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목사님의 개혁신앙의 재평가

이 은 선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들어가는 말

 

정암 박 윤선(1905-1988) 목사는 한국교회에 개혁신앙이 뿌리내리는데 기여한 가장 대표적인 성경 주석가이다.

그는 일생 동안 신구약 성경 전체를 개혁주의 신앙에 입각하여 주석하여 한국교회가 개혁주의 신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지금까지 박윤선 목사님의 개혁신학에 대하여 여러 가지 저술들이 나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책이 서영일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인 『박윤선의 개혁신학 연구』이다. 이 책은 서영일 박사가 1992년 웨스트민스 신학대학원에 제출한 논문을 장동민 박사가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박윤선 목사의 일생을 추적하면서 그가 형성한 개혁신학이 교육현장과 성경주석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과 목회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를 시대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합동신학교에서 출판된 『박윤선의 생애와 사상』이 나와 있다. 이 책은 여러 후학들에 의해 그의 생애가 조명되고 주로 성경 주석과 관련된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정암은 성경학자로서 성경주석에 일생을 바쳤지만, 한국 신학교의 형편상 조직신학을 강의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의 조직신학에 대한 강의록이 그가 소천한 후에 제자들에 의해 출판된 것이 『개혁주의 교리학』이다. 이 책은 조직신학의 주제들에 대한 그의 개혁신앙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김 영재교수에 의해 박 윤선에 대한 평전이 나왔다. 이 책은 박윤선의 개혁신학을 경건과 교회 쇄신의 추구라는 관점에서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책들은 연대기적인 서술에서 박윤선의 개혁신학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박윤선의 개혁신앙이 형성된 배경을 설명한 후에 그의 개혁신앙이 펼쳐진 주제들에 따라 그의 개혁신앙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맨 먼저 그가 일생을 바쳐서 서술한 성경 주석에 나타난 개혁신앙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그가 제시하는 성경관과 해석원리가 그의 주석에서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어 나타나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둘째로 조직신학의 주제들 가운데서 전통적인 개혁신앙과 차이가 나는 주제인 그의 성령론을 다루고자 한다.

셋째로 교회사적인 관점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그의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러한 이해가 그의 삶에서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정암의 개혁신앙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I. 박 윤선 목사의 개혁신앙의 형성

 

1. 평양신학교

 

박 윤선 목사는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후에 1931년부터 1934년까지 평양 장로회 신학교를 다녔다.

그가 평양신학교에 다닐 때, 마포삼열은 소요리문답을, 교장 라부열은 사복음 대조기술, 요한계시록을, 이눌서는 중국어에서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찰스 핫지의 조직신학을, 어드만은 구약 주경신학을, 업아력은 교회사, 곽안련은 실천신학을, 왕길지는 신학원어를 가르쳤다. 한국인 교수로는 신약을 가르치던 남궁혁, 구약을 가르치던 이성휘, 변증학을 가르치던 박 형용이 있었다. 그는 이 시기에 배웠던 학문에 대하여 “신학생들이 교수들로부터 근본주의를 받으면서 그들이 칼빈주의 차원에서 신학을 해득하지는 못하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신학교 재학중에 “칼빈주의”라는 말을 거의 들어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당시에 평양신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의 지적인 수준도 높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학교 교수들도 학문적 수준이 높았다기보다는 선교의 열정을 가진 복음주의적인 성향이 강하였기 때문에, 체계적인 개혁주의 신앙이 교육되기를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선교사들은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정통적인 성경관을 교육하였다. 정암은 이 시기부터 영어와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하며, 영어성경 주석들을 읽고 있었다. 그가 뉴월(Newell)의 요한계시록 주석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라부열 교장이 빌려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평앙신학교를 다니면서 복음주의적이고 청교도적인 성향의 신학의 기본소양을 쌓으면서 어학을 공부하고 영어성경주석을 읽으면서 장래의 주석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2.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1차 유학

 

그가 본격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만나게 된 것은 1934년부터 36년까지 유학했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였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프린스톤이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을 수용하여 자유주의화 되어가는 것에 반대하여 메이첸을 중심으로 1929년에 설립된 신학교이다. 정암이 이 학교에 도착했을 때 메이첸 박사가 학장이었고, 변증학에 밴틸(C. Van Til), 조직신학에 머레이(John Murray). 구약에 알리스(Oswald T. Allis)와 맥크레이(Allen A. MacRae), 실천신학에 카이퍼(Rienk B. Kuiper), 신약에 스톤하우스(Ned B. Stonehouse), 교회사에 울리(Paul Wooley) 등이 가르치고 있었다.

정암은 이곳에서 메이첸의 문하에서 신약학을 전공했는데, 특히 주경신학에서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는 메이첸에게서 배우면서 신학자들의 학설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도 깨달으면서 성경해석방법도 배우게 되었다. 그는 방학 동안에는 기숙사에 남아 성경 연구에 주력하였다. 그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2년간 배운 과목들은 히브리어 5과목, 아람어 3과목, 헬라어 1과목 등의 어학과 칼빈의 신학과 위기의 신학 같은 조직신학과 함께 신구약에 대한 12과목이었다. 그러므로 어학과 성경과목이 거의 전부이고, 조직신학에 관한 과목이 2과목이었다. 이 시기부터 그는 성경주석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어학과 성경 신학 공부에 집중하였다.

 

그는 웨스트민스터에서 공부하면서 칼빈주의를 확신하게 되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나는 칼빈주의를 확신하게 되었다. 칼빈주의는 곧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내가 미래에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한국에 돌아왔다.”

칼빈주의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신앙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의미하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바로 그러한 전형이었다. 이 신학교는 예수 믿는 순수한 신앙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무릎 쓰고 세워진 학교였다. 그리고 그는 메이첸을 통해 학문과 경건을 겸비한 신학하는 태도와 함께 강해설교를 배워 한국에 이식하게 되었다. 칼빈주의는 “칼빈 자신의 생래적 사상 체계가 아니고 성경의 말씀을 바로 해석한 대로 그대로 믿어 나가는 사상체계이다.” 칼빈주의는 성경대로 믿되, 올바르게 해석된 성경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다. 칼빈주의의 주요원리는 “하나님 주권을 중심하는 사색”이다. 또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자연주의”이다.

정암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메이첸에게 성경주석방법과 함께 그의 신앙하는 태도와 삶의 자세를 배웠고, 동시에 칼빈주의를 학문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가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에 화란어를 배워 화란신학을 접촉할 수 있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커다란 소득이었다. 그는 “카이퍼, 바빙크, 크로솨이데, 크레다너스, 스킬더 드의 저서들을 접하게 되었고, 특히 바빙크의 개혁교리학을 애독함으로 성경을 바로 해석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3.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2차 유학

 

2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던 박 윤선 목사는 신사참배 문제로 평양신학교가 폐교하자, 원어학과 변증학을 더 공부할 목적으로 다시 1938년 8월에 웨스트민스터로 2차 유학을 떠났다.

그는 1년을 이곳에 머물면서 반틸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변증학을 공부하였다. 이곳에 머물던 3학기 동안 강의를 듣는 것보다 혼자 연구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가을학기에 히브리어(4시간), 아람어(2), 성경 아람어(2)를 혼자 연구하고, 시리아어(2)를 듣고 데살로니카 전후서 논문을 썼으며, 봄학기에 히브리어(1) 아랍어(2), 시리아어(2), 골로새서(1)를 연구하고 변증학(위기신학)을 논문(8)으로 썼고, 다시 가을학기에 고급시리아어(1), 교회사(4), 교리적 설교(2)를 듣고 변증학 논문(4)을 썼다.

주로 어학은 스스로 연구하며 주석을 쓸 준비를 하였고, 반틸의 지도하에 변증학 공부에 집중한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반틸의 변증법을 공부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기독교의 유일성을 강조할 필요성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반틸의 변증학의 특징을 “하나님을 아는 길을 성경뿐이다 --- 불신자도 오직 성경으로만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무조건 성경으로 하나님을 증거 할 때에 성령께서 그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셔야만 그가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된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와 같이 박 윤선 목사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그의 칼빈주의 신학사상의 형성에는 메이첸과 반틸의 영향이 가장 큰 것을 볼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사상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의 유입에 강력하게 반대하며 핫지와 워필드에게서 이어받은 구프린스톤 신학의 전통을 지키려는 변증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변증적인 성격이 강한 칼빈주의 신학을 배우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화란어를 습득하여 화란개혁주의자들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정암은 후에 고려신학교에서 교수하면서 칼빈주의라는 말보다는 개혁주의라는 말을 더 즐겨 쓰게 되었다.

 

4. 화란 자유대학 유학

 

박 윤선 목사는 1953년 11월에 화란 자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떠난 목적에 대해 그 자신이 박사학위 취득이 목적이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그것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유학 생활은 부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1954년 3월에 갑자기 끝나게 되었다. 그런데 자유 대학 학적부에는 박 윤선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지 않고 스키퍼스(R. Schippers) 교수의 조교신분이었다는 것으로 보여, 그의 자유대학 유학 신분이 불분명하다. 그는 “칼빈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일관성있게 주석을 하려면 칼빈주의 신학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유학을 지망하였다.” 이 짧은 화란 유학 기간 동안 그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48세의 나이 탓인지 향수병으로 고생하였으며, 화란개혁교회의 영적인 메마름에 실망하였다.

그는 이 기간에 대해 “화란 유학이 아니었더라면 신구약 주석 저술에 진리를 깨닫는데 부족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이 유학 기간 동안에 화란어 독해력이 증진되었고 화란개혁신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그의 신학사상은 개혁주의 바탕에 견고하게 기초를 두게 되었다.

 

 

II. 정암의 개혁주의 신앙의 전개

 

1. 개혁주의 성경 주석 작업의 진행

 

1) 해방 이전의 고린도후서 주석 저술과 바르트 성경관과 계시관 비판(1937)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박윤선 목사는 평양신학교에서 강사로 2년간 성경 원어를 가르쳤고, 평양 여자 고등성경학교에서 가르치면서 표준성경주석으로 고린도후서 주석을 저술하였다.

당시 장로교단에서는 표준성경주석의 저술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지 50년이 지나고 있었지만 한국인 목사들이 참고할만한 주석들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교 50년이 되는 희년 기념으로 감리교의 유영기 목사의 주도로 고등비평을 수용한『아빙돈 단권주석』이 1534년에 출판되었다. 이 주석에 대해 장로교단에서는 길선주 장로의 제의로 장로교 교리에 위배되는 점이 많은 사실을 들어 구독하지 않기로 가결하고 집필에 참여한 채필근, 한경직, 송창근, 그리고 김재준에 대하여 기관지를 통해 사과하도록 하였다. 이 총회에서는 모세의 창세기 저작설에 의심을 표하는 김영주목사와 여성의 교역 금지가 2000년 전 한 지방의 풍습이라는 김춘배 목사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로교 총회는 표준주석을 집필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박윤선 목사는 귀국하자마자 이 집필 작업에 가담하여 고린도후서주석을 저술하였다. 이 주석 서문에서 마펫은 이 주석 집필자들은 “성경 전부가 萬書之中의 最大書요, 신의 참된 말씀임을 믿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성경에 교시된 진리의 체계가 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에 선히 개괄되어 있다”고 믿으면서 저술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박형용도 “금일 교회에 긴급히 需要되는 주석서는 무엇보다도 書中에 정통신학의 표준을 확실히 세움으로 그것이 성경해석에 표준이 되는 동시에, 교회 신앙의 표준이 됨을 초대 급무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표준주석은 장로교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신학내용에 따른 개혁주의 주석이 될 것이 기대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박윤선 목사는 자신이 지금까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배웠던 방식에 따라 주석을 진행하였다. 그는 1936년 이전의 한국교회에서의 성경 주석 역사에 대해 성경이 영감 되었다는 정통주의를 지키는 데서는 성공하였으나,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개혁신앙의 성경 주석의 대원칙에는 충실하지 못하였다고 평한다. 한국교회 초기에 세대주의가 성행한 이유도 구역이 마태복음 5장 21절, 27절, 38절, 42절 등을 해석하면서 구약과 신약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갔기 때문이었다.

칼빈주의보다 복음주의가 우세하여 체험과 예화중심 설교, 현실도피, 불건전한 신비주의 성향이 있고, 근본주의가 우세한 이유는 부분적으로 구역성경이 오역되어 신구약을 단절하는 세대주의 성격이 있고 성경 해석 방법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박윤선은 고린도후서를 주석하면서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원칙에 따라 주석하고자 하였다.

 

박 윤선 목사는 1937년에 신학지남에 두 편의 논문을 기고하였다.

하나는 “바르트의 성경관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바르트의 계시관 비판”이다. 일본에서 바르트는 유일한 신학자로 알려져 그의 신학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는데, 1920년부터 일본에 유학했던 유학생들을 통하여 그의 신학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들과 정통신학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선교사들과 한국 신학자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 때, 박윤선의 이 논문들이 나왔다. 박윤선은 이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반틸 밑에서 위기신학을 공부했는데, 이것을 토대로 바르트의 성경관과 계시관을 비판하게 되었다. 그는 바르트가 성서와 “계시”를 분리시켜 취급하고, 피조물인 성서 저자들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해도 저들이 감당치 못해 계시 기록에서 많은 착오를 포함한다고 하며, 성서는 옛날에 하나님을 안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던 흔적뿐이어서 종교생활의 일개 참고서이고 기독교 신앙생활의 절대 기준이 아니라고 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성경은 인간의 주관적 태도 여하함을 불문하고 고유적으로 神語서의 절대적 효용성을 가지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바르트의 성경관은 역사적 기독교와 관계없는 “이설”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바로 이어 바르트의 계시관을 비판한다.

정암은 바르트가 원역사세계(초시간세계)와 역사세계(시간세계)를 구분하고 양 세계는 서로 전타성(totaliter aliter)을 띠므로 시간 세계의 것은 무엇이든지 원역사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고 후자의 교섭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바르트의 계시관이 ‘성서의 말슴과 틀닌다’고 일축한다. 인간은 타락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 안의 구속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교제한다. 그러므로 양 세계의 전적 타자성만을 주장하는 바르트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더 나아가 동정녀 탄생을 초역사적 사건으로 보는 바르트의 견해는 이 사건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암은 바르트 신학을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정통적인 성경관과 계시관을 확실하게 변호하였다.

 

2) 요한계시록 주석(1949)

 

박윤선 목사는 1941년부터 봉천신학교에서 가르치다가 1943년 7월에 사임하고 그 후에 요한계시록 주석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요한계시록이 출판된 것은 1949년이었다. 그의 개인적인 성경 주석으로는 첫 번째 작품이었는데, 1934년 요한계시록 암송에서부터 15년간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요한계시록은 주석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책이라는 것을 박윤선 목사 자신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이 책을 제일 먼저 주석하게 되었다.

한국의 초기 부흥사였던 길선주 목사가 요한계시록을 만독하고 그가 인도하던 사경회에서마다 계시록을 가지고 설교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박윤선 목사는 신성중학교 시절에 길선주 목사가 인도하는 사경회에서 요한계시록 강해를 들었는데, “왜 그런지 허전한 느낌이었고 요한계시록에는 무엇인가 깊고 좋은 내용이 있을 터인데 강사목사님께서 이 책의 깊은 뜻을 나타내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 길 목사님의 강해는 세대주의였는데, 그 때는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유학을 가던 시절에 고배에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면서 요한계시록을 암기하기 시작하여 18장까지 마치고, 학교에 도착하여 나머지를 암송하여 계시록 전체를 암송하였다.

그는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는 비전을 보면서 그 가운데 위로와 소망을 발견하였다. 머리말에서 그는 1944년 겨울 만주 한촌에서 이 주석을 쓰고 있었는데, “그 때에 안산과 봉천을 공습하기 위하여 온 B29는 나의 가슴을 시원케 해주는 통쾌한 고공비행을 하였던 것이다”라고 하며, 신앙의 눈으로 보니 B29 폭격기들이 교회를 핍박하는 일제를 심판하는 천사들로, 그리고 대강림을 선도하는 선구자들로 보였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시대의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이 책의 주석을 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 주석을 하면서 해석의 신학적 기초에 대하여 “해석에는, 칼빈주의 원리가 성경적인 줄 알고 일률적으로 채용되었다”고 한다. 그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4가지 학파 가운데 요한계시록이 “예언이기 때문에” 동시대 학파가 잘못되었고, “계시록 내용이 교회사의 사건들로 다 성취되었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교회사학파(역사주의적 견해)도 옳지 않으며, 계시록이 “신령한 이치보다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을 계시하므로” 영해학파(이상주의적 견해)도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계시록의 내용이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직후 하여 일어날 사건을 가리키므로” 말단파(미래학파)의 의견을 수용한다고 한다. 그는 이 학파의 지나친 여자적인 해석에 반대하면서도 9장 19절의 이만만을 이억명의 군대라고 해석하고 곡과 마곡도 러시아의 지명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박윤선 목사가 유학하고 있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세대주의나 역사적 전천년설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개혁주의 종말론으로 무천년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칼빈주의 원리를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계시록을 주석하면서 역사적 전천년설을 따르고 있다. 그는 계시록 20장 4-6절에서 후천년설을 말세에 불신앙과 배교가 있을 것이라는 눅18:18, 살후2:3-12절을 근거로 들면서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박윤선은 무천년설이 20:3-4절의 첫 번째 부활을 중간시대 천국에 있는 영혼들이라고 해석하나, 여기 아나스타시스(부활)는 몸의 부활을 의미하므로 잘못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 책의 끝 부분에 있는 특주에서 워필드의 견해를 반박하면서 무천년설을 비판한다. 그리고 최종판에서는 뵈트너박사의 후천년설도 비판한다. 그러면서 계시록 20장 4-6절의 기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천년을 가리키고 이때에 부활한 신자들과 죽음을 보지 않고 재림을 맞이한 신자들이 이 왕국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박 윤선 목사가 종말론에서 역사적 전천년설을 주장하게 된 것은 한국초기 선교사들이 전천년설을 가르쳤고, 길선주목사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가르쳤으며, 평양신학교에서 레이놀즈도 전천년설을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리에서 핫지와 벌코프를 따르는 박형용도 전천년설을 지지한다. 박윤선도 이러한 한국교회의 전통에 따라 전천년설을 주장하였다. 서영일은 박윤선 목사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에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입장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을 따른 것은 그가 어릴 때 서당에서 9년간 배웠던 조선성리학의 정통에 대한 충성의 강조와 배타적인 자세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비관주의적인 세계관의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그가 종말론에서 역사적 전천년설을 주장하게 된 것은 선교사들의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과 연관이 있는 점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에서 전천년설 내지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미국의 19세기 후반의 부흥운동과 연관되어 시대적인 위기 상황을 반영하면서 복음전파의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복음적인 열정과 함께 전천년설을 수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복음을 전수받은 한국교회에서 박형용과 박윤선 모두 다 평양신학교에 다니는 동안에 복음전파 활동을 지속했던 것으로 볼 때 그러한 복음전파의 열정과 이러한 전천년설이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신구약 주석 작업

 

요한계시록의 주석을 낸 이후에 박윤선 목사는 고려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동안에 공관복음(1953), 로마서(1954), 요한계시록 개정판과 바울서신(1955), 히브리서와 공동서신(1956), 시편(1957), 요한복음(1958) 등의 순서로 주석을 발간하여, 1979년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주석을 마지막으로 신구약 성경 전체에 대한 주석을 완성하였다.

1937년에 고린도후서 표준주석 저술로부터 계산하면 42년만이요, 1949년부터 계산해도 30년 만에 주석 작업이 끝난 셈이다. 그는 이 주석 작업을 위해 신문이나 TV도 거의 보지 않고 가족들과의 단란한 생활도 희생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주석 작업을 진행하기 위한 그의 성경관과 해석원리가 무엇인지를 먼저 검토해 보자.

 

(1) 박윤선 목사의 성경관

 

박윤선 목사는 일생동안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개혁주의 성경관을 고수하였다.

그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성경관을 비판하면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성경관을 통해 성경이 오류가 없음을 주장한다. 그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지 아니하였느나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10:34)에서 성경은 “그 성경”으로 번역되어야 하고, 그 성경은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예수님께서 시편82편 6절 한 구절을 옹호하기 위해 전체 성경을 폐할 수 없다고 하셨으니 성경의 만전 영감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딤후3:16과 벧후1:21절을 인용하여 사도들도 성경 전체의 영감을 믿었다고 지적한다. 그 후에 그는 성경 영감의 교리는 교회의 교리라는 워필드(B. B. Warfield)의 말을 인용한 후에 초대교회의 교부들의 견해와 개혁파 신조들을 인용하여 성경 영감 교리를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설명을 통해 만전성경영감교리가 예수님부터 개혁파 신조들을 통하여 확립된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는 화란 신학자인 리델보스의 성경관에 대해 전통적인 입장에서 벗어나는 점을 비판한다.

그는 1) “그리스도의 신앙의 빛에 의해서만 성경의 지혜와 지식의 보고가 열린다”고 한 것, 2) “성경은 그 내용이 되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 권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나의 이 말은 성경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그로 말미암아 영감된 사실에서 권위를 가진다는 주장을 변동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 3)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인정한 점은 리델보스가 바로 깨달은 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1) “성경의 무오성은 성경의 목적에 치중하여 생각되어야 하고 축자적으로 정오를 살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 2)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 완전하다. 그러나 성경은 영원하지도 못하고 완전하지도 못하다”고 한 것, 3) “우리는 성경이 영감된 문서라고 하여 거기 있는 내용이 무엇이든지 신적 계시이고 모두 동일한 권위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한 것, 4) “한 저자의 기록한 것에 대하여 다른 저자가 변동을 가져왔으니, 그것이 어떤 때에는 먼저 쓴 저자의 문구를 교정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한 것은 리델보스에게 “찬성할 수 없는 점들”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리델보스의 주장들을 찬성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예수님시대부터 지금까지 전개되어온 성경의 만전영감설을 고수하면서 그러한 입장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이는 개혁주의 신약학자인 리델보스도 비판한다.

 

그는 성경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1) 모든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고 믿음 2) 성경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음 3) 성경의 유기적 통일을 믿음 4) 성경 무오의 진리를 믿음 5) 성경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믿음 이라고 밝힌다. 그는 이러한 개혁주의의 정통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19세기 독일 자유주의와 바르트의 성경관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박윤선의 성경관에 대해 권성수박사는 워필드의 성경관에 입각하여 개혁주의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령의 내증에 대한 칼빈에 대한 견해를 발굴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한다.

 

(2) 박윤선 목사의 성경 해석 원리

 

박윤선 목사는 성경이 정확무오하게 유기적으로 만전 영감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면서 신구약성경을 주석하였다. 그는 신학지남에 발표한 “성경해석방법론”에서 앞부분인 해석방법역사는 그레이다누스(Greidanus)의 『성경 해석의 성경적 원리』를 소개하고 있는데, 초대교회로부터 19세기까지 성경 해석의 역사를 소개한 후에 마지막에 개혁주의적 성경해석과 예수님의 해석방법을 설명한다. 개혁주의적 해석방법은 성경을 자증과 성령의 내증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원어를 통해 문법적 역사적인 해석을 해야 한다. 이 해석은 정당한 추론을 인정하고, 전통에 예종하지 않으나, 역사적 교리를 중시하며, 성경 해석의 최종 심판자는 성경이라고 한다. 뒷부분인 성경해석학은 크로솨이데(F. W. Grosheide)의 『허메뉴틱』(Hermeneutiek)을 발췌번역으로 소개한다. 해석학은 원래 ‘번역한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에서 유래하여 해석의 법칙을 연구하여 체계화하는 과학이란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개혁주의 성경해석학은 성경이 성령의 단일저작이므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구약을 해석하실 때, 성경의 단일성을 인정함으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할 근거를 얻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가 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말씀하셨다.(요5:39; 6:32; 눅24:25-27). 성경을 추론적으로 해석하여 마22:23-32절에서 부활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시려고 출애굽기 3장 16절에 있는 “여호와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이용하셨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육신적으로 죽었으나 영혼이 살아있음을 증명하신다. 마4장에서 시험받으실 때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여 마귀를 물리치셨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셨으므로 우리도 성경의 통일성을 믿으며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방법에는 문법적, 역사적, 심리적 해석방법을 사용하면서 더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법적 해석방식은 성경본문의 문법적인 올바른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고, 역사적 해석은 본문과 관련된 시대나 환경을 요소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심리적 해석은 앞의 방법에 종속되어 사용되어야 하는데 본문에 나타나 있는 말씀이나 행위의 동기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해석에서는 그 동기의 배후에 하나님의 계시 운동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해석자는 이러한 해석을 종합하여 성경의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생명있는 교통과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종합적 해석을 통해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이 의도하신 참뜻을 찾아내게 된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계시의존사색이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에게 의존해야 바른 인식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은 타락해서 어두워졌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교회사에서 중세 스콜라주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채용하여 자율주의로 기울어졌고, 종교개혁 때 루터교회는 신인협동설 교리를 채택하였으며, 알미니안주의는 인간 자율 사상으로 기울어졌다. 반면에 사도들은 계시의존적인 타율주의였다. 어거스틴이 이러한 사상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계시 지식에 준거한 추론적인 인식론을 주장하였다. 정암은 이러한 계시의존사색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 칼빈주의라고 지적한다. 칼빈과 바빙크가 주장한 바와 같이 칼빈주의는 성경의 사상뿐만 아니라 문자까지도 영감되었다는 유기적 영감설을 내세우며, 이렇게 영감된 성경 말씀에 주어진 계시에 의존하여 성경을 해석하며, 이렇게 계시의존사색을 할 때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계시의존 사색은 그의 성경해석 원리일 뿐만 아니라 그의 변증신학에서도 사용되는 원리이다. 이러한 계시의존 사색은 반틸의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에 대해 정승원은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성경을 진리의 궁극적인 근원으로 보고, 모든 진리의 궁극적인 참조점으로 삼는 면에서는 일치하나, 반틸은 일반은총을 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하나 정암은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성경을 초월주의로 이해한다.

 

박윤선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면서 한국교회에서 유행하던 알레고리를 피하고자 노력하였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대한 교훈과 함께, 좀 더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구절을 가지고 덜 분명하고 난해한 구절을 해석하는 해석 방법을 사용하면서 박윤선 목사는 알레고리의 문제점을 인식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 중심의 것이니 만큼 해석자는 그 본문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어떻게 관계된 것을 찾도록 힘써야 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諷諭濫用을 피하여야 한다. 갈4장에서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 풍유로 해석한 일이 있으나 그것은 영감된 풍유적 해석이니 만큼 특수 취급되어야 한다. 해석자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를 원칙상 풍유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해석가는 깊은 뜻을 찾아보려고 풍유해석을 방법으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해석자가 그 현재에서 깨닫지 못하는 말씀이 있으면 그것을 그냥 모를 것에 둠이 합당하다. 그것은 그 개인에게만 준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의 교회에 준 까닭이다. 그 자신이 그 때에 찾지 못하는 깊은 뜻을 후대에 찾게 될 것이다.

 

박윤선은 알레고리를 피하고자 하였지만, 자신도 그러한 것들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서영일 교수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그도 자신의 주석 여러 곳에서 알레고리를 사용하고 있다. 요한복음 21장11절(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라 이 같은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에 대한 주석에서 알레고리의 사례가 드러난다. 그는 153이란 숫자가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한다는 영적인 해석을 비판하고 이 153은 많은 고기가 잡혔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도 일종의 이적이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을 보호하심을 상징한다(Godet)"고 덧붙였다. 고기가 교회가 아니라면 그물이 찢어지지 않는 것이 어떻게 교회를 보호하는 것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해석은 요21:4절도 헹스텐베르그를 인용하여 영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박 윤선목사는 유명한 주석가들의 해석은 알레고리가 아니라고 보았는지 궁금하다.

