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가 헌법 제1조인 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어린아이들까지 노래를 부를 정도로 유명해진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    이건 북한 헌법 제1조이다.


  美연방 수정헌법 제1조는 훨씬 장문이다.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앙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그럼 이런 헌법은 어떨까?
  "간통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한 국가의 헌법, 그것도 제1조에 이런 조항을 못밖은 나라는 어디일까. 우선 그런 나라가 있으리라고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몽골 세계제국 헌법, 즉 예케-자사크(Yeke Jasag)가 그렇게 돼 있다. 예케 자사크는 13세기에 칭기스칸이 유목민을 통일하면서 선포한 대법령이다. 당시 칭기스칸과 그 후계자들의 통치권이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뻗쳐 있었으니, 이 조항은 전 세계인의 헌법이었을 것이다.

간통 정도를 사형에까지 처한다?  인류사상 가장 큰 제국을 일군 몽골유목민들이 헌법 제1조에 이렇게 과중한 형량을 경고하며 간통을 금지시킨 까닭을 정착사회는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유목민의 시각으로 봐야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네트워크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유목민들은 고립되면 죽는다. 어떤 경우에도 집단이란 울타리를 이루지 않으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이처럼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을 이기기 위해서 그 어떤 내적 이완도 용납되지 않는 신의의 공동체, 믿음의 사회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공동체의 핵심은 무엇일까. 가정이다. 가정이 흔들리면 공동체는 곧장 무너진다.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이루는 것이다. 가정이 굳건하려면 무엇보다도 남편과 아내 간에 신의와 믿음이 지켜져야 한다.
  무엇이 남편과 아내간의 신의를 깨트릴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행동일까. 간통이다. 간통이야말로 가정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해체하는 암(癌)적인 행동이다. 이런 시각에서  몽골유목민들은 헌법 제1조를 만들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법의 선포자인 칭기스칸은  적장에게 강간당해 적장의 자식을 잉태한 아내 버르테를 아무런 조건없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버르테는 메르키트 족장의 동생인 칠게르에게 납치된 후 그의 첩으로 2년을 함께 살다가 칭기스칸에 의해 구출된다. 그때 버르테는 만삭의 몸이었다.

칭기스칸은 왜 아내를 사형에 처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내의 잉태가 간통이 아니라 강간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몽골제국 헌법 제1조의 핵심이 담겨있다. 강간은 남녀 간의 약속 파기가 아니다. 운명일 뿐이다. 그래서 간단히 용서되는 것이다. 간통을 처벌하는 것보다 강간을 그냥 넘기는 그들의 이런 실사구시의 철학을 남녀 간에 차별의 만리장성을 쌓고 살아온 정착민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정착민들은 아마도 간통한 아내보다 강간당한 아내를 더 용서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런 정착민들의 눈에는 형사취수(兄死取嫂, 형이 죽었을 때 형수를 아내로 삼는 것)도 짐승만도 못한 짓으로 생각될 것이다. 당시의 유목사회에서는 남자를 잃은 여인네들을 그렇게 살리는 것 외에는 도울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도무지 미치지 않을 것이다. 몽골제국 헌법에 담긴 유목민들의 사고방식은 앞으로도 거론할 계획이다.

 

 

칭기스칸 헌법 제2조 "짐승을 강간한 자는 사형"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근교 투브아이막에 말(馬)의 동상 하나가 기세 좋게 서 있다.(아이막이란 우리나라로 치면 광역자치단체, 도(道)에 해당한다. 기초자치단체는 솜이라고 한다.)

동상의 모델은 베트남에서 되돌아온 말이다. 1961년쯤 일이다. 프랑스 군대가 월맹의 게릴라전의 천재 보구 엔 지압 장군에게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완패한 뒤 떠나버리자 공산주의의 팽창을 우려한 미국이 군사고문단을 파견, 월남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또 소련을 중심으로한 공산주의 진영은 그들대로 월맹을 지원했다. 사실상 베트남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당시 공산주의 진영에 속했던 몽골은 가난해서 도울 게 마땅치 않았다. 몽골지도자들은 궁리 끝에 베트콩들의 수송작전에 쓰도록 말 1천마리를 원조해주기로 하고 철도를 이용, 중국을 종단해 월맹의 수도 하노이로 보냈다.


그런데 그중 한마리가 낯선 땅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이 타고 갔던 길고도 긴 철길을 따라 몽골로 되돌아왔다. 고향의 주인이 그리워 중국 대륙 하나를 종단해 버린 것이다. 그 거리가 직선거리로도 무려 3,200킬로미터에 달한다. 한때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전서 돌아온 진돗개의 여정에 비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거리이다.

말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몽골 여론이 들끓었다. 인간이 고생해야지 왜 죄없는 말, 동지 같은 말을 괴롭히느냐는 것이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몽골 정부는 주인으로부터 말을 사들여 걸프렌드(암말) 10마리와 함께 현 몽골 대통령궁이 있는 성산(聖山) 보그드산에 방면했다. 매우 미안하다, 이제부터 편안한 삶을 살아라는 사죄였다. 그 말은 암말들과 함께 제 수명을 자유롭게 누리다 죽었다. 말이 죽자 몽골 사람들은 다시 그 말을 기리기위해 동상을 세웠다. 동상이 있는 투브아이막은 그 말의 고향이다.  

이 사건은  정착민들에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하나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뜨거운 사랑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칭기스칸 제국 헌법 제 2조이다. “수간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제 1조, 즉 “간통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앞서 거론한 적이 있다. 


유목의 고향 몽골에는 지금 남한의 여덟 배에 이르는 대지 위에 그 20분의 1이라 할 만한 인구가 살고 있다. 1인당 경유 면적이 남한인의 160배에 달하는 것이다. 그 고립무원의 대지 위에서 친하게 지낼 것이라고는 동물밖에 없다. 따라서 그곳에서 약자에 대한 강자의 횡포가 가장 적나라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인간과 동물간의 관계에서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 상영한 바 있는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꼬]에는 육체적 힘은 넘치지만 정신적 사유는 박약한 사내가 여성의 부족으로 결혼할 방도가 없어지자 수시로 이웃집 개를 겁탈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 유목민 사회에서 이같은 일은 아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요즘 우리 사회에서 거론되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 보호법 같은 것을 동물계에 적용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헌법까지 동원해 동물학대를 막고 인간과 똑같이 한 가족으로 보려했던 유목민들의 심성은 그들의 시에서도 수없이 반복해서 나온다.

        나의 가을에 태어난 어린 양아!

        이마엔 하얀 줄무늬가 있는 너를

        수천 마리의 양떼들 가운데에 있어도

        나는 항상 알아 볼 수 있구나!

        메에!메에! 우는 소리

        오라면 항상 나에게 뛰어오네


        (생략)


        우리에서 태어난 후로

        우리 둘이서 늘 놀았다네

        무릎을 꿇고

        엄마 젖을 빠는 너

        나의 가슴에서

        얼마나 반갑게, 얼마나 반갑게, 나를 핥는다

이것은 몽골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 나착도르즈(D. Nacagdori)가 쓴 [가을에 태어난 어린 양]의 일부인데, 인간과 동물의 애틋한 관계가 마치 가족간의 우애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유목민들에게 동물 학대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초원에 가면 타르박이라는 야생 쥐가 사는 구멍이 있다. 이 구멍에 오줌을 누었다가 몽골인들에게 두고두고 원성을 들었다는 어느 한국인의 경험담은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유목민들은 호랑이와 사자를 교배해 라이거를 만든 일을 자랑스러운 기술 발전이 아니라 생태계를 뒤흔드는 인간의 오만이라 생각할 정도이다. 자. 그러면 정착민들은 스스로에게 따져 물어볼 일이다. 도대체 야만이란 무엇이고 문명이란 무엇인가.

자료; http://bbs.chosun.com/file/upimages/2018112/1/0624[20050624114921].jpg
 
 
몽골선교, 교파초월 연합 지향한다

몽골 한인선교사회 울란바타르 선언문 발표

 

장창일 기자 jangci@kidokongbo.com

 

[몽골 울란바타르=장창일기자]몽골에서 사역 중인 한인 선교사들이 몽골선교의 청사진을 담은 선언문을 채택했다.

지난 15일~18일까지 몽골 울란바타르 사랑의 빛 센터에서 열린 몽골 한인선교 15주년 기념대회 마지막 날, 선교사들은 회의를 갖고 '2006 몽골 울란바타르 선언문'을 채택했다. 몽골의 선교를 위해 선교사들 간에 효과적인 네트워크 구축과 연합사역을 지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선언문을 통해 선교사들은 몽골 선교에 대한 비전을 재확인했다.

