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NGOLIA > 몽골·동영상·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교지역 몽골 (0) | 2006.10.16 |
---|---|
기독교 선교영상~몽골 (0) | 2006.10.16 |
[스크랩] 몽골형제자매들과 함께 찬양을 (0) | 2006.10.15 |
[스크랩] 몽골 이야기 (0) | 2006.10.15 |
몽골을 향한 사랑의 노래 (동영상) (0) | 2006.08.17 |
선교지역 몽골 (0) | 2006.10.16 |
---|---|
기독교 선교영상~몽골 (0) | 2006.10.16 |
[스크랩] 몽골형제자매들과 함께 찬양을 (0) | 2006.10.15 |
[스크랩] 몽골 이야기 (0) | 2006.10.15 |
몽골을 향한 사랑의 노래 (동영상) (0) | 2006.08.17 |
기독교 선교영상~몽골 (0) | 2006.10.16 |
---|---|
몽골 - 윙윙세미나 찬양율동 (0) | 2006.10.16 |
[스크랩] 몽골 이야기 (0) | 2006.10.15 |
몽골을 향한 사랑의 노래 (동영상) (0) | 2006.08.17 |
몽골 유목민(JR의 유목민 이야기) (0) | 2006.05.28 |
몽골 - 윙윙세미나 찬양율동 (0) | 2006.10.16 |
---|---|
[스크랩] 몽골형제자매들과 함께 찬양을 (0) | 2006.10.15 |
몽골을 향한 사랑의 노래 (동영상) (0) | 2006.08.17 |
몽골 유목민(JR의 유목민 이야기) (0) | 2006.05.28 |
몽골단기선교(동영상) 외~ (0) | 2006.05.28 |
몽골의 문화/몽골스쿨닷컴 (0) | 2007.08.29 |
---|---|
몽골에 거주하는 종족정보 (0) | 2007.08.29 |
몽골 및 중국/ 세계지도보기 (0) | 2006.11.29 |
몽골정보 (0) | 2006.09.09 |
몽골 국가정보 (0) | 2006.05.24 |
|
▣ 헌법 | |
현행 헌법은 92년 1월 13일 대인민회의를 통과함으로써 확정되었는데 전문과 6장 70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 헌법은 아시아의 구 사회주의 국가로는 처음으로 사회주의이념을 완전 일소하였으며, 국명을 몽골 인민공화국에서 몽골국으로 바꾸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 국가조직 몽골은 90년 9월 24일 정부조직법과 92년 신헌법 제정으로 국가조직의 대변혁을 가져왔다. 종전의 국가 최고권력기관이었던 대인민회의(The Great People's Hural)와 입법기관이었던 소후랄(국회)이 폐지되고 국가 최고회의가 생겨났다. 또 15개 부와 3개 위원회, 3개 특별기관이었던 정부기관도 14대 부로 축소 조정되었고, 신헌법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헌법기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몽골은 국가 최고회의의 결정에 따라 위원장으로 비롯해서 전문위원회를 구성, 95년부터 정부기관 개편을 단행하고 있다. 또한 94년 1월부터 발효된 국가기관법에 의해 국민최고회의 산하 10개 상설위원회를 6개로 감축하기로 하였다. ▣ 국가최고회의(The State Great Hural) 국가최고회의는 헌법상 국가권력의 최고기관이자 입법권을 가지는 유일한 기관이다. 종전가지 몽골에는 두 개의 입법기관이 존재하였다. 그 중 하나는 대인민회의이고 또 하나는 대인민회의 휴회 중에 열리는 소인민회의(국회 : 50명으로 구성)이다. 그러나 신헌법에서는 이들 복수 입법기관의 일원화와 축소를 도모하여 유일한 입법기관으로 국가최고회의를 설치하였다. 국가최고회의의 구성원은 76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이다. 이들 의원들은 피선거권이 있는 25세 이상으로서, 시민들의 일반·비밀·직접선거에 의해서 선출된다. 그리고 의장과 부의장은 의원들의 비밀선거에서 과반수를 획득한 자로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이 국가최고회의의 임무는 다음과 같으며, 국내외의 주요정책에 관하여 심의·결정한다. 국가최고회의 회기는 6개월에 한 번씩 열리며, 최소 75일간 계속된다. 임시회의는 재적의원1/3이상의 발의나 대통령 또는 의장의 발의에 의해서 소집되며, 각 분야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몇 개의 상임위원회를 두고 있다. ▣ 정치 체제 : 민주공화제(92.1.13 新민주헌법 발효, 2000.12.14 헌법 개정) - 과거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 형태인 이원집정부제였으나, 헌법 개정으로 의회와 내각의 권력을 대폭 강화하여 의원내각제적 성격이 강화됨. 주요 지도자 대 통 령 : N. Bagabandi 총 리 : N. Enkhbayar 국회의장 : L. Enebish ▣ 주요 정당 몽골인민혁명당(Mongolian People's Revolutionary Party) - 1990년 초까지 헌법으로 보장된 일당독재체제 유지 - '96.6.30 총선 패배 후 야당으로 전락(25석) - 2000.7.2 총선 압승(76석 중 72석)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도 가입하는 등 중도좌파적인 성격으로 변신 - 당수 Enkhbayar 몽골민주당(Democratic Party) - 구집권 세력인 몽골민족민주당(MNDP)과 몽골사회민주당(MSDP)이 2000.12.6 통합 - 현재 국회의원 2명 - 당수 Dorligjav 몽골민의의당(Mongolia Civic Courage Party) - 국회의원 1명 - 당수 Oyun 몽골민주신사회당(MDNSP) - 국회의원 1명 - 당수 Eredenebat |