 

그는 요한복음 2장 10절의 “가장 좋은 포도주”를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기쁨이라고 영해하며,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서 기름과 포도주가 “상한 심령에 대한 유일한 치료제”인 복음을 “비유로” 가리킨다고 하였다. 이러한 영해를 레위기 주석에서도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정암은 알레고리를 비판하고 피하고자 하였으나, 주석의 여러 곳에서 그러한 해석을 하고 있다.

 

박윤선 목사는 성경 주석을 하면서 비평적인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는데, 이것이 부족한 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는 이와 같이 비평적인 학자들의 견해를 비평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나, 비평적인 학자들의 견해가 자신의 견해를 지지해 줄 때는 인용한다.

 

학자들의 학설을 인용할 때에 어떤 문구에서는 혹시 신학의 처지가 다른 주석가들에게서 인용한 바가 있다. 그것은 그들의 신학 사상 체계를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신학사상이 정통이 아닌 그들까지도 별 수 없이 그 문구 해석에서는 우리와 일치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뿐이다. 그들의 의견을 인용할 때에 그 신학 처지가 정통적이 아닌 사실을 지면 관계로 매번 비판하지 않았으니, 독자들은 이 점을 양해하기 바란다.

 

반면에 박윤선 목사는 로마서 주석에서는 바르트와 브루너의 주석을 비판하면서 주석하였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학에서 공부할 때 반틸을 통해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과 함께 그의 가르침의 위험을 알았던 것 같다. 박윤선은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을 상당히 소중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바로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을 읽고 자신의 로마서 주석을 쓰면서 자신의 주석 여러 곳에서 바르트 주석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외의 주석에서는 별로 비평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하비 칸은 이미 1968년에 글을 쓰면서 이 문제를 지적하였다.

 

그는 충분히 훈련을 받지 못한 교회 지도자들이나 신학적 지식이 박약한 목회자들을 우선 염두에 두고 글을 쓰기 때문에, 그의 주석들을 보면 고등비평의 문제들이나 서론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거의 지면을 할애하지 않고 있다.

 

그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석을 여러 번 개정하면서도 이 책 자체에 대한 서론은 초판부터 마지막 개정판까지 거의 변화가 없이 간략한 내용만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박 윤선 목사는 자신의 주석들을 쓰면서 칼빈주의자들을 주석을 참고하였다. 그의 주석에는 워필드(B. Warfield), 핫지(C. Hodge), 보스(G. Vos), 카이퍼(A. Kuyper), 크로솨이데, 바빙크(H. Bavinck), 리델보스, 스킬더(H. Skilder) 등의 이름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온다. 특히 그의 신약 주석에서 화란신학자들의 이름이 상당히 많이 거론되고 있다. 그의 “신약주석 전질에서 학자 및 주석가들의 이름은 성경본문 해석과 관련하여 총 2888회 언급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인물을 칼빈으로 221회로 전체의 7.7%를 차지한다. 그리고 화란신학자들의 언급횟수는 총 834회로서 전체의 28.9%에 달한다. 칼빈을 제외한 다른 나라 학자들(1833회)과 화란 학자들(834회)의 언급 비율은1:0.45가 된다. 네덜란드 한 나라의 비율이 전체 인용의 거의 반을 차지한다는 것은 박윤선 목사의 신학에 있어서 화란신학은 그만큼 비중이 크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전체의 인용의 47%, 히브리서 공동서신과 공관복음에서는 31%를 차지하여 화란신학자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에 인용횟수가 가장 적은 것은 로마서로 19%이고, 다음으로 고린도전후서는 21%를 차지한다. 그가 인용한 학자들 가운데 보스와 바빙크 스킬더가 많이 인용되고 있다. 결국은 그가 이러한 학자들의 견해를 가장 많이 수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러한 화란 학자들의 견해를 대부분 긍정적으로 인용하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리델보스의 경우에 성경관에서는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2. 박 윤선 목사의 성경신학과 언약신학에 대한 이해

 

박 윤선 목사는 성경 신학이 주경신학의 한 부분이므로, 주경학적으로 진행하면서 동시에 계시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계시사적 연구란 것은 성경의 어떤 부분을 성경 전체에 비추어 해석하고, 그 역사적인 위치를 중대시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경신학을 보스(G. Vos)의 『성경신학』과 리델보스(H. Ridderbos)의 『바울과 예수』(Paulus en Jezus)와『천국의 옴』(De Komst Van Het Koninkrijk),『예수의 자기 은익과 자기 계시』(Zelfopenbaring En Zelfverbarung)을 많이 인용한 편저의 성격을 가진 책이라고 밝힌다.

그는 자신의 성경신학에서 신구약의 통일성의 문제를 계약론에서 다루고 있다. 그가 성경신학이 계시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했는데, 신구약의 통일성의 토대인 계약론을 계시사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계약론에서 눈에 띠는 것은 성경에서도 언약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일반적으로 학자들도 언약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는 언약이 아니라 계약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그가 언약이란 용어 대신에 계약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바빙크를 인용하여 기독교가 계약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성적(理性的) 또는 도덕적 실존들 가운데 모든 고차원적 생활은 계약의 형태로 나아간다 --- 사랑과 우애와 혼인과 기타 모든 사회적 공동 관계와 산업과 예술은 결국 계약의 근거 위에 성립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서로 신뢰감과 여러 가지 도덕적인 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의무관념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고상하고 가장 부유한 생활 곧 종교라는 것이 계약 성격을 가질 때에 놀랄 일이 아니다.

 

박윤선 목사가 베리트를 “계약”이라고 번역한 것은 베리트가 인간 차원의 계약과 같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말을 지키지 않음에 반하여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은 항상 지키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분명한 설명 없이 계약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 독자들의 약간의 혼란은 불가피한 것 같다.

 

박윤선 목사가 계약론을 구약신약에서 다루지 않고 신약신학에서 다루고 있는데, 이에 대해 유 영기교수는 “물론 이것은 그가 구약학자가 아니고 신약학자인 것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미 1964년에 간행된 이사야 주석에서 55:3의 “영원한 언약”에 대해 은혜계약, 곧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도록 하시는 계약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세우시고, 모세로 말미암아 확고히 하였고, 다윗에게 예언되었다고 하였다. 반면에 1968년에 발행된 창세기 출애굽기 주석에서는 언약을 언급한 구절들에 대한 자세한 주석이 없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정암의 계약사상은 구약에 나타난 계약이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느냐에 강조점이 있다기보다는 신약의 계약은 이미 구약에 나타난 계약들 안에 약속되어진 약속의 성취로서 하나님의 신실성을 보여준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있다 하겠다”고 하고, “그의 계약사상의 출발은 구약에서가 아니라 신약에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설명은 그가 계약론에 관한 전체적인 설명을 신약 신약의 시작부분에서 설명하고 있고, 바로 “마1:1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마고 약속하신대로 이루어 주셨다는 의미이다”라고 하는 서술에서도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그의 계약사상의 출발은 구약에서가 아니라 신약에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는 결론은 박 윤선 목사의 성경 신학을 검토해 보면 약간은 무리라고 여겨진다.

 

박 윤선 목사는 계시사를 연구하며 계시의존적인 사색을 한다는 의미에서, 구약성경신학을 기원론에서 창조에 대해 설명한 후에 원시 시대의 계시, 홍수 이전 시대의 계시와 노아 시대의 계시, 선민국가의 기본 계시, 선민국가의 조직과 관련된 계시, 예언시대의 계시를 다루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계약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원시시대의 계시에서는 행위 계약과 은혜언약을 다루고 있다. 원시 시대의 계시에서 먼저 구속운동 이전 계시를 다룬 후에, 최초의 구속 계시를 다루는데, 이것이 바로 행위 계약이다. “행위계약(창2:17)에서 하나님은 그 때에 아담에게 단 한 가지 계명(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계명)만을 주시고, 그가 그것을 어길 때에는 죽음에 이르도록 규정하셨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 참여한 행위언약(호6:7)에서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인류를 처우하심에서 언약의 원리로 일관하신다. 그런데 아담이 언약을 어기는 한 행위 계약에 의해서는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창3:15절에 계시된 대로 다른 계약, 곧 은혜 계약에 의해서 인류의 구원을 약속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죄를 벌 하시면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것이다. 아담 하와에 대한 “구원 계약(창3:15)”은 사람에게 마귀를 이기심을 약속하심인데, 마귀를 이김이 바로 구원이다.(요12:31; 롬16:20). “여인의 후손”은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택한 백성의 대표자 격인 메시아를 포함적으로 의미한다. 특히 “여인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이 죄와 마귀를 이김으로 구원얻을 것을 의미한다.”그는 최초의 구속계시를 설명하면서 율법에 순종하는 조건으로 맺어진 행위계약을 파괴함으로 주어진 은혜계약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박 윤선 목사는 창조에 이어 구속계시인 은혜언약을 설명하고 있다.

 

박 윤선 목사는 다음으로 “홍수 이전 계시와 노아 시대의 계시”의 “홍수 심판”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자연 계약”으로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홍수 후에 자연계를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으시리라는 자연 계약을 설정하셨다. 자연계약은 1) 은혜 계약의 진실성을 보장하고 2) 이 계약에 의해 은혜 계약의 대상이 준비되며 3) 은혜언약을 통해 완성되고 4) 은혜 언약의 모형이 된다.

 

그는 이렇게 자연 계약을 설명하고 난 후에 하나님의 계약의 필요성과 계약의 성격을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상대로 계약의 제도는 1) 우리가 하나님의 진실성을 믿도록 하려는 것이므로 필요하고 2) 하나님이 인류를 취급하심에 있어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상대하시므로 먼 장래와 관계된 일들도 약속하시게 되므로 필요하고 3) 사람들의 종교 윤리적 인격을 시험해 보는 제도로서 필요하다. 하나님의 계약의 성격은 1) 계약(혹은 언약)을 나타내는 베리트는 “쪼갠다”는 의미를 가진 빠라에서 유래하여, “이것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계약을 맺을 때 짐승을 죽여서 쪼개어 양쪽으로 나누어 놓음을 생각한 말이다(창15;10). 이 풍속은 그 계약자들이 위반할 때는 짐승처럼 쪼갬이 된다는 의미였다.” 2) 계약은 하나님의 단독 역사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 말은 무인격한 존재와도 관련될 정도로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맺어지는 것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상대로 계약하실 때 “독자적인 주권”으로 임하셨다.(창15:8-11) 하나님이 생명으로 이를 서약하신 것이다.(창22:16; 신32:40) 하나님의 계약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므로 베리트를 70인역에서 동등관계를 나타내는 쉰데케가 아닌 일방적 관계를 나타내는 디아데케로 번역하였다. 정암은 자연계약을 설명하면서 언약의 일반적인 특성과 성격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이 나타나 있는 본문들을 사용하고 있다.

 

박 윤선 목사는 바로 이어 “선민국가의 기본계시”의 계시내용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설명한다. 여기서는 그는 언약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창12:2-3절에 있는데,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란 말씀과 “땅의 모든 민족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큰 민족은 큰 나라를 의미하는데, 그 후에 이루어질 육적 이스라엘로 표현될 신정국가를 말하고, 궁극적으로 메시야를 중심한 영적 국가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왕국에서 사람들이 받을 복은 속죄로 말미암는 구원의 축복으로 영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다. “너로 인하여”라는 말은 창22:18에서 “네 씨로 말미암아”로 좀 더 자세히 밝혀지는데, 여기 “씨”란 말은 자손을 의미하면서 한 사람 곧 메시아를 가리켰다.(갈3:19) 이와 같이 아브라함의 언약은 메시아를 통한 구속언약이자 은혜 언약이다.

 

그는 계속해서 모세의 시내산 계약과 다윗 계약을 설명한다. 시내산 계약도 아브라함 계약의 내용을 포함하고, 그 계약의 연속임을 암시한다. 아브라함 계약도 왕국 계약인데, 시내산 계약도 국가를 성립시키는 율법을 통해 왕국과 관련되어 있고, 제물의 피로 속죄받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는 시내산 계약이 은혜계약(재래의 아브라함 계약)을 거스르지 않아서(갈3:16) 계약은 모두 단일 내용으로 내려온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다윗 계약도 왕국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삼하7:13-16; 시2:7; 시110편) 특히 왕국 시대 예언자들은 위의 계약에 포함된 메시아 왕국과 메시아로 말미암은 속죄제도에 대해 많이 예언했는데, 이사야 53장이 그러하다. 이와 같이 박 윤선 목사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으로 이어지는 계약은 근본적으로 동일하게 메시아 왕국 계약이자 메시아를 통한 속죄의 은혜 계약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왕국에 대한 약속은 예수의 초림과 그의 복음운동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왕국 성취가 연기되었다고 주장하는 세대주의를 비판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그는 구약의 계약이 신약의 예수에 의해 성취되었다는 점을 구약신약부분에서도 강조하나, 그의 계약신약은 이미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다윗의 계시사의 흐름 속에서 분명하게 설명되면서 구약에서 분명한 시작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언약신학이 신약에서 시작된다는 주장은 재고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그는 바로 계약신학을 중심으로 신구약의 통일성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3. 박 윤선 목사의 성령론

 

박 윤선 목사의 성령론에 대해 전통적인 개혁주의 성령론과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두 부분이 있다.

첫째 차 영배 교수가 주장하였고, 김 영한 교수가 수용한 입장이다. 박 윤선 목사가 처음에는 개혁주의의 전통적인 입장에 따라 성령은사중지론을 주장하였으나, 차영배 교수의 영향을 받아 은사중지론에 대한 입장을 완화시켜 은사지속론을 수용하였다고 주장한다. 차영배 교수는 『박윤선 신학과 한국신학』의 권두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같은 해(1980년)의 초여름에 저의 연구실로 친히 오셔서 성령론 특히 오순절 성령 강림에 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 주제는 사도행전 8장이었는데 오순절에 성령이 단회적으로 강림하였다면 사마리안인들에게 또다시 성령이 임했다는 표현이 의인간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실제로 임했다는 것, 이후부터는 성령론을 차교수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양신학교의 성령론이 전통적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김영한 교수는 이러한 증언을 근거로 신학적으로 차 영배교수의 영향을 받아 마침내 1980년 이래 박윤선 목사의 성령론이 확실히 바뀌게 되었다고 보았다. “심산이 피력한 성령의 현재적 역사에 대한 뜨거운 신학적 증언은 차츰 박윤선 박사의 입장을 은사지속론에 대하여 열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노년의 박윤선 박사는 성령론에 관해서만은 심산의 은사지속론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김명혁교수도 『한국교회의 쟁점 진단』 제5장에서 박윤선 목사님이 성령의 사역을 포괄적으로 인정하여 성령은사론을 인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둘째 배본철교수는 차영배 교수가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암이 차교수의 영향을 받아 1978년부터는 그러한 입장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정암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유학을 가기 전에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입장에 서 있었으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유학하게 됨으로 워필드(Warfield)나 개핀(Gaffin) 등의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영향을 받게 되어,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기울어졌다. 그가 귀국해서도 총신대학교에 교수 및 학장으로 있을 때 1977년까지는 이같은 입장에 서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윤선은 1978년부터 차영배와의 논의를 통해 성령세례론에 변화를 보이게 되어, 마침내 1980년에는 그가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입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윤선은 자신이 저술한 주석의 특정 내용을 변화된 해석학적 입장에서 삭제하거나 수정했다. 그후 박윤선이 총신을 떠나 합동신학교로 옮기고부터는 계속 자신의 변화된 입장을 고수하였다고 한다.” 차영배 교수는 분명하게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이화영 목사도 정암이 차영배의 영향을 받아 성령세례절충론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박윤선 박사는 초기에는 화란의 개혁파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성령세례단회론을 주장했지만 나중에는 성령세례절충론으로 입장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박윤선은 처음에 카이퍼의 견해를 수용하여 오순절 성령강림의 단회성을 주장하여 “"비유하자면 수도의 설비와 같은 것이니 이 설비에 있어서 중요한 원 파이프를 통해 물이 내려온 다음에는 그 내려온 물이 모든 부속 파이프를 통하여 고요히 공급되는 것과 같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신이 모든 시대를 통하여 오늘까지 역사하신다"고 주석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유작인 개혁주의 교리학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그러나 그의 후기 사도행전 주석에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박윤선 목사는 자신의 주석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였는가?

먼저 성령세례와 중생의 관계를 살펴보자. 정암은 사도행전 1장 5절에 대한 주석에서 “성령세례”는 오순절에 내릴 성령의 은혜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세례 요한이 물세례의 직책을 수행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의 그의 직책상 불가결한 것임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성령을 주시는 그 역사를 가리켜 성령으로 세례주신다고 말하는 이유는 1) 성령의 물붓듯 풍성히 부어주실 것을 의미하며(롬5:5) 2) 성령세례는 영적이어서 인간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것을 가리키고(요3:5; 고전6:11; 딛3:5) 3) 신자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가리킨다(고전12:3).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한 함께 살게 되는 관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립된다.(롬6:3-4) 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할 때에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 정암은 머레이의 견해를 인용하여 “세례가 죄를 씻음(중생)과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는 성령세례 받는 방법에 대해 1) 성령의 오심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며(요3:7-8) 2) 신자로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므로 성령을 받게 되고(눅11:13) 3) 그리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의 은혜가 임한다(행5:32)고 설명한다. 정암은 2)번에서 성령세례는 영적이어서 인간의 심령을 새롭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데 이것이 바로 중생이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중생할 때 그리스도와 연합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머레이의 견해를 인용하여 (물)세례가 죄를 씻음(중생)과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는 죄를 씻음인 중생과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을 나타내므로 정암은 성령세례가 중생이라고 말한다. 그는 고전 12장 13절에서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에 대해 ‘진정한 세례에는 성령의 역사가 동반하시나니,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도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요3:5)”고 하여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한다.

 

박윤선 목사는 사도행전 8장 17절에 대한 주석에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고 있다. "성령을 받는지라"는 구절에서 대해 “이것은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중생한 자)가 또 성령의 특수한 은혜를 받음에 대하여 말한다”고 해석한다. “토레이(R. A. Torray)는 말하기를 "행 1:4의 "약속"이란 것이 그 다음 절의 "성령세례(성령의 특수은사)" 주실 것을 의미했는데, 행 2:39에는 그 약속을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신자들도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바른 해석이다. 그리고 그는 성령의 세례를 받으려는 자에게 다음과 같은 주의사항 몇 가지를 말했다. 곧, 성령의 세례를 받으려면 (1)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신 사실 위에 신뢰하고 안식할 것, (2) 자기의 모든 알려진 죄를 버릴 것, (3) 죄에 대한 공고백을 할 것, (4) 하나님께 헌신할 것, (5) 성령받기를 기구할 것, (6) 신앙을 가질 것 등이다." 박윤선 목사는 이곳에서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박윤선 박사는 사도행전 19장 1-7절 주석에서 예수님을 알고 있는 제자들이 성령세례로 인도받았다고 말여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한다.

“어떤 제자들”은 기독신자들이면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빈약한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우리는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하였다”고 말한 것은 성령의 은사들(카리스마타)이 신약적으로 특수하게 임하는 것을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들이 유대인이니 성령을 몰랐을 리는 없다(Calvin). --- 여기서 바울이 세례를 문제로 그들을 접촉한 이유는 그들을 성령세례로 인도하려는 까닭이다. --- 성령이 임하여 방언을 하게 되었다 --- 오늘날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다면 방언을 주실 수 있다." 박윤선 목사님은 어떤 곳에서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 어떤 곳에서는 양자는 구분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단회성에 대하여 정암은 사도행전 2장에서 단회성의 측면과 연속성의 측면이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영구한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서 약속 성취의 문을 여셨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순절 사건은 단회의 사건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적용으로 교회의 출발이란 계시사의 측면에서는 단회적이다. 그러나 “성령 역사의 놀라운 성격이 오순절의 사건에 국한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성령이시니 지금도 놀라운 성격(이) 있는 초자연적 역사를 하신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오순절 성령강림이 단회성을 지녔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그 때에 사도들이 받은 성령의 은사의 권위가 후대인에게 계승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정암은 “방언에 대하여”라는 특주에서 계시시대와 교회시대를 구분하여, 계시시대에는 표준적인 이적과 계시가 있었던데 반해, 교회시대에는 사도적 증표를 보여주는 이적은 없지만, 특별섭리는 있다고 한다. 신유와 방언의 은사에 대해 오늘날도 그러한 의사가 있지만 사도시대의 표준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 섭리에 의한 것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정암은 은사중지론보다는 은사의 역할을 인정하는 입장에 서 있다. 정암은 사도행전 19장 6절 주석에서 “오늘날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필요하다면 어떤 사람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실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에 대한 주석에서도 성령은사의 지속성을 인정한다. 박윤선 목사는 차영배 교수의 영향을 받아서 성령론에 대한 그의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구속사적인 단회성과 함께 사역의 지속성을 인정하고 있고,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며, 성령은사의 지속성을 인정하고 있다.

 

 

4. 박 윤선 목사의 칼빈주의 이해

 

1) 일반은총론

 

박윤선은 1952년에 파수꾼에 두 번에 걸쳐 칼빈주의에 대하여 기고하였다.

그는 여기서 칼빈주의에 대하여 논하면서 주로 칼빈, 아브라함 카이퍼, 헨리 미터 등의 견해에 의존하고 있다. 그는 칼빈주의의 주요 원리는 예정교리나 하나님의 영광 혹은 인간의 책임 역설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러한 것들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중심하는 사색”이라고 정의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신자가 어디서나 무엇에서나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와 의지의 활동을 생각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위기신학은 시간과 공간 세계에서 하나님의 적극성있는 계시나 섭리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정암은 칼빈주의가 “칼빈 자신의 생래적 사상 체계가 아니고 성경 말씀을 바로 해석한 대로 믿어 나가는 사상체계”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에서는 성경 말씀이 “전폭적으로 성신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어서 절대무오류한 것으로 믿어” 성경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해석한다.

 

칼빈주의의 중요한 특색은 아브라함 카이퍼가 주장한 일반은총을 인정하는 점이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구원과 관련된 특수 은혜와 함께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누리는 보통 은총을 주장하였다. 보통 은총은 죄성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의 질서와 정의를 보존하는 것이다. 카이퍼는 보통 은혜의 적극적 측면으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있는 재능을 어느 정도 발휘하도록 보존하시는 것이라 보았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2권 2장 16절 이하에서 보통은총을 설명한다. “성신께서 신자들에게 교통하시는 은혜는 그들을 성화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또 다른 방면에 있어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보존시키는 성신의 역사도 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2권 3장 3절에 불신자에게 나타나는 선이나 덕행은 성품의 부패하지 않은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제재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였다. 정암은 이와 같이 일반은총을 인정하여 칼빈주의 국가들에서 과학이 발전한 사실을 지적하며, 이러한 은총의 영역에 정치도 포함시킨다.

 

정암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입장에서 이러한 일반은총의 영역을 인정하지만, 서영일의 분석에 따르면 세상과 사회에 대한 그의 입장은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그는 이 세상을 “장망성, 마취국”이라 부르는 번연의 입장에 동조하기도 하고, 불교에서 빌어온 “고해”라는 용어도 자주 사용한다. 그래서 서영일은 “그의 주석을 읽는 사람들은 삶에 대한 칼빈주의적 자세가 그의 머리 속에서만 맴돌았을 뿐 가슴으로 확산되지 못하였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평가한다.

 

2) 교회와 국가의 문제

 

박윤선은 교회와 국가의 문제에 대하여 1950년대에 여러 편의 글을 파수꾼에 썼다. “칼빈주의 (1),”(1952.4), “칼빈주의 (2),”(1952.5), “칼빈주의에서 본 기독교인과 국가,”(1952.11), “신자와 문화건설,”(1953.8), “칼빈주의와 정치,”(1953,10) 등을 기고하였다. 이러한 글들은 모두 6.25전쟁이 진행되던 무렵이나 휴전 협정 직후에 서술된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는 김진홍 목사와 함께 헨리 미터(Henry Meeter)의 『칼빈주의』(Basic Ideas of Calvinism)(1959년 제4판)를 번역하였다. 이러한 글들을 통하여 정암은 기본적으로 칼빈의 정치사상을 수용하였다.

정암은 국가는 일반은총의 영역에 속하므로, 반드시 기독교적일 필요는 없다는 없고, 불신자들이 다스리는 국가도 가능하다고 본다. 민주주의가 바람직하지만 왕정이나 귀족정치도 반대할 이유가 없으므로, 특정한 정치 형태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정암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교회와 국가를 혼동하지 말고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일반은총의 영역에 속하고 교회는 특별은총의 영역에 속하므로 성별이란 경계선으로 구별되어 있다. 정치가 종교를 간섭할 때 독일과 일본같이 나라가 망하고 종교가 정치에 간섭할 때 여러 폐단이 생기는데, 칼빈은 신앙의 부패가 온다고 역설하였다. 이와 같이 구별된 영역에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국민들은 로마서 13장의 말씀에 따라 통치자들을 존중하고 복종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에 통치자들이 독재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암은 다스리는 자들이 크게 잘못할 때에 사설단체나 군중의 불법한 음모와 반란에 반대한다. 칼빈주의는 지배자가 크게 잘못하는 때에 재하자들은 명랑하게 또는 합법적으로 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저항하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실패할 때에는 칼빈주의는 반항보다는 오히려 참는 것을 좋게 여길 것이라는 미터의 견해에 정암도 동조한다. 그는 “무슨 제도를 변혁하기는 쉬우나 개량되기는 어렵다”는 루터의 말을 인용하면서 “현재의 고난은 지은 죄 때문에 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정암은 독재자에 대해서 무력이나 폭력을 사용하는 저항을 인정하지 않고 하급관리에 의한 합법적인 저항만을 인정한다. 이러한 정암의 입장은 칼빈의 입장과 거의 동일하며, 베자나 낙스같은 후기 칼빈주의자들의 무력저항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암의 입장은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치 박정희와 전두환 대통령의 독재 정권 하에서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독재정권의 합법화 작업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권위를 합법화시켜주는 조찬기도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교분리의 입장을 유지하여 국가의 독재적인 통치에 대하여 적극적인 반대를 하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하비 칸의 transformation지 사건이다. 하비 칸은 1986년 여름에 광주 사태 1주년을 기념하는 기도회에 참석해 달라는 자유주의자들의 기도 모임에 참석 여부를 복음주의자들에게 묻는 형식의 질문지를 돌려서 그에 대한 답변을 이 잡지에 기고하려고 하였으나 정암은 하비 칸에게 그러한 설문지를 돌리지 말도록 부탁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요청에 대한 답변으로 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역시 “사회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를 구분해야 하며, 기독교 공동체로서 우리는 정부의 도덕적 위치가 어떠하든지 이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입장에 대해 하비 칸은 편지를 보내 “제가 보기에 당신의 칼빈 이해에 균형이 좀 더 필요하리라 믿습니다”라고 하였다. 칸은 칼빈이 단지 기도만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후원자로서의 우리가 항거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오덕교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합동신학교 설교시간에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설교를 했다고 하며, 김영재 교수는 이 서신 교환 이후에 “자신의 종래에 견지했던 그 견해나 자세를 반성해서 그랬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설사 그런 발언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학교 내에서 한 발언으로 끝났을 뿐 공식적인 의사표명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암의 독재적인 정권에 대한 저항의 문제는 정교분리의 입장에 치중하여 소극적인 입장에서 침묵하는 입장에 머문 것으로 보인다.

 

 

5. 박윤선 목사의 교회관 - 교회의 분리 문제

 

교회의 분리 문제에 대해 결국 그는 1980년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세우는데 동참하고 그 학교 설립에 따라 개혁교단을 세움으로써 장로교회의 분열을 가져왔다. 이러한 분열은 교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분명한 설득력이 가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교회가 분열할 때에는 적어도 분명한 교리적인 차이가 있어야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설립될 때, 그들은 적어도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에 반대한다는 교리적인 명분이 있었다. 그리고 정암도 자신의 주석에서 교리문제만이 교회 분열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임을 설명하고 있다.