                 

                                 몽골선교 15주년 대회 마지막 날 몽골 한인선교사회는 회의를 열고

                                  2006 몽골 울란바타르 선언문을 채택했다. 사진/장창일기자

 

선언문에는 또 △몽골의 지방 복음화를 위해 차세대 지도자를 발굴ㆍ양육할 것 △몽골교회와 연합해 미개척지로 선교자원을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몽골교회가 세계선교에 기여하도록 도울 것 △선교사들 간에 효과적인 네트워크 구축과 연합사역 지향할 것 등의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몽골 한인선교사회 회장 양재철목사는 "울란바타르 선언문은 향후 몽골 선교사들이 사역을 해 나가는 데 필요한 나침반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연합사역을 위해 선교사들이 노력하고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5주년 기념대회 주강사인 박종순목사는 "몽골 선교사들이 지금까지는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연합사역을 잘 감당해 왔지만 앞으로도 이런 전통을 지켜가는 게 중요하다"면서,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이같은 비전을 담아 선교사들의 의견을 모은다면 다른 선교지에도 큰 귀감이 될 것"이라며 선교사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입력 : 2006년 08월 22일 17:47:29 / 수정 : 2006년 08월 26일 10: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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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ts.tv/prog/content.asp?PID=P368&DPID=51679  방송보기

 

몽골 한인 선교 역사
2006-08-22
동영상(300K) 300K


몽골은 교단을 초월해 연합활동을 펼치는 가장 모범적인 선교집니다. 현재 몽골에서는, 15년 동안의 한인 선교 역사를 되짚고, 미래 사역을 위한 준비가 한창 인데요. 이윤정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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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몽골 울란바트르에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세우고 의술과 복음을 전했던 대암 이태준 선생. 현재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이태준 선생의 흔적은, 복음의 씨앗으로 몽골에 뿌려졌습니다.

사회주의 체제 동안 복음의 불모지였던 몽골 땅에서, 1991년 7월 강영순 선교사가 최초 몽골 한인 선교사가 됐습니다.

int 강영순 선교사//울란바트르 영원한생명교회

교회개척을 중심으로 사역을 펼친 강영순 선교사를 비롯해, 임태수, 안교성, 윤순재 선교사 등이 몽골 땅을 밟고, 교육, NGO, 의료 사역을 펼쳤습니다.

몽골 한인 선교 15주년 기념대회 패널토의와 강의에서는, 초기 한인 선교사들의 활동을 정리하고, 미래 사역방향을 제시하는 시간이 마련됐습니다.

초기 선교사들은, “입국 당시, 사회주의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는 선교는 교단을 초월한 연합 활동임을 깨닫고 결속력 있는 사역을 펼쳤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사역 중인 젊은 선교사들은, “연합 활동의 전통을 이어받아 몽골 전역에 복음을 전하고, 현지인과 함께 하는 선교를 해나가겠다”고 다짐합니다.

int 박종순 목사//한국세계선교협의회 대표회장
int 권오성 선교사//덴진미앙가 반석침례교회

STD 교단을 넘는 연합사역으로, 큰 열매를 맺고 있는 몽골 한인선교. 15주년 기념대회를 통해 지속적인 일치와 협력을 다짐하며 건강한 선교지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몽골 울란바트르에서 CTS뉴스 이윤정입니다.

 

몽골 한인 선교 15주년 기념대회

http://cts.tv/prog/content.asp?PID=P368&DPID=51642  방송보기


15년 전 복음의 불모지였던 몽골에서, 현재 1%가 넘는 국민이 기독교인이 되기까지는 한인선교사들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는데요. 몽골한인선교 15주년을 기념하는 대회가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열렸습니다. 이윤정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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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대륙 중앙에 위치한 몽골.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진 1990년대, 개방의 물결이 일면서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몽골 선교사역중 한인 선교사들의 연합된 힘은, 4만 3천 여명의 몽골 기독인을 양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몽골 한인 선교 15주년을 맞는 기념 대회가 15일부터 18일까지 울란바트르 사랑의 빛 센터를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양재철 목사//몽골한인선교사회 회장

몽골한인선교사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세계선교협의회가 함께 주관한 이번 대회는. 한인선교사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함께 몽골 현지인들을 초청하는 행사가 더불어 열렸습니다.
std 대회 첫 날, 몽골 현지인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은혜의 말씀과 기쁨의 찬양이 선교 센터를 가득 채웠습니다.

3박 4일 동안 집회와 부흥회를 통해 말씀을 전한 박종순 목사는, “교단을 초월한 한인선교의 협력 활동이 선교의 좋은 결실로 이어진 것 같다”며 앞으로 현지인을 통한 선교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을 당부했습니다.

박종순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칭기즈 칸의 기상이 살아있는 몽골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린 한인선교사들. 기념대회를 통해 지난 15년을 돌아보며, 현지인과 함께 하는 미래 선교를 꿈꾸고 있습니다. 몽골 울란바트르에서 CTS뉴스 이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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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방문시 금기 사항


o 기둥에 기대고 서거나 앉기

o 두 기둥 사이로 지나다니기

o 문 정가운데에 서기

o 화로에 쓰레기 버리기

o 연장자의 면전으로 지나가기

o 물건을 받을 때 왼손으로 잡기

 (반드시 오른손으로 주고 받을 것)

o 타인의 모자 써보기

 (만약 써볼 경우 모자 안쪽에 침을 2-3번 뱉고 써 볼것)

o 손님들끼리 외국어로 오래 말하기

o 칼로 사물을 지칭하기

o 불을 향하여 발뻗고 앉기

 

□ 몽골 목민 가정 방문 때 주의 사항

 

o 왼손으로 문을 열고 오른발부터 들어간다.

o 들어갈 때 문지방을 밟으면 안 된다.

o 문짝이 둘일 때 들어가면서 오른손으로 문을 잡아서는 안 된다.

o 몽골전통집인 게르에 들어가고 나올 때 고개를 숙인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를 부�쳐서 다칠 수 있다.

o 집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o 집주인이 좌석지정을 해 주지 않으면 들어가서 남성은 왼쪽으로, 여성은 오른쪽에 앉는다. 만약 오른쪽에 공간이 없으면 왼쪽에 앉는다.

o 연장자나 인솔자가 상석에 앉는다.

o 가정방문 때 차나 마유주를 대접받는데, 이를 거절해서는 안 되며, 맛을 본 뒤 내려놓아도 된다.

o 유제품 등의 먹거리를 접시에 담아서 내면 손을 대서 맛을 봐야 한다.

o 코담배로 인사를 청하면 조심스럽게 오른손으로 받아서 향을 맡은 후 뚜껑을 살짝 연 채로 돌려준다.

   만약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옆사람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o 차나 마유주가 든 그릇을 바닥에 놓아서는 안 된다.

o 가정방문시 미처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선물하거나 집주인과 담배로 인사를 주고 받아도 된다.

  ♣ 여행 시 주의사항

 ▷몽골은 여행자들에게 안전한 곳이다. 그러나 부주의로 간혹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므로 아래의 주의사항을 알아두자.

  ◇ 외출 시 큰돈은 되도록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야외 시장이나 버스 안에서 가끔 소매치기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 길 건널 때 주위를 살피고 건너야 한다. 신호등도 없고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도 흔치 않다.
◇ 음식물을 살 때는 가급적 큰 슈퍼에서 사야 싱싱하고 깨끗한 물건을 살 수 있다.
--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는 "미니델구르"라는 체인점을 이용하면 좋다.
◇ 울란바토르 전역의 수도관이 낡아 수돗물을 틀면 녹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처음 3-4분 정도는 계속 틀어놓은 뒤 사용하고 절대 마시지 않는다. (마시는 물은 사서 먹을 것)
◇ 여권은 꼭 사본을 준비하여 여권과 따로 보관한다.
-- 호텔 체크인이나 은행에서 환전할 때 여권 사본을 제시해도 상관없다.
◇ 몽골 출국 시 공항에서 12$ 비용이 있다.
◇ 박물관이나 사원 안에서 사진 촬영을 할 경우 미리 돈(약 5.000투그릭)을 내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몰래 사진을 찍으면 제재 뿐만 아니라 몇 배의 벌금을 물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야간에 인적이 드문 길로 다닌다거나, 몽골인의 집을 방문할 경우 취객이나 사나운 개 등을 조심해야 한다.
◇ 겨울에 여행할 경우 내의, 방한모, 목도리, 두툼한 파커 등으로 매서운 몽골의 추위에 대비해야 한다.
-- 바람은 별로 불지 않는다.  

 

▷몽골은 전통적으로 샤머니즘이 강해서 도시, 지방을 막론하고 몽골인들 사이에는 사소한 금기가 많다. 여행자가 알아두어야 할 간단한 몇 가지만 살펴보자

  ◇ 실내에서 모자를 쓰고 있거나 문턱, 부뚜막을 밟는 일
◇ 담뱃대나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의 머리를 가리키는 것
◇ 겔 안 난로 아국이 속으로 담배 꽁초, 피 묻은 휴지 등 쓰레기를 버리는 것
◇ 뜻하지 않게 상대방의 발을 밟으면 곧바로 악수를 해야 한다. 몽골인들은 상호 가정방문이 많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물론이고 외국 사람일 지라도 자신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평소에 작은 것이라도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을 좋아한다.
가정을 방문할 경우에는 하찮은 것이라도 반드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예의다. 대개 보드카 1병과 초콜렛, 사탕 및
한국산 T 셔츠 등 한국제품이면 더욱 좋다.
상대방의 부인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을 때는 화장품 정도가 괜찮다.
집에 들어가서는 식구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부터 "셴베노"(안녕하세요)라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리고 주인이 권하는 자리에 앉아 주인이 권하는 수태차를 받는다.
가끔 몽골인들은 외국인이 불편할까봐 신발을 신고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나 벗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이다.  