▣ 시장경제 체체로의 개편 1992년에 국명을 몽골공화국에서 몽골(Mongolia)로 변경시켰으며, 몽골은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방에 위치하는데 러시아, 중국 및 카자흐스탄과 접경하고 있다. 면적은 156만7천 ㎢(한반도 전체의 약7배)이고, 약 237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수도는 올란바아타르, 주요도시는 다르한, 에르데넷이다. 1990년부터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전환하였으며 중립 비동맹국가이다. 1. 몽골의 경제개혁 시작 몽골의 경제 개혁은 1985년에 경제관리 부문의 개선과 중앙정부 통제의 축소 의지의 표명으로부터 개혁의 장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1986년에 관료제를 축소하고 부서별 지출자율권을 부여하여 지방으로의 지출이 많아지도록 하였다. 재정 수입을 위해 특정 산업의 국내 거래세의 인하 및 생산 보조금을 지급하고, 경화 거래지역으로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국영 무역기업을 설립하였다. 1987년에는 구소련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경제 조정정책을 채택하였다. 국영기업에 더욱 많은 자율권을 부여하고 기업의 투자재원 조달에 도움이 되도록 조세를 감면하였으며, 재정 적자를 축소하기 위해 제 8차 5개년 계획동안의 투자사업은 소규모 프로젝트 중심으로 전환시켰다. 1988년에 예산 운용 권한을 지방 정부에 부여하는 분권화를 확대 추진하고 농산물 가격의 등락 폭을 지정 범위 내에서 인정하며, 생산 목표를 초과 달성한 부문의 시장 출하를 허용하였고, 민간 협동조합 설립을 허용하였다. 1989년에 동유럽의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어 몽골의 개혁도 확대 심화되었다. 민간이 가축소유제한을 완화하여 가구당 15마리까지 소유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일부 소매가격의 인상을 허용하였다. 국영기업간의 상호 협력에 의하여 가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국영기업에 투자자율권과 경영자율권을 부여하였고, 국영기업의 독점적인 대외무역관을 폐지하여 민간기업에도 대외 무역을 허용하였다. 지난 10년 간 급속히 변화한 몽골의 여러 경제 정책들을 시기별로 정리한다. 2. 1990 - 2000년의 개혁 1) 1990년의 혁명 1985년 이후 꾸준히 요구되었던 정치적 개혁은 1990년 드디어 공산당 정권의 해체와 더불어 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는 민주정권을 창출시켰다. 이후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유경제제도를 정립하는 정책을 추구하여 왔다. 1990년 이후 10년 간은 몽골의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진행된 시기였다. 몽골은 가격과 관세를 자유화하였으며, 재정세제, 사회보험, 복지정책 등을 개선하였으며, 인플레이션율을 낮추고, 외국방문자들을 위하여 비자 발급을 간편화하였다. 또 구조조정을 강화하고, 경제제도를 민주적으로 정립하고, 은행과 금융 및 공기업을 구조조정하기 위한 종합적인 계획을 출범시켰다. <표 2> 경제지표
1990년 3월부터는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민간경제부문의 확대, 공업단지의 분산, 경화거래지역과의 교역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3개년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개혁과 관력하여 법률정비와 제도개혁 등의 개혁방안을 마련하였는 바, 그 내용은 민간의 가축소유제한 철폐, 일부 소매가격의 자유화, 2개의 상업은행 설립 등, 은행제도의 개편, 관세제도도입 및 조세관리를 위한 관세국(Custom Affairs Department)설립, 외환경매제도 도입,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외국인 투자법(Foreign Investment Law)제정, 예산운용의 지방분권화 확대, 국가할당량 초과 농산물의 시장출하 허용, 국영기업 자율권 확대, 민간의 대외무역 허용, 노동 인센티브제 도입, 민영회사 설립허용등이다. 몽골의 대외 지위 강화와 자원배분을 위하여 환율을 조정하였는데 1990년 7월에는 상업환율을 미화 1달러당 4.67 터그럭(tugrug)에서 5.63 터그럭으로 평가절하하고 8월에는 최초의 외환경매를 실시, 경매환율을 1 달러당 40 터그럭으로 결정하였다.