 

교회의 참됨과 거짓됨은 그 교회의 공동고백과 권징 실시 여부로써 구별되고, 그 교회의 성원인 개인 신자들의 사회 생활의 완전 여부는 별도의 문제이다. 만일 누가 교회의 개인 신자들의 결점으로 인하여 교회적 생활을 버리고 물러선다면, 그것은 혹시 “분리” 행위가 되기 쉽다. 그러나 만일 누가 교회의 부패를 경고하며 진리와 의를 증거하다가 교권의 억압으로 축출을 당한다면 그는 “분리”의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영광을 얻을 뿐이다.

 

그는 1979년 비주류측이 분리해 나갔을 때에도 정암은 1980년 신학지남에 “분파의식에 대한 소고”를 기고하여 교회가 분열할 수 있는 세 가지 이유로 1) 칼빈이 로마 가톨릭에서 나온 것 같이 주요한 교리에서 오류를 범할 때 2)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갈등과 같이 교회가 옳은 교리를 가지고 있으나 이를 신실하게 지키지 않을 때, 3) 부당한 이유로써 치리가 정의롭게 행해지지 않을 때라고 말하고 분열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로 지방주의와 독선주의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김영재 교수도 교리적이며 신학적인 오류와 그것으로 인한 부패의 경우에 분립의 명분을 인정하나, 도덕적 부패의 경우는 정화의 대상이지 분립의 명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합신 교수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처음부터 교회의 분립을 도모할 의사가 없었으나 교회를 쇄신하고 교권의 지배를 받지 않는 바람직한 교육을 시행하기 원했던 것이 진행되면서 분립의 결과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한국장로교회들 가운데 분립에서 자유로운 교회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분열한 소수그룹은 자신들이 겪은 통상적인 의미의 “분립”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분립’을 인정하는 것은 분열한 다른 그룹과 역사를 같이하고 있음을 표명함과 동시에 분열의 충분한 이유와 함께 분열한 그룹과 연합을 지향하는 교회임을 시인하는 것이다. 박윤선이 ‘개혁신학교’라는 명분있는 이름을 마다하고 ‘합동신학교’라는 명칭을 선택한 것은 바로 분열을 솔직히 시인하고 연합을 지향한다는 그의 교회관 때문이었다.

 

정암이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를 세울 때에 도덕적인 명분은 있었을지 모르나 교리적인 명분은 없었다. 그러므로 박윤선의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의 설립은 현실교회 정치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저항의 성격은 있을지 모르나, 개혁주의 입장에서 교리적인 타당성을 인정받기는 어려운 것같다.

 

 

나가는 말

 

박윤선의 개혁신앙에 대한 재평가를 해 보는 것은 앞으로 좀 더 많은 연구가 진척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 본인이 살펴본 것은 이미 그의 개혁신앙에서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몇 가지 점을 살펴본 것에 불과하다.

첫째로 그의 성경관과 종말론은 평양신학교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개혁주의라기 보다는 보수주의 내지는 경건주의적인 복음주의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신앙은 한국에 왔던 선교사들이 굳게 견지했던 것으로 프린스턴 구파의 성경관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정암의 성경관은 개혁주의 전통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종말론 사상에서는 개혁주의의 주류인 무천년설과는 거리가 있다. 이것은 19세기 후반 미국 사회의 남북전쟁 이후의 염세적인 분위기와 함께 세계 선교에 대한 열망 속에서 발전했던 세대주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진영의 세대주의 전천년설 내지는 역사적 전천년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반대하나 박형용과 동일하게 역사적 전천년설을 주장하며, 이 점에서는 오히려 워필드의 무천년설을 비판하고 후에는 뵈트너의 후천년설도 비판하여 개혁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들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것이 선교사들의 영향과 함께 한국교회의 강력한 역사적 전천년설의 전통, 그리고 계시록 20장 4-6절에 대한 문자적 해석의 집착의 산물로 보인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대한 2차의 유학과 화란에 대한 유학을 통하여 꾸준하게 성경주석에 몰두하였다.

그는 메이첸과 반틸, 그리고 구프린스톤 신학의 핫지와 보스, 워필드 등의 영향과 함께,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리델보스, 스킬더 등의 영향을 받았다. 물론 그는 개혁주의의 근원에 해당하는 칼빈의 주석과 기독교강요도 많이 인용하며 성경을 주석하고 다른 책들을 저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성경주석, 성경신학, 개혁파 교리학 등에 나타나 있는 그의 개혁신학의 특성은 구프린스톤 신학과 화란 개혁신학의 영향을 통해 칼빈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정암은 칼빈 연구를 통하여 개혁신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구프린스톤 신학자들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들과 화란 개혁신학자들을 통해 칼빈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성경관에서 성경의 정확무오함을 강조하면서 워필드의 영감론을 중심으로 따르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성경의 자증성을 강조하지만, 성령의 내증에 대한 강조는 약하다. 물론 그는 3대 칼빈주의자들인 아브라함 카이퍼, 바빙크, 그리고 워필드 3명의 신학을 골고루 소개하고 있다.

 

정암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개혁주의 신학을 성경 신학에 접목시킨 것이다.

성경을 해석하는데서 반틸의 계시의존사색의 원리와 함께 성경무오성 교리, 그리고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원리를 묶어서 실질적으로 신구약 성경 전권을 주석한 것은 놀라운 공헌이다. 우리가 조직신학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배워도 그것을 성경 본문에 적용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그것을 성경 전체에 걸쳐서 그러한 작업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작업이다. 그런데 정암은 신구약 성경 전권에 걸쳐 개혁주의 신앙의 원리를 적용시키는 주석작업을 한 것은 한국교회의 수준을 상당히 성장시킨 것이다. 물론 그의 주석에 약간의 알레고리를 적용한 면이 있고, 서양의 비평주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해도, 그가 이룬 공적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주석 작업에 화란 개혁주의자들의 주석을 인용하여 미국 일변도를 벗어나 화란 개혁 신학을 소화할 수 있게 한 것도 중요한 공헌이다. 그는 화란의 리델보스의 연구업적들을 수용하면서, 그의 성경관에서 정통주의 노선에서 벗어난 점을 분명하게 지적한 것은 자신의 개혁주의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보인다.

 

정암의 성령론은 차영배 교수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순절 성령강림단회성을 구원사적인 측면에서는 인정하지만, 그 이후에 성령의 사역의 지속성의 측면에서는 반복적인 면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고 있으며, 성령의 은사중지론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현재에도 특별은총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칼빈주의에서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입장과 함께 칼빈의 입장에서 일반은총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여 과학발전에 기여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비관적인 면도 강하다. 그리고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칼빈의 입장에서 정리하여 독재정권에 대한 합법적인 저항을 인정하지만, 실질적으로 1970년대 이후의 독재정권에 대해서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였다. 합동신학교 설립은 신학적인 기준에서 볼 때는 명분없는 교회분열을 가져온 측면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와같이 정암의 개혁주의에는 미국의 찰스 핫지와 워필드로 이어지는 구프린스턴 신학과 메이첸과 반틸의 웨스트민스터 신학, 그리고 카이퍼와 바빙크를 중심으로 한 화란 개혁신학이 종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선교사들을 통한 한국교회 복음주의 전통에서 역사적 전천년설을 수용하고 차영배 교수를 통해 성령론에서 오순절교파의 일부 입장 등이 어우러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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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승원, “박윤선의 변증학고찰 - 계시의존사색을 중심으

 

 

 

주제어

박윤선(Park Yun Seon) 개혁신앙(Reformed Faith), 성경관(Biblical view point). 성령론(Pneumatology), 교회론(ecclesiology)

 

Estimation of Park Yun Seon's Reformed Faith

Eun Seon Lee (Anyang University)

 

Abstract

In this essay, I discussed the some important traits of Park Yun Seon's Reformed Theology. First of all, His eschatology and view point of the Bible were formed through the study at the Pyeong-Yang Theological Seminary. This School has the conservative or pietistic Evangelicalism than Reformed Theology. His view that sees the Bible as the inerrant God's Word was inherited from the Biblical view point of the Princeton's Old School which the early Korean Missionaries caught into Korea. In this perspective, Park Yun Seon's Biblical view point was formed from the tradition of Reformed Theology. But His eschatology was not amillenialism as the orthodox view of Reformed Theology. It was the premillenialism in the dispensational and evangelical camp which was developed in the pessimistic climates after the American Civil War and the fervent desires for the world mission. He denied the dispensational premillenialism, but received the historical premillenialism as Park Hyeong Yong. And he criticized Warfield's amillenialism and Boettner's postmillenialism.

He focused on the exegesis of the Scriptures with the study of refomed theology through the twofold studying abroad at the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and Free University in the Netherlands. He was influenced from Machen, Van Til, Charles Hodge, G. Vos, B. B. Warfield, Abraham Kyper, Herman Bavinck, H. Riddelvos. and so on. He wrote the exegeses of the Scripture and another books citing John Calvin's exegeses and Institutes as the source of Reformed Theology.

Accordingly, His traits of Reformed Theology which were expressed in his Biblical Theology and Reformed Dogmatics have those of Old Princeton Theology, Netherlandish Reformed Theology, and Calvin's Theology. He didn't understand Reformed Theology through John Calvin. He understood John Calvin through the Old Princeton Theology and the Netherlandish Reformed Theology. Therefore His biblical view point followed the Warfield's theory of inspiration emphasizing the inerrancy of the Scriptures. So He stressed the self-authentication of the Bible. But he was weak about the inner witness of the Holy Spirit.

The most important contribution of Park Yun Seon was the connection of the exegeses of the Scriptures with Reformed Theology. He commented the whole Scriptures using the revelation-based thinking and the principle interpretating the Bible with the Bible. He developed the level of Korean Church's commenting the Bible through appling the principle of the reformed faith into the whole Scripture Comments. He introduced not only the American reformed theology but also the Netherlandish reformed theology.

His pneumatology received both the once-for-all advent of Pentecostal Holy Spirit from the redemptive-historical perspective and the repetition advent of the Holy Spirit from the continual work of Holy Spirit through the influence of Cha Young Bae. He distinguished the Holy Spirit Baptism from the second birth. And He recognized the possibility of the gifts of Holy Spirit as the special gift about the cessation of the gift of Holy Spirit.

Park Yun Seon's reformed theology synthesized the Old Princeton theology of Charles Hodge and B. B. Warfield, the Westminster theology of J. G. Machen and Van Til, and the Netherlandish reformed theology of Abraham Kuyper and Herman Bavinck. He received the historical premillenialism from the evangelistic tradition through the early Korean Missionaries. His Pneumatology was a little influenced by the Pentecostal Movement through Cha Young Bae.


<출처 : 한국개혁신학연구소>.

  

 



 

종교개혁은 무엇을 바꾸어 놓았나?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세계관이라 하는데, 수세기 동안 모든 곳에는 종교적인 세계관이 있었다. 종교적인 세계관은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과 그분의 뜻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특별히 선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종교와 연관되지 않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를 달리 말한다면 종교는 삶의 모든 측면과 상관이 있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세계관의 반대편에는 세속적인 세계관이 있다. 이 세속적인 세계관은 삶의 모든 측면은 종교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당신의 신앙은 사적인 문제며, 공적인 영역에서는 당신이 종교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어울려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러한 세속적 세계관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계몽주의 이후 서양 세계를 주도하는 세계관이 되었다. 그러나 칼뱅이 자라난 중세 시대나, 그가 사역했던 종교개혁 시대에는 종교적인 세계관이 있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해야 되는지에 정확하게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모든 가치의 기초로 삼았다.

 

하나의 기독교적 몸
서구 유럽에서 종교적 세계관의 한 가지 표현은 온 사회가 하나의 기독교적 몸, 즉 “corpus Christianum”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은 교회의 리더들과 시민 사회의 리더들이 모두 한 가지로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와 시민 공동체는 동일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즉시 세례를 받는 것은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한 도시나 국가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한 사회, 한 교회라는 생각이 잘 작동되는 듯하다. 하지만 종종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데 특히 중세 후기에 심했다. 교회는 자신들이 모든 사회의 권위 위에 존재한다며 온전한 권위를 주장했다. 어떤 교황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영적인 권위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권위까지 주셨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중세 후기에 세속 정부는 점점 더 많은 권세를 가졌지만 그렇다고 전적인 권위를 가지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결혼과 연관된 모든 것들은 교회의 임무였다. 그래서 세속 정부는 주교들에게 이러한 문제들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중세 사회는 마치 하나의 기독교 공동체 행세를 했다. 그러나 누가 무엇을 맡게 되는지, 누가 어떤 것에 권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이러한 갈등을 보여주는 한 예는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사제, 수녀, 수사와 같은 사람들은 거룩하고 하나님을 위해 따로 세워진 사람이며, 세속 군주들이나 부인들, 봉제업자, 제빵업자, 농부들은 세속적이고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다 기독교인이지만 한 부류는 하나님께 더 가까운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는 자들이었다. 이와 같은 생각이 사물에, 시간에 또 장소에 적용되었다. 먼저 사물을 보면 제단과 성물은 거룩하고 화분이나 그릇들, 농기구들은 세속적이며 거룩하지 않게 여겼다. 또 시간을 보면 성인들의 기념일이나 주일은 거룩하지만 나머지 날은 거룩하지 않으며, 장소를 생각하면 교회는 거룩하고 다른 장소는 거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이 거룩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아주 쉽게 말해준다. 그러나 때때로 거룩한 사람들이 거룩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들이 이류 기독교인(second class Christians)이라고 느꼈다.

 

중세 후기의 성례
초대 교회 교부 성 키프리아누스(St. Cyprian)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모두 이것이 진실이라고 동의했지만 누가 혹은 무엇이 교회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동의하지 않았다. 칼뱅이 자라난 세상에서 교회는 사제들에게 성만찬을 받는 사람들로 정의되었는데, 여기서 사제들은 주교에게 안수 받은 사람들이고 그 주교는 그 위의 주교에게, 그는 또 그 위의 주교, 결국 사도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이것이 사도적 계승(apostolic succession)이다[때로 사제는 단순히 성례를 베푸는 자들이라는 이유에서 목회자(clergy)로 정의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당신이 만약 사도적 계승에 근거한 사제로부터 성례를 받았다면 당신은 교회에 속한 것이었다.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교회 밖에서는 구원받을 수 없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성례전에 참여해야 했고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때때로 사람들은 교회에 순종해야만 할 만큼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먼저 성사(sacraments; 개신교에서는 ‘성례’로 번역하나 여기서는 중세 가톨릭교회에 대한 설명이므로 ‘성사’로 표기함- 역자 주)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성사는 은혜의 수단으로 아무도 성례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었다. 일곱 개의 성례가 있었는데 모두 다 예전적인 의식이며, 라틴어로 적법한 사람에 의해 정확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집전될 때 유효한 것이었다. 첫 번째 성사는 세례였다. 모든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아야 했는데 이는 세례를 받지 않고 죽는다면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영아 사망률이 높던 당시 상황에서 즉각적 유아세례는 중요했다- 역자 주). 세례는 모든 사람이 아담에게서 받은 원죄를 씻어주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세례가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교회는 누구든지 세례를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종종 병약한 아이들을 받은 산파들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주기도 했다. 아이가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면 대부모(godparents)와 친구들을 초대하고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 아이가 나이가 들면 견진성사(confirmation; 개신교에서의 입교)를 받게 되었다. 주교만이 견진성사를 베풀 수 있었다. 견진성사 때 주교는 아이에게 손을 얹고 기름을 붓는데, 이는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성령으로부터 강한 능력을 받기 위함이었다. 만약에 주교가 게을러서 자기 교구의 마을들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견진을 받아야 할 나이의 아이들이 견진성사를 받을 수가 없었다(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견진성사는 믿음에 관한 일정한 지식을 갖는 것과 연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교는 성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신앙을 고백하고 설명할 수 있느냐를 테스트하지 않고 성사를 행하는 것 자체가 은혜를 전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세례와 견진성사가 한 번 받는 것이라면 다른 두 가지의 성사, 즉 고해성사와 미사는 자주 행하는 것이었다. 세례가 원죄를 다루지만, 사람은 자라면서 자범죄(actual sins)를 범하게 되기 때문에 그 죄들을 해결받기 위한 다른 성사가 필요했다. 고해성사는 바로 죄인들을 구해주는 수단이었다. 사람들은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고 사죄함을 받았다. 그리고 ‘보속행위’(죄를 속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는 작은 죄에 대해서는 기도문을 외우는 것을, 중대한 죄에 대해서는 순례를 가는 것 등을 요구했다)도 있었다. 사람들은 미사에 가서 성찬을 받기 전에 고해성사를 끝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은 만약 자신들이 ‘고해성사에서 죄를 잊어버리면 어쩌나’, ‘진정으로 회개한 것이 아니면 어쩌나’ 하며 염려했다. 그리하여 성찬을 받는 것이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일까’ 염려하여 자주 성찬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모든 사제들은 매일 미사를 집전했다. 비록 사제들이 그 성찬을 받은 유일한 사람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미사에 참여하기만 해도 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미사에는 참석하지만 성찬은 구경만 했다. 어떤 때는 사제와 그를 돕는 자들만이 미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래도 모든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은 성찬을 받도록 되어 있었고, 그것은 보통 부활절 전 한 주간이었다. 성찬을 받는다 해도 평신도들은 떡만 받았는데 이는 성찬을 받는 중에 그리스도의 피인 포도주를 흘릴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성사로는 신품(ordination), 혼배, 그리고 종부(extreme unction)성사들이 있다. 신품성사는 후보자를 축성하여 성사를 집례할 특별한 거룩함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제나 주교만이 고해성사, 미사, 그리고 종부성사를 집전할 수 있었다면, 주교만이 견진성사나 신품성사를 집전할 수 있었다. 혼배성사는 결혼할 수 있는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하고 연합하는 것을 유효화하는 성사였다. 비록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결혼을 축복하기 위해 혼배미사를 원했지만 사제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일곱 번째 성사인 종부성사는 임종 직전에 기름을 붓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사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은혜의 보통 수단이었다.

대부분의 성사들은 신품성사로 자격을 갖춘, 그리하여 높은 지위를 가진 기독교인이 된 사제들이 집전했다. 그들이 가진 특권 때문에 사제들과 평신도들 사이에 갈등이 종종 있었는데, 이는 사제들은 종교적으로나 시민법적으로 전혀 다른 법 아래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죄를 지은 목회자들은 세상 군주가 아니라 주교만이 재판할 수 있었다. 성찬에서도 목회자(clergy)만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지 않았던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어떤 주교들은 세속 군주이기도 해서 교회의 권세뿐만 아니라 세상의 권세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종종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권세를 남용했다(예를 들어, 칼뱅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어떤 사람을 빚 때문에 출교할 경우). 그들 중 일부는 독신 서약 혹은 청빈 서약에 따라 살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많은 교구 사제들이 매우 가난했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진짜 사제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 교구의 일을 대신 하기로 고용된 대리였다. 종종 각종 남용은 인간의 죄성으로부터 연유되기도 했지만 (잘못된) 제도의 결과였는데,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목회자와 평신도 간의 갈등을 초래한 이유들이었다는 것이다.

 

중세 후기의 설교
설교는 어떠했는가? 사실상 중세 후기에는 개신교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설교가 있었다. 그러나 설교가 예전적 삶의 중심은 아니었다. 목회자와 사람들은 미사에서 설교가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미사는 설교 없이도 완전하고 효과적인 은혜의 수단이었다. 대부분의 사제들은 설교자로 잘 훈련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칼뱅처럼 대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들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설교 핸드북을 사용했는데 이 책들은 모두 라틴어 서적이었다. 그래서 사제들은 이 설교 샘플들을 사람들의 언어로 번역해야만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미사를 드릴 때 성경은 라틴어로 읽혔다. 어떤 설교들은 성경에 대한 것이었지만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는 영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었다. 만약 본문이 어려운 경우에는(시편 137편처럼) 교화할 수 있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기에, “네(바빌론의)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시 137:9)을 그리스도의 바위에 작은 죄를 내어다 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많은 설교들은 성경에 직접 근거하지 않았다. 그 설교들은 사람들에게 선한 도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예가 되는 몇 가지 주제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일곱 가지 대죄(seven deadly sins), 일곱 가지 중요 덕목(seven cardinal virtues), 일곱 가지 자비의 행동(seven acts of mercy), 죄를 고백하는 바른 방법, 혹은 축일을 정하고 기념하는 성자들의 기적에 대한 설교들.

교구에서 설교를 듣지는 못할지라도 경건생활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은 항상 있었다. 성인들, 특별히 하늘의 여왕으로 그려지고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는 사람들이 필요한 안전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인생은 힘들고 질병과 죽음, 사고, 기아와 역병 그리고 전쟁으로 가득 차 있다. 성인들이야말로 죄인들을 돕는 최고의 옹호자, 즉 죄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자들로 여겨졌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중세 후기의 세상은 철저히 위계질서적인 사회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청원을 해야 했는데 이는 그 높은 사람이 자신보다 더 높은 사람에게 그의 소원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내가 청원할 것이 있다고 해서 바로 가장 높은 사람에게 직접 갈 수는 없었다.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 외에도 성지순례라든가 금식, 또는 다른 종류의 헌신적 행동들이 있었는데 이는 사람들을 세상의 위험에서 보호하고 영원을 위해 하나님의 은총을 얻도록 돕는 것이었다. 정의상 가장 거룩하게 사는 방법은 항상 기도하는 수사나 수녀가 되는 것이었다. 수사나 수녀는 매일 매일 시편을 읽으며 기도했기에 평신도들은 종종 이렇게 거룩한 사람들을 부러워하여 일종의 기도 형태로 만들어진 짧은 기도문을 반복적으로 외웠다. 수도원의 수사들이 시편 150편 전체를 외웠다면, 평신도들은 묵주를 가지고 아베 마리아 기도를 150번 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생활을 인도하는 종교적 권위들은 교회에 의해 주도된 성경과 이성 그리고 성령의 집합체였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은 종교적 지식과 권위의 한 근원이었다. 그러나 자연 이성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셔서 그것으로 하나님에 관한 것을 이해하도록 하신 것이다. 성령은 지상의 교회가 구원에 관한 가르침에 있어서 잘못되지 않도록 교회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교회의 권위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이 학식이 높으면서 목회자 학자들이나 가브리엘 비엘과 같은 교사에 의해 지원받는 목회자들의 손에 있었다.

이즈음 서유럽에서 교육의 수준이 올라가고 있었고 이것은 경건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상 로마 제국이 초기 중세 사회의 도래와 함께 붕괴된 후에 교육이 급격하게 쇠락한 바 있었다. 수도원과 다른 목회자 공동체에서만 교육이 지속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명하기 위해 땅에서 일해야 했고 교육을 장려했던 도시생활도 매우 급격하게 하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들은 늘어나고 상업은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강을 따라가는 교통수단은 육상 교통수단보다 쉬웠다.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교육의 수준은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사뭇 제한적이었지만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 교육은 라틴어를 배우는 목회자에게만 관계된 것이 아니었고, 평신도들이 상거래를 위해 자기 말로 읽고 쓰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렇게 늘어가는 도시와 문명(literate) 인구는 교회와 개인적 목적을 위하여 증가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은 교회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사실상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목회자와 평신도는 교회의 온갖 남용과 그 가르침의 부적절함에 (한때는 자신들이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점점 더 불만을 갖게 되었다. 15세기 중엽 유럽을 찾아온 금속활자의 ‘발견’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자극했는데, 이는 교회와 사회에 대한 더 많은 질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퍼뜨리는 데 기여했다.

결국 목회자든 평신도든 개혁을 소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것은 칼뱅이 태어나기 수백 년 전부터 일어난 일이었다. 때로 종교개혁가들은 자신의 교구를 개선하려는 주교였고 어떤 때는 수도회였는데, 이들은 수도회의 규칙을 지키는 데 점점 나태해져가는 수도회를 보면서 더 순수한 수도원적인 삶의 형태를 회복하고자 했다. 때로는 더 거룩한 삶을 경험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 하던 평신도거나 평신도 단체이기도 했다. 때로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설교를 제공하고 싶어 하던 학자이기도 했다. 14세기 말엽의 한 개혁 운동은 현대적 경건(Modern Devotion)이라고 불리던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가장 유명한 대표는 토마스 아 켐피스로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 운동은 일종의 신비적, 종교적 공동체생활 운동으로 목회자와 평신도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교회가 처방한 여러 경건활동보다 더 내적이면서 영적인 것을 추구했다. 그들은 교회가 요구한 이러한 활동들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더 성경적인 설교와 성경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믿는 개인들과 그룹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은 설교에 만족하지 않고 목회자만이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들은 성경을 직접 들고 읽으며 성경을 설교하고 싶어 했다. 영국에 있던 이런 그룹은 롤라드(Lollards)였는데, 이들은 14세기 학자 존 위클리프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들은 사제들의 주된 과제는 설교하는 것이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 불가타 성경(The Vulgate)을 영어로 번역했다. 이것은 성사를 통해 은혜가 전해진다는 가톨릭교회의 중심 되는 신학적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었다. 목회자들 역시 교육을 받지 못한 평신도들의 수중에 성경이 들어가는 것은 그들을 이단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대부분의 경우에 목회자는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했다. 영국 교회 지도자들은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교의 허락 없이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는 것은 중형에 해당한다고 선언했고, 1409년부터는 사형에 처할 수 있게 되었다. 15세기 초기에 보헤미아에 있던 또 다른 그룹은 후스파였는데 이들은 모든 것을 성경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큰 관심 중 하나는 성찬 시 평신도가 빵뿐만 아니라 포도주도 받을 권한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부 평신도에 의해 주도되었든 대부분의 평신도들에 의한 것이든, 이러한 주장들은 교회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사실 롤라드나 후스파, 또 다른 그룹들은 모두 이단으로 정죄되었거나 핍박을 받아 지하로 숨었는데 그렇다고 그들의 사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인문주의
개혁의 다른 운동은 인문주의였다. 이것은 지적인 개혁이었지만 종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문주의자들은 성경과 초대 교회 교부들의 글을 원문으로 읽기 위해 원어로 돌아가길 원했지만 교사가 적었기 때문에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헬라어로, 구약성경을 히브리어로 읽는 것이 헌신된 기독교 학자들 가운데 퍼져가고 있었다. 그들이 성경을 원어로 읽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교회가 해석해온 구절들이 유일한 해석이 아니라는 것, 나아가 교회의 해석이 실제 원어의 뜻과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전통 교회와 교회가 주장하던 신학과 영적생활에 대한 이해에 큰 도전이 되었다.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은 교회 안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교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전통적인 교회와 분리되지 않고는 (물론 이들이 교회 자체와 분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필요한 개혁을 이룰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주 관심은 교회의 실천이라고 믿었다. 또 다른 이들은 필요한 주 개혁의 대상은 교리라고 보았다. (16세기가 동터올 무렵) 서유럽 전체에 개혁의 기운은 무척 컸고 무엇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막상 개혁 운동이 힘을 받기 시작했을 때 그 많은 공통의 관심사에도 불구하고 차이 또한 분명했다. 그것은 바로 새롭게 개혁되는 교회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이냐는 것에 대한 견해 차이였다.

개혁자들
전통 교회와 분리해야겠다고 느낀 개혁자들 중 ‘개신교도’(Protestant; 항의자)라고 불린 사람들은 은혜와 구원 그리고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는 것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본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사상은 “믿음만으로, 은혜만으로 의로워짐”이라는 유명한 가르침의 핵심과 관계되었다.