 

  ▷몽골의 겔(전통가옥) 방문 시 아래 사항을 숙지하도록 하자.

몽골인들은 우리나라를 "솔롱고스(무지개)의 나라"라 하여 상당히 우호적이며, 우리나라 사람이 방문하면 환대를 해준다. 거기에 맞춰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문을 열고 들어가서 정중히 인사를 한다.
주인이 권하는 자리에 앉아 절대 문지방을 밟아서는 안 된다.
보통 주인이 음식을 많이 접대해 준다.
특히 마유주((술)을 받게 되면 두 손으로 다 마시고 혀로 컵을 두 번 정도 핥아주면 좋아한다.
몽골인들은 끊임없이 술을 권한다.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실 필요는 없고 정중히 거절하면 된다.
그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독한 술을 잘 마셔서 똑같이 술잔을 받아 마시면 대취하기 쉽상이다.

 

▷일상생활 및 행동의 주의할 점

    몽골인들을 처음 만나게 되면 우선 그들의 모습이 우리와 많이 닮았기 때문에 별로 낯설지 않고 친근하며 부담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들 역시 우리를 별로 낯설지 않게 생각하며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면 더더욱 친절하게 대해준다. 그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무척 좋다. 그들은 현재의 몽골이 가난하며 발전하지 못했고 또한 몽골인들의 국민성이 나태하고 게으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 행여 상대하는 외국인들이 어떤 불편을 겪지 않나 혹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무척 염려하며 잘 챙겨주는 편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가를 별로 바라지도 않는다. 고위직에 있거나 많은 젊은 지식인들 중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잘 하는 반면 영어를 잘 하지 못하므로 러시아어를 모르는 우리들이 그들과 만나 사귀는데 몽골어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친절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의 그 친절함이 관공서나 기타 업무에 관련될 때에는 무척이나 불친절하다. 다시 말해, 서비스 정신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권위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이지만 그들은 자기의 일은 자기만의 특권이라는 인식이 강해 보잘것없는 곳에 보잘것없는 직책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기의 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업무관계를 떠나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금방 가까워지고 그 다음부터 업무관계로 다시 그를 찾아가면 어느 누구보다도 일이 빨리 끝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정이 지나쳐 터무니없는 것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적당한 변명으로 거절하면 된다. 여하튼, 처음에는 다가가기 서먹서먹한 사람일지라도 조금만 친해지면 금방 오랜 친구처럼 대하는 몽골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더 정에 약한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러나, 이처럼 정이 많은 몽골인을 만나는 데에는 최소한 지켜야 할 예절이 있는데, 몽골인과의 교류 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적어본다. 

■ 존칭사용
몽골말에는 상대방을 부를 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너와 당신을 의미하는 2가지 말이 있다. 우리말의 너는‘치’, 당신은‘타’로 발음이 되는데, 친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치’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 2 살만 위인 사람에게도 대부분 ‘당신’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몽골사람들은 6~7년 정도의 차이는 대개 서로가‘치’라고 반말을 한다. 이는 버릇이 없다기보다는 상대와 그 만큼 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자기에게 반말할 때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버릇없는 것에 화가 나거나 다시는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가 않은데 그러한 마음을 일찌감치 버리고 상대방이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혹은 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또 하나의 이유는 외모상 한국인들은 몽골인들 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항상 건조한 곳에서 생활하여 피부가 꺼칠해지고 따가운 햇볕에 피부가 그을려 그들은 상대적으로 한국인들에 비해 5∼6살 혹은 열살 이상 나이가 많아 보인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일찍 결혼을 하므로 아무래도 남자들은 더 빨리 늙는 것 같다. 따라서, 그들은 나의 나이가 상대방 몽골인 보다 훨씬 많아도 겉으로 느끼질 못하므로 처음 만날 때 자기소개를 하면서 자연스레 내 나이를 얘기하는 것도 괜찮다.
 
많은 몽골인들은 친구들의 연령차가 정말로 다양하여 7, 8살씩 차이가 나도 내 친구 운운하며 서로가 잘 어울린다. 가끔 멋모르는 한국인들이 어린놈이 반말한다고 분을 삭이며 그들을 버릇없는 놈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그들과 대화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상황에 따라 xx 씨라고 불러야 할 때가 있는데 고아이(Mr.)라고 부르면 자연스럽다. 선생님에게는 바크샤라고 부르는 것이 예의이고 나보다 나이가 5∼15여살 많고, 내가 정말 친해지고 싶을 때는 상대방을 아하(형)라고 부르는 것도 꽤 친밀감이 있어서 좋다.
 
실례로 몇 년 전 삼성의 한 직원이 이곳의 한 거래선에 상담을 하러왔다가 하루종일 상담을 해도 결말이 나지 않고 지치자 통역에게 몽골어로 형이 무어냐고 묻고는 상대방에게 아하 한번만 도와주세요 라고 말했는데 한치의 양보도 없던 상대방이 그 얘기를 듣고는 호탕하게 큰 소리로 웃으며 우리가 원하는 가격에 상담을 마쳤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관계는 그 이후에도 항상 형과 동생처럼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 식사시 예절
몽골사람들은 수태차라고 하는 차를 즐겨 마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이 몽골인들은 수태차를 마시는 것이다. 수태차는 끓는 물에 우유가루와 짭짤한 맛을 내는 약초를 섞은 것으로 익숙해지면 보리차 마시듯이 마시게 된다. 유목생활을 하던 몽골인들은 물이 가깝고 건초가 많은 곳에 겔을 짓고는 가축을 방목하였다. 따라서, 항상 물을 길어다가 조금씩 아끼며 사용했으며 겨울에는 아예 얼음덩어리를 집에다 갖다 놓고 그것을 깨서 끓여먹었다. 그러다 보니, 물이 깨끗할 리가 없고 또 추운   날씨를 이기기 위해서는 항상 물을 끓여 먹어야 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몽골인들은 항상 육식을 하므로 그 기름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중화시키는 무언가를 먹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수태차인 것이다. 수태차는 육식을 하는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고 젖냄새에 익숙해 있는 그들에게는 아주 향기로운 차인 것이다. 몽골인 집을 방문하면 이들은 항상 테이블 위에 대개 겉이 빨간 길쭉한 보온병이 놓여있는데 이 안에는 항상 따뜻하게 보온이 되어있는 수태차가 들어있다. 손님이 오면 몽골인들은 먼저 상대방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한다음 수태차를 사기그릇에 따라주며 두손으로 건내준다. 이때 받는 사람 역시 두손으로 정중하게 받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한다(몽골어로 '바야르랄라'). 그리고는 바로 입에다 대고 조금이라도 마셔야 하는데 한번에 다 마실 필요는 없지만 남기면 실례가 된다.
 
처음 마실 때는 젖냄새도 나고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며 가끔은 우유 찌꺼기가 다 풀어지지 않아 뭉쳐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몸에 나쁘지 않으니 꾹 참고 천천히 마신다. 몽골인들은 차나 술을 상대방에게 권할 때 항상 오른손가락을 모아 잔 밑부분을 받쳐들고 왼손으로는 오른 팔꿈치를 받들면서 권한다. 하지만, 권하는 사람이 왼손잡이 일 때는 반대로 해도 상관없지만 받을 때는 항상 왼손으로 오른 팔꿈치를 받들며 잔을 받아야 한다. 나름대로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몽골의 전통옷인 델은 소매가 길어 가만히 팔을 내려놓으면 소매가 손을 덮는다 -이는 추운 겨울에 손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가운데 고기들과 술잔이 놓여있는 상위에서 음식을 먹거나 술을 따르고 권할 때 소매가 유난히 크고 길어 중간부분을 끌어당기며 받쳐주지 않으면 음식을 먹는데 아주 불편할 뿐 아니라 옷이 음식물에 닿아 옷과 음식이 더러워진다.
 
음식을 먹을 때도 주인이 권하면 역시 두 손으로 받아 감사의 표시를 하는데 이때는 잔이 아니라 그릇이므로 두손을 내밀며 그릇을 정중하게 받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음식이란 상대방의 성의를 생각하여 많이 먹는 것이 좋으나 상황에 따라 이미 배가 부른 경우나, 혹은 느끼해서 도저히 먹지를 못하겠다면 음식을 하나 입에다 넣어 맛을 본 후 적당한 핑계를 대며 음식을 내려놓는 것이 좋다. 맛을 본 것 자체가 예의를 지킨 것이므로 구태여 들어가지도 않는 음식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간신히 먹을 필요는 없다. 