[몽골의 주요 경제지표, 1997 - 2001] 주요 무역품목 및 교역국 - 수출품 : 석탄, 동, 금, 형석, 몰리브덴 등 광물 및 캐시미어 등 피혁제품 - 수입품 : 기계류, 일상 소비재 등 - 주요 무역상대국 :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한국 順 |
>>국호와 지리적 위치<< |
![]() |
2) 지리적 위치
몽골은 아시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러시아의 토바, 브리야트 공화국과 남쪽으로는 중국의 신강 위그로 자치구, 내몽골 자치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이 남한의 16배인 약 1,566,500㎢ 인데 남북 거리가 1,263 ㎢, 동서거리가 2,405㎢, 전체국경 선의 길이는 8,114㎢에 달한다.
>>몽골의 인구<< |
![]() |
>>기 후<< |
![]() |
>>정 치<< |
![]() |
>>경 제<< |
![]() |
지난 89년 소련 연방이 시장 경제로 전환되었다. 동구와 소련의 철수로 몽골은 커다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공업 및 건설 사업은 예전보다 더 부진한 상태에 있으며 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가장 큰 어려움은 극심한 생필품 부족 현상으로 인한 엄청난 물가 폭등과 국가 재정의 부족을 경험하였다.
대개 91년에 비해 식료품 가격은 62배나 폭등하였고 교육비는 무려 89배나 올랐다. 전체적으로 약 51배나 오른 소비자 물가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 사회주의 제도 아래서의 생활을 동경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 재정도 많은 부분이 해외 원조와 장기 저리 차단으로 메워나가기 때문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큰 폭의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새로운 사회 간접 자본 건설을 위한 투자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고 늘어나는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 할 만한 정부 차원의 시도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물가 상승률이 많이 둔화되었고 89년 이후 국민 총 생산이 감소하다가 93년을 고비로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96년의 전년도에 비해 경제가 무려 6.3% 성장하였다. 또한 실업률이 1994년의 8.7% 에 비해 1998년 3월말의 통계 자료는 경제 활동 인구 가운데 실업률이 2.6%인 62,744명으로 나타났다.
1996년 이후의 물가 상승률을 살펴보면 그렇게 두드러진 변화는 없었으나 1998년 3월 현재 100%를 기준으로 볼 때 1997년보다 119%, 1996년 보다 172%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몽골의 시장 경제로의 이행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자유시장 (바라니자흐)인데 가장 큰 시장은 일주일에 네 번 모이는데 많이 모일 때는 한번에 약 20,000명으로 하루 종일 출입하는 사람을 모두 합치면 10만명 가량 모인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중국제 값 싼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한국 물건도 많이 볼 수 있는데 대개 한국의 두배 가격에 팔 리며 몽골 사람들에게는 매우 품질이 좋은 물건으로 알려져 있다. 1995년 9월에는 조순 서울 시장이 울란바타르를 방문하였으며 서울시와 울란바타르시가 자매 결연을 맺고 울란바타르 시내에 서울의 거리를 신설하였다. 양국간의 무역은 95년의 경우 $4,600만 규모이며 한국이 몽골의 제 4위 수입국이며 수출은 제7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양국의 교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역 사<< |
![]() |
동시에 러시아의 반혁명 세력도 침입해와서 라마교의 활불(달라이라마)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수립하였다. 나라를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외몽골은 러시아 혁명의 원조를 받아 중국군과 활불 정부군과 맞서 싸워 1921년 수도를 점령하였다. 활불 정부군으로부터 정권을 인수 받은 날이 7월 11일로 현재의 독립 기념일이 되었다. 1961년에 유엔에 가입하였고, 1964년 중~몽 국경이 확정되어 내 외 몽골의 분열이 고착되었다.