그러나 때로 무엇이 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은혜나 믿음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둘 다 구원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것을 새로운 통찰력이 되게 한 차이는 ‘만으로’(alone)라는 말이었고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느냐’였다. 믿음은 교회에 의해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믿고 그에 따라 선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은혜란 그러한 선한 행위와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고 하나님은 은혜를 거저 주신다고 배웠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만약 사람들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잘 사용하면 더 큰 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배웠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 안에 있는 것’(what lies in them)으로 행할 수 있었고, 자신의 선한 행위로 구원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개신교도들은 믿음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 믿음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믿음의 내용)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교회가 가르치는 것이 진리’라고 믿는 것은 충분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가치가 없는 죄인들을 기꺼이 구원해주신다는 것을 믿어야만 했다. 개신교도들은 은혜는 단지 하나님의 선물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데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구원은 순전한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에만 근거한 것으로, 죄인들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의롭게 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자비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존조차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다음의 설명이 이러한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한 컵의 물이라고 생각해보라. 그런데 파란색 잉크를 그 물속에 넣어 물을 파랗게 만들었다. 이것이 ‘전적 타락’이다. 사람의 모든 면은 죄로 물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토마스 아퀴나스와 다른 스콜라 신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이 할 수 있는 놀라운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은 육신과 비교하면 원죄로 인해 그렇게 나쁘게 변질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반면 다른 개신교 개혁자들처럼 칼뱅 역시 인간의 모든 면은 동일하게 죄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았다. 물은 완전히 파랗다는 것이다. 이신칭의란 마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시야와 파란 물 사이에 필터로 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죄인인 인간을 그리스도를 통해 보시고 죄인을 그리스도처럼 정결하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또 재생(regeneration)과 성화(santification)의 관점에서, 성령은 비록 이 생에서 온전히 맑게 할 수 없을지라도 파란 물을 점점 덜 파랗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과 은혜로 의로워지는 것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무서우면서도 자유로운 것이다. 중세 후기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선한 일을 행할 수 있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나머지는 알아서 해주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는데 구원에 대한 이 불확실성은 상당히 심각한 영적 문제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가르침의 중요성은, 우리가 우리의 구원에 확신을 가져도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해주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의 약속을 해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용납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구원에 대해 불안해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이제 구원의 확신 가운데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쉴 수 있는 소식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인식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분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통 교회에게는 큰 도전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은혜란 안수 받은 목회자에 의해 집전되는 성사에 의해 오는 것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믿음과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면 성사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고, 목회자도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것은 영적인 혁명이었다. 이 혁명의 종국을 보기 전에 믿음과 은혜로 의로워지는 사상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성경만으로
개신교 개혁자에게 중심 되는 종교적 권위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들은 성령은 성경의 진리를 인간에게 계시하는 분이며, 성경만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임을 믿었다. 가톨릭교회는 교회와 성령은 완전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가 말하면 이것은 성령의 목소리가 된다고 말해왔다. 개신교도들은 이에 저항하며 성경과 성령이 하나로 얽혀 성령이 사람들에게 구원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성경이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개신교 개혁자들도 교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교회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지상의 도구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과 특별히 목사들(ministers)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모든 지적 능력을 동원하여 성경을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원어로 성경을 읽기 위해 성경 언어를 배우는 것과,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이성적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는 매우 잘 알려진 표어지만 보기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다. “성경만으로”는 사실 여러 가지의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말의 중심 되는 사상은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종교적인 지식의 근원은 성경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자연 혹은 인간의 이성, 혹은 교회 전통에서 구원의 지식을 찾을 수 없고 성경에서만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만으로”가 성경이 모든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든가, 모든 지식의 근원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16세기 개신교는 성경을 지질학에 관한 교과서로 보지 않았고 천문학을 배우기 위해 창세기를 읽지는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만으로”를 말하는 사람들조차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항상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성경이 ‘구원을 얻기 위한 지식’의 유일한 권위라는 것이다. 다음의 예에서 이 말의 의미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루터에게 성경은 하나님이 순전히 그분의 은혜에 의해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용납하시며 자유롭게 하시는 통찰력의 근원이었다. 루터에게 성경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알아야 할 것에 대한 유일한 권위였다. 어떠한 교회 전통도 다른 것을 추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교회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규칙서는 아니었다. 그래서 예전의 순서나 교회의 직제 혹은 영성 같은 것들을 성경에서 베껴올 필요가 없었다. 그것들은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과 맥을 같이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루터에게는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교회에 그림을 기증하는 것이 어떤 공적을 쌓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한, 교회 안에 양초를 둔다거나 그림을 계속 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세례파들은 “성경만으로”를 성경은 기독교인의 삶의 모든 측면에 하나님의 지시를 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어떤 재세례파는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모든 소유를 공동화하라고 가르친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4~5장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교회에 주었기 때문이다. 재세례파들은 성경, 특별히 신약성경을 문자적으로 읽고 그대로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개혁주의’(Reformed) 혹은 ‘칼뱅식’이라고 불리는 해석은 루터와 재세례파 중간이었다. 루터파처럼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은 구원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의 유일한 근원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성경이 교회와 성도의 생활에 질서를 잡는 데 필요한 바른 방법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개혁주의 주석가들은 십계명에서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하는 것은 교회에 그림이 없어야 된다고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루터파가 교회에 그림을 건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림을 거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말했다(이들은 가정이나 공공장소에는 그림을 걸었다. 다만 종교적인 장소에 사용되는 것을 금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또한 성경에서 목회를 어떻게 조직화하고 공예배 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바른 방법을 찾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 교과서로 여긴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교인들이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공동자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만인사제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고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져온 효과 중 한 가지는 거룩함과 거룩한 것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에 의해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인이라면(의롭게 되었지만 동시에 죄인인 상태), 같은 사람이 거룩하면서 동시에 세속적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사람, 혹은 사물, 혹은 장소, 혹은 시간을 거룩하다고 또 하나님을 위해 성별되었다고 구분하고 다른 것은 거룩하지 않다고 구분하는 대신, 거룩함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는 선이 각 사람과 각 사물을 관통하고 있었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따로 구분하는 것이고 세속적인 것은 하나님을 반항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당시에 이러한 변화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것이었지만 동시에 매우 자유케 하는 것이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믿음과 은혜로만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와 평신도 간의 진정한 차이란 없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구원받았고 같은 법 아래에 있었다. 이것은 만인사제라는 가르침으로 연결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다. 어떤 지상의 사제도 필요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자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교회는 항상 교회와 시민 사회의 리더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시민 사회의 리더는 종교적인 권위가 없었다. 만인사제설에 관한 개신교의 새로운 가르침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종교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시민 사회의 리더는 자기 백성들을 도덕적으로 감찰할 책임이 있었다. 이러한 가르침은 전통 교회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개신교도들은 목회자를 가지는 것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다. 다만 목회자가 할 일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즉 하나님께 중재하는 것이 주 업무였던 사제의 개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설교가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기독 군주들에게 빈민구호나 교육, 도덕적 감찰, 그리고 다른 것들을 다루는 실제적인 영역에 대한 새로운 종교적인 권위를 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설교가들이 설교하는 것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만인사제설은 영성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평신도나 목회자에 관계없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동일한 영적인 관계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개혁의 필요성
중세 후기의 기독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개혁이 꼭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중 어떤 이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관계를 끊지 않고 교회에 남아 일했다. 그러나 루터나 츠빙글리, 칼뱅과 같은 사람들은 가톨릭교회의 기존 구조 안에서는 필요한 개혁을 일으킬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갈라져 나왔다. 사실상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교회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통적 지상 교회는 믿음과 은혜로만 의로워지는 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고 믿었다. 루터나 츠빙글리처럼 우리가 흔히 듣는 종교개혁자들만 전통 교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다. 많은 개인들은 로마가 더 이상 참 교회가 아니라고 믿었다. 로마와 갈라선 사람들은 로마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데 일치했지만 참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그들은 나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개신교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믿음과 은혜로만 의로워진다는 것이 핵심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루터나 칼뱅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경만으로”를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권위로 읽었다. 그리고 우리가 전적으로 죄의 권세에 매여 있고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 스스로를 도울 수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하나님이 다 하셔야만 하는 것이다. 로마교회와 갈라선 다른 개혁자들은 원죄에 대한 생각을, 인간의 의지는 죄에 묶여 있다는 생각을 나누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선 혹은 악을 선택하는 데 자유롭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교회와 세례에 관한 교리였다. 재세례파(Anabaptists; 그들의 적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라고 불린 이들은 교회는 오직 선택된 자들이라고 믿었다. 여기서 선택된 자들이란 믿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하며, 사회를 떠날 위험부담도 감수할 수 있는 자들이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고 선택된 자들만으로 구성된 참 교회로 신약성경을 따라 살아갈 것이 기대되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만이 죄인을 회개시키고 변화시킨다고 믿는 개신교도들은 인간은 누가 선택받은 자고 누가 아닌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선택된 자와 유기된 자들(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섞여 있는 지상의 교회와 함께 일해야 한다고 믿었다. 개신교도들에게 지상의 교회는 복음이 바르게 설교되고 성례가 올바르게 집전될 때 진짜 교회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순종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교회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교인들의 자녀에게 세례를 주고 그들을 교회에서 키우면서 그들 스스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믿음을 가르쳐주는 것은 합당한 것이었다. 교회론에 대한 이러한 차이는 개신교도들과 ‘다시 세례하는 사람들’(rebaptisers)이라고 불린 사람들 사이에 중요한 분열을 이끌었다. 각 그룹의 영성 또한 결정적으로 달랐다.

그러나 개신교도들 사이에도 또 다른 차이점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종교적 회화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는 경우에서 봤듯이, 특별히 “성경만으로”를 교회의 조직에 적용하는 방식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또 다른 차이점은 개신교도들이 받아들인 다른 성례인 성만찬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루터와 츠빙글리는 특별히 이 점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각 사람은 그리스도와 주의 만찬의 관계에 대한 다른 편의 가르침을 거부했다. 루터는 성찬이 그리스도가 떡과 잔 ‘속에, 함께, 그리고 아래에’ 임재하시기 때문에 은혜의 수단이 된다고 믿었다. 한편 츠빙글리는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고 떡과 잔은 감사와 기념이며 믿음의 징표이지 은혜의 수단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나눔은 개신교도들에게 성례적 은혜와 영적인 실천을 이해하는 방식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망명자 칼뱅
종종 개신교 개혁자들을 나열할 때 ‘루터, 칼뱅, 츠빙글리’로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바른 순서다. 루터와 츠빙글리는 같은 나이지만 칼뱅은 그들보다 25년이나 어렸다. 그가 개신교도가 되었을 때는 이미 많은 것들이 일어난 후였다. 로마에 대한 개신교적인 반응은 많이 정해졌고 로마와 갈라진 개신교도들 사이의 분열도 이미 일어나 있었다. 그러니까 칼뱅은 개신교도들이 이미 분열되었을 때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할 수 있었던 것과 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칼뱅은 완벽한 2세대 개혁자였다. 신학적 통찰력은 다양한 형태를 갖는 법이다. 칼뱅은 루터와 같이 개척자적인 개혁자는 아니었지만 조직화와 사상과 문장력의 명쾌함에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개신교는 칼뱅이 없이는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종종 말하는데, 이는 그가 새로운 교회 세계의 조직화를 모양 지우고 그것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것들 중 하나는 교회의 독자성에 대한 그의 가르침이 새로운 개신교를 외부의 도움 없이 시 정부로부터 독립한 자율적인 공동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칼뱅은 대부분의 개신교 개혁자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그는 망명자였다. 루터는 색소니 출신의 사람이었다. 츠빙글리는 독일계 스위스에서 태어난 독일계 스위스인이었다. 부처는 알사스 출신이었고 크랜머는 영국 사람이었지만, 칼뱅은 그의 인생 대부분을 망명자로서 살았던 전례가 거의 없는 개혁자였다. 그는 제네바시에서 영주권자였기에 선거를 할 수도 없었다(제네바시는 그의 생애 끝 무렵에 가서야 시민권을 주었다). 오늘 우리는 제네바와 프랑스는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칼뱅 당시는 그렇지 않았고 언어조차도 분명히 달랐다. 칼뱅이 해야 했던 모든 것은 입을 여는 것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곧바로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망명자로서의 이러한 경험은 교회의 신약성경 모델은 자체법과 자율성을 갖는 것이라는 그의 이해와 합쳐져 교회와 영성의 가르침에 매우 독특한 성격을 부여했다. 칼뱅은 그의 신앙과 그의 집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는데 그것은 그의 영성을 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비록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그에게 집, 가족, 그리고 생명까지도 포기하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교회와 사회가 분리되지는 않더라도 교회를 시민 사회로부터 구분하는 그의 교회론과 함께 칼뱅이 이해한 기독교적 삶의 영성은 순례자와 같은 것으로 핍박받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교회가 나름의 구조를 갖는다는 그의 가르침은 가톨릭 국가에서 소수 그룹인 기독교인 공동체는 자신들 나름의 종교적 생활을 조직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망명과 순례 경험의 강도는 칼뱅을 따르는 교회들이 그들의 신앙을 빼앗고자 하는 어떤 권세나 사람들에게도 저항하는, 군사적인 영성을 발전시키도록 만들어주었다. [엘시 맥키  2010. 11]

 

 

게할더스 보스

 

게할더스 보스 (Geerhardus Vos)
게할더스 보스 박사는 1862년 3월 14일

네덜란드 프리스랜드 주의 헤렌벤 (Heerenveen)에서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화란서 중등교육을 마친 그는 당시 미시간 주 그랜드 래피즈에 있는 기독교 개혁교회

(Christian Reformed Church)의 청빙을 받은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1881년).

그는 이곳과 프린스톤 신학교, 독일의 베를린과 스트라스부르그 등지에서 7년동안

신학수업을 마치면서 그는 1888년 스트라스부르그 대학교 철학부에서 아랍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1932년 70세의 나이로 은퇴하기까지 39년을 프린스톤 신학교의 교수로 봉직하여

교수와 목사로서 기독교 개혁교회와 프린스톤 신학교를 섬기다가

1949년 8월 13일 87세 고령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성경신학 <게할더스 보스>

 

구약성경

 

제1부 모세시대의 계시

제1장 서론: 성경신학의 본질과 방법론

신학이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다. 신학을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 정의해 놓고 보면 신학이 계시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이 뒤따르게 된다.

 

신학의 네 가지 분과

주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이다. 우리가 현제 지닌 목적을 위해서 관심을 두어야 할 점은 주경 신학이 네 가지 중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그 이유는 모든 신학의 시초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경신학을 성경주해만으로 한정시키면 안된다.

넓은 의미의 주경신학 (1) 성경의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연구 (2)저자,저작연대와 배경,가능한 전거등, 성경 각 권들의 기원에 대한 연구, 이를 가리켜 서론이라 부르는데, 이를 주해의 과정을 한걸음 더 시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성경 각 권들이 어떻게 하나의 성경으로 묶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 이 과정을 가리켜 전문적으로 정경론이라 칭한다. (4)시공간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 하시는 일--성경의 문서가 최초로 기록된 일 이면에도 이 일이 있으며, 또한 이일은 계시된 자료를 기록하는 일과 더불어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었다.--을 연구함, 이를 가리켜 성경신학연구하 부른다.(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1)하나님의 자기계시; (2)계시의 산물을 기록하는 단계;(3)그 여러 기록들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놓는 단계(4)성경기록들의 내용을 연구하는 단계(신적인 활동의 관점에서 볼 때)

 

성경 신학의 정의

성경신학은 주경신학의 한 분과로서 성경에 저장되어 잇는 하나님의 자기계시 과정을 다루는 것이다.

 

1. 계시 과정의 역사적 점진성

계시는 단 한번의 행동으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오랜 동안 이어져 내려온 활동들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계시는 홀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또 다른 활동, 즉 구속이라 부르는 그것과 불가분리의 관계로 엮어져 있다.

계시는 구속의 해석이다. 따라서 구속이 그렇듯이 계시도 조금씩 단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계시의 과정과 구속의 과정이 서로 전적으로 범위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계시는 어느 시점에서 종결되는데, 구속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계시는 오로지 객관적이며 중심적인 구속과정에만 수반되며, 그렇기 때문에 구속이 계시보다 더 나중까지 이러지는 것이다. 계시가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구속을 수반한다고도 주장할 수 있겠으나 그럴 경우에 그것은 구속의 세계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사사로이 관심을 갖는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자가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서 계시의 출처인 성경으로부터 도무지 빛을 받을 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2. 역사 속에서 계시자 실질적으로 구체화 됨

계시의 과정은 역사와 공존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역사속에서 구체화된다. 곧 역사의 사실들 그 자체가 계시의 의의를 지닌다는 말이다. 우리는 행위 계시를 말씀계시의 옆에 두어야 한다. 구속과 계시는 동시에 일어나는데 기억할 점(1) 이 두가지 면을 지닌 행위들이 계시를 주목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 그 행위들의 주목적은 계시를 초월하는 것,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관계되는 면을 지니며, 오로지 그 면에 의존해서만 교육적인 목적으로 인간에게 관계되는 것. (2) 그런 행위 계시들은 절대로 자기 혼자 말하도록 버려져 있지 않다. 그 계시들에 앞서서 혹은 그 뒤에 반드시 말씀계시가 있다. 보통 말씀다음에 사건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 해석하는 말씀이 주어진다.

 

3. 계시 속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 과정의 유기적 본질

하나씩 증가하는 것마다 점진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모두가 유기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구속의 과정의 유기적인 성격은 남다른 면이 있다. 그것은 획일적인 방식으로 전진하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 것이다 시대에 따르는 양상을 띤다. 계시는 점점 더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성경에서 심한정도의 가변성과 상이성으로 인해 성경의 절대성과무오성에 치명적인 해가 갈 덧이라는 주장이 있다. 만일 바울이 하나의 시각을 지녔고 베드로가 다른 시각을 지녔다면, 그 두 사람은 각기 아무리 잘 보아도 그저 올바른 것에 가까이 가는 정도밖에는 되지못할 것이다. 만일 진리 그 자체가 다양한 면들을 지니지 않는다면,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오성이 무덤덤한 획일성과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진리는 본래 풍성하고 복잡한 것이다. 이에 대해 문제를 삼는 태도는 이신론적인 사고가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이다

유신론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 자체가 전혀 그 형태를 달리하게 된다. 진리가 본래부터 여러 면들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의도에 따라 계시의 모든 기관들을 사용하시고 통제하시므로, 그것들 하나하나를 그 정확한 목적에 맞추어 형성시키신 것이다.

 

4. 성경 신학의 연구를 결정지어주는 계시의 네 번째 면은 그 실질적인 적응성에 있음.

복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임을 가르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 나타나는 “아는 것”이라는 개념은 헬라적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히브리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헬라적 의미로 보면“안다”는 것은 사람의 의식 속에 어떤 사물의 실체를 투사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히브리적이며 성경적인 개념은 사물의 실체를 실제로 내적인 삶의 경험과 뒤섞이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알다”는 “사랑하다”,“사랑으로 선택하다”를 뜻하는 성경적인 숙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성경 신학이라는 명칭으로 계속 지칭되어온 갖가지 것들

처음에는 이 명칭이 조직 신학 연구에 동원된 증거 본문들을 모아 놓은 것을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다음에는 경건주의자들이 교의학의 극단적 스콜라주의적 방법론에 대응하여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면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가블러는 성경신학의 구체적인 차이점이 성경 본문을 역사적으로 다루는 원리에 있는 것으로 올바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이성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이성주의는 대개 자신을 도저히 능가할 수 없는 최고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며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있어서도 하나님에게서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이성주의적인 성경신학은 역사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그 산물이 종교적으로 무가치한 것임을 스스로 선언한 셈이다. 이성주의적 환경속에서 처음아노 이후부터 성경신학은 철학적 조류들이 신학 전반에 영향을 미쳐온 그런 방식뿐 아니라 특히 그 이성주의 본질이 드러나는 특별한 방식을 통해서도 강력하게 영향을 받아왔다. 이 점은 오늘날 성경 신학이 진화론철학에 의해서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보면 잘 드러난다. 이 영향은 두가지 방향에서 드러난다. 첫째, 진화의 가설이 세계의 전개과정에서 찾는 질적인 진보가 종교적 진리의 출현에까지 확대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낮은 것으로부터 나아가는 진보일 뿐 아니라. 야만적인 상태로부터 세련되고 교양있는 상태로, 그릇된 것으로부터 참된 것으로, 악한 것으로부터 선한 것으로 나아가는 진보이기도 하다. 진화론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는 물활론에서 시작하여, 다신론으로 오고 일신숭배가 오고 유일신론이 온다고 한다. 그런 견해가 모든 정당한 의미에서의계시를 배제시키는 것은 물론 모든 것들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보리고, 절대적인 신적인 요인의 여지를 조금도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둘째, 진화론 철학은 실증철학과 한가족이다. 실증철학은 현상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하나님, 영혼, 불명성, 미래의 삶 등은 인간의 지식에 들어올 수가 없으며, 그런 것들에 대한 지식은 오랜 엄밀한 의미에서는 사실상 지식이 아니라고 한다. 결국 이 모든 객관적인 실체들은 신학의 영역너머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게 된다.

 

주도적인 원리들

(1) 계시의 무오한 성격을 이 용어를 정당하게 신학적으로 사용할 때에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

(2) 성경신학은 계시라는 기반과 객관성을 인식해야 한다.

(3) 성경신학은 영감의 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한다.

 

“성경신학”이라는 명칭에 대한 반론들

(1) 이 명칭은 너무 폭이 넓다

(2) “성경적”이라는 말을 그저 혼자만이 성경적 전거를 지니고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고 다만 특수한 방법론을 지칭하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고 답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그 명칭은 나머지 신학에 대한 명명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적절치 못하다.

 

성경신학과 신학의 다른 분야들의 관계

(1)성사(성경역사)와의 관계: 밀접한 관계를 이룸, 성사에서는 구속이 두르러진 위치를 차지하며 계시를 끌어들이지 않고 구속을 다루기 어렵다. 존재의 영역과 지식의 영역이다

(2)성경서론과의 관계: 일반적으로 서론이 앞선다. 특정한 경우들에서는 성경문서의 연대와 그 저술의 상황들이 계시의 체계 속에서 그 문서를 통해서 전해지는 진리의 위치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문서의 연대를 확인할 외적인 증거가 충분히 존재하지 않을 경우, 성경신학이 그 문서의 계시적 내용이 계시의 진전과정에서 과연 어느 시기에 잘 들어맞는지를 지적해 줌으로써 오히려 서론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3)조직신학과의 관계 : 성경에 밀접하게 근거하는 면에 있어서는 둘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다. 성경에 저장되어 있는 진리를 변형시킨다. 다만 변형을 이루는 원리들이 다르다. 성경신학의 경우, 그 원리는 역사적인 성격을 띠며, 조직 신학의 경우는 논리적 구성의 모습을 위하는 것이다.

 

성경 신학의 방법

성경신학의 방법은 주로 역사적 발전의 원리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계시의 과정을 특정한 시기들로 구분하게 된다. 베리트(언약)들을 맺는 원리가 새로운 시기의 시발을 표시해 주는 것으로서 근 역할을 담당하므로, 그것들을 면밀히 살펴야한다. 각 시기들의 한계 내에서 진리의 여러 요소들이 함께 묶여지고 또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성경신학 연구의 실제적 용도

(1) 특별 계시의 진리들의 유기적 성장을 밝혀낸다.

(2) 이성주의적 비평의 가르침들을 대항하는데 유용한 방어 수단을 제공해준다.

(3) 진리를 그 본래의 역사적 정황 속에서 보여줌으로써 진리에 새로운 생명과 신선함을 부여한다.

(4) 오늘날의 반 교리적 경향에 대해 성경신학이 잘 대응할 수 있다

(5) 믿음의 근본적인 교리들조차도 혼자 고립되어 있는 몇 가지 증거 본문들의 증언에 주로 의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불행한 상황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준다.

(6) 성경신학 연구의 가장 높은 실제적인 유용성은 성경신학 학도에게 유익이 되는 것과는 전혀 별개로 성경 신학 그 자체에 속하는 유용성이다.

 

제2장 계시의 장을 상술함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구별해야한다. 일반계시는 자연계시로도 불리며, 특별계시는 초자연계시로도 불려진다. 일반계시는 그것이 자연을 통해서 오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친다. 특별계시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특수하게자기를 드러내시는 데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제한된 무리들에게만 미친다.

자연은 내부의 자연과 외부의 자연으로 근원되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종교적 의식과 도덕적 양심을 통해서 사람의 내적 지각에 자신을 계시하신다. 또한 외부의 자연세계에서도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다. 본래부터 타고난 신지식이 먼저 있지 않으면, 아무리 자연을 관찰한다해도 신 개념에 이르지 못한다. 모든 신지식의 전제는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자연의 전거로부터 오는 이 선행하는 지식에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덧붙여질 수 있다. 이것이 초자연계시이다.

계시의 초자연성은, 물론 죄로 말미암아 그 필요성이 더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죄의 사실에서 처음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자연계시의 구조 자체가 방해를 받게 되고, 그리하여 교정의 필요가 대두되었다. 죄악된 인간에게는 내부의 자연이 더 이상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죄가 들어옴으로써, 하나님을 사람의 내적 존재에 더 가까이 계시는 분으로 지가가하는 본래적인 감각이, 자연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기록을 바라보는 외적인 관찰보다 더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성경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만물들을 주목함으로써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던 기존의 어리석은 관념들을 교정시키라고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죄의 권세 아래에서의 특별계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연의 진리들에 대한 인지 기능을 교정시키고 새롭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속에 관한 전혀 새로운 진리의 세계를 소개하는데 있다. 타락이전의 의로운 상태에서의 초자연계시와 비교할 때에 여기서의 특별계시는 형식과 내용 모두가 새로운 것이며, 더 나아가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접근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영향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직접적인 영적 교제가 있었다. 그러나 구속의 지배아래에서는 하나님과 사람의 교류를 고정시키는 하나의 외형적인 구체적 표현이 만들어졌다. 사건들과 제도들 속에 있는 객관적인 구속의 산물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접근방식에 변화가 왔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죄는 사람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접근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타락이전의 의로운 상태에서는 두려운 마음이 아니라 신뢰가 있는 우애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죄의 상태에서는 초자연자의 접근이 끔찍한 두려움을 일으키는데,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마땅히 지녀야 하는 정당한 숭배의 자세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다.

 

구속이전의 특별계시와 구속적 특별계시

구분을 위하여 타락이전에 자연에 근거한 신지식을 초월하는 특별계시의 한 형태가 존재했다는 것을 전제하였다.

 

구속적 특별계시의 구분

(1)베리트: “은혜언약”이라 부르는 그것이며 반면에 구속이전의 특별계시는 흔히 “행위언약”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베리트의 두드러진 특징이 자의성이나 가변성이 아니라, 그 불변성이요 확실성이요 영원한 당위성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베리트는 “신실한 베리트”요, 폐기될 수없는 것이다. 사람은 그것을 깨뜨릴 수 있고 또한 그렇게 깨뜨릴 경우 그것은 지극히 심각한 범죄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일반적인 합의를 깨뜨렸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그 합의를 확인하여 효력을 발생하도록 해준 그 신성한 의식을 침해한 것 때문에 그것이 심각한 죄가 되는 것이다.

 

(2)디아테케: 헬라어 디아테케는 이 단어를 베리트로 번역한 것은 일종의 타협이었다. 헬라어 칠십인역과 신약성경이 생겨난 당시 디아테케는 “유언”이라는 의미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것이 그 단어의 주로 통용되는 의미였다. 그것이 그 단어의 본래의 의미는 아니었다. 본래의 의미는 상당히 포괄적인 것으로 “누군가가 자기를 위하여 행한 처분”(디아티테미라는 동사의 중간태로서)이었다. 그러나 유언을 통한 처분을 지칭하는 법적인 용법으로 그 단어를 독점했었다.

 

제3장 구속이전의 특별계시의 내용

네가지 원리들

(1)생명의 원리: 이는 그 최고의 가능성이 생명나무를 통해서 성례적으로 상징되었다.

(2)시험의 원리: 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통해서 동일한 방식으로 상징되었다.

(3)유혹과 죄의원리:이는 뱀을 통해서 상징되었다.