■ 가정 방문시
몽골인 가정을 방문할 경우에는 하찮은 것이라도 반드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예의다. 대개 보드카 1병과 초콜렛이나 사탕 정도면 된다. 그러나, 상대방의 부인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을 때는 화장품 정도가 괜찮다. 설사, 시간이 없고 가게가 문을 닫아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돈을 주는 것도 일반화 되어있다 (깨끗한 돈으로 2,000 투그릭 정도면 알맞음).
 
집에 들어가서는 식구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부터 ‘사잉 밴오?’(안녕하세요) 라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면 된다.(명절날은 다름) 그리고, 주인이 권하는 자리에 앉아 주인이 권하는 수태차를 받는다. 가끔 몽골인들은 외국인이 불편할 까봐 신발을 신고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나 벗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이다.(아파트나 목조건물 등에서)

※ 몽골 게르(겔) 방문 시 다음 사항에 주의해야 한다.
①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인사말을 한다.
② 중앙의 난로 옆에 좌우로 2개의 기둥이 나란히 놓여있는데 왼쪽 기둥의 바깥쪽에 서서 주인이 권하는 자
리에 앉는다. 두 기둥사이로는 오고 가고 할 수가 없다.
③ 자리에 앉아서는 그들이 주는 수태차를 정중하게 두 손으로 받아 마신다.
④ 용무가 끝나고 나올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뒤로 되돌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앞쪽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
아 나와야 한다.
⑤ 절대 문지방을 밟아서는 안 된다.
⑥ 인사말을 한다.
* 명절날에는 인사할 때 서로가 팔을 벌리고 껴안으며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의 뺨에 자기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2번 정도 마신다. 

■ 시간관념
몽골인들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별로 없다. 보통 30분 정도 늦는 것에 별로 미안해하지 않는다. 이는 급할 것이 없는 민족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우리마저 그럴 수는 없는 일로써 그들에게 무언가를 느낄 수 있도록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켜주는 것이 좋다.

■ 복장
① 정장은 양복과 흰색 긴팔 와이셔츠에 넥타이 이다.
② 명절 때는 몽골 전통옷인 델을 입는 것도 괜찮다.
③ 평상시 너무 어리게 입거나 추잡하게 입지 아니한다.
④ 명절 때(신찔, 차강사르) 방문시 항상 모자를 착용한다. 이들은 명절 때 손님이 올 경우 주인이나 손님이나
모자를 쓰고 상대방을 맞는 것이 예의이다.
⑤ 몽골인과 밖에서 만날 때는 절대로 반바지를 입지 말며 부득이한 경우에 운동복을 제외하고는 삼가는 것이
좋다.

■ 검지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지 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리킬 때 검지손가락을 사용하는데 이는 몽골에서는 대단히 실례되는 행동으로써,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인 모르게 이러한 행동을 했다면 즉시 사과를 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 무언가를 가리킬 때는 손바닥을 펴서 가리킨다. 

■ 음주예절
몽골인들은 손님이 오면 항상 준비해둔 보드카 및 여름철에 시골에서 가져온 마유주(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서 막걸리와 비슷한 맛임) 등을 권하는데 보드카는 조그만 잔을 이용하지만 마유주는 커다란 대접에다 가득 담아 준다. 술을 주고받을 때는 보드카의 경우 차를 마실 때와 같이 왼손바닥으로 오른 팔꿈치를 받쳐 잡으며 오른 손가락을 모아 술잔을 받으면 되고 마유주는 대접에다 주므로 두손으로 대접을 받으면 된다.
마유주는 처음 마시면 대개 설사를 하게 되는데 위장을 깨끗이 해준다고 하며 설사 후에는 몸이 아주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마유주를 마시면 별로 취하지는 않고 배가 불러오는데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 또한 보드카나 몽골 아르히 등을 마실 때에는 왼손으로 술잔을 잡고 오른손의 네번째 손가락을 술에 대어 술을 묻힌 다음 얼굴 앞으로 갖다대어 먼저 하늘을 향해 엄지손가락으로 튀기고 다음엔 앞을 향해 그리고는 땅을 향해 튀긴 다음 입에다 갖다대는 것이 예의인데 마유주를 마실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는 하늘과 땅에 감사하고 또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몽골인들은 술을 마실 때 끊임없이 술을 권한다. 그렇다고 다 받아 마실 수는 없으므로 보드카의 경우는 조금만 입에 대어 예의를 표하고 술을 못한다고 정중하게 얘기를 하면 괜찮은데 마유주는 약하므로 최소한 1 대접 정도는 마셔야 한다. 몽골인들 얘기로는 술을 받을 때 3잔까지는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 예의라고 하지만 적당한 핑계를 대고 정중히 거절하면 된다. 또한 한국은 술잔을 완전히 비우면 술을 따르지만 몽골에서는 술잔이 조금만 비워도 술을 따른다. 참고로, 몽골인들은 보드카나 마유주를 잘 받아 마시면 무척 대견스러운 듯 흡족해 하며 아주 좋아한다.

■ 흡연
몽골에서 흡연은 몇몇 장소를 제외하고는 가능하므로 주위를 살펴 금연표시가 없는 곳에서 피는 것이 좋다. 몽골 가정을 방문하다 보면 나이 드신 어른들이 있는 경우 인사를 할 때 그들은 소매춤에서 조그만 옥돌로 된 병을 꺼내어 정중히 건네준다. 이것은 하마링 타미흐(코담배)로서 두손으로 정중히 받아들어 뚜껑을 열고 뚜껑에 붙어있는 귀 청소기처럼 생긴 것을 구멍 속에 밀어 넣어 재(잎을 곱게 갈은 것)를 왼손가락 위(보통 둘째 및 넷째 손가락)에 조금 묻힌 다음 엄지손가락과 함께 비비면서 코로 들이마시면 되는데 진짜 들이 마시지 말고 시늉만 내는 것이 좋다.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대개 들이마시는데 재채기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리고는 다시 뚜껑을 닫아 정중히 두손으로 건네준다. 또한 공공기관에서 흡연 구역일지라도 옆 사람의 동의를 구한 후 피우는 것이 무난하며 손윗사람 앞에서는 담배를 되도록이면 삼간다. 이곳에서는 여성도 자유스럽게 담배를 피우며, 저항감을 표정에 담지 않도록 한다. 
■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
몽골에서 처음 만났거나 친하지도 않은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이며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이때, 끈질기게 여자의 나이를 물어보거나 혹은 무슨 띠인지 물어보는 것은 무례한 짓이며 상대에게 여간 부담을 주는 행동이 아니다. 생일 등은 물어봐도 상관없으며 정 상대의 나이가 알고 싶으면 친숙해져서 부담이 없어지면 그때 가서 나이를 물어볼 수는 있다.

■ 거리에서
① 몽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좌측통행이다.
②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반드시 신호를 지키며 보행신호 시에도 차가 오면 일단은 경계를 하는 것이 좋다.
(교통신호를 별로 지키지 않음)
③ 몽골은 우회전하자마자 횡단보호가 나오면 대개 차들이 서지 않고 바로 지나간다.
④ 야간에 택시를 이용하게 되면 콜택시를 이용하고 여자의 경우 야간에 혼자 택시를 타지 않는 것이 좋다.
⑤ 몽골인 대부분은 무단횡단을 하지만 가급적이면 무단횡단을 하지 말아야한다.
⑥ 큰소리로 사람을 부르거나 이야기하지 말고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니지 않는다.

■ 호텔에서
① 시내 고급 호텔의 경우 종업원의 서비스를 받으면 1$정도의 팁을 주나 지방에서는 팁을 줄 필요가 없다.
② 방에 비치된 호텔 안내책자를 먼저 읽어본다.
③ 노출이 심한 복장으로 복도나 로비에 나오지 않는다.
④ 방에 현금이나 귀중품을 놓지 않는다.
⑤ 방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 식당에서
① 음식값 계산은 후불이며 계산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② 몽골의 대부분의 식당 및 호텔 그리고 상점에서는 컴퓨터가 있다 할지라도 컴퓨터로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
라, 거의가 종업원이 계산기로 계산을 하므로 착오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③ 음식값을 계산할 때에는 반드시 현지화로 낼 수 있도록 하고 반드시 영수증을 받는 것을 습관화한다.
④ 식당에 들어가서는 종업원에게 동반자 수를 말하고 안내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종업원을 부를 때는 큰 소
리로 부르지 말고 손만 조용히 드는 것이 좋다.
⑤ 테이블 아래로 떨어진 수저, 포크, 젓가락 등은 다시 집어 사용하지 않는다. 