1956년 체덴발이 인민 혁명당 서기장이 된 후 당내 친 중국피를 숙청하고 친소련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고 소련식 사회주의 경제 발전을 위하여 힘써왔다. 대부분 국민들은 중국에 대한 국민감정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정치, 경제, 문화적 측면에서 중국의 영향은 매우 깊다. 한편으로는 지난 70년 동안 소련 연방의 사회주의 제도아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현대 몽골인의 생활 양식이나 사 고 방식은 러시아를 본받은 서구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사 회<< |
![]() |
2) 보건 몽골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사회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병원들이 많이 지어졌으며 의사들의 수도 많은 편이다. 의사 1인당 진료 인구는 403명으로 한국의 855명의 반밖에 되지 않지만 출생 1,000명당 영아 사망수는 한국의 21명보다 세배나 많은 60명이다. 의사의 질적인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다.
1990년 시장 경제로 전환이후 러시아의 의약품 보급이 중단되면서 극심한 의약품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UN과 서방 국가 정부, 국제적십자사 등에서 긴급 구호 차원에서 약품들을 보내긴 하였지만 아직도 거의 대부분의 병원이 처방은 주지만 약품은 공급하고 있지 못하며 몇몇 의료장비들이 있어도 낙후된 것이거나 고장나 있는 상태이다.
몽골 사람들 가운데 가장 흔한 병은 신장염과 고혈압 증세이며 피부병과 결핵이 널리 퍼져있다. 치아가 정상적인 사람들이 드물지만 시설을 갖춘 치과 병원은 거의 없고 세라믹으로 인공 치아를 만드는 기술이 없다. 아이들은 감기와 폐렴에 늘 노출되어 있다.
3) 교 육
97%의 높은 문자 해독율을 보유하고 있는 몽골은 1924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근대 교육이 도입되었다. 1990년 이후 자유민주주의 제도로 개혁하면서 교육부분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사립 교육 기관의 자유화, 학과 편성의 자 유화, 일부 국립 교육 기관의 사유화 등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전교육 과정이 무료였으며 국가가 직접 관장해 왔는데 국가재정 형편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공립 교육 기관을 사립 교육 기관으로 이양하는 단계에 와있고, 교육 환경도 점차 나빠지고 있다.
다른 부분의 개혁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 발전이 뒤쳐져 있으며 교원들의 급여수준 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현재 몽골의 교육 기관은 총 930개이며 전 인구의 21.4%인 482,000명 이 어떠한 교육 기관이나 학교를 통해 배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중학교에 418,300명, 대학교에 40,400명이 배우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종 교<< |
![]() |
1) 샤머니즘
몽골은 샤머니즘이 번성한 지역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중앙 아시아의 혹독한 생활 환경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서 샤머니즘에 젖게 만들었으며 다양한 종교적 심성도 샤머니즘에 녹아들었다. 샤머니즘은 몽골 역사 초기부터 13세기 혹은 16세기까지 몽골의 가장 중요한 대표적 종교로서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샤머니즘은 몽골인의 심성 깊숙이 자리잡고 있고 생활 곳곳에서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샤머니즘은 칭키스칸 시절 즉 초기 몽골 제국 시절에는 국가 무당이 전쟁에 관하여 충고함으로써 막강한 세력을 발휘하였고 국가 종교로 인정되었다.
칭키스칸은 "우리 몽골인들은 우리의 생사가 달려 있는 유일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라고 말한바 있다. 하나의 강력한 최고의 신개념은 유라시아 초원의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사고였다. 몽골인들은 텡게르( TENGER )라는 유일신을 믿었다. 텡게르(TENGER) 라는 개념은 '하늘 의 신','하늘의 힘센 지도자'라는 뜻이다.. 무속의 다른 기초 기능들에는 예언, 점, 그리고 잃어버린 가축이나 물건 을 찾는 것이었다.
무당들은 춤과 노래 그리고 심지어 마약의 사용 등을 통해 황홀경에 빠져든다. 어떤 이들은 의식에 앞서 굶기도 한다. 지금도 어느 곳을 가든지 '어버'라고 하는 성황당 같은 것이 널려져 있다. 여전히 무당들이 있으며, 지방으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젊은 사람들이 점을 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있으며 최근도시에서 점술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다.