(4)죽음의 원리: 이는 몸의 분해에 반영되어있다.

 

(1)생명의 원리와 생명나무의 의미

생명나무가 동산중앙에 서있다 그 동산은 “하나님의 동산”이다. 그 동산은 본래 사람의 거주를 위한 것이 아니고, 특별히 사람을 하나님 자신의 거소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속으로 영접하는 장소다. 일반적인 나무의의미로부터 그 특수한 용도를 구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타락이전에 사람이 그 실과를 먹지 않았었다는 것은 창세기3:22에 나타나지만, 그러나 그 금지 명령에는 미래에 그 나무를 따로 사용하도록 하기위해서--이는 후에 그 나무에 붙여지게 되는 종말론적인 의미와 아주 일치한다--그것을 먹지 못하도록 금지했다고 이해할 수 잇을 만한 내용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 나무는 그의 시험기간 내내 순종하면 얻게 될 더 높고 불변하며 영원한 생명과 결부되는 것이었다. 현제 그 열매를 먹음으로써 그런 결과를 얻을 것을 예상했다면, 그런 생각은 그 나무의 성례적 성격과 전혀 어긋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그 최고의 생명을 얻은 것이 확실해진 이후에야 비로소 그 나무가 그 최고의 생명을 전해주는 적절한 성례적 수단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타락이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그러한 신적인 목적인 거슬러서 그 열매가 먹고자 하는 성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셨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욕심은 시험기간이 지난 후에 그 나무가 특수한 생명의 성례가 될 것이었음을 시사해준다.

 

(2)두번째 원리: 시험과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라는 상징물의 의미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동산 중앙에 서있었다. 이 나무에 대해서는 견해차이가 심하다.

a. 신화적해석이 있는데 이는 그 나무를 이교도의 신화의단편이 성경기록속에 들어온 것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 이 사건에서 주도적 역할을 여인이 한다는 것으로부터 신화적 해석에 또 하나의 반론이 된다.

b. 이 나무와, 또한 이 나무와 결부되어 잇는 “선악을 아는 지식”에 대한 두 번째 해석은 “알다”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선택하다”라는 뜻을 지닐 수 있다는 언어학적인 관찰과 연관되어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무의 이름은 사실상 “선악을 선택하는 나무”가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일반적인 의미로 취하여 그 나무를 “사람이 선이나 악을 선택하는 데 사용하는 수단이 되는 나무”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c.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라 부르는 것은 그 나무가 시험을 통해서 인간을 최고의 보람이 보장되는 종교적,도덕적 성숙의 상태에로 이끄시기위해 하나님이 지정하신 도구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문구를 육체적인 의미로 보지 않고 영적인 의미로 보는 것이다.

 

(3) 뱀으로 상징되는 유혹과 죄의 원리

시험과 유혹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들이 동일한 사실의 두가지 측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사이에서 시험과 유혹을 모두 동일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표현한다는 점에서부터 드러난다. 선한 의도를 지닌 것이 시험이요 악한 의도를 지닌것은 유혹이라는 차이가 있으나 둘 다 동일한 재료에 작용한다. 그 당시에 진짜 뱀이 있었고 또한 뱀을 이용하여 자기의 계획을 이행한 마귀적인 세력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복음서에 나타나는 귀신들린 자들의 경우에 귀신들이 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말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바빌로니아의 유적들에서 뱀의 모양 뒤에 귀신의 모양이 자주 나타나는 것이 발견됨으로 이런 주장에 뒷받침되었다. 창세기 3:1은 뱀이 땅의 다른 어떤 짐승들보다 더 간교하다고 말씀한다. 이 구절은 뱀이 마귀의도구로 사용되기에 적절한 이유가 바로 그 간교함에 잇는 것으로 본다. 유혹의 과정은 두 단계로 구분된다. 첫단계에서 순진무구한 종류의 의심, 사실여부에 대한 의심을 갖게 함 둘째단계, 노골적으로 드러냄 여기에 여자는 두 가지 분명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첫째 순전한 사실여부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금지 명령이 내려진바 없다고 믿게 만드는 부추김을 배격 그리고 동시에 그녀는 마치 하나님이 그 금지 명령의 범위를 모든 나무들에게로 확대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제안도 거부한다. 하나님이 너무심하게 금지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기 시작함.

사람을 위하여 자비로운 목적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이셨고 뱀은 사악한 의도를 갖고 있었으나 여자는 거꾸로 하나님의 의도가 적의가 있고 오히려 사탄이 그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의도를 가졌다고 생각하여 처신한 것이다.

 

(4)죽음의 원리: 몸의 분해로 상징됨

창세기 2:17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3:3 참조). 이 말씀에 근거하여, 대대로 우리는 죽음이 죄의 형벌이요, 인류는 그 최초의 죄를 범함으로써 처음 죽음아래 종속되었다고 믿어왔다.

 

필멸성과 불멸성

불멸성이란 철악의 언어로는 영혼의 지속성을 표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신학적인 용어로는 불멸성이 사람이 자기 속에 죽음을 초래할 요인을 전혀 갖지 않은 상태를 지칭힌다. 사람은 불멸하게 창조되었으나 타락이후에는 그렇기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또한 종말론적인 언어로는 불명설이 사람이 죄를 면하였기 때문에 죽음도 면한 그런 상태를 지칭할 수도 있다. 필멸성의 정리 첫째 사람은 절대로 필멸성이 없다 두 번째 사용하는 정의에 따라서 동시에 불멸하기도하고 필멸하기도 한다. 죽음의 우연성을 초월하지는 단계로까지 올려지지 않았으므로 필멸하지만, 죽음이라는 질병을 자기 속에 지고 있지 않으므로 필멸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세 번째 반드시 필멸하다. 반드시 죽게 되어있고, 죽음이 그의 속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필멸성은 조건부로만 적용된다. 즉 지상의 상태에 잇는 동안에는 죽음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의 몸속에서 작용하지만 그의 새로워진 영의 중심에서는 원리적으로 이미 죽음이 배제되었고, 그 대신 불멸하는 생명으로 대치되어 결국에 가서는 죽음을 극복하고 밀어내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필멸성과 불멸성의 공존은 사람의 양분화 된 본성에 근거한다.

 

제4장 구속에 관한 최초의 특별 계시의 내용

여기서는 구속이라는 용어를 미래의 것을 미리 예상하는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세가지 저주

죄가 범해진 것과 동일한 순서로 세가지 저주가 선언된다. 뱀에게 선언된 저주에는 뱀과 구 후손에 대한 승리의 약속이 들어있다. 뱀의 후손이 정죄를 받아 배로 기어가게 됨으로써 여자의 후손이 그 머리를 상할 수 있게 되며, 한편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만을 상할 수 있을 뿐이다.

(1)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이 주도하심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 근본적으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의 신적인 약속이다. 친히 주권적으로 적의를 심으시겠다는 것이다.

(2)구원의 골자는 뱀과 하나님을 향하여 사람이 가졌던 태도를 각기 역전시키는데 있음. 하나님이 사탄과 전쟁을 하는 당사자이시고, 사람이 거기에 가담하여 하나님편이 되는 것

(3)구원의 역사의 연속성이 선포된다. 적의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에게로 확대 되는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개개인만이 아닌 여자의 후손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뱀의 후손에 관한 견해는 첫째로 인류가운데 계속해서 뱀의 편에 서는 자들을 지칭, 다른 하나는 악령들을 칭한다.

(4)그 적의가 겉으로 표출될 것이 예언됨 “그가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후손

이 약속은 바로 어찌해서든 인류에게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치명적인 공격이 임하리라는 것이다. 이일에 여자의 후손이 한 인물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가능성이 간접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전반부의 저주에서는 두 후손이 서로 대조를 이루는데 반해서 여기서는 여자의 후손과 뱀이 서로 대조를 이룬다. 이는 그 싸움이 절정에 이를 때에 뱀의 후손이 뱀으로 대표될 것이며, 이와 마찬가지로 여자의 후손도 어떤 단일 인물로 대표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메시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고통

여자는 여자로서의 본성에 해당하는 일에서 고통을 당하도록 정죄를 받는다. 그러나 죽음의 형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스스로 번식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암시 속에서 이 형벌에 은혜의 요소가 뒤섞여 있음이 드러난다. 남자의 형벌은 죽기까지 땀 흘려 수고하는 것에 있다. 노동 그 자체가 형벌은 아니다. 동산에서도 사람은 그것을 가꾸고 꾸미는 수고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형벌은 바로 그 노동이 죽음을 가져올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데 있다.

 

제5장 노아의 계시와 그 계시에 이르기까지의 발전과정

두가지 특징: 첫째로 그 계시의 의의가 구속의 영역에 잇지 않고 인류의 자연적인 발전의 영역에 있다는 점. 둘째로, 계시가 긍정적인 성격보다는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곧, 최소한의 은혜가 베풀어지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영역에서나 구속영역에서나 최소한의 은혜는 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연의 영역에서는 최소한의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세계의 조직자체가 붕괴해 버렸을 것이고, 특별한 은혜가 전적으로 부여되지 않았다면 구속의 영역에서도 그 약속의 계속적인 성취자체가 무산되어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역사는 세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가인의 계보에서 죄가 급속히 발전하는 것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자연의 영역에서 문화적인 발달들 가져오게 한 발명의 재능에서 나타나는 일반은혜의역사를 묘사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가인 족속이 이 은혜의 재능들을 악용하여 세상에 악이 진보하는데 이용 되도록 한 사실을 보여준다.

 

가인 족속과 셋 족속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구속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구속의 영역 바깥에서 서있는 가문과 민족들을 택하셔서 세속문화에서 진전을 이루게 하신다. 예술을 발전시킨 헬라인들이나, 법적 정치적 제도들을 발전시키는 재능을 부여받은 로마인들에게서 그 실례를 볼 수 있다. 셋 족속 중에서 두드러지는 특정 인물들과 이에 상응하는 가인 족속 중의 두드러진 인물들 사이에 대조점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가인과 아벨이 서로 대조를 이루며 제시되고, 가인의 아들 에녹과 셋의 아들 에노스가 서로 대조를 이룬다. 제6대 후손에서 셋 족속에는 에녹이 있고, 또한 반대편에는 가인 족속의 라멕이 있다. 라멕의 교만과 오만방자함과는 대조적으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이 말은 그가 경건한 삶을 살았다는 뜻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초자연적인 교류를 상징하는 것이다. 가인족속의 경우 라멕에 대한 묘사로 끝을 맺고, 더 이상 계보를 추적하지 않는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셋 족속의 경우는 노아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이시기의 성격은 가인족속과 셋 족속이 상호 결혼을 통하여 서로 뒤섞이는 사실에서 자장 선명하게 표현된다. 셋 족속이 스스로 가인 족속의 사악함에 동화되고 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고유한 파괴적인 힘에 대한 교훈이 충만히 가르쳐지는 데에까지, 또한 노아와 그 가족만이 홀로 신실하게 남아 있어서 하나님의역사의 계속성이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나 더 이상 계속 될 수 없을 때까지 그리고 심판이 없이는 이시기 전체ㅡ이 목적이 좌절될 정도가 되어 결국 대 심판으로 교훈해야 할 시기가 이를 때까지 이런 상태가 되도록 허용하셨다.

사람의 딸들이란 가인 족속의 여자들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셋 족속의 남자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에 대해서 여러 주석가들이 이의를 제기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초인간적인 존재 즉 천사들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창세기 6:3,5-7에서는 이시기의 문제점에 대한 신적인 정리가 나타나며, 홍수 이전의 인류들에게 심판이 선언되고 있다. 그 시기의 마지막에 극도로 사악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지극히 강한 어조로 묘사되고 있다. 1)악의 강도와 범위 2) 악이 내적인 성격을 띰 3)악이 완전히 지배하여 선한 것이 모두 사라졌음 4)악의 역사가 습관적이며 지속적임

심판이 이루어지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는 말씀으로 인류가 계속 이어질 것이 보장 됨.

 

홍수 이후의 계시

신적인 목적을 계속 수행해 나가기 위하여 적극적이며 건설적인 수단이 강구되었다.

적극적인 노아의 계시는 세단계로 나아간다. 1)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제정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독백의 형식으로 상술 2)이질서에 내용과 안전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취하는 수단들을 묘사 3)그 새 질서가 베리트의 형식으로 확인되는 과정을 보도

 

제6장 노아와 대 족장들 사이의 시대

1. 노아의 예언적 진술(창9:20-27)

이 예언들은 가나안(함)에 대해서는 저주이고, 야벳과 샘에 대해서는 축복이다. 축복과 저주의 구분의 기준이 윤리적인 영역에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구속사의 전체과정에 아주 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저주와 축복을 서로 구별하는 기초가 윤리적 영역에 놓여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함의 추잡한 음탕함과 또한 야벳과 셈의 정숙함은 일반적인 도덕성에서 나타나는 한가지 차이에 불과했으나 그 결과는 아주 달랐다.

 

2. 열방의 계보

이 계보는 족속들과 가문들과 언어들에 대해서 말씀한다는 점에서 11장에 가서 비로소 묘사될 구분의 기원을 미리 예상하는 측면이 있다. 족보상으로는 기대할 수 있는 순서와는 달리 셈 족속의 계보가 맨 마지막에 오는데, 이점은 이계보가 세속적인 족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이것은 구속의 계보에 속하는 하나의 장인 것이다. 이 계보에서 구체화되는 사상은, 근접한 미래에 셈족속이 구속의 인류를 이룰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족속들이 성사의 장에서 영원히 버려짐을 당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름들이 여기에 등록됨으로써, 때가 차게되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을 다시 돌이키실 것이고, 그리하여 그들을 다시금 거룩한 부류 속에 두시게 될 것이라는 원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3. 언어의 갈라짐(11:1-9)

하나의 성 혹은 탑의 건설은 애초에 인류를 모두 하나로 묶어주는 통일의 중심을 얻고자 하는 욕구에서 촉발되었다 그러니 이런 통일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그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다. 통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독립하여 사람의 영광을 드높이는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해 줄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언어가 다른 사실에서 드러나는바 민족적인 이질성들을 유지시킴으로써 인간이 시도한 그 계획이 실현되지 못하도록 막으신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중의 목적이 있음.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각 종족 혹은 민족마다 그들이 추구하는 적극적인 목적을 지니는데, 그 목적을 성취하려면 다른 종족 혹은 민족들로부터 상대적으로 격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단계의 사건들은 구속의 계획의 시행과 밀접하게 뒤섞여 있었다. 그 사건들이 결국 한 종족과 한 민족을 선택하여 별도로 훈련시키는 일이 이어진 것이다.

 

4. 셈족속을 선택하여 구속과 계시의 사자(使者)들이 되게하심

셈 족속은 능동적이거나 생산적인 정신 자세보다는 주로 수동적이며 수용적인 정신자세를 지녔다는 것이다. 그것이 원시적인 지식의 단계에 가장 적합한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여러 가지 큰 갈래로 분리되고 민족적인 기질들이 다양화된 이 시점에 와서는 그런 특성이 특히 셈족속 중에서 계승되고 배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래 진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형식이 그렇게 해서 인류의 다른 그룹들의 정신세계 속으로도 전이되어 갈 가능성을 확보하였던 것이다.

(1) 프랑스 학자 르낭(Renan)은 언젠가 이 종교적인 자질을 심리적인 것으로 격하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세가지 위대한 유일신 종교가 셈족의 바탕에서 나온 사실에 착안하여, 그는 유일신론적인 본능이 이 인종적 그룹의 특징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르낭은 이런 본능을 우월한 능력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상상력이 결핍된 상태와 연관짓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이 이론이 완전히 신빙성을 상실하였다.

(2) 이 모든 것을 생각한 연후에라도 각기 나뉜 그룹들 간에 어떤 종교적 모습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이다

(3) 이와 연관된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셈족의 종교의식이다.

(4) 여기서 고찰해볼 만한 또 다른 양상은 ‘부족적 특정주의’이다.

(5) 셈족 종교의 이러한 특성들은 어디서고 관찰되는 단일화에로 방향 지우는 모든 범신론적인 경향에서 벗어나게 한다.

(6) 마지막으로, 셈 족속의 그런 종교적인 기질들은 진화를 통해서 스스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진화의 원리에 구약의 더 상고한 종교를 산출해 내는 데에 그 기질들이 충분했던 것도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 고대의 셈족속의 종교와 그 이후의 종교가 서로 연결된다는 사실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흔히 나타나는 두개의 신적인 이름들, 곧 엘과 엘로힘에서 드러난다. 엘은 아마도 “강하다”라는 뜻을 지닌 울이라는 어근에서 파생된 것일 것이다. 그리하여 엘은 처음에는 강건함을 뜻했고 나중에는 강한자를 뜻하게 되었다. 어원을 달리보면 엘이 “앞서다”라는 뜻의 알라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지도자 혹은 대장의 의미가 될 것이다.

엘로힘은 어디에서 파생되었는지 그 어원이 확실치않다. “두려워하다 혼란스러워하다 그리하여 피난처를 찾다”등의 기본의미를 지닌 셈족어의 어근에서 파생되었을 수도 있다.

 

제7장 족장시대의 계시

비평적 견해들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등 족장들이 과연 역사적 인물인가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비평학파의 설명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견해는 성경기사에 나오는 사건들과 인물묘사들은 후대의 왕국 시대 동안의 이스라엘 백성의 자기묘사와 자기 이상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름들의 기원에 대해서 부족의 이름들이라고 보며 또한 인물들이 종족 관계에 있다는 것은 그들 사이에 부족 간의 관계가 있었음을 반영한다고 본다. 이동도 부족의 이동을 뜻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주장하는 학자 딜만

 

두 번째 견해 벨하우젠 계열의 비평학자들이 이를 주장 슈타테가 이를 상세하게 전개. 그에 따르면 아브라함,이삭,야곱 등의 이름들은 본래 히브리인의 계보상의 역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고 오히려 가나안 족의 인물들의 이름 이라고 한다. 그들은 가나안 족의소신들에게서 태어났고, 가나안 부족들이 자기들의 조상들로 간주하여 여러 곳에서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점령하고는 가나안 족들이 오랫동안 예배를 드려온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그때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자기들의 신의 명단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점점 가나안에서 안정을 취하게 되자, 그들은 곧 이 신성한 곳들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거기서 예배하는 신들도 히브리인의 신들이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를 표현하고 또한 역사를 통해서 일종의 법적인 권위를 만들어 놓기 위하여 자기들의 조상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들이 예전부터 그 거룩한 땅에 있으면서 그 독들을 거룩하게 구별해 놓았다는 허구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창세기 기사에서 아브라함을 헤브론에, 이삭을 브엘세바에, 야곱을 벧엘과 연관지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 이름들을 바빌로니아에서 나타나는 선례들에서 빌려온 것으로 설명하는 시도도 있었다. 사라는 하란의 여신이었고, 아브라함은 하란의 신이었으며, 라반은 월신,야곱의 네아내는 달의 네가지 상태를 지칭하며, 야곱의 열두아들은 1년의 12개월이며 레아의 일곱아들은 일주일의 7이며, 아브라함이 죽인 318명의 침입자들은 음력으로 1년의 날수라는 식이다.

 

족장들의 역사성

구약의 종교가 사실에 근거한 종교이므로, 이 인물들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실제의 역사가 지니는 것과 똑같은 교훈을 그들의 이야기들에서 이끌어낼 수 있고, 그런 점에서 그들이 똑같이 유익하다는 식의 논지는 한마디로 거짓된 것이다. 그들이 만일 구원의 드라마속에서 진정으로 활동한 인물들이라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실질적인 시발점이라면, 객관적인 종교가 최초로 구체화된 존재들이라면, 만일 아브라함이 신자들의 조상이여 교회의 핵심이라면--만일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라면, 그들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은 곧 그들 자신을 전혀 소용없게 만드는 것이된다. 논리적으로 합당한 유일한 입장은 만일 구속의 역사가 필수적이라면 그 역사는 반드시 아담과 하와에게서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신적인 현현들

족장시대에 관하여는 계시의 형식과 내용을 서로 구별해야 한다. 계시의 형식에 대해서는 , 과거와 비교할 때에 그것이 점진적으로 중요성을 띠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에는 그저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신 사실만 진술하고, 어떤 형식을 통하여 말씀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또한 말씀하실 때에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타나나기도 하셨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으로 볼 때에 계시의 빈도수가 증가되고, 동시에 그 전달 방식이 더 제한되고 억제된다고 말할 수 잇을 것이다. 초자연적인 계시의 신성함과 은밀함이 그 자체에서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브라함에게도 그 이전의 불명확한 방식으로 계시가 주어졌다. 15:17에서는 하나의 시각적인 효과가, 하나의 신적 현현이 일어난다. 연기나는 화로와 차는 횃불의 형태로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이다. 창26:2,24에서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신 사실이 기록되어있으나, 이삭의 생애에서는 신적 현현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야곱의 생애에서 신적 현현이 다시 일어나지만, 아브라함의 경우와 비교할 때에 그 빈도수가 줄어든다. 창세기28:13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닥다리의 꼭대기에서 야곱에게 말씀하시지만 이것은 꿈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창35:9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고 보도한다, 이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은 요셉의 생애에서는 신적 현현이 전혀없다는 점이다. 위에서 진술했듯이 신적 현현의 장소에 단을 세우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는데, 이는 그 장소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장소가 된다는 의식이 그들에게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족장들은 이 장소들로 돌아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이 신적 현현들의 대부분이 확실한 장소들에 한정 되었고, 그 장소들 모두가 약속의 땅의 경계 내에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여호와의 사자

족장시대의 계시의 형식가운데 가장중요하고 가장 특징적인 것은 “여호와의 사자”혹은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는 것이다. 특이점은 그 사자가 자신을 여호와와 구별하여 그를 삼인칭으로 지칭하여 말씀하면서도, 동일한 말씀에서 일인칭을 써서 하나님에 대해 말씀한다는 점이다. 말라크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여호와께서 인격자가 개입되지 않는 방식으로 친히 내어보내시는 임무 혹은 사명을 뜻하는 추상명사로 취급 이들은 이에 대한 근거가 여호와께서 오랫동안 시내산에 거하셨으므로 이곳에서 인격적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으나 그 백성이 가나안으로 향하여 가는 중에나 그 거룩한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그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고 그리하여 모종의 영향력을 자기 자신에게서 내어 보내심으로써 인격적인 임재를 통해서 할 수 없었던 일을 핼할 수 있었다고 믿었던 고대의 믿음에 있다고 보았다.

두 번째는 사자라는 이물이 형성된 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높이고자한 후대의 유대인의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 도 제기되었다.

 

족장아브라함

(1) 선택의 원리

족장들에 대한 신적인 역사에서 가장 먼저 두르러지는 원리는 바로 선택의 원리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그리고 계속해서 발전해 가는 이스라엘의 선택은, 하나의 본편주의적인 목적을 지향하는 하나의 특정주의적인 수단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족장들의 역사는 모세시대의 역사보다 더 보편주의적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심지어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의 의미에서도 주변의 다른 민족들의 모습과 다르게 만들고자 하는 무슨 특별한 조치가 거의 없었다. 구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종교 의식의 체계가 세워지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제정된 의례라고는 할례가 전부였는데, 그것마저도 주변의 다른 부족들도 시행하는 것이었으므로 진정하게 그들을 구별지어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적극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족장들을 다루시는 원리들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영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2)계시가 베푸는 은혜의 객관성

족장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의 두 번째 특징은 그 계시가 베풀어주는 은혜가 객관성을 띤다는 점이다. 그 계시종교가 역사적 점진적 성격을 띤다는 점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행하셨고, 현재도 행하고 계시며, 미래에도 행하실 것을 약속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객관적인 것으로서 족장들에게는 세가지 위대한 약속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 첫째는 택함받은 그 가문이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가나안 땅이 그들의 소유가 되리라는 것이었고, 셋째는 그들이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3) 약속들이 초자연적으로 성취됨

하나님의 절대적인 단독적 권능이 그 약속들을 이루신다는 점을 말씀으로나 행동으로나 지극히 강력하게 강조한다는 점이다. 약속들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엄격한 초자연성이 강조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생애에 자연과 어긋나는 온갖 일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 “엘-샤다이”

우리로서는 다음의 두가지 어원중에 한가지를 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1)관계를 나타내는 샤와 “충족한”을 뜻하는 형용사 다이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그 의미는 자기 자신에게나 혹은 다른 이들에게 “충족한자”라는 뜻이다. 이는 후대의 헬라어 역본들에서 나타나는데 거기서는 이를 히카노스로 변역한다. (2) “제압하다”,“파괴하다”라는 뜻의 동사 샤다드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어원에 근거하면 그이름은 “제압하는자”, “파괴자” 혹은 전능한자를 의미할 것이다. 칠십인역의 몇몇 번역자들이 이 견해를 취하였다. 칠십인연에서는 이이름을 흔히 호 판토크라토르, 즉 “만유의 통치자”로 번역하고 있다 이 두가지 중 두 번째를 취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족장들의 종교에 나타나는 믿음

조장들의 종교의 주관적인 영역에 믿음이라는 개념이 갑자기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이것은 객관적인 영역에서 나타나는 초자연성의 반영일 뿐이다. 창세기15:6에서 처음 믿음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나타난다. 넓은 의미로 이야기하면, 믿음은 성경의 가르침과 경험에서 이중적인 의의를 지닌다. 첫째로 믿음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요, 둘째로는 더 고상한 영적 세계 속으로 투사하는 상태나 행위다. 근자에 들어서는 후자의 의미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고, 때로는 믿음의 구원론적 중요성을 최소화하려는 분명한 의도가 거기에 개입되기도 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일반적인 믿음의 구성요소들을 분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언뜻보면 그의 믿음은 믿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고 그 다음 그 믿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 두 번째로 요구되는 행동인 신뢰가 거기에 뒤따르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상 이러한 순서는 심리적인 과정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종교에 있어서는 믿는 것을 통해서 동의하는 그 문제가 정신적으로 입증가능한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입증되기 전에는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도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하나의 인격적인 요인이 개입된다. 즉 그 약속들을 선언하신 바로 하나님의 신뢰성이 그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선행하는 신뢰가 신념으로 발전되면 곧 바로 그보다 훨씬 더 범위가 넓고 실제적으로도 의의가 더 깊은 신뢰가 거기에 이러진다는 사실이다.

 

윤리적 요소들

아브라함은 높은 윤리적 수준의 삶을 살았다. 아브라함은 윤리적인 삶이 수반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도 계속 될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침 받았던 것이다. 윤리는 신앙의 산물인 것이다. 구약의 종교의 윤리적 성격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할례이다. 할례는 아브라함 시대 이전에 이미 존재한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례가 그 전에는 전혀 모르던 상태에서 처음 아브라함에게 제시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하나의 의식이 그의 가문에 제시되면서 새로운 의의를 지니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의식은 본래 부족의 증표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에게 행하지 않고, 자라서 청년이 되어 부족의 완전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때에 행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부족이나 종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종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할례를 하나의 제사로, 어쩌면 인간을 제물로 드렸던 행위의 잔재로 보기도 한다. 이스라엘이나 이방인들의 할례 행위에는 부정함을 제거한다는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일은 의식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었고, 이스라엘 바깥에서는 할례에 별다른 윤리적 영적 의미가 결부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할례에 대한 교리적 이해와 관련해서 두가지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첫째는 이삭의 출생이전에 할례가 제정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할례에 수반되는 계시에서, 후손이 무수히 많을 것에 대한 두 번째 약속만 언급된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사실은 할례가 번식의 과정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리적으로 말해서 할례는 칭의 와 중생, 그리고 성화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족장이삭

아브라함의 역사는 독창적인 요소가 풍부하다. 그런데 이삭의 생애에서는 거의 매 장마다 이러한 독창적인 요소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삭은 에돔과 이스라엘 사이의 연합을 표현하는 역할을 해주는 하나의 계보상의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그 본질 자체가세가지 단계를 거친다. 그 시초에는 고도의 에너지와 생산성이 두르러지게 나타난다. 시초에는 모든 일들이 독창성을 띤다. 중간 단계는 고난과 자기 복종의 단계요, 따라서 수동적인 면을 보인다. 그리고 그 다음에 주관적인 변화의 에너지가 다시 분출하게 된다. 여기서 이삭이 이 가운데 중간 단계를 대변하는 것이다.