■ 선물
① 선물은 적당한 가격의 한국적인 상품이 좋다.
② 가정방문시 남자에게는 보드카 1병, 부인에게는 화장품류, 아이들에게는 사탕이나 초콜렛 등이 좋다.
③ 꽃을 주고 받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으며 꽃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가끔 꽃을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지만 그
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꽃만을 선물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 가령, 특별한 날, 남녀의 선물에 있어서 보드카 혹
은 초콜렛이나 사탕 등을 비닐종이로 싸고 장미꽃 조화 1송이를 꽂은 선물들은 흔하게 볼 수 있다.
④ 선물을 주고 받을 때는 일어서서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는다.
⑤ 선물이 준비되지 않았으면 돈으로 줘도 무방하다.(2~3천 투그릭 정도)
⑥ 고가품, 고액의 선물은 피한다.

■ 파티
① 초청장을 필히 지참한다.
② 작은 선물을 준비하여 주최자에게 준비한다.
③ 자기 소개를 할 명함 등을 준비한다.
④ 초청자 이외에는 추가 동반하지 아니한다.
⑤사전통보 없이 무단 불참하지 아니한다.
⑥무리하게 술을 마시거나 권하지 않는다.
⑦담배는 지정된 곳이나 양해를 구하고 핀다.

■ 종교
① 몽골인들은 대부분 티벳 불교인 라마교를 믿으므로 타 종교와의 논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② 사원 같은 곳에 가서 내부 및 신자들이 절하는 모습 등 촬영은 가급적 삼가도록 한다.

■ 쇼핑
물건을 살 경우 돈을 지불하는 방법은 상점에 따라 크게 2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하나는 국영 백화점과 같이 여러 종류의 가게가 한 주인에게 속해있는 경우에는 물건을 고른 후 그 물건의 가격을 종업원으로부터 받아 직접 계산대에 가서 돈을 치르고 그 영수증을 다시 종업원에게 갖다주어야 한다. 이때, 종업원으로부터 영수증을 받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가지는 슈퍼나 시장과 같이 개인이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물건을 고르면서 돈을 지불하면 되는데 대형 슈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우 영수증이 없다.
 
몽골에서는 아무리 물건을 많이 산다해도 깎아주거나 덤으로 서비스를 주는 법이 없으므로 애석해 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하르자흐나 텀자흐처럼 사람이 아주 많이 몰려드는 곳에 갈 때는 도둑을 맞기가 쉬우니 돈 간수를 잘해야 하며 그들과 부딪힌다 해도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낼 필요가 없다. 이곳에는 많은 몽골인들이 값싸고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항상 장사진을 이루는데 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고 접촉이 심해 한번 갔다오면 옷이 더러워져 빨아야 한다. 그리고, 계산시는 항상 다시 검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몽골인들은 계산할 때 거의 계산기에 의존하여 계산기가 없이는 정확한 계산이 나오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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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선교 가시려는 분 필독사항

선교사 비자를 너무 고집하지 말라

몽골에 오려는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한다.

1. 선교사 비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선은 비공식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 신문이나 잡지에 광고를 내는 것은 좋지 않다. 현재 한국에 있는 몽골 정부의 사람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입국하려고 한다는 것을 안다면 비자는 나오지 않으며 입국해서도 문제가 된다.

2.선교사 비자를 너무 고집하지 말라 우선 이곳에서 언어훈련을 해야 하니 학생 신분으로 입국하라. 이곳 대학의 초청장을 받거나 관광으로 들어와서 학교에 등록하는 절차를 밟으면 된다. 입국 6개월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초청장이 꼭 있어야 한다. 이곳으로 연락을 하면 초청장 발부가 가능하다. 영문 이름과 생년월일,그리고 입국하고자 하는 날짜를 연락하면 된다. 참고로 통신의 보안을 위해서 힘써 줄 것, 목사, 선교사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된다. 참고로 외국인들은 1년에 한번씩 거주 비자를 받아야 한다.이것을 받지 않앗을 경우 하루에 1$씩 벌금이던지 추방이다.

3.외국어 대학이나,국회 도서관에 가면 [몽,영,일,사전]이 있다. 그 사전을 복사해 와야 된다. 현재 몽한 사전이 없기 때문에 영어 사전이나 일어사전이 필요하다. 언어를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몽골 대사관에 문의해서 대사관 식구들에게 약간의 수업을 받을 수 있다.물론 약간의 사례를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일본어나,소련어를 공부하면 된다. 그러나 언어는 현지에 와서 직접하는 것이 가장 좋다.

4. 학비는 학교마다 차이가 있다.
* 국립대학-250$ 매달(6개월차로 선불하라고 요구함)
* 사범대-100$(에스페란토-110$ 매달)
* 아카데미-150$(에스페란토-210$,매달)
* 도서비-매달 30-40$
* INTERNATIONAL SCHOOL-매달 300$(1년치나 6개월치를 먼저 내면 할인이 된다. 유치원 과정과 국민학교 1-3학년 수준)


경제현황

이곳의 경제 현황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참고로 몽골은 물가 상승이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다. 한번에 300-600% 정도 오른다는 것을 감안하라.신문을 통해서 발표되는 것은 1$당
400TG(투구럭)이나,은행에서는 380원으로 계산해 준다(94년11월9일 기준).
* 버스요금-30투그럭
* 택시요금-1KM당 130투그럭
* 호텔투숙비/울란바트로,바이앙골호텔
- 1인2일 최저 40$-120$
* 식사료-보� 1인당 1끼에 5-10$
* TV-350-600$
* 자동차-10000-40000$
* 집세-1개월당 200-500$
* 전화-몽골에서 한국으로, 호텔에서 1분당 7$
그외에 $로 살 수 있는 식품류(별로 없지만)는 한국과 비슷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됨.
* 4인가족의 생활비/매월 500-600$정도(교육비와 주택비를 포함하지 않은 지수)
* 마늘 한쪽 60TG(가끔 마늘이 나오지만 이들은 음식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에 비싼 편이다).

몽골의 정치

1921년 소련 다음으로 공산화한 몽골은 현재 자유 시장경제 제도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실제로 몽골 내에서는 공산권으로 다시 돌아가자,선교사들을 내보내자는 등의 말들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당은 MARP의 집권당 외에 5개의 야당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당이 야당이라고 보지 않는다. 다만 공산당의 집권 체제 속에서 싹튼 나눔의 관계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바로 민족주의다. 정부는 민족주의로 인도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하루 속히 징기스칸의 무덤을 찾아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전세계에 내보이자고 주장한다.민주주의라고 선포는 했지만 아직도 멀고도 먼 나라가 몽골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외국인을 추방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할 것이라고 보지만 나 자신은 이 나라가 너무도 가난하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리라 본다. 현재 몽골 정부는 갈피를 못잡고 있다. 자주 바뀌는 헌법과 경제적인 상황들이 정치인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고 각 기업이나 학교의 선생님들,노인들이 계속하여 항의하고 데모하고 있다.

의료현황

이곳에는 몇 개의 병원이 있고 의과대학도 있지만 이들의 수준은 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하고 의료장비들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지난 70년 동안 러시아가 이곳을 지배하면서 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전해 준 것은 하나도 없다. 이곳에는 기본적인 약품 등이 부족하다. 특별히 포도당이나 항생재,피임약 등이 부족하다. 이곳은 인구정책으로 인하여 다산제를 도입하고 있고 겔(몽골인들의 집)에서 부모들의 성생활을 눈으로 보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성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이다. 현재 AIDS가 몽골에 들어 왔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다. 특별히 이곳에는 특이한 성병이 있다. 몽골 정부의 발표는 15%라고 하지만 그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 성병이 걸리면 2개월만에 죽는다고 하는 것이 UN 측의 말이다.그러나 성병전문가이신 한국의 교수님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그런 강력한 성병은 없다고 한다. 앞으로의 연구과제이다. 지난 2년동안 주몽골 미국 대사관의 직원 2명이
이곳에서 죽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병이었다고 하는 관계자의 말이다.

현지인들과 만나는 가운데 이들이 가장 많이 앓는 부위는 신장이다. 특별히 약하다. 많은 젊은 여성들이 고통 중에 있고,울란바타르의 경우 인구의 1/3이 결핵 보균자라고 하는 발표도 있다.또한 몽골인들 가운데 치아가 정상적인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치과 시설 또한 열악하기 때문에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한국의 의료선교단이 이곳에 와서 진료하는 가운데 치과병원은 끊임없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의 식수 사정이 좋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말로는 석회질이 많다고 한다. 어느 날은 욕조에 담아둔 물이 새파랗게 물들고 어느 날은 황토색 물로서 흙같이 나온다. 이곳은 건조한 지대라 그런지 하수도가 없다.또한 러시아 부대에서 많은 것을 실험하고 그대로 강물로 버린다. 지하수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것이 몽골인들의 치아와 속을 버리게 된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어떤 부위의 의사들이 필요할까?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 치과의사,내과의사,소아과 의사,예방학이나 공중 위생분야등이 필요하다.
* 간혹 약품을 보내주는 경우가 있으나 통로를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써 공급한 약들이 다음날 시장에서 판매되고 만다.
* 이곳의 모든 외국인들은 주로 6개월에 한번씩, 북경이나 모스크바,홍콩을 다녀온다. 그것은 소위 말해서 풍토병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다. 지금의 전전 미국대사가 이곳에 근무하다가 본국에서 대사일을 하겠다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직위해제 됐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한국의 선교사들은 후원회에서의 이해 부족으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니지 못하고 있다. 외국 선교사들이,한국선교사들에 대하여 많은 우려를 하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 감사한 것은 이곳에 연세친성병원이 설립됐다는 것이다.

