산 및 파종된 종자에대해서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 추방시 발생하는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하여 조치를 취해야 한다. * 카자흐스탄 공화국,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인민위원회는 한인들의 거주 지역과 주거지를 결정하고 이주자들이 경제적 적응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한다. * 국가철도는 한인들을 극동지역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옮기는데 있어 적시에 기차 편을 제공한다. * 이주경로, 출발하는 이주자 수, 도착하는 이주자 수, 그리고 해외로 이주하는 이주자 수를 10일마다 전보로 보고해야 한다. * 한인들이 이주해가는 지역 경비를 강화하기 위하여 국경수비대를 3000명으로 증원한다. * 인민위원회는 한인들이 비운 곳에 국경 수비대가 주둔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
▣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스탈린 /1937.9.11 ·1937년 9월 21일 -11월 15일.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한인들 전원 중앙아시아(6천㎞) 강제 이주당함. 우즈베키스탄 16,272가구 76,525명 이주, 카자흐스탄 20,170가구 총 95,256명 이주.(총 36,422가구. 총 171,781명 이주) 이주 전 한인 지식인 2,500명 총살형. 강제 이주는 지식인의 사전 처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소리 소문 없이 끌려간 수천 명에 달하는 한인 지도자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곧이어 진행된 강제 이주에 대한 통보 역시 출발 며칠 전에야 이루어졌다. |
이주 통보 이후 여행이 중지된 상황에서 거의 맨몸으로 이들은 정든 땅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곡식의 씨앗은 잊지 않았다고 하니 한인들의 농사에 대한 집념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화물차와 가축 운반 차를 개조한 차량에 짐짝처럼 실린 이들은 매서운 시베리아의 삭풍 속을 한 달여 간 달려 중앙아시아에 도착했다. '먹을 것을 전혀 공급하지 않아' 기차가 석탄이나 물을 보충하기 위해 역에 서면 간이 상점에 뛰어가 '빵 등 사람 먹는 것은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사다 먹으면서' 여행을 했다. 열차에 화장실이 없었으며 역 구내에 열차를 세우면 모두가 내려 대소변을 본다고 '역도 아닌 허허벌판'에 차를 세웠다. 마른 음식을 계속 먹으며 고통을 겪다가 열차가 섰을 때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지피고 국물이라도 끓이려고 하면 열차가 떠나곤 하여 제대로 끓여 먹지도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히 여린 노인과 어린이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여행 중에 아이들 사이에 홍역이 발생하여 유아 사망률이 60%를 상회하였다. 여행 중에 가족이 여러 열차로 흩어져 이산 가족도 다수 발생하였고 사고도 발생하였다. 한인들이 새로운 정착지에 도착한 후 수용 시설이라곤 전혀 없는 허허벌판에 내려 놓았다. 그 무서운 겨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1938년도의 인구 표본 조사를 보면 1천 명 당 42명이 사망했으며 유아 사망률은 20%나 되었다. 특히 고통스러웠던 기간은 이주 첫해 겨울부터 이듬해 농사를 짓기까지의 기간이었는데 토굴이나 창고, 마구간 등을 개조하여 겨울을 났으며 방바닥은 맨 땅이었다고 한다. 강제 이주 이후 한인의 거주 이전은 제한되었다. 한인들은 일정한 거주 구역이 명시된 신분증을 소지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적어도 1953년까지 약 16년 간 집단적으로 수용소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민족 교육이 금지되었음은 물론 국가 기관 취업과 취학에도 제한이 있었다. 사회 정치적 진출도 사실상 봉쇄되어 있었다. |
이주자들은 당시 짐을 챙기는데 24시간이 주어졌다고 한다. 일주일 전에 사실을 안 사람들도 묘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식탁, 의자 등 가구를 팔려 해도 이미 아무도 사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꾸르-우르민스끄이ㅡ |
출처 : 사랑과 용서
글쓴이 : 망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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