희생제사는 구속의 사역에서 필수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제까지는 구속의 사역이 거의 대부분 오로지 초자연적인 능력의 사역으로만 제시되었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서도 이점이 가장 강력하게 강조되었었다. 그러므로 구속의 사역 전체를 표현하는 데에서 부족한 점이 생길 소지가 많았다. 하나님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수적이지만, 그것은 구속의 과정 중의 한가지 면만을 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의모든 희생제사는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는 헌신을 통해서든 대속을 통해서든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상에 근거하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전해지는 것은 소유물로 간주되지 않는다. 혹시 상징적인 목적으로 이를 소유물로 간주하는 경우에도, 결국 그것은 언제나 생명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본래의 사상에서는 헌신에 있어서도 대속에 있어서도 다른 생명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것이다. 이사상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두번째 원리는 사람이 비정상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자기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취하여 드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치의원리가 여기서 개입하게 된다. 곧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대신하는 것이다.

 

족장야곱

야곱의 역사속에서 구체화되는 주요 원리는 삶의 주관적인 변화의 원리이며, 또한 거기에 신적인 요인의 생산적인 활동에 대한 새로운 강조가 나타난다.

(1)선택

선택이란 특별히 구속의 적용에 들어가는 원리다. 그러므로 세 족장 가운데 맨 마지막의 족장에게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이다. 선택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의 성격을 드러내는 의도를 지닌 것이다. 야곱과 에서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의 도덕성 문제를 희미하게 만드는 모든 요인들이 처음부터 제거되도록 모든 것이 조심스럽게 정리되고 있다 두아들 모두 같은 어머니에게서 출생하며, 더욱이 쌍둥이로 출생한다. 그리고 자연적인 우선권에 대한 생각을 배제시키기 위해서 형보다 동생이 선택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외에 다른 설명이 잇을 수가 없다.

성경에 의하면, 선택이란 결국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하나의 맹목적인 운명이 아니라, 시사되는 정도까지는 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어떤 목적을 지닌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이유들이 존재하든 간에 그것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대상의 어떤 윤리적인 조건들이 그 선택에 공로로 작용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2)벧엘에서의 꿈-이상

야곱의 생애에 중요한 계시의 요소가 나타나는 것은 그가 벧엘에서 경험한 꿈-이상이다 야곱은 약속의 땅을 떠나는 여정 가운데 있었고, 더욱이 우상숭배와 세상적인 사상으로 오염되어 있는 한 가족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가족의 죄악들을 모방하여 그 자신의 성품이 거기에 물들어버릴 소지가 많은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시기야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개인적인 계시를 통해서 그가 주관적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의 영향 하에 잇도록 할 필요성이 절실했던 것이다. 계시의 사건이 꿈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야곱의 영적인 상태가 아주 낮았음을 시사한다. 이것과 관련하여 엘로힘이라는 이름이 타나난다. 더욱 친밀한 종교적 관계가 나타나는, 그다음에 이어지는 진술에서는 엘로힘 대신 여호와가 나타난다. 약속의 핵심은 그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 이상이 끝난 후에 야곱은 한가지 서원을 하는데, 그서원이 그이상속에 포함된 두가지 요소들을 하나로 합쳐주며, 그리하여 야곱은 결국 사자들의 사역을 통해서 여호와를 그 자신의 개인적인 소유와 섬김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3)브니엘에서 행한 씨름

야곱의 역사와 관련되는 특수한 원리를 보여주는 세 번째 사건은 야곱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중에 낯선 사람과 씨름하는 사건이다. 그 씨름에 대한 현대의 해석들은 모두ㅏ 육신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야곱이 그 낯선 인물보다 육체적으로 힘이 더 강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지나치게 영적으로 이해하는 견해는 정반대의 극단에 빠져서 이 사건을 순전히 영적이며 내면적이며 어쩌면 환상 속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를 사건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 사건은 분명 육체적으로 경험된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씨름으로 인하여 야곱에게 육체적인 흔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또한 영적인 면이 나란히 갔던 것이 분명하다. 내적인 영혼의 싸움이 육체적인 씨름과 나란히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 기사를 믿음과 기도의 끈기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지만 구체적인 면이 부족하다. 야곱이 낯선 사람과 씨름했다고 말씀하지 않고, 그보다 우선적으로 그 낯선 사람이 야곱과 시름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곱이 극복해야 했던 신적인 불쾌감의 요소를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 요소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사건 속에 개입되었었음을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야곱이 기도할 때에 마음 자세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며, 또한 그의 경험을 기도의 한 가지 모범으로 만들어준다.

이사건을 통해 이루어진 변화는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일에서 표현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름이 엄숙하게 바뀌었음에도 야곱과 이스라엘이라는 두 이름이 그 이후의 기사에서 계속 나란히 사용된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객관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운명을 나타내기 위해 주어진 새 이름이었고, 따라서 거기에는 퇴보나 불완전한 요소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관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경우에는 옛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제거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과거에 야곱에게 부패성과 나란히 영적인 요소가 있었던 것처럼, 그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예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노년에 이르기까지도 야곱이 계속해서 환난의 징계를 당하게 하신 것이다.

 

제 8장 모세 시대의 계시

1. 구약 계시에서 모세가 차지하는 위치

우리는 처음부터 모세가 이스라엘의 종교적 의식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모세는 논란의 여지없이 가장 오래된 모세오경의 이야기들 속에 그 백성의 위대한 종교적 지도자로 서 있다.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 선지자들인 아모스와 호세아의 글에서도 모세가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호12:13, 암 3:1). 우선, 과거를 회고하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는 족장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약속들을 일차적으로 성취시키는 데에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 이스라엘이 사실상 큰 민족이 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즉, 모세를 통하여 구성된 조직이 그들 모두를 민족적으로 결속시켰던 것이다. 또한 모세는 약속의 땅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인도하였다. 미래를 전망하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에도, 모세는 구약의 종교적 발전에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뒤이어 나오게 될 선지자들의 머리에 설 뿐 아니라, 미리부터 그들 위에 서는 인물이다. 그의 권위는 그 이후의 시대들에까지 미친다. 모세는 아론 가문의 제사장 제도가 제정되기 전 옛 베리트(계약, 혹은 언약)가 수립될 때에 제사장적 기능을 수행하였다(출24:4-8).

 

2. 모세 시대의 계시의 형식

모세가 담당했던 중요한 역할에 걸맞게, 그와 하나님 사이에 특별히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음을 보게 된다. 모세만큼 여호와의 직접적이며 지속적인 교통을 갖는 특권을 누린 선지자는 없었다(하나님의 대변자 역할). ‘내 종 모세’로 불리는데, 여기서 ‘여호와의 종’은 허드렛 일을 맡아 하는 노예라는 뜻이 아니라, 주인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맡아서 행하는 책임 있는 종이라는 고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직접 모세를 통하여 전해진 것은 아니지만 모세의 사역과 연관되어 주어진 계시의 형식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의 얼굴 등 모두 네 가지다.

①구름기둥과 불기둥 - 출애굽기13:21,22에서는 여호와께서는 그 현상 속에 계셨고 또한 그것이 백성들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진술되어 있다. 구름기둥을 통해서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고(출14:24),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기도 했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에 구름이 여호와를 드러내는 것을 보게 되며, 출34:5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하늘로부터 시내산 위에 강림하신다.

②여호와의 사자 -출2:3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났다. 출23:20, 21에서는 여호와의 사자에 관하여 공식적인 한 가지 약속이 주어진다. 그가 이스라엘과 동행하리라는 것이다. 사자의 기능은 그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포괄적인 것이었고, 더 나아가 그를 대적하여 죄를 범하는 일에 대한 언급에서, 그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라는 것도 배우게 된다. 또한 민수기 22장 발람의 기사에서도 나타난다. 거기서는 그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락의 흉계를 좌절시킨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임무가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데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경우라 할 것이다.

③여호와의 이름과 얼굴 - 출23:21에서는 ‘그 이름’이 그 사자에게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데, 이는 그 사자를 여호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둘 모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특히 히브리어 ‘파님’은 문자적으로 얼굴들이란 뜻인데, 그것이 여호와 자신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신명기에서는 여호와께서 성소에 그의 ‘이름’을 두신 것으로 그려진다. 그의 ‘이름’이 있는 그곳이 바로 그의 거처라 불려진다(신12:5,11, 21; 14:23, 24 등). 이름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파악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으로 여호와 자신과 동등한 것이다. ‘이름’은 계시로 알려지시는 하나님인 것이다.

 

3. 모세의 계시의 내용

모세계시의 내용을 다룸에 있어서 ①애굽으로부터의 구원 시에 모세를 통하여 확립된 민족적 조직의 사실적인 근거, ②그 민족적 조직을 생겨나게 한 이스라엘과의 베리트(언약) 가 맺어짐, ③그 민족적 체계의 일반적 성격-신정통치, ④십계명, ⑤의식법(그 상징적 예표적 성격, 하나님의 내주하심, 희생 제사, 정결례 등, 그 법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들) 등 다섯 개의 항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①애굽으로부터의 구원 시에 모세를 통하여 확립된 민족적 조직의 사실적인 근거 :

출애굽 사건은 구약의 구속이다. 십계명은 그 첫머리에서 애굽으로부터 그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 과정을 지극히 심오하게 언급하고 있다(출20:2). 후대의 이사야서에서도 백성들에게 그들의 종교적 기원의 궁극적인 뿌리가 바로 먼 옛날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에 있음을 상기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사51:2).

ㄱ. 이방의 압제로부터의 구원→죄로부터의 구원

히브리인들이 처한 상황은 비단 정치적인 의존의 상태만이 아니라, 혹독한 종살이요 노예의 상태였다.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복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그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그들을 착취하였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외부의 이방 사람들의 압제로부터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동시에 내면적인 영적 부패와 죄로부터도 구원받았다. 당시에 그들은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을 다 상실해 버렸고 애굽 사람들의 우상 숭배 행위들에 깊이 젖어서 그들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이 이스라엘 중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심을 인식할 정도로는 잘 알고 있었다. 모세가 족장들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 전반에 대해 이처럼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도 정당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우상을 섬겼던 사실을 알게 된다. 이스라엘이 신앙적으로 부패한 상태로 애굽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광야 여정의 역사에서 금송아지를 섬기는 등 계속해서 배도(背道)가 반복되는 사실을 납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 어느 정도 신앙적 쇠퇴와 부패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애굽에서 구원받은 사실이 그저 외형적인 민족적 유익을 넘어서서 더 깊은 영적 의의를 지니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에서 외형적인 압제가 흔히 여호와를 향한 영적인 불성실에 따르는 부산물이라는 점이다.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들을 시행해 나가는 도구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에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시고 그 압제를 계획하셨었다는 사실이, 아브라함과 베리트(언약)를 맺으실 때에 그에게 그 일을 미리 예언하신 사실에서 잘 드러나는 것이다(창15:13-14).

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드러냄

구원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그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이 시종일관 계속해서 강조되는 것을 보게 된다(특히 출15장-미리암의 노래).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리지는 역사는 그 위대한 구속의 드라마를 절정에 이르게 하는 역사다.

모세가 자기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 했을 때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로부터 사십 년이 흐른 후 여호와께로부터 그 구속의 역사를 인도하고 이루는 임무를 부여받자, 그는 과거와는 정반대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자세로, 자신의 무자격함을 철저하게 인식하며 그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친히 모든 이적들을 애굽을 치실 것임을 약속하신다(출3:20).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에 이적들을 주시며(4:21), 편 팔과 큰 심판들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것이다(6:6).

ㄷ. 주권적 은혜의 과시

애굽에서 구원받은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현저하게 드러내 주는 사건이었다. 애굽사람들은 우상숭배로 인하여 심판을 받은 것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제자들의 우상숭배 행위에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아 살아남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가리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것”이라 부른다(출8:23; 11:7). 즉, 이스라엘이 누리는 특권이 그들 자신에게 무슨 선한 자질들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자유로이 베푸시는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신7:7 ; 9:4-6). “알다”라는 동사, 신명기의 “택하다”라는 동사, “구속”(혹은 속량)이라는 용어가 여기서 종교적인 의미로 나타난다.

ㄹ. ‘여호와’(יהוה)라는 이름

‘여호와’라는 발음은 그 이름의 자음들에다 ‘아도나이’의 모음들을 붙여서 얻어진 것이다. 유대인들은 신성한 그 단어가 나타나는 곳마다 언제나 아도나이로 대체시켜서 읽었기 때문에, 모음을 첨가할 때에 편의상 아도나이의 모음들을 그 단에다 붙인 것이다. 현재 비평학자들의 책에서는 “야훼”라는 형식이 흔히 나타난다.

출애굽기 6:3을 반드시 여호와라는 단어가 그 이전에는 전혀 모르던 것이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 진술은 다만, 족장들이 그 이름이 나타내는 그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과 경험을 아직 소유하지 못했다는 의미일 뿐이다. 6, 7절에서는 구속을 통해서 그들이 그저 여호와라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가 과연 그들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혹은 그들의 하나님이 곧 여호와시라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여호와라는 이름에 대한 기원에 관한 벨하우젠 학파의 상당히 유행되는 가설은, 여호와는 모세의 장인이 속해 있던 시내산 지역의 한 부족인 겐 족의 신이었고, 여호와가 그 산과 특별히 연루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가 앗수르-바벨론의 이름들 가운데 나타나는 야후(Yahu) 또는 야(Yah)와 동일한 것인데, 히브리인의 제사장들이 이를 ‘존재하다’, ‘있다’를 뜻하는 하야(היה)의 변형임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 야훼로 바꾸었을 것이라는 가설도 제기되는 있는 형편이다. 아무튼 책의 저자 게할더스 보스는 여러학자들이 여호와라는 이름에 관한 단어의 파생 설명 혹은 이론들을 헛된 것으로 여긴다. 보통 성경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내가 있는 것이 나로다”, “존재하는 나는 진실로 존재하느니라”.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서, 학자들이 제시한 몇 가지 해결책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는 하나님의 불가해성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 두 번째는 존재론적 견해이다. 철학적인 성격이 강한 이 견해는 “존재하는 나는 진실로 존재하느리라”로 표현한다. 그러나 너무 추상적이다. 세 번째는, 로버트슨 스미스의 견해이다. 출3:12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반드시 있으리라”라는 말씀하는 대목에 주목하면서, “너희와 함께 있을 내가 반드시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본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많은 실정이다(‘너희와 함께’라는 부분이 없다). 지금까지 제시한 모든 해결책들보다도 반론의 공격을 덜 받는 견해가 있다. 하나님의 자결성(self-determination), 혹은 자존성(independence)을, 즉 특히 구원론과 연계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이라 부르는 바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즉, 여호와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주된 의미는, 바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위해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자기 스스로 결정하시며, 외부로부터 그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또한 전혀 거침이 없이 자유로이 행하시는 절대적인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바로 그들 스스로 보아도 전연 무가치한 존재들이요 또한 애굽인들에 비해서도 완전히 무기력한 존재들인 그 백성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실하심의 요소도 강조된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3:15), “내가 ......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출6:5,6,8)

ㅁ. 유월절

출애굽기의 구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마지막 특징은 곧 속죄의 사상이 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이다. 이 특징이 유월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사실 ‘파사크’(뛰어오르다, 건너뛰다, 살려두다)라는 명칭이 이 사실에서 파생된 것이다. 유월절은 제사였는데, 아마도 화목제에 속한 것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물론 속죄의 요소가 강조되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속죄제로 분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속죄제물은 먹을 수가 없게 되어 있었으나, 유월절의 경우는 반드시 제물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유월절 제사는 훗날 율법으로 제정되는 보통의 화목제와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었다. 곧, 그 제사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고, 또한 그 제사를 통해서 그 배경을 지켜가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유월절 제물과 함께 쓴 나물을 먹음으로써 애굽의 종 살이의 쓰라린 아픔이 이스라엘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보통의 화목제는 사사로운 성격을 띤 것이었으나, 유월절 제자는 민족적인 축제의 성격을 지녔다. 그러므로 개인이 사사로이 행한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행했던 것이다. 그 제물의 고기를 절대로 집 바깥으로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 한 가족이 그 고기를 다 먹을 수 없을 경우에는 두 가족이 함께 먹어야 했다. 또한 어린양의 뼈를 하나도 꺾어서는 안되었으므로, 고기를 물에다 삶지 않고 통째로 불에다 구웠던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민족 전체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지녔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의 민족으로 조직될 때가 임박해서야 비로소 유월절 절기가 제정되었던 것이다. 할례는 아브라함 시대에 제정되었고, 유월절은 모세 시대에 제정된 것이다.

 

 

②그 민족적 조직을 생겨나게 한 이스라엘과의 베리트(언약)가 맺어짐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출19:∼24:)의 특징은 그 언약의 주도권(主導權)은 여전히 여호와께 돌려지나, 백성들의 동의를 요하는 쌍방 간의 합의로 나타난다는 점이라고 보스는 피력한다. 하나님과 사람이 베리트(언약)의 본질과 내용을 결정하는 데에 서로 협상하거나 협력한다는 것은 성경 기사의 입장에서는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만큼 오직 여호와의 언약이지만(주도권에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리트(언약)는 백성들 앞에 제시되는 것이요, 또한 그들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베리트 체결에 대한 두 개의 다른 기사가 있다. 그 하나는 여호와와 함께 산 위에서 음식을 먹는 의식을 통해서 베리트가 체결되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고(출24:1-2), 또 하나는 희생제사를 통해서 그것이 체결되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출24:3-8)이라는 것이다. 그 제사의 일부는 화목제인데 화목제는 음식을 먹는 일이 없이는 완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 제사에는 속죄의 요소가 포함된다. 그것이 베리트 체결에 수반되는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연합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든지 희생제사를 통해서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라도 먼저 자기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만 했다.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백성들은, 특히 제사장들은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의복을 깨끗이 빨라는 명령을 먼저 받았던 것이다(출19:10,22).

베리트(언약)가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은 물론이다. 이 점은 그 백성의 대표들에게 산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신 사실(1절)과 또한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운 사실(4절)에서 암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 의식의 끝부분에서 여호와를 만나는 사실(10절)은 베리트(언약)를 통하여 세워진 그와 그 백성 사이의 관계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베리트(언약)를 맺음으로써 여호와께서 이처럼 새롭고도 심오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성례적으로 나아가고 그와 이례적으로 연합하게 되었다.

 

③이스라엘의 체제 정비: 신정통치

이스라엘의 전반적인 체제는 바로 ‘신정정치’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셨다. 다른 일반 족속들의 경우에는 신정정치가 하나의 신념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스라엘 중에서는 이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현실이었다. 여호와께서 친히 그 율법을 계시하셨으며, 대개 인간 왕이 담당하는 그 임무를 여호와께서 직접 수행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호와께서는 필요할 때마다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의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하신 것이다. 이처럼 종교적인 주권과 국가적인 왕권이 한 분 여호와에게서 연합되어 있었으므로, 이스라엘 중에서는 시민 생활과 종교 생활이 완전히 한데 뒤섞여 있었다. 이스라엘의 그 독특한 체제가 어떤 의의를 지니는가 하는 것은 그 신정정치가 완전한 하나님 나라, 즉 하늘의 완성된 상태를 예표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올바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ㄱ. 율법의 기능

신정정치를 잠정적으로 구체화시킨 것이 바로 율법이었다. 율법이 그 당시의 이스라엘을 향하여 가졌던 목적과, 또한 그 이후의 역사의 과정 속에서 그것이 실제로 이루게 되는 여러 가지 목적들을 서로 조심스럽게 구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보통 율법에 대해 생각하면, 부정적이다. 사실 바울의 논의들이 큰 역할을 했는데, 율법을 주로 인간의 특정한 방법들과 노력들의 실패를 드러내고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이르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담당하며, 사람들을 죄 아래 가두어 두며, 생명에 이르게 하지 못하며,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정죄를 이루며, 저주 아래 있게 하며, 힘없는 법조문의 직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속이 이루어진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베리트의 많은 축복들을 누리고 있는 상태에서 주어진 것이다. 특히, 먼저 율법을 잘 준수하여야만 비로소 약속의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왜하면 율법의 계명들 중에는 광야의 여정 기간 동안에는 지킬 수 없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로서는 율법을 지키는 일이 하나의 공로가 되어 그것을 근거로 생명을 기업으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유대화주의자들처럼 율법 준수를 공로에 근거하는 관계로 보면 안된다.

여호와께서는 주로 민족을 다루시며, 또한 민족을 통해서 개개인을 다루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성원들 가운데는 연대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리는 동시에 민족 전체가 신실한 상태에 있는 한 개개인들이 범한 죄들이 중화되는 효과를 이루기도 한다. 민족과 그 대표자들의 태도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스라엘이 다양한 처지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불완전하게밖에는 준수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다. 그리고 그 백성 전체가 배도하여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그 때문에 베리트(언약)를 파기하지 않으시고, 정당한 징계와 회개가 있은 후에, 이스라엘을 다시금 은혜 속으로 취하여 들이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을 지키는 일이 축복을 받는 공로의 근거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가장 타당성 있는 증거다. 구약에서는 율법이 짐과 멍에로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에게 수여하신 가장 큰 축복이요, 특권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을 기업을 받는 요건으로-물론 그것이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시하는 이러한 구약의 교의에 상응하는 내용이 바울의 가르침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구약의 신정정치 아래에도 진정한 복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의 하나님 백성들은 시행도 불가능하고 구속의 효과도 없으며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류를 누리게 해 줄 수 없는 그런 종교 체제 아래에서 살고 죽은 것이 아니었다. 복음의 요소가 율법에 선행하고, 율법에 수반되며, 율법 이후에 뒤따라오는 계시에만 포함되었던 것이 아니고, 율법 그 자체 속에 있었던 것이다. 즉 우리가 율법체계라 부르는 그것 자체 속에 복음과 은혜, 믿음이 섞여 있는 것이다.

 

④십계명,

십계명은 신정정치 전체의 구속적인 구조를 놀랍게도 잘 보여준다. 십계명은 신정정치의 시작과 끝,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그리고 신정정치가 의도하는 결과인 거룩한 상태와 또한 하나님의 본성과 뜻에 복종하는 상태를 모두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이 여러 가지 요소들에게 그 백성의 실질적인 필요와 제한점들에 알맞게 맞추어진 하나의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다.

십계명은 모든 윤리적인 관계에 있어서 전세계적으로 적용되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를 그렇게 형성시키신 것은 그 이후의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접하게 될 모든 중요한 상황들을 위하여 거울로 삼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십계명은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 순전히 하나님의 명령에만 근거하는 하나의 윤리적인 강령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계명이요, 기독교 윤리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모든 계명이 전부 “~을 하지 말지니라”라는 부정적인 형식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안식일과 관계되는 제 4계명은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 주님은 율법이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사랑을 요구한다는 것을 암시하셨는데, 사랑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가장 적극적인 힘인 것이다. 또한 살인, 도둑질, 간음, 거짓 증거 등 겉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죄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탐심 혹은 악한 정욕이라는 한 가지 근원에서 비롯되는 것임이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ㄱ. 제 1 계명

계명들을 나누어 논의할 때에, 처음 네 가지 계명들은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나머지 여섯 계명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윤리 분야에 속하는 것이다. 처음 세 계명은 한 그룹을 이루는 것으로 다신숭배, 우상숭배, 마술 등 이교도들의 세 가지 전형적이며 근본적인 죄들을 정죄하는 것이다. 제 1계명은 여호와 이외에 다른 신들의 존재에 대한 하나의 이론적인 부인이 아니며, 직설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다른 신적 존재들의 존재에 대해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예배의 대상이 오직 한 분만 있어야 한다는 명령에만 한정시켜 다루고 있다.

ㄴ. 제 2 계명

여기서는 두 가지를 금하는데, 곧 새긴 우상을 예배하는 것과 자연의 형상을 예배하는 것이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근거는 첫째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바로 하나님이 영적인 본성을 지니고 계시는데, 형체로 그를 나타내는 것은 그를 오도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하찮게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바로 ‘질투’라는 단어에 주목해서,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일부일처적 관계에 우상이 개입하게 되면 그 관계가 깨어지고, 다른 종교적 주(主)(혹은 이방신)들과도 음란하게 관계하는 하나의 일처다부적 관계로 대체되어 버린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상을 만드는 행위가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순전한 헌신을 흐트러뜨리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적인 경배의 대상을 가져다 놓는 것이 되는가? 그것은 마술의 범주에 포섭시켜서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술이란 종교의 과정을 역전시키는 이교도적인 행위로서, 사람이 스스로 신에 의하여 신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받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신을 하나의 도구의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려서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그 신을 이용하는 것이다. 마술은 미신으로 가득 차 있고, 또한 초자연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거기에는 참된 종교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마술을 통해서 조작된 우상이 제 2의 신이 되어 본래의 신 옆에 나란히 있게 되고, 심지어 그 능력 면에서 본래의 신을 능가하게까지 되는 것이다. 우상은 상징물이 아니다. 본래의 신의 경쟁자요 그 신을 대체하는 존재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감각적으로 표현해 놓는 행위는 곧바로 마술과 뒤섞이게 되고, 그리하여 곧바로 다신론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제 1계명은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명령하며, 제 2계명은 이를 준행하는 데에 위험이 될 주요 근원을 치는 것이다. ‘우상숭배’라는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에도 이 두 가지의 상호 관련성이 드러난다. 그것은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형상들을 섬기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ㄷ. 제 3 계명

맹세와 신성모독의 말을 오늘날 사용되는 의미 정도로 보아서는 안된다. 말은 이교도의 미신의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것 중 하나이며, 말로 하는 마술의 가장 강력한 형태는 이름 마술이다. 무언가 초자연적인 존재의 이름을 발설하면 이것이 그 이름 부르는 사람의 요구에 억지로라도 응하게 되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계명은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두고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즉, 헛것을 위하여 진짜가 아닌 것, 간교한 것, 실망스러운 것, 죄악된 것 등을 위해서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ㄹ. 제 4계명

매주 일곱째 날을 거룩히 기리는 일에 관한 것이다. 출애굽기에서는 이 의무의 근거를 이스라엘에게 행해진 특별한 역사가 아니라, 세상의 창조 시에 행해진 일에서 찾는다. 안식일의 배경이 되는 원리가 십계명 그 자체에서 제시되고 있다. 곧, 사람은 그의 인생 행로에서 반드시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식’이란 말이 단순히 노동을 중지하거나 피로를 회복시킨다는 의미로 축소될 수 없다. ‘안식’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사실상 모든 셈족들의 사고에서, 소극적인 의미보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평화’라는 단어와 유사하다 할 것이다. ‘안식’이란 수행된 어떤 일의 완성을 의미하며, 또한 거기에 따르는 기쁨과 만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안식일의 원형인 하나님의 안식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인류는 이것을 본받아야 한다. 인류 역시 이루어야 할 위대한 사명이 있는 것이요, 그 사명이 끝나면 하나님의 안식을 닮은 기쁨과 만족의 안식이 그들에게도 주어질 것이다. 또한 안식일은 무엇보다 인류의 삶의 근간이 되는 종말론적인 원리의 표현이기도 하다. 매주 엿새 동안의 노동과 그 다음에 하루의 안식이 이어지는 패턴이 규칙적으로 지속되는 것을 통해서 교훈을 주며,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인생이 목적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 너머에 하나의 목표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안식일의 가장 주된 의의는 삶과 역사의 영원한 문제들을 지시해 주는데 있는 것이요, 따라서 안식일이 신앙을 증진시키는 수단이 아니며 아무리 신앙적 자세가 충실하다 할지라도 안식일 준수를 면제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새 언약 아래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거꾸로 돌아보는 처지에 있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이 종말에 있을 그 최종적인 안식을 바라보는 하나의 표로서 여전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원칙적으로 획득해 놓으신 그 안식을 먼저 경축하는 것이다. 안식일에는 사람과 짐승이 안식하며, 안식년에는 땅 자체가 안식하며, 희년에는 죄로 인하여 혼란스러워졌고 상실된 모든 것이 회복됨으로써 안식의 개념의 적극적인 의미가 충만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로 말미암아 (구약적인 안식일 준수에서는) 해방되었으나, 창조시에 제정된 안식일로부터는 해방된 것이 아니다.