매스컴

이곳의 매스컴은 상당히 자유롭다. 지난 11월 1일 기준으로 280개의 신문사들이 있다. 그들은 신문윤리위원회라는 것도 없고 자신들이 기사를 써서 내놓는다. 때문에 신뢰성에 상당히 문제도 있지만 숨김없이 사실대로 나온다. 한국의 신문에 비교하지 말라. 큰 회사의 것은 주로 신문지 4-8페이지 정도의 규모이고, 작은 것은 백모지 1장의 규모도 있다. 1주일에 보통 1-3번 정도 출판된다. TV쪽은 몽골 방송국이 1개,러시아 방송국이 1개, 그리고 영어 방송을 받아서 하는 작은 방송국 하나가 있다. 주로 오후6시부터 시작해서 10-11시까지 방송되는데 주말의 개념은 없다.
라디오는 공산주의 특유의 방식대로 각 가정에 라디오 케이블이 들어 있다. 라디오의 잭을 꼽으면 몽골방송이 나온다. 단파 방식이며 1개의 채널밖에는 없다.

실제로 몽골에 오는 분들께

필수사항(장기적으로 정착하고자 하는 가정) -
겨울옷(한국에서의 겨울용은 이곳에서 가을에 입을 수 있다)
약품상자(특별히 콧물감기,설사,마이신,소독약,대일밴드 건조하기 때문에 상처가 잘나고 아물지가
않음,비타민 다량,알러지 약, 소화제,주사기 마늘 솜). 음식 - 캔 종류의 �잎,김(건조해서 누지지
않음),미역,다시다, 라면,인스탄트 채소국(농심의 배추국),밀가루,그 외에 한국인이 꼭 섭취해야 하는
음식 중에 캔과 썩지 않는 것.
전자제품 - 이곳에서는 기대하지 말것.특별히 자녀들 교육을 위하여 비디오 테이프를 준비하려면
한국에서 준비해오던지 이곳에서 비싸지만 멀티시스템을 준비할 것, 한국과 씨스템이 다름. 세탁기는
크지 않지만 국산이 있음. 청소기(훨타 많이),히터,도란ㅅ (220-110),가습기,전기장판(220V용).
문구용품 - 종이(이곳은 종이를 생산치 못한다),화첩,매직,공책, 어린이용,문구...등 자신의 사역에
맞게 준비할 것.
책 - 성경공부 교재, 신앙인을 위한 소책자 등등....

읽으면 도움이 되는 책

* [몽골어와 퉁구스어]/김방한,김주원,정제문,86,10,31 믿음사 6,000원
* [몽골민족]/권오성,김선농,김태곤,임동권,정병호,92,1.30.복조리4.000원
* [몽고문화사]/D.마이담,N.츄르뎀,김구산 역,91.3.10.동문선문예신서
* [몽골사회제도사]/주채혁 92.대한교과서 주식회사 9.500원
* [징기즈칸]/르네,그룻세,최호연 역 83,2.10 정음문화사
* [만두하이]/얀달자빈,나차구도루지 90.5.10설영환 역,문학출판공사
* [소설 징기스칸]/바실리 얀,최종수 역 푸른산
* 우편상태-이곳의 모든 통신은 도청당합니다. 또한 우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포를 보낼 수
있습니다. 1KG당 5000원이며 2주일 걸립니다. 그 소포 안에 소식을 전하십시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편으로 ..소포는 1개단 10KG이 한계입니다. 포장을 상당히 신경 쓰셔야 합니다.
결론 : 몽골의 복음화는 한국교회가

몽골은 인구가 적고 땅이 넓다. 그러기에 선교에 소홀할 수가 있다. 그러나 중앙 아시아의 선교센타로 이용하고, 전세계를 정복했던 징기스칸의 후예들을 복음화시켜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힘쓰도록 기도하고 헌신한다면 이곳은 어마어마한 선교의 시장이다. 과거 역사 속에서 한국을 100년동안이나 지배했던 나라, 몽골, 그러기에 더욱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한다. 왜 한국교회가 몽골의 복음화를 책임져야 하는가?

1.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흡사하다.
2. 언어의 구조가 같은 알타이어에 속하여 유리하다.
3.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4. 한국의 초대교회의 상황과 비슷하다.
5. 한국교회의 복음에 대한 빚이 있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천강민 선교사

신임 전문인선교사의 짧은 몽골선교 경험, 그 기대와 현실

선교 사역지에서 볼 때, 몽골은 창의적 접근지역임이 틀림없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이사야 42:1~4)

전문인 선교사는 선교적인 소명을 가지고, 어떤 특정 분야에 전문가로서, 혹은 신분상 전문가 형태를 띠고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 2003년 한국선교연구원(KRIM)에서 69개 단체를 대상으로 한 한국선교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2년 말에 파송된 선교사는 10,422명이었다고 한다. 그 중 목회자는 31.9%(3,324명), 평신도는 68.1%(7,097명)인데, 평신도사역자 중에서 일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1,525(21,5%)명이었다.

이 자료가 한국교회의 파송선교사를 다 포함하지는 않겠지만, 세계선교에서 목회자보다 평신도 참여비율이 크다는 것과 전문 직업으로 사역하는 이들의 수가 적지는 않지만, 그의 두 배 이상은 전문인 선교사이면서 전통적인 형태로 선교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평신도 선교사들이 자신의 전문성이 있는 전문인 선교사임과 동시에 후원자들과 공동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는 선교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었으되,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세 부류가 동시에 관계하여 연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에서 보낸 자나 보냄을 받는 자, 그리고 현지에서 동역을 이루는 자들이 함께 참 동역을 이루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음을 상기시켜 본다.

현대의 선교사는 소명과 함께 선교사로서의 외부적 환경-후원과 관리-를 확보하면서 사역에 임한다. 이는 이미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 이 땅의 구원을 감당하실 때에 성부와 성령이 함께 동역하심으로 증명된 바 있다. 이처럼 선교적 수행은 하나님의 예정에서부터 비롯되되, 후원자들로부터 선교사로 파송 받아 선교 현지에서 사역자들과 함께 동역을 실천하며 원만히 이루어 나아갈 때에 달성된다. 이 가운데 특히 전문인 선교는 이 세 구조로서 이행되는 데에 선교를 보다 완전하게 하는 필요충분조건 요소로서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은 몽골의 울란바타르대학교에서 전문인 선교사로서 정착해 가는 과정에 있다. 이 3년의 경험에서 결론이라 내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잠정적이나마 그 무엇도 없지만, 적어도 경험한 사역의 그림자들을 돌아볼 때에 위의 세 가지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확인해 가고 있는 즈음이다. 이에 전문인선교사로서의 처지를 돌아보며, 후원과 동역으로 얻어질 협력 사역의 향방을 내다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늠해 본다.

많은 선교 인력이 전문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전문인선교사는 자신의 전문 달란트로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요소를 인식하여 선교의 접촉점 기능을 한다. 현지의 실리적인 기능으로 그 사회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그 사회에서 환영을 받는다. 물론 이에는 질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을 만큼의 전문성을 전제로 한다. 특히 몽골은 공산주의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이양되면서 이에 알맞은 지적 자산을 늘리려고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전문적인 인력의 수급을 매우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개방 초기부터 전문인선교 형태로서 선교를 열어 놓은 셈이 되었다. 이는 마치 선교의 출구를 몽골 스스로 열어놓아 선교의 기회를 자발적으로 불러들인 듯한데, 선교의 질적 수행을 위해서 자본의 지식만 전달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도하는 어린이


실제 선교 사역지에서 볼 때, 몽골은 창의적 접근지역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같은 범주에 속하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몽골은 선교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지만, 외국인으로서는 교회이든 학교이든 종교적인 활동이 통제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몽골법으로 재어보면 선교사는 위법자에 해당된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이면서도 몽골정부로부터 기독교 증가의 억제 혹은 지역까지 조정 당하므로 여기에 선교적으로 접근하려면 조심스러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회 사역을 하더라도 목회자 선교사도 전문인으로서 선교적인 접촉점을 확보하면서 선교적인 실마리를 찾고, 이것이 선교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를 놓고, 복음의 성품이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미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함으로 부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 반드시 선교적인 대상이 있고, 또 그곳에서 언제든지 예외적인 문제가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를 전문인 선교사로서 선교를 내다볼 때, 대학이 교육으로서 앞으로의 사회를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는 관문임을 알고 진지한 접근과 대안이 필요하다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에서 선교의 다양한 가능성이 개발되기도, 저하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도 그 지적 수준을 어느 정도 확보하되, 영적인 추진력 또한 동시에 있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임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에베소서 2:10)