2) 불 교(올랑 보다니 샤씬)
위그르족을 통해 문화와 함께 불교가 유입되었다. 칭기스칸은 티벳형 불교를 선호하여 샤머니즘과 함께 불교식 예배도 드렸다. 몽골이 세계적 제국으로 변함에 따라 샤머니즘은 국가 종교의 위치를 불교에 양도하였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가 종교로 채택하여 정신적 통일을 이루려 했듯이 쿠빌라이칸은 불교로 원나라의 정신적 통일을 추구하였다. 또한 불교의 특성상 국가 권력과 상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원나라의 제국 붕괴시 불교는 다시 약화되었고 오늘날 중국식 불교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박물관이 한 개소 있을 뿐 이다.
3) 라마불교(샤르 샤씬)
라마 불교가 처음 몽골에 유입된 것은 1230년대 오고타이때다. 그 후 세조 쿠빌라이가 1253년 티벳을 점령했을 때 당시 라마 불교의 동자 승려인 파스파를 초청하였고 그가 세조의 존경을 얻어 라마 불교는 왕실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파스파는 티벳어를 기준으로 하여 몽골문자의 기원이 되는 파스파 문자를 제정하였다. 몽골의 라마 불교는 티벳형 불교와 샤머니즘이 혼합된 양상을 보인다. 대부분의 경전이 몽골어로 번역되지 못했고 간단한 입문서 정도만이 소개될 뿐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라마법회는 티벳어로 진행되며 참석 한 대중들은 거의 그 의미들을 모른 채 예식에 앉아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여전히 지방에서와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라마 승려에 대한 존경은 깊다. 티벳 불교는 수도원 식이다. 몽골이 공산화되기 전인 20세기초 외몽골에는 그 나라 부의 20%를 움직이는 583개의 수도원과 사원 건물을 갖고 있었다. 거의 모든 몽골의 도시들은 수도원이 있는 자리에서 발전했다. 당시 울란바토르로 알려졌었던 후레는 몽골의 가장 뛰어난 살아 있는 부다의 직위에 앉았다. 이는 성직 계급에서 달라이라마와 펀첸 라마 다음에 오는 세번째 것이다.
1970년대 초 100명의 승려들의 공동체인 간단 수도원이 울란바타르에서 열렸다. 이 사원은 몽골에서 유일하게 활동하는 수도원이었다. 소수의 지역 수도원은 박물관으로 남았고 간단 수도원은 박물관으로서 관광 명소였다. 그들 승려들에게 5년간의 훈련기간을 마친 많은 젊은이들이 포함되었는데 그들의 동기나 선택의 이유를 물어도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라마 불교는 이미 이 나라의 역사, 전통예술, 그리고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뿐 아니라 정치에 이르기까지 간여하고 있는데 굳이 동기를 새삼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안는다.
불교와 불교 승려들은 항상 중앙 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 해왔다. 몽골에 있는 불교 사원도 예외가 아니다. 사원과 국가는 서로를 지원하고 성육신의 교리는 성육화 된 살아 있는 부다들로 하여금 강력한 몽골의 귀족 가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4) 회 교
회교는 카자흐족이 주로 믿는데 주로 몽골의 서부 지역에 분포하며 수니파 회교도이다. 울란바토르시에도 7,000명 가량의 몽골 국적의 카자흐 인들이 살고 있으며 수도에서 30Km 떨어진 날라이흐시에도 회교도들이 4,000 ~ 5,000명 있으며 회교 집회소가 있다. 현재 몽골안에 모슬렘 교도를 위한 회교 집회소는 약 5개소로 추산되고 있다. 카자흐인들은 생활 속에서 체득된 습관적, 명목적 모슬렘이 대부분이고 영지적인 저항이나 신앙적 의식은 희박한 편이다. 따라서 모슬렘의 확산을 막고 개방 적인 모슬렘 선교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몽골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가치 가 있는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몽골의 문화/몽골스쿨닷컴 (0) | 2007.08.29 |
---|---|
몽골에 거주하는 종족정보 (0) | 2007.08.29 |
몽골 및 중국/ 세계지도보기 (0) | 2006.11.29 |
몽골 울란바타르 문화진흥원 (0) | 2006.09.09 |
몽골 국가정보 (0) | 2006.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