 

⑤의식법

의식법은 모세의 율법의 필수적인 부분을 이룬다. 이 법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모세의 시대에 새롭게 소개된 것은 아니며 그 이전 시대의 여러 관습들이 거기에 병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ㄱ. 성막(미쉬칸, 오헬)

성막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신다는 탁월한 종교적 관념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성막은 구약적인 종교적 상태와 관련해서는 그러한 관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요, 신약적 구원의 마지막 실현과 관련해서는 모형적으로 그것을 표현한 것이다. 성막은 이를테면 신정정치가 농축되어 있는 것인데, 성막의 주된 목적은 여호와의 내주하심을 구체화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은 여러 본문들에서 확인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장막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거주 방식을 그들과 함께 나누시는 것만큼 그가 그들과 운명을 함께 하신다는 관념을 더 놀랍게 표현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백성들이 자원하여 헌물로 드린 재료들로 그 장막을 세웠다는 사실은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를 사모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장막의 또 다른 이름은 “오헬 모에드”(회막, 만남의 장막)이다. 즉 백성들끼리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과 만나시는 것을 지칭한다.

성막에 한 가지 이름이 더 있다. 곧, ‘성소’, ‘거룩한 곳’을 의미하는 미크다쉬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란 그를 위상과 존귀에 있어서 확연히 구별되는 분으로 나타내어 모든 피조물과 분리시켜 주는 그의 특정한 신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성막에 임재하신다는 관념이 적용되는 예가 한 가지 더 있는데, 이는 성막이 바로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장소라는 것이다. 성막은 바로 백성들이 왕이신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는 그의 궁전이라는 것이다. 향단과 진설병을 놓는 상과 등잔 등, 거기에 위치한 세 가지 기구들이 이를 상징하는 것이다.

ㄴ. 그리스도가 성막의 원형이심, 성막은 교회의 모형이기도 함

육신이 되신 말씀이야말로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성막에로 오사 사람들에게 그의 은혜와 영광을 계시하신 바로 그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해당되는 것은 그와 비슷하게 교회에서도 해당된다. 성막은 교회의 모형이기도 하다. 교회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그렇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 부르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 부르는 데에서는 이것이 개개인에게 적용되고 있다. 신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과 교회 사이의 교제를 지칭하는 하나의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언제나 구약의 여호와의 거하심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ㄷ. 율법의 희생제사 체계

희생 제사 자체는 물론 모세의 율법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다. 가인과 아벨도 제물을 드렸고, 노아도 홍수 이후에 희생 제사를 드렸다. 이 희생제사가 추구하는 두 가지 주요 목적들은 ‘속죄’와 ‘성별’(거룩히 구별하여 드림)이다. 속할 죄가 없으면 속죄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희생제사에 있는 속죄의 요소는 그 기원이 죄에 있다. 그러나 성별의 요소는 이와 약간 다르다. 성별이란 근본적으로 죄 때문에 필요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교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요, 종교의 본질 그 자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죄없이 종교의 시행에 성별이 근원적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희생 제사의 형태를 띤 성별이, 성별의 관념 그 자체를 실천한 일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추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성별을 외형적인 형식으로 드러내게 된 것이 죄의 결과로 생긴 일이라고 보는 것이 바를 것이다. 희생제사를 속죄의 의미로 시행하는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하나님의 제정하심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성별의 관념은 사람 속에 본래적으로 있는 것이다. 사람이 죄가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분리시켜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직접 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율법은 속죄만을 위하여 별도의 희생 제사를 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별의 목적을 위해서는 소제, 즉 피없는 제사를 별도로 지정해 두고 있다.

‘예물’의 성격이야말로 희생 제사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헌물’과 ‘거룩한 예물’이 통칭적인 용어들이라는 점이다. 무엇이든 어떤 식으로든 여호와를 섬기도록 드려지는 것이면 모두가 헌물 또는 거룩한 예물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를 희생 제물로 부를 수는 없다. 희생제물은 모두가 거룩한 예물이다. 그러나 모든 거룩한 예물이 다 희생 제물은 아닌 것이다. 희생제물을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지어 주는 것은, 바로 그 제물의 일부나 혹은 전체가 제단 위에 올려진다는 사실에 있다. 즉, 제단에 올려진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의미가 깊은 것으로, 여호와께서 그 제물을 직접 받으셨다는 것을 뜻한다. 여호와께서 제단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율법의 정신은 특히 희생제사 체계에 있어서는, 바로 하나님을 중심한 종교의 정신인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활동은 섬김이다. 구약적인 심오한 이해로 말하면 하나의 희생 제물인 것이다. 예배는 제사 행위에서 사람에게로부터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절반의 부분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사람에게로 오는 나머지 절반은 기도가 아니라, 하나의 성례적인 역사(役事)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요, 따라서 그 일에 대해서는 사람이 순전히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기도에 대한 신적인 응답이라 할 것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들은 정결한 것이어야 했는데, 그 중에서도 소, 양, 염소, 비둘기가 제물로 허용되었고, 식물들 중에서는 곡물, 포도주, 기름을 드릴 수 있었다. 희생제물은 그것을 드리는 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또한 그의 생명의 소산 중에서 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희생제물이란 하나님께 생명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ㄹ. 희생 제사 의식의 단계들

제물로 허용되는 범위에 속한 특정한 짐승들의 선택은 온전한 것, 흠이 전혀 없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상징적 대리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제물을 드리는 불완전한 사람이 온전한 짐승으로 대치되어, 다른 방도로는 불가능한 일이 그 짐승의 온전함을 통해서 수행되기 때문이다. 짐승을 성소로 가져오면, 제사 의식의 그 다음 단계가 이어지는데, 이는 제물을 드리는 자가 그 제물에 안수(按手)하는 것이었다. 안수하는 행위가 언제나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무언가를 전이시키는 것을 상징했는데, 희생제사에 대한 대리적 해석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는 제물로 드려지는 짐승이 그저 그것을 드리는 자의 복사판 정도로 간주되었던 것(상징적인 이론)이 아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짐승은 제물 드리는 자와는 다른 제 2의 존재였던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 전이된 것은 다름아닌 죄였다. 제사 의식 체계 전체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속죄일에 행해지는 의식에서, 아론은 두 번째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백성들의 모든 죄악들을 고백하였다. 이 두 번째 염소는 일상적인 방식으로 죽이게 되어 있는 희생 제물이 아니었고, 죄를 상징적으로 제거하는 목적을 위하여 광야로 내어보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염소는 다른 염소와 함께 실제로 하나의 희생제물을 이루는 것이었다. 한 염소는 죽임을 당하고, 또 한 염소는 먼 곳으로 보내지는 것이, 속죄가 행해진 이후 죄가 제거된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는 형식으로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수함으로써 죄를 전이시킨 후에 그 짐승을 죽이는 일은 죄의 형벌이 죽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피를 언급하는 것은 대리적인 의미에서 죽음의 속죄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욱 분명하게 확증하는 것이다. 제사의식의 개념에서는 피와 생명이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생명과 혼도 동일한 것이다. 레위기 17:11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혼(개정 개역에서는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다른 사람을 대신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의 개체여야만 하며,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하여 형벌을 당하는 것은 반드시 느낌이 있어야 하고 고통을 당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둘을 함께 취하면, 피가 희생 제사에서 그렇게 풍성한 상징의 역할을 하는 것은, 첫째로 그것이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대리되는 그 사람 개인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요, 셋째로 고통이 개입되는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레위기 17:11에는 또한 율법에서 발견되는 대리성의 원리에 대한 가장 명확한 진술이 들어 있다. 그 진술은 사실상, 혼이 혼을 덮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과도 같다. 희생제물로 드려지는 짐승이 죽음으로써 제물 드리는 자에게 합당한 죽음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형벌을 형벌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능동적인 순종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의 죄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대신하셨다고 보며, 그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속죄라 부르는 그것, 즉 가려짐에 대한 개념이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카파르의 피엘형 부정사인 카페르다. “가려짐”에는 지워버리는 것과 보호하는 것 등의 두 종류가 있을 수 있다. 곧, 제물 드리는 자가 하나님과 자기 자신 사이에 피를 드리움으로써 죄에 대한 신적인 진노의 반응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지워버리는 것으로 보는 해석은, 죄들 위에 피가 발라짐으로써 그 죄들의 얼룩과 부정함이 하나님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성서시대에는 이 과정을, 지워버리는 과정으로 이해하였다는 쪽을 지지하는 것 같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속죄하신다’고 말씀하는 경우에, 비정상적인 모든 현상이 사람의 그릇된 성향에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부드럽게 하시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추리가 얼마든지 쉽게 나올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속죄의 과정 전체가 주관적인 일이 되어 버리고 만다. “속죄”라는 용어에서부터 거꾸로 “가려짐”이라는 용어에로 나아가기만 하면 그런 오해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가려짐’이 필요하나, 하나님께는 ‘가려짐’이 전혀 필요치 않다. 하나님은 ‘가려짐’을 행하는 주체시오, 사람은 그 가리는 행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있는 죄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거스르며, 따라서 그의 거룩하심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가려짐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희생 제사 의식에서 ‘가려짐’ 다음의 단계는 제단 위에서 짐승의 특정한 부위를 태우는 것이다. 이 행위의 상징적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불을 태우는 것을 묘사하는 동사는 어디서나 ‘힉티르’다. 그런데 이 동사는 불에 완전히 태워버리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불에 태워서 순화시키는 과정-어떤 사물을 좀 더 정제된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정의가 죄의 형벌을 요구하는 것으로 가르치지만, 죄의 형벌이 하나님께 기쁨을 준다는 식으로 말씀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여호와께 기쁨을 드리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생명을 순종으로 성별하여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에서 태우는 행위를 이런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속죄는 사람 자신이 행할 수 없는 것이고, 반면에 성별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의 삶 속에서 얼마든지 주관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만, 죄인들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자신을 성별하여 능동적으로 순종을 드린 사실이 있는 것이다.

희생 제사 의식의 마지막 단계는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인데, 이는 화목제에만 있는 독특한 절차였다. 화목제(평화의 제사)는 여호와의 종교에서 누리는 적극적인 은혜와 복락의 상태를 상징하며, 이러한 상태는 언제나 희생 제사를 통하여 죄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보다 훨씬 더한 것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ㅁ. 다양한 제사들

*속죄제: 속죄의 관념이 전면에 드러나지만, 먼저 이것이 강조된 다음 단 위에서 태움으로써 성별의 관념도 주목을 받게 된다. 속죄제에서 드려지는 짐승은 변함없이 하나였으나, 그 종류와 성별은 제사를 드리는 개인과 회중 가운데서의 그의 지위에 따라 달라졌다.

*속죄제와 속건제: 둘 사이의 구별은 명확히 규정하기가 어렵다. 속건제에는 두 가지 특질이 있는데, 그 하나는 오로지 이 제사에만 평가가 매겨진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오로지 이 제사에만 돈이 덧붙여진다는 점이다. 즉, 속건제가 죄로 인하여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취하여 차지하고 있는 적극적인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점에서 속죄제를 보충하는 것이라는 이론이 가능해진다. 모든 죄는 하나님께 드려서는 안될 것을-과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께 마땅히 드렸어야 할 것을-즉, 순종-드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속죄제가 전자의 문제를 올바로 정리해 준다면, 그 다음 속건제가 후자의 문제를 올바로 정리해 준다고 할 것이다.

*번제: 희생 제물 전체를 단 위에서 태우는 데에서 성별하여 드리는 것에 대한 강한 강조가 드러난다. 이점은 번제가 영구히 계속해서 드려졌다는 사실과도 일치한다.

*화목제: 화목제에 속하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제사 종류가 있는데, 찬양제 혹은 감사제, 서원제, 그리고 자원제가 그것이다. 첫 번째 종류인 찬양제 혹은 감사제는 그 드리는 목적에 따른 분류요, 두 번째와 세 번째 종류는 드리는 자의 주관적인 자세에 따라서 분류한 것이다. 서원제는 의무적으로 드리는 것이요, 자원제는 자의적으로 드리는 것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소제: 짐승을 드리는 희생 제사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께 드리는 음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날 것의 상태로 드리지 않고, 이삭을 볶거나, 고운 가루로나, 오븐이나 냄비에 넣어 떡이나 전병의 형태로 만들어서 드렸다. 이렇게 음식으로 만들어 드리는 소제에는 반드시 기름이 더해졌다.

*전제: 소제를 보충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전제를 소제에서 짐승을 드리는 제사의 복사판이라고 본다. 요리를 거친 음식은 고기를 의미하며, 기름은 짐승의 기름을 의미하며, 포도주는 피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ㅂ. 부정함과 정결케 함

정결함을 깨끗함(혹은 청결함)과 똑같은 것으로 보아서도, 부정함을 더러움(혹은 불결함)과 똑같은 것으로 보아서도 안된다. 여기의 구별은 위생적인 의미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그 개념을 제사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즉 성소에서 여호와께 나아가는 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결하다”라는 것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막에서의 예배의 자격 요건을 갖추었다는 것을 뜻하며, “부정하다”는 것은 그 반대를 뜻하는 것이다. ‘정결함’은 ‘거룩함’의 선결 요건이다. 부정한 것이 그 상태로 남아 있으면 결코 거룩할 수가 없다. 여호와를 섬기는 일과 관련되기 때문에, 정결함과 그 반대의 상태를 구별하는 일은 이스라엘 사람 각자의 삶에 포괄적인 의의를 갖는다. 부정함을 초래하는 대상과 과정은 주로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 규정되어 있는데, 특정한 성(性) 관계들, 죽음, 나병, 특정한 종류의 짐승을 먹는 일, 혹은 정결한 짐승이 살육 당했거나 스스로 죽었을 경우 그 사체에 접촉하는 일 등이 거기에 속한다.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에 대한 구분의 근거로 제시되는 첫 번째 이론은 토템 신앙이다. 토템 신앙이란 야만적인 부족들이나 종족들이 자기들의 기원을 어떤 동물이나 식물, 혹은 무생물에서 찾고 그 종류들 전부를 종교적으로 숭배하며, 그것들을 좇아 자기들의 이름을 짓고, 또한 그것들을 죽이거나 먹는 일을 삼가는 미신의 한 형태다. 율법에서 먹기를 금하는 그 짐승들에 대해서는, 이 짐승들이 본래 히브리인들 중의 다양한 토템 집단들에게 신성한 존재들로 여겨졌던 것들이라고 본다. 여러 부족들이 연합하고 여호와 숭배를 채택하였을 때에도 그 짐승들을 먹는 행위는 계속 금지되었으나, 그 금지의 동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곧 그 우상 숭배의 성격 때문에 먹지 못하도록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부정함과 거룩함이 결국 동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 부족에서 거룩한 것으로 숭배하는 것이 다른 부족에서는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바로 전자의 부족에서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숭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을 구약에다 적용시키는 문제에 대해 많은 반론들이 제기될 수 있다. 부정한 짐승들의 목록들이 너무나도 길어서 이 모든 짐승들이 이스라엘의 혈족 내의 토템들이었을 수가 없고,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짐승들로부터 취한 형태의 이름이 내려오는 경우도 그 비율이 극히 낮다. 또한 히브리인들에게는 식물의 경우는 부정한 것이 없다. 그러나 토템은 동물은 물론 식물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부정한 것을 가리는 현상에 대한 두 번째 이론은 조상 숭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견해는 죽은 자를 부정하게 보는 사고의 밑바탕에 조상 숭배의 사상이 있다고 믿는다. 한 부족의 신앙에서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부족에서는 타부가 된다는 원리에 근거하여, 여호와 숭배에서 죽은 자를 타부로 여기는 것이 죽은 자를- 특히 조상들을- 숭배한 고대의 행위에 그 원인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도 무수한 반론이 제기된다.

부정한 것을 가리는 현상에 대한 세 번째 이론은 물활론이다. 물환론은 고대 사람들은 특정한 사물들을 사악한 초자연적인 영향력을 지닌 것으로 보았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 이론의 한 가지 형태는 그 사물들이 인격적이고 귀신적인 종류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형태는, 비인격적인 “혼물” 자체에 위험이 내재해 있어서 그것이 특정한 방식으로 번지기도 하고 사람에게 붙기도 하여 결국 인격적인 귀신의 영향력만큼 위험하다고 보는 것이다.

여러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해명하고자 제시된 이 세 가지 이론들 외에도 단순한 사실들을 해명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다. 특정한 짐승들을 부정한 것으로 보는 것을 토템 신앙과 전혀 관계 없이 설명하기도 한다. 곧, 그 짐승들이 어떤 우상 숭배의 의식에서 신성한 짐승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금기로 간주한 데서 연유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나병이 여호와나 혹은 어떤 악한 영으로부터 내려진 특별한 징계로 간주되었고 그 질병의 이름조차 그 사실을 증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고대인들이 이 질병을 하나님이나 귀신의 내리침에 의해서 생긴 것으로 여겼다면, 정신병과 간질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여겼어야 옳을 것이다. 나병이 부정한 것으로 여겨진 이유는 어쩌면, 그것이 말하자면 살아있는 죽음의 상태와도 같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제 2부 선지자 시대의 계시

제 1장 구약 계시에서 선지자들의 위치

모세의 활동에 이어서 선지자들의 계시 활동은 인간 통치자의 통치 아래 신정 왕국을 새로이 조직하는 일로 집중되어진다. 그럼에도 백성들의 왕에 대한 요구가 늦어진 이유는 여호와의 마음에 합당한 왕에 대한 이상(理想)을 조심스럽게 가르치신 다음에 비로소 실질적인 영구한 왕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 왕국은 이스라엘의 축복의 구체화요 동시에 구속의 도구요, 또한 메시야 대망이 그것과 결부되어 있기도 하다. 왕국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통해서 성경적 종교의 완전한 정점 그 자체에까지 닿아 있는 것이다.

 

왕국 확립을 향한 움직임

선지자들은 신정정치의 수호자들이었고, 그 왕국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여호와의 왕국을 참되게 대변하도록 왕국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말씀: 선지자들의 예언 활동의 수단

선지자들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영적인 관계로 만드는 데에 많은 역할을 했는데, 그 활동의 수단으로 예언(prediction)이라는 순전하고도 이상적인 빛 속에서 원리들이 제시되었다.

 

연속성의 요인

선지자들의 예언은 과거의 죄를 선포하여 회개하게 하고, 미래의 일을 내다보는 관점에서 계시 역사에서 연속성을 띠게 하는 요인이 된다.

 

선지자들의 예언 활동의 두 시기

전반기는 사무엘 시대의 큰 선지자적 부흥기로부터 기원전 8세기 중반에 나타난 최초의 저술 선지자들의 시기까지를 포괄하며, 후반기는 그 시기로부터 구약의 예언이 종결되기까지의 기간을 포괄한다. 이 두시기의 차이는, 전반기에는 선지자들의 설교에 대한 응답을 통하여 회개와 회심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아직도 전제되고 있고, 후반기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전반기의 선지지들은 스스로를 신정 왕국의 재조직자들로 혹은 재건자들로 의식하고서 외쳤다. 하지만 후반기의 선지자들은 현재를 그저 보수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갱신시키는 미래에 있을 새 창조와의 관련이 더욱 증대되고, 그리하여 미래의 세대들이 최고로 관심을 두게 될 그런 일들을 다루었다.

 

제 2장 선지자의 개념: 그 명칭과 어원

히브리어 용어 “나비”

“나비”라는 말은 출 4:16; 7:1; 렘 1:5,6 등에서 신적인 존재를 위한 정규적인 대변자로 지명받은 자로서 그의 말에 그 신적인 존재의 권위가 실린 것으로 이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선지자의 말은 신적인 전능함도 어느 정도 전달하는 독특한 대언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전달되어 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비에는 신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에 속하는 능동적인 요인을 포함하고 있다.

 

헬라어 용어 “프로페테스”

히브리어 나비에 상응하는 헬라어의 단어인 프로페테스는 영어의 "prophet"으로 파생되었다. 우리는 대개 이 단어를 “앞 일을 말하는 자”(foreteller)라는 개념과 연관짓는다.

하지만 프로페테스에서 “프로”는 공간적인 의미로, “밖으로 말하는 자”(forth-teller)라는 뜻이다. 구약의 나비의 개념 가운데 앞날에 대한 예언이 많은 부분이 차지하기 때문에 성경적인 헬라어의 용범에서는 프로페테스에 그 점을 자연스럽게 편입시켜 공간적인 의미보다는 시간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로에”와 “호제”

로에와 그의 동의어 호제는 구별없이 “seer"(선견자로 해석)로 번역된다. 이것은 선지자의 시각 기능에 가해진 비범한 영향력을 지칭하는 것인데, 선지자는 이 기능을 통해서 사물들을 듣는 대신 눈으로 보게 되며, 그렇게 시각적인 기능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메시지가 그의 의식 속에 전해지는 것이다.

 

제 3장 선지자들의 역사: 비평적 이론들

선지자들의 역사

선지자들의 역사의 출발점은 모세 시대로 잡을 수 있다. 그들은 직분의 고귀함 때문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고귀함으로 인해 높은 위치에서 특권을 누렸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존귀하게 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선지자로 삼으시려는 의도가 있었다.

사무엘 시대 이후 선지자들의 세계의 변화가 생겼는데, 그것은 선지자의 직분이 공적인 신정적(神政的) 뒷받침을 더 많이 얻게 되었다는 것과 선지자들의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왕국에 대한 선지자들의 태도는 처음에는 우호적이었고, 격려하며 보호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왕국 내에서 배교가 머리를 들자, 그 관계가 바뀌어 왕들과 대적하는 입장이 되었다. 따라서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입장 때문에 애국심을 상실했고, 사실상 반역자들이 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리하여 참 선지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사이의 대립 관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선지자들의 수가 늘어나다 보니 생계 유지를 위해서 예언하는 등 선지자들의 부패가 나타났다.

 

이스라엘의 “나비주의”의 기원

비평학자들은 선지자 사상이 이스라엘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 족속들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가설을 주장하며 4가지의 논지를 제기한다.

1) 히브리어에는 나비의 어원이 없다. 그러므로 그 명칭은 물론 그 명칭이 뜻하는 실체도 외래의 것이었음이 들림없다.

2) 그 운동의 독특한 현상들은 가나안 족속들의 자연 숭배의 거칠고 난잡한 성격을 상기시킨다.

3) 그 운동의 등장 시기가 가나안 족속들과의 접촉과 갈등이 가장 긴밀했던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4) 그 이후의 선지자 운동의 역사와 그 점진적인 정화 과정은 그것이 외래의 것이라는 이론에 근거할 때에 가장 쉽게 설명된다.

이러한 가설에 대해 저자는 반론을 통해 선지자 사상이 이스라엘 고유의 것이였음을 증명한다.

1)의 주장에 대해서는 히브리어에 어원이 없는 단어는 나비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성격을 지닌 다른 직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제사장을 뜻하는 코헨도 히브리어에 명확한 어원이 없다. 따라서 어원이 없다는 것은 나비의 기능이 상당히 고대의 것임을 증명해 주는 것 뿐이다.

 

2)의 주장에 대해서는 선지자의 현상 가운데 열광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갈멜산의 바알 선지자들의 행동을 닮았거나 거칠고 난잡한 황홀경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다. 혹 거짓 선지자에 대한 표현으로 미친 짓과 어리석음을 묘사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3)의 논지에 대해, 선지자 운동이 등장하고 확대되었다고 주장하는 시기에는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들이 서로 강한 적대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 파생설을 지지하기 보다는 오히려 반대하는 면이 훨씬 강한 논지이다.

 

4)의 논지는 가장 빈약한 것으로 외부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주장보다 반대로 이스라엘 자체 내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점진적인 발전과 애착을 보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후기의 선지자들이 윤리적 유일신 사상을 창안하였는가?

비평학자들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윤리적 유일신 사상을 발견하고 확립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여호와에 대한 윤리적 사고가 유일신론을 생기게 했다는 것이다.

즉,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의 여호와는 그저 이스라엘의 민족의 신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존망이 위협 받는 상황 속에서 민족 신으로는 그런 위기의 상황을 해쳐나갈 수가 없게 되자 여호와의 성격에 우월한 요소인 윤리적인 신으로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됨에 따라서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어도 여호와는 망하지 않고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지극히 윤리적인 여호와의 뜻이 이스라엘의 패망을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비평학자들은 예레미야의 시대 이후부터 일신숭배사상(많은 신 중에서 하나를 섬기는 사상)에서 점차 유일신론(신은 하나 뿐이라는 사상)의 사고가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 비평가에 대한 비판은 6장에서

 

제 4장 선지자들이 계시를 전달받은 양식

잘못된 이론 1- 쿠에넨의 견해에 대한 검토

쿠에넨은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았고 또한 성취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윤리적 종교적 신념의 진지함과 확고함에서 나온 자기예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래 어느 시점까지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따져야 하는 등 근거가 빈약하다.

 

잘못된 이론 2- “핵심 계시”이론

핵심계시 이론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진리의 본질적인 핵심만을 전해 주셨고, 이 핵심을 전개하여 전하는 일은 선지자들의 주관적인 사고에 맡겨두셨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선지자들이 그들의 메시지 전체가 신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고, 또한 선지자들이 핵심만 계시받았다면 최종적인 메시지를 전하기까지 시간적인 간격이 있어야 하지만 계시받은 즉시 백성에게 전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

 

잘못된 이론3 -“점술”이론

점술이론은 선지자들의 글에 나타나는 미래에 대한 예언의 요소를 해명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으로, 선지자의 계시를 일상적인 인간의 지식의 범위를 훨씬 초월하는 예견이나 통찰로 보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계시에 대한 인간의 합리적인 설명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선지자들의 각각의 독특성과 인간적인 자연스러움을 무시하게 된다. 어느 정도의 선지자의 계시에 마술적이고 신비적인 요소가 있으나, “점술”로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입장이다.

 

선지자들의 입장1- 청각적인 방식으로 임하는 계시

하나님께서 예언으로 전해 주시는 말씀을 뜻하는 것으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 양식은 아마르 야웨(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디베르 야웨(여호와께서 이르셨다), 네움 야웨(신탁으로 전해진 것) 등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은 벙어리인 이방신들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객관성 있게 임하였고 동시에 외부로부터 임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선지자들은 육체적인 행위가 아니라 영적인 행위로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은 영혼의 내적 조직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선지자의 영혼에 내적인 말씀을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선지자들의 입장2- 시각적인 방식으로 임하는 계시

하나님의 계시는 청각과 더불어 시각적인 방식으로 임했다. 선지자들이 이상을 보는 경우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엘리사의 기도에 거의 사환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로 하여금 초자연적인 군대가 도단성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게 하셨다.

외부로부터 초자연적인 종류의 실체가 임했다면 외부적인 시각 기관이 그것을 감지했을 것이고, 내적으로 임했다면 내적인 눈과 영적인 눈이 그것을 지각했을 것이다.

 

선지자들의 입장3- 황홀결을 통한 계시

선지자의 인격 전체가 하늘의 영역속으로 들어가는 황홀경을 통한 계시도 생각할 수 있다. 이사야 6장의 이야기(성전에서 본 환상)와 바울을 이야기(세째 하늘)가 여기에 해당한다.