전문인 선교사들은 전문인이기에 성경적인 지식으로서 선교대상자에게 복음을 직접 들려주는 혹은 그 이상으로 사회의 욕구를 해소해 주는 데에 절대 시간을 보낸다. 이는 바울이 말한 바, 더 많은 이를 얻기 위한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과 같이, 먼 장래를 바라보고 더 많은 이를 얻기 위한 선교의 문을 여는, 사회적인 필요와 선교적 소명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효율적인 기능성의 요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문성과 영적 실행 능력이 동시에 필요하며, 그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실행방법에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충실함으로서 얻어야 할 열매는 다름 아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헌신을 넘어서서 외국인으로서 겪는 문화적인 이질감을 소화하고 현장에 맞는 방법을 찾는 데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여 지구력과 창의성을 요구한다. 이 원동력은 물론 그리스도의 사랑일 것이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현실화 할 것인가.
선교사는 상황 중심의 사고로서 주어진 환경에 충실했을 때 그 일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선교지란 예측불허의 상황이 늘 잠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일을 어느 정도는 실효성 있게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인의 경우에도 일의 성취는 학습자들의 실력 향상이나 적어도 학습에서 동기유발 기능이 이루어지면서 시작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다. 특히 지식에 대한 욕구가 비교적 낮은 편의 학습자들에게 학습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교수자의 가장 큰 역할임에도 그러하다. 교육은 교실에서 뿐만 아니라 학습자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도록 그들의 견고한 습관, 그것을 장악하고 있는 만연된 정서의 이해를 전제로 하여 서로 소통되지 않은 부분까지 해소할 수 있도록 학습자들에게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연장으로서의 그들의 학습 진도를 체크하는 일에도 많은 시간을 소모하여야 비로소 교육의 효율성을 완수할 수 있다. 여기에서 업무량과 시간은 서로 관련이 없다. 다만 주어진 환경에 따른 관리 능력이 작용할 뿐이다.

한편으로 많은 전문인선교사들이 그러하듯이 본인도 교육 행위 가운데에 복음적인 의미를 담거나,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덕목을 실천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러므로 선교대상자인 학습자들과 평소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심겨지도록 돕는 데에 고심한다. 교육 사역의 결과가 무엇이라는 점은 이미 밝혀진 바며, 하나님께서도 이를 사용해 가고 있음을 익히 아는 바가 아닌가. 이는 궁극적으로 기독교적인 마인드로 가르치며 본을 이루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본인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가 자문한다. 이는 학습자들에게서 발생하는 모든 경우를 의식하면서 그것에 수업 이상으로 충실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부담 때문에 오히려 세상 속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덕적인 잣대를 가지고 자신은 물론 학습자들에게 경찰 같은 훈계자가 되어 버리고는 한다. 학습자들의 지적 환경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사역의 근거지로서 오지임을 완전히 소화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곧 방법의 미숙함 때문에 세상의 유전을 전달할 위험한 가능성에 선교자 본인이 놓여 있는 것이다. 선교사로서 학습자들에게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수업 속에 오래 할당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오류로 남는다. 이는 선교사 자신이 소외의 한 자리에 놓여 있으므로 하여 책임감이나 주의를 집중하는 정도로는 역부족인 데서 오류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탈진된 교육자가 무슨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교육자에게 선교지는 바로 교육 현장이 아닌가. 교육전문직 선교사들의 타문화권 현장은 바로 교실인 것이다.

전문인 선교사는 사역의 한 요소자로서 소명에 충실하려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어느 정도 끝내놓고서야 비로소 그 일에서 자유를 얻는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일의 속성상, 못해 내거나 남아 있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그 일을 던져버리듯 일에서 손을 떼어 놓고는 한다. 그럴 때 당사자는 갑자기 일 속에 묻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본인의 정체성을 의식한다. 본인이 하는 일에서 선교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자문하는 것이다. 전체 속에서만 기능하는 작은 한 부분으로서의 자신을 볼 때, 선교적인 가치라는 일 속에 제대로 묻혀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며 자신의 소재지에 당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어진 일에 얼마나 충실했느냐 혹은 선교적 가치는 물론 일의 대가가 충분한가 하는 문제와는 별도의 문제로서 공의와는 상관없이 영적 공백의 순간에 던져져 있는 본인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일상 과정 속에서 선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전문인으로서 제 기능을 제대로 다하고 있는지 묻는 정체성 물음에 당면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교육 사역은 전인격적인 사람이라는 열매를 얻는 대의명분 대가가 있다. 교육적인 활동은 백년지대계의 가치를 갖고 있지 않은가. 선교사로서 행위에서 갖는 본질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준 인간 사랑의 아주 작은 보답이 아니던가. 그 만큼 하루의 일상 시간 그대로 선교의 절대적 가치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기대감과 충족감도 크고, 또한 때에 따라서 상실감 또한 작지 않다. 언제나 기대와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관점에 따라서는 본인의 편견일 수도 있는 기대와 현실의 간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선교지란 모국의 문화와 비교하면 안되는 문화적 차이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문화적인 차이를 안다고 할지라도 일에서 금방 빠져 나온 듯한 순간에는 주어진 현실을 정죄하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그러므로 문제는 기대와 현실 양쪽에 다 있다. 전문가로서의 기대는 고국에 두고, 현실만 절실하게 안고 살아야 하는 선교인가 하는 혼란을 의식한 채 말이다.

선교사는 선교사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이 책임 의식은 본인의 위치를 경각시켜 주기도 함과 동시에 실제 예상 외로 때로는 복잡한 마음의 경로는 지나게 한다. 전문인 선교사로서 삶 혹은 그 일상 자체로 복음 전도의 기능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여 떠맡게 되는 상실감으로 인하여 낙심되는 처지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러할 때는 오히려 본인 스스로에게 좀 더 투명할 필요를 느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연약함까지 보게 하는 편이 낳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일들에서 멀어져 있는 자신이 아닌지 하고. 이는 한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으로 다른 무엇으로 해소하려는 욕구를 만든다. 죄가 죄를 부르듯이. 이를 이기는 데에 영적인 회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늘 탈진할 수밖에 없는 자가 전문인선교사가 아닌가 한다. 선교사 본인의 함량과 동역자, 선교 대상을 포함시키고 있는 선교 현장의 특성과도 관계되지 않을까. 이는 함께 현장에서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풀어가야 할 과제로서 늘 남아 있는 듯하다.

앞서 제기했듯이 표면적으로는 전문인 선교사가 복음의 선포자로서의 복음 제시의 기회를 적게 가진다는 점에서 자칫하면 스스로도 복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생활을 하기가 쉽다. 게다가 이러한 복음의 전파라는 시급한 측면을 고려할 때, 전문인 선교사는 반복음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칠 수 있다. 복음을 나누는, 그것으로 인하여 힘을 얻는 시간이 불규칙하므로 선교사 자신이 간혹 정체성을 잃고 자존감마저 낮아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타인에 의해서는 물론 자기 스스로 복음에 빚진 자임을 망각하고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함으로서 갖는 죄의식에 눌려 있기 쉽다. 선교사로서 정체성을 모호하게 가짐으로써 직업 기능에 따른 자신감까지 눌림을 당하여, 자신에 대한 기대-종이며 기술자-와 현실이 맞지 않는 경험을 쉽게 갖는다. 복음조차 낯설 만큼 업무로 제한된 환경 속에서 이미 여러 가지로 포기된 사람으로서 일상을 견디어 가고 있음을 발견한다는 것은 주께로부터도 소외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경험을 얻게 한다.
이렇듯 전문인 선교사는 선교적인 과제를 안고 있는 바에야 철저하게 소명감에 충실할 만큼 훈련되고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충족시킬 만한 여과 과정이 현장의 시간 속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업의 준비와 이를 여유 있게 전달할 만한 정서의 안정감은 물론 선교사로서의 그리스도의 심성이 결합되어 있어야 함이 교육의 최우선 조건이 아닌가. 이에서 전문인으로서 영적 순수성을 병행시킬 수 있는 준비된 능력, 이를 직업으로서도 선교의 기능을 다할 수 있는가 하는 점검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철저하게 선교적으로 자기검증을 통과한 훈련됨이 있었는가를 묻게 된다.

여기에서 복음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절대 시간을 확보하면 매일 매일의 패배를 감소시킬 수 있으리라. 복음의 공로는 역시 생명을 살리는 쪽에 있음을 그날의 성경말씀 속에서 실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학교 동역자들과 함께 하는 이른 아침의 성경묵상 시간은 전문인 선교사들에게 공헌한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성경에 비친 자신의 형편을 나누며 그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상기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함께 참여하는 모든 선교사가 복음을 새로 듣는 듯이 자신의 영적 허실이라든가 복음에 반사된 선교지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서로 나누게 된다. 이렇게 성경을 통하여 독특한 환경에 놓인 자신을 비로소 돌아보고 또한 옛날과 다르게 선교적 도구로 자라고 있는 새로운 각 사람들을 대면하고는 한다. 일의 성과와는 별개로 복음에 빚진 자임도 잊을 만큼 일속에 파묻혀 있는 자신을 건강하게 감각한 듯이. 이에서 불균형적인 삶을 사는 자신을 교정하며 자신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당면해 있는 세계에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를 다시 확인하며 본인의 의지로도 더 변화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성경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가는 별도로 전문인 선교사로서 하나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에 이를 때, 형식적으로는 ‘아니다’라는 대답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에 겪는 결핍감을 해소해 주기도 하다. 이것은 교회개혁 시기에 있었을 법한 영적 자유의 해방감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파송 안수를 받기는 했지만, 통상적으로는 전문인 선교사가 목회자 선교사와 구별되어 하나님과 친밀감이 없는 사람처럼 비쳐지고는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끝내 이러한 비교감정을 갖고 느끼는 것은 한편으로 본인이 선교적인 삶에 적합한 전도자로서 살고 있는가에 늘 의문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제기한 문제적 상황에 전문인 선교사가 놓여 있어서 선교사 자신도 나아갈 바의 방향이라든가 정체성에 긴장을 잃고 다소 장황한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미혹의 영이 이미 선교사 자신의 일상생활에 잠복하고 있지 않은가. 재주나 실력, 혹은 지적 허영과 성공, 비교 등등까지. 이것이 기대이며 그것을 낙심케 하는 것이 현실 곧 선교지의 환경이라는 듯이 말이다.

이는 전문인 선교사로서 초기일수록 더 심하게 겪는다. 말씀을 전하는 사역이 일차 사역인 목회자 선교사들은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대면하며 자신을 지속적으로 피드백 할 수 있는 데 반하여, 전문인 선교사는 현지적응의 과정 속에 언어 습득과 관계 조직 속의 일을 함께 하기 때문에 성경과 친밀하기에도 역부족이다. 중요한 일보다 급한 일 뒤에 놓여 있는 성경과 기도, 언어 소통이 제한된 상태에서도 일을 질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교육현장. 이들이 현지 적응기에 동시에 주어져 있는 것이기에 경험상으로 아무리 미숙하다고 하여도 이들을 원만하게 소화해야 한다. 이는 전문인 선교사들이 정착 초기에 노동의 시간적인 한계까지 느끼며 연약한 자신을 발견하는 데에 이르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하게 한다.

선교지에서는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받고, 이것이 선행된 후에야 1차 검증이 끝난다고 한다. 적응 정도는 개인의 실행능력으로서 평가되며, 표면적인 관계 형성을 어떻게 이루어 내었느냐가 중요한 관건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즉 일의 성취 여부가 적응 여부와 동일시되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이는 자율적인 방법으로서의 개인 적응뿐만 아니라 관계로서의 평가 기반을 얻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영적관리에 무엇이 필요한지도, 자기만의 알맞은 생활 리듬을 갖추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관리하여야 함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그 관계 상황을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정신적 혹은 영적 역량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전문인 선교사는 자신을 꾸준히 캐어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떠한 모양이든지 확보해야 한다. 꾸준한 자기 영성관리와 함께 폭넓은 시각을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안정된 정서를 누리는 법,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낼 수 있는 침착한 행동 등이 무엇인지 배우는 일 등 말이다. 철저히 일의 균형을 가질 만큼의 영성으로만 비로소 사역의 안정감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만 느낄 수 있는, 부활의 생명을 경험한 심령만이 행할 수 있는 일일 듯하다. 이처럼 선교자로서 삶을 사는 이는 자신이 현지 사람들과 동역자들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같은 어느 정도 온전한 성품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로마서 12:29)

위에서 제기한 본인의 문제적인 경향이 모든 사역의 열심을 제한하는 구실로서 작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수습과정에 놓여 있는 신임선교사로서 현지에 적응하면서 여러 관계를 적절하게 수용하고 감당하여 제대로 방향을 찾았는지 스스로 묻고 있다. 소명이나 훈련됨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사람과 관계 혹은 상황이 문제임을 일부분이나마 감지했을 뿐이다. 사역자들끼리 사역에서 나타나는 시행착오를 나누는 기회는 가끔이라도 있으나, 사역자로서 당하는 정서의 교감 혹은 공감을 객관적으로 나누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실적 위주를 중요시하는 선교지 특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나눔을 장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안식년에서야 비로소 가질 것이 아니라 평소의 잦은 휴식처럼 누려야 할 것이다.

이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경험에 의한 권위를 가진 선배들의 온유한 지혜가 후배 선교사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일면 선교의 자문을 구하기가 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한국인 선교사의 사역 경험이 서양권의 그것에 비해 짧은 것도 한 요인이 아닐까. 선교사들이 사례를 해석할 때에 자신의 지각력이나 경험만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시각에서 객관적인 분별력을 얻을 수 있고 이에서 오는 오류도 줄일 수 있으리라. 사역이 의외로 개별적인 경험과 그것으로 형성되는 관점에 따라 굴절되어 다르게 이해되고 평가되는 관계의 역학구조를 지녔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복합적인 관계 조직 속에 놓여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현지라는 이국의 광야, 그 얼음 벌판 위에 있는 선교사들이기 아닌가.

본인은 선교현장의 동역 관계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숨 쉬지 않으면, 하나님의 치리가 있지 않으면 그 안에서 선교사 본인이 넘어지는 것을 이따금 보았다. 이는 선교지에 더 많은 이들을 넘어뜨릴 수 있는 무서운 방해자로서 바로 선교사가 서 있다는 증거다. 더욱이 전문인 선교사 스스로가 소명감이 약하거나 훈련에 의한 안정된 정서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선교지에서 불안한 존재로서 혹은 한 소외인으로서 선교 대상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물론 이는 관계를 이루는 모든 동역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례이다. 전문인 선교사 자신이 정체성의 불균형과 복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고 있기에 선교를 방해하는 사단의 공범자가 된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사역 과정에서 서로 힘을 실어주지 못할 때, 사역의 성공이라는 것도 인간의 그것으로 전락하지 않던가. 사단의 공략이 동역자들 상호관계 속에서 훼방자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주의가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전문인 선교사는 선교지에서도 잘못 사용되면 하늘의 권세에 붙잡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권세에 붙잡힐 수도 있지 않은가.
이는 신임 전문인선교사로서 경험한 몽골 전문인선교현장의 한 단면이다. 현대선교가 선교사와 후원자, 현지의 동역자가 연합의 형태로서 원만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주목한 결과이다. 다만 전문성이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이를 선교의 접촉점으로 사용되고, 몽골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므로 환영을 받는다는 편리성이 있는 반면에, 전문성과 복음전도자의 입장을 동시에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고, 오히려 선교사 본인이 복음에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처럼 소외를 겪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각해 본 것이다. 전문인 선교사는 적응초기부터 언어습득과 전문인 역할, 선교적 소명을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정은 건강한 선교 마인드를 확보하거나 선교 효과를 거두는 데에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선교사 자신이 먼저 불안, 초조, 두려움 등으로 인하여 비교됨과 포기, 미래 상실감, 자신감 저하 등을 겪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랜 시간을 함께 마주 대하는 선교 대상자들에게 선교의 표정으로 잘못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을까 하는 점에서 더욱 주의를 요한다.

그러므로 선교사가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복음의 왜곡된 이미지들을 선교대상자들에게 보일 수도 있게 된다. 이는 관계 속에서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영적 싸움터이기도 한 현장에서는 그것마저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있기 때문이다. “소명에 충실하라”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이 선교현실이 아닌가. 이 문제의 원인은 기대와 현실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전문인 선교사의 기대가 선교의 바쁜 현장, 관계 속에서는 가치를 못 가질 뿐만 아니라 필요 없는 가치이며, 개인의 사소한 기대로 전락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하여 선교사는 거절된 감정을 느끼면서 투명하지 못한 정서를 겪는다. 여기에는 기대의 수정이 있어야만 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가 유일한 회복의 방법이라고 귀결되고는 한다. 상황은 언제든지 현실의 충분한 데이터로써 성과를 지향하고, 영혼구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일도 주어진 일을 충족시킨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인 선교사는 이 문제적인 상황을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스스로 캐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풍토를 극복하도록 도움을 주는 동력자들이 있다면 매우 의로울 일이다. 그 누구보다도 선교 현장에서 전문인 선교사라는 존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에 이룬 구원을 날마다 경험하며,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말씀으로 혹은 나눔으로, 상호이해가 전제된 관계로서 이룰 수 있음을 결국 되새겨 본다.

전문인 선교사는 현장의 요구에 따른 사역의 질적 전문성과 파송 이유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선교적 활동을 함께 이루어야 하는 이중 사명을 갖고 있기에 보다 여유 있는 계획과 유연한 관계 속에서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있어야 한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본인의 준비됨은 물론 후원자와 현지 동역자라는 동역의 관계에서 해소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각자 자기의 책임에 얼마나 충실할 것인가가 다음 시기의 과제로 남았다.
“내가 산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여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편 27:13~14)

몽골 울란바타르대학교 이소리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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