 

신체적인 효과들

시각적인 방식을 통해 계시는 받는 경우에는 청각적인 방식으로 받는 방식과 달리 신체적인 효과를 동반한다. 육체의 눈을 감게 되고,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또한 꿈을 꾸는 것과 달리 훨씬 육체를 기진맥진하게 했던 것 같다.

 

정신의 내적 상태

이상(異象)을 보는 선지자의 내적인 상태를 표현해 주는 말로 엑스타시스(공포, 놀람)와 아멘티아(정신 나간 상태)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선지자들은 “이상”의 상태에서 나오면서 그들이 보고 들은 것들을 명확하게 기억하였고, 자기 생각과 반성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예언은 사람의 정신을 몰아내시는 식의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하나님과 교류하게 한 것이다.

 

극단적인 비평적 견해들에 대한 답변

선지자들의 “이상” 현상에 대한 2가지 비평적 견해와 그 답변

1. 이스라엘 중에서 일어난 것과 이교도들의 예언에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일들을 연관지어 양쪽의 현상들을 종교적인 병리현상으로 처리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히스테리, 간질, 강직증 등의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를 연구하여 생리적, 심리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것으로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이해할 수 없다.

 

2. “이상“현상을 실제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문학적인 기법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표현양식을 왜 희귀하게 사용했으며, 더 자연스럽고 충격적인 상징물들을 만들지 않았을까? 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

 

제 5장 예언의 전달 양식

하나님의 예언은 청각적으로 받은 것이든 시각적으로 받은 것이든지 간에 말의 형식으로 전달되었다. 선지자들은 더 이상의 설명을 붙이지 않고 “내가 보니...”라고 하며 자신이 본 내적인 광경을 묘사하였다.

또한 이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초자연적으로 임재하심과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보이셨다.

 

제 6장 선지자들의 계시의 내용

1. 여호와의 본성과 속성

1) 유일신론

유일신론의 모습은 비평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초기 선지자들에서부터 후기 선지자들에게로 발전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선지자들은 이방 신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나 그 신들의 신성(divinity)를 부인한다. 손으로 만든 형상을 섬기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임을 언급해 준다.

 

2) 여호와의 본성과 속성

(1) 전능하심- 아모스는 심판의 처절함을 극대화하고자 여호와의 무제한적인 권능을 강하게 강조한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행하시는 일의 갑작스러움과 즉각성을 강조한다.

전능하심의 속성을 표현하는 단어로는 “만군의 여호와”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서 만군에 대한 해석으로 인간전사들로 이루어진 군대, 초인간적인 영들의 무리, 별들의 무리, 피조물들의 총체라는 주장이 되기 되나, “무수한 천사들의 무리”로 해석하려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있다.

(2) 전지하심- 그의 편재하심과 또한 앞 일을 예언하시는 그의 능력과 관련되어 표현된다. 그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그는 또한 일어나는 일을 다 아시는 것이다.

(3) 거룩하심-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조물주와 피조물의 질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 신적 본성에서 구별할 수 있는 다른 속성들과 함께 역사하는 하나의 속성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서술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다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4) 의로우심- 하나님은 언제나 재판관의 편에서 철저한 정의에 따라서 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법정적인 의로움에는, 모든 도덕적 행위를 살피시고 계속해서 유념하시는 심리의 의로우심과, 죄에 대해 철저히 벌하시는 자로서의 의로우심, 원통함을 대신 풀어주는 신원의 의로우심, 더 나아가 구원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의로우심이다.

 

2.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결속 관계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친밀하고도 독특한 결속관계가 존재한다. “언약”(베리트)을 맺으신 것이다. 이 언약의 출애굽 시에 하나님이 먼저 이스라엘 민족에게 찾아오시고 이에 대해 자발적인 참여로 맺게 된 것이다.

 

3. 결속 관계의 깨어짐: 이스라엘의 죄악

선지자가 정죄하는 이스라엘의 죄는 주로 집단적이며 민족적인 성격을 띤 죄이다. 먼저, 여호와께 드리는 희생제사가 형식화된 것에 대해서 책망한다. 우상 숭배와 제사장들의 부패, 삼일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또한 사회적인 죄에 대해서 정죄를 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를 차별하는 등의 사회적 병폐에 대해서 선지자들은 고발하였다.

 

4. 심판과 회복: 선지자들의 종말론

호세아- 호세아에서는 심판의 사상이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다. 심판이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형벌”임을 선포한다. 그 반면에 심판이 여호와의 아들인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부과된 채찍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호세아에서의 큰 2개의 죄는 교만과 관능적인 우상숭배이다. 이에 대한 회복은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용서의 사랑이 구원의 유일한 근원이다.

호세아의 미래의 모습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적인 새로운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새로운 연합은 절대로 깨어질 수 없는 연합이다.

 

이사야- 이사야에서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하나님 중심이다. 심판의 징후들은 모두 하나님의 신적 현현이다. 폭풍과 지진 속에 하나님의 위엄이 드러난다. 이사야에게서는 심판의 의도는 주로 정화이다. 심판은 바로 남은 자들이 정화되는 과정인 것이다. 아모스에도 등장하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문구는 고대의 선지자 이전 시대에 종말론이 존재했음을 입증해주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이사야의 심판 이후의 모습은 여호와의 영광이 최고로 나타나는 시기이다. 그 미래의 백성들이 아무런 간섭이 없이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헌신할 수 있는 상태가 될 것이다.

 

 

 

신약성경

 

제1장 신약 계시의 구조

 

신약 계시의 구조를 성경 자체 내에서 결정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이다.

 

(1) 구약의 암시들에 근거함

먼저, 신약 계시의 구조를 성경 자체 내에서 결정하는 것은 구약을 관통하는 방식이다. 구약 경륜(dispensation)은 앞으로 뻗어나가며 앞을 보는 경륜이다. 성경적 종교의 사실적인 성경 덕분에 그 경륜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향해서 제시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점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예언이다. 구약은 그 예언적 자세를 통해서 신약을 요구한다.

예레미야 31:31-34에 “새 베리트”로 구체화하여 표현하는 선지자의 말씀이 있다. 이 예언에서는 “새 베리트”라는 명칭 외에도 새로운 질서의 두 가지 가장 특징적인 점들이 묘사되고 있다. 하나는 여호와께서 율법을 마음에 기록하심으로써 그 율법에 대한 순종을 창조하시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죄에 대한 완전한 용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2)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함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 시에 하신 말씀들 중에서 자신의 피를 가리켜 “디다테케의 피”라 부르며, 잔을 가리켜 “내 피로 세우는 새 디아테케”라 부르신다. 이전 예레미야 이후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주님은 여기서 그의 피를 제자들이 하나님과 갖는 새로운 종교적 관계의 기반이요 개시(開始)로 제시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사물들의그러한 새로운 질서는 다시 변화나 폐기될 것이기는 커녕 오히려 최종적인 의의를 지니는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시사되고 있다. 주님은 오로지 “나라”에 대해서만 말씀하셨다.

 

(3) 바울과 기타 사도들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바울은 신약에서 구속의 역사와 계시의 역사가 근본적으로 나뉜다는 것을 제시하는 위대한 해설자이다. 그렇기에 율법과 믿음이 각기 지배하는 두 시대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이 전후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까지도 표현한다.

 

새로운 경륜은 최종적임

히브리서 1:1-2에서도 새로운 경륜이 최종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새 경륜을 도입시키는 계시도 마찬가지로 최종적이며 완성된 계시이다.

그리스도를 취한다면, 반드시 그의 주위에 조직되어 있는 계시의 움직임의 중심으로 계시의 과정 전체를 결말짓는 분으로 취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활동을 통해서 자신이 해명되어야 할 위대한 사실이지 자신이 진리의 완전한 해명자로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절대적인 권위나 베푸시는 지식의 적합성에 대해 항상 해석자들에게 자신을 밝히 드러내 보이셨다(눅24:44, 요16:12-15).

 

제2장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계시

 

그리스도의 탄생의 여러 가지 면들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자료들은 요셉에게 전한 천사의 수태고지, 사가랴에게 전한 가브리엘의 수태고지, 마리아에게 전한 가브리엘의 수대고지, 엘리사벳의 예언 , 마리아의 찬가, 사가랴의 예언,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행한 선언과 천사들의 찬양, 안나의 예언이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특질이 있다.

(1) 사용하는 표현 방식이 구약에 면밀하게 맞추어져 있는 점이다. 두 계시 사이의 연속성을 갖는다. 새로운 젊은 경륜이 선조들의 말씀(speech)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그 계시들은 받는 이들로 하여금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 예로 마리아 찬가는 시편과 한나의 기도를 연상케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2) 새로운 일들을 구약의 구속 역사의 유기적 질서와 일치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감지된다. 다윗, 아브라함, 창조 등을 언급함으로써 구약의 주도적인 시기들을 포착하고 있다. 연대기적인 연결성은 신적인 역사가 하나이며 신적인 목적이 하나임을 말해 준다.

(3) 새로운 과정이 시종일관 구속적인 성격을 띠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객관적인 선언과 또한 그 선언을 받는 자들의 주관적인 인식에다 죄와 무가치함의 상태를 배경으로 제시하고 또한 그런 상태에 합당한 은혜와 구원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대하시는 그이 독특한 처사를 그의 주권적인 긍휼의 행위로 인식한다.

(4) 정치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구약의 신정통치 하에서는 국가적인 관심사들과 종교적인 관심사들이 서로 섞여 있어 정치적인 요소가 혹시 있더라도 그 자체는 전혀 거슬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5) 유대교의 율법주의(legalism)는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율법주의는 메시야 시대의 복락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나타났다. 유대인들의 자기 의(self-righteousness)는 그보다 더 깊은 이기적인 행복론에 근거한다. 율법주의의 주요 관심사는 종말 이전의 시기에 관한 것이다. 유대교가 생각하는 전후 관계는 이스라엘이 먼저 율법을 지켜야 하고, 그 다음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메시야가 그와 관련된 모든 일들과 더불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전후 관계는 먼저 메시야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서 나타나실 것이요, 그 다음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적절한 순종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얻는 결과는 우선, 율법을 그 과정의 시초에서부터 마지막으로 자리를 옮겨 놓음으로써 유대교의 자기 의가 제거되며, 또한 율법이 마지막에 영구한 위치를 점한다는 점을 입증함으로써 구원의 윤리적인 의미가 강조되는 것이다.

(6) 구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또한 두 계열의 고대 종말론적 예언들이 이 탄생 시의 계시들 속에서도 연장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 두가지 움직임들 중 하나는 여호와께서 친히 지극히 고귀한 신적 현현 속에서 임하시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메시야의 강림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이 하나로 모아진다는 사실은, 신약 계시가 완전히 발전되면서 신적인 메시야 안에서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강림하셨다는 그 가르침을 통해서 비로소 처음 완전히 드러난 것이다.

(7) 복음의 보편성에 대한 몇 가지 암시들이 나타난다.

유대교에의 개종은 오로지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됨으로써만 이스라엘의 특권들을 누리게 되는 것이었으나, 여기서는 유대인의 불신앙을 통해서 이방인들이 들어오게 되리라는 사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8) 인간 아버지가 없이 이루어지는 메시야의 초자연적인 탄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일에 대해서 우리는 성경이 일어났다고 보도하는 대로 발생한 하나나의 사건이었음을 전제하고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생각이나 생각들을 가지시고 그 사건이 발생하도록 하셨는가 하는 것만을 살펴본다.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명을 제시하는 것으로 세 가지 요소가 제시된다. 첫째는 죄가 전수되는 것이 금지됨으로써 그 아이가 무죄하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둘째는 이미 한 가지 이상의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로 존재하고 계셨던 그분세저 인간의 본성을 입으시는 데에 과연 이러한 출생의 방식이 지극히 적절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관점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 전체의 초자연성을 그의 인성의 기원에까지 소급시켜서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제3장 세례 요한에 관한 계시

 

세례 요한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지칭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있다.

현대의 학자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요한과 예수님을 서로 연결되로록 정해 놓으셨다는 사상 자체를 일축해 버리는 이들이 많다.

볼든스퍼거(Baldensperger)는 그의 「제4복음서의 서언」에서 주장하기를 요한복음 1-3장에서 요한에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것은 다분히 변증적인 목적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즉, 저자의 시대의 세례 요한 분파에게 그들의 지도자의 입을 빌려서 그들이 기독교 교회 내에 위치한다는 점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요한의 가장 초기의 설교에 대한 기록에서 그리스도를 전반적으로 지칭하느 “더 큰 이”에 대한 언급을 삭제시키고서, 그것을 여호와께서 친히 고귀한 신적 현현 속에서 나타나시는 것을 주 내용으로 삼는 그리스도 없는 종말론적 체계에 근거하여 해석해 치운다.

요한을 예수님과 구별하려는 시도들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단계는 두 사람의 설교의 정신과 내용이 서로 모순이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요한의 기대는 정치적 특징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요, 무력의 사용에 의존하는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사실이면 요한은 구주 예수님의 선구자(fore-runner)라기 보다는 선적자(fore-antagonist)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세례 요한과 엘리야

평생 나실인이었던 요한은 회개의 선지자 엘리야의 재판이었다. 엘리야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에 대해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생각에 차이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문자 그대로 부활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한 요한의 진술을(요1:21) 충분히 이해할 수 가 있다. 요한은 자신이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그런 실재적인 의미의 엘리야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인정하신 그런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자신이 엘리야였음을 부인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사야와 말라기 예언들이 자기에게서 성취되고 있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요한이 예수님을 미리 예비한 것이 사실상 구약 전체가 그리스도를 미리 예비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

세례를 베푸는 두 가지 요소 중에서 “불이” 그 “오시는 이”가 베푸실 세례의 요소로 명시된다. 이는 심판의 불을 지칭하며 성령과 반대된다. 마가복음에는 “불”에 대한 언급이 없다. 오로지 성령만이 언급되고 있다. 만일 여기의 성령이 구원의 요소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결국 요한은 여기서 메시야의 강림의 두 가지 면-심판과 구원의 면-이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말씀하는 것이되며, 그는 구약의 관점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

요한의 세례는 단 한 번만 베푸는 것이었다. 요한의 세례의 선례들과 유비를 구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요한의 세례의 참된 의미는 부분적으로는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묘사들에 근거하여, 또한 부분적으로는 일반적인 정황에 근거하여 추정할 수 밖에 없다. 마가와 누가는 요한의 세례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였다고 말한다.

바이스(Wesiss)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죄 사함을 받게 하는”이라는 표현이 미래를 전망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 곧, 미래의 심판 때에 있을 죄 사함을 미리 예상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차니체 함축적인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이다. 요한이 의미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것과 비교할 때에 내가 행하는 것은 마치 물을 성령과 비교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의문은 요한의 세례가 진정한 죄 사함과 일치하는 것이라면 기독교의 세례와 이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로마교회는 구약의 경륜 전체를 순전히 모형적인 것으로 만드는 경향을 띠고 있어 요한의 세례 역시 구약의 경륜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개신교 신학은 요한의 세례가 기독교의 성례와 모든 점에서 동일하였다고 주장한다. 이 두 입장 모두 합당치 못하다. 우리로서는 요한의 세례가 구약의 모든 의식들과 더불어 참된 은혜와 연관되어 있었으나 다만 구약적인 은혜의 분량과 질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요한의 세례가 지니지 못했던 것은 특별한 기독교적인 의미의 성령이었다.

요한의 세례는 어떤 방식으로 상징성을 띠었는가? 침수는 상징의 관점에서 볼 때에 순전히 임의적일 뿐이다. 회개와 죄사함 등의 영적인 것들을 거론하고 있는 것도 깨끗이 씻음 쪽을 지향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한의 세례를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말론적 배경에 근거하여 보아야 한다. 종말론은 당시에 지배적으로 기대하고 있던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속히 임하는 심판을 특별히 전망하는 것이었고 그 심판에서 무죄 방면을 받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증하는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기독교 세례에 그대로 전수 되었다.

 

요한이 예수님께 베푼 세례

예수님께 요한이 베푼 세례를 일반 백성들에게 베푼 요한의 세례의 의미와 임의적으로 구분해서는 안된다.

마태복음 3:13-15 속에서 어떻게 예수님의 세례가 요한의 사역의 일반적인 성격과 일치하면서도 동시에 요한의 사역이 죄성과 회개와 관련되는 점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느냐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1) 요한은 예수님의 지위와 성격을 인정하고 있었다(4절)

(2) 이러한 요한의 확신은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위치에 근거하는 것이다.

(3) 예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고 강변하심으로써, 요한의 반대나 그 반대가 기초하는 근거나 모두 수용하셨다. 요한이 세례 베풀기를 허락해야 하는 것은 주관적인 필연성이 아닌 객관적인 이유들 때문이다.

(4) 이 객관적인 필연성은 현재의 상황에만 작용한다. 그것도 미래에 그 필연성이 제거될 것이라는 절반 쯤은 공개된 전망하에서 말이다.

(5) 예수님에 따르는 현재의 상황에서 작용하는 그 객관적인 필연성은 바로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는데 있다.

(6) 그러므로 만일 개인적인 자격으로는 예수님 자신에게 부과되지 않은 것이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하여 계신 사실 때문에 신적으로 그에게 의무로 부과되었다면, 이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그가 이스라엘과 동일하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덧붙여서 예수님의 세례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대리적인 관계를 맺고 계심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요한의 세례의 보편적인 범위를 고려할 때에 예께서 세례에서 그 백성들과 같이 되신데에는 그들을 대시하여 그 성례가 목표로 하는 바 죄 사함을 확보하시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령이 예수님께 강림하심

예수님의 세례에는 성령의 강림하심과 또한 예수님의 아들 되심과 메시야이심에 대한 선언이 하늘로부터 임한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는 데에서 표현되는 주님의 마음과 목적을 아버지께서 승인하신다는 하나의 보증으로서 받으셨고, 또한 그 일이 완결될 때에 하나님께서 베푸실 효과에 대한 보증으로서 받으신 것이다. 이는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예수께서 성령을 받으심과 옛 선지자들이 성령을 받은 것에 대한 차이도 있다. 선지자들의 경우는 성령의 찾아오심(visitations)을 받았을 뿐이고, 따라서 성령의 영향력이 지속적이지 못했고 돌발적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생애 전체가 모든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까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도하심을 받았던 것이다.

 

세례 후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

세례 요한이 행한 모든 진술들은 예수님에 관한 것들로서 그에 대한 세 가지 지극한 선언들에서 그 절절을 보게 된다.

(1) 요한복음 1:15, 30

이 선언은 메시야의 경력을 두 단계로 구분한다. 세례 요한 다음에 오는, 이를테면, 공적 사역에서 세례요한을 계승하는 단계와,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요한이 전면에 등장하기 전에 먼저 계셨던 단계로 구분한다. 여기서 후자의 단계는 구약 아래에서의 메시야의 활동을 지칭하는 것이다.

(2) 요한복음 1:29, 36

 

선지자가 묘사하는 “죄를 지는” 행위와 세례 요한이 묘사하는 행위가 각기 포괄하는 범위에 차이가 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죄를 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세상의 죄를 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3) 요한복음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여기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성령이 임하신 사건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표적을 관찰하고 증언하는 자신의 신실성을 진술하고 있다. “보고”와 “증언하였노라”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즉각적으로 수행하였다는 의미가 묘사된다. 이는 곧 직접 목격한 자의 증언이라는 것을 시사하며, 또한 공시적인 증언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제4장 예수님의 시험에서 나타난 계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

“예수님의 시험”을 예수님의 공적 사역과 연결된 것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하기에 성경 본문이 실재적인 사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내용의 역사성과 객관성에 대해 의심이 일어난다.

복음서의 역사를 신화론적 원리로 해석하는 이론에 의하면 예수님이 진짜 메시야라면 그에게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고, 따라서 예수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비유적 이론 또한 이에 못지않게 이 시험 이야기를 예수님의 실제의 삶과 괴리시킨다. 이론에 의하면 예수께서 이 시험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하셨는데, 사실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하나의 비유로 가르치신 것뿐이라고 한다.

이 두 견해들에 반하여 이 사건의 역사성을 견지하기 위해서 마태복음 12:29의 증언을 제시할 수 있다.

마태복음의 비유는 귀신을 내어쫓은 사건의 역사성을 보증해 주는 동시에 그 사건의 객관성도 보증해 준다.

마태복음 12장의 구절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에서 주님은 귀신들을 내어쫓은 일이 하나님의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임을 주장하고 계시다는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시험 기사에서 하나님의 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본다. 공관복음서의 진술들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가 있다. 먼저 예수님을 이끄사 시험을 받게 하신 그 영은 바로 메시야이신 주님 안에 계신 성령이셨다. 다음은 성령의 후원 하에 행해졌으므로 그와 같은 일은 그 이면에 하나님께서 친히 서 계시는 역사(役事)였다는 것이다.

 

주님의 시험과 우리 자신의 시험

주님의 시험이 갖는 중요한 의의를 올바로 가늠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적으로 우리 자신들이 당하는 시험들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과 습관에서 비롯되는 면이 적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 사건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취하며, 또한 그 사건을 그 자체로서 바로보는 면이 부족한 것이다.예수님의 시험과 우리의 시험이 갖는 차이는 예수님의 시험에는 순종을 위하여 강인한 의지가 발휘되는 요소만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과 굴욕을 당하시는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게 된다. 우리에게는 시험을 당한다는 것이 특별히 굴욕적일 것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 때문에 이미 굴욕을 당하고 있는 상태요 따라서 유혹이 그 죄를 부추겨도 별달리 굴욕을 받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비슷한 점도 있다. 히브리서는 4:15에 의하면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그 결과로 죄를 얻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드물게나마 이 말씀을 우리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예수께서 공적 사역 마지막의 고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주님의 시험이 취하는 특별한 형식

주님이 당하신 시험이 어떠한 구체적인 형식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먼저 예수께서는 자신의 메시야 직분과는 특별히 관계가 없는 문제에서 유혹을 받으셨고, 그리하여 그에게 부추겨졌던 죄악된 행동이 윤리적인 법 아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유혹거리가 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다음은 예수께서는 그의 메시야적 소명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방식으로 시험을 받으셨고, 따라서 그 시험은 만일 거기에 넘어가면 특별히 메시야적인 죄를 범하게 되는 그런 시험이었을 수도 있다.

처음 두 가지 시험은 분명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지위와 결부되는 것이며, 세 번째 시험도 그런 명확한 언급은 없지만 역시 메시야적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메시야이신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시험과 답변이 서로 엇갈리는 사실 속에서 주목할 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메시야적 지위를 직접 언명하시지는 안으나, 부인하지도 안으시고, 오히려 간접적으로 그것을 인정하신다는 점이다.

 

주님의 시험에 대한 해석

첫 시험에서 그는 메시야직을 자기 자신의 목적이나 필요를 위하여 이기적으로 남용하려는 사고를 일축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시험에서는 예수님이 이적을 일으키는 메시야의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섬김을 받고자 하는 이기적인 야망을 위하여 메시야직을 남용하기를 거부하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셋째 시험에서는 그가 정치적이며 민족적인 메시야 관념을 단번에 거부하신 것이라고 한다. 이 견해가 예수께서 사탄의 제의들에 대해 주신 답변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문맥에 근거한 올바른 본문 주해를 통해서 그 본문들의 요점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고, 따라서 예수님의 답변의 요점이 무엇이었으며 또한 그 시험들로 사탄이 노린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신명기 8:3

신명기 8:3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가 초자연적으로 만나를 내리셔서 그들을 먹이신 의도가 자연적인 과정이 없이도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배우도록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음을 상기시키신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적용되는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경험에서는 무엇보다도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께 굴복하는 내적인 자세였다. 이는 어떤 자세로 견뎌내야 하는 가였다. 그리고 이 내적인 정신 자세에서 소극적인 면만 강조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면도 동일하게 강조되었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에게 시험이 되었던 것은 비단 굶주림의 고통만이 아니라 굶어죽을 위험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신명기 6:16

둘째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신명기 6:16에서 취한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여호와를 시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확인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주님은 천사들이 중간에 잡아줄 것을 믿고 자기 몸을 성전 꼭대기에서 내어던진다는 것은 광야에서 불평하는 히브리인들의 처신과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분명히 시사하시는 것이다.

 

신명기 6:13

세 번째 시험은 앞의 두 가지 시험들과 두 가지 다른 점을 가진다. 노골적인 죄악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과 처음으로 사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면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셋째 시험은 애초부터 사탄이 가지고 있던 궁극적인 의도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더 근본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문제는 하나님이 과연 하나님이시냐 아니면 사탄이 하나님이냐 하는 것이었고, 또한 메시야가 하나님의 메시야냐 아니면 사탄의 메시야냐 하는 것이다.

 

시험받을 가능성과 죄 지을 가능성

주님의 시험에 대해 우리가 갖는 견해가 그 사건에 얽힌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희미한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빛을 던져주기는 할 것이다.

두 가지 문제점은 예수님이 과연 시험을 받으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가 죄를 지으실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어떤 의미에서 첫 번째 문제가 두 번째 문제를 대신하는 것이 분명하다. 절대적으로 선한 상태라면 죄와 전연 무관한 상태일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그들에게 요구된 행동 그 자체는 본래 무죄하며 죄악된 것이 아니었으나 하나님께서 그 행동을 적극적으로 금지하신 사실 때문에 죄악된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5장 예수님의 공적 사역의 계시

 

1. 그리스도의 계시하시는 기능의 다양한 면들

 

그리스도의 계시의 네 가지 구분

(1) 자연 계시, 혹은 일반 계시: 이는 창조로부터 영원토록 앞을 향하여 계속된다.

(2) 구약 경륜 하에서의 계시: 이는 죄와 구속의 등장에서부터 성육신까지 계속된다.

(3)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공적 사역 동안의 하나님에 관한 계시: 이는 탄생에서부터 그의 부활과 승천까지 계속된다.

(4) 그가 그의 택하신 종들을 통해서 전하시는 계시: 이는 승천에서부터 마지막 영감된 증인의 사망시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성령의 무오한 인도하심 아래에서 전해진다.

요한 복은 서언에는 요한복음 기자가 여기서 그 기능들을 그리스도께 주어진 로고스라는 이름 아래 포괄하고 있다고 이해한다. 로고스는 이성(理性)과 말씀 모두를 의미한다. 이는 생각하는 과정과 말하는 과정이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어서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내적인 말씀이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외적인 생각이라는 식의 순전한 헬라적 관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므로 로고스는 하나님의 내적인 마음을 외적으로 드러내시는 계시자인 것이다.

요한복음 서언을 주해해 보면, 요한이 말씀하는 로고스의 사역의 부분에 속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인류에게 전달하는 단계

(2)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구속 계시가 있다.

(3) 말씀이 육신이 되셨을 때에 그 로고스의 기능이 절정에 달하여, 이 땅에서 사역하시던 낮아지심의 상태 동안에나, 혹은 부활 이후 그가 소유하신 높아지심의 사태 동안에나, 그는 이 성육신하신 상태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충만한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계시 사역

예수님의 계시 사역의 단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저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드러내시는 계시자였다는 대략적인 사실 속에서만 헤매고 있어서는 안되고, 몇 가지 특정한 사실들을 구별해야만 할 것이다. 복음서는 이 일이 일어난 두 가지 면 혹은 방식을 말씀하고 있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드러내셨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으신 말씀을 전하심으로써, 그가 발설하신 말씀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계시하기도 하셨다.

요한복음에서는 성품을 통한 계시의 사상이 독특하게 두드러진다. 공관복음에서 가끔 나타나는 것은 주로 하나님에 관한 직접적인 말씀을 통한 계시의 사상이다. 마태복음 11:27이 그 실례이다.

요한복음은 성품을 드러내는 사상이 전면에 부각되기 때문에 계시의 대상이 인격성을 띠게 된다. 예수께서 계시하시는 것인 바로 하나님 혹은 아버지 자신인 것이다. 그러나 공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 의(義) 등, 객관적으로 제시되는 것들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에서는 계시되는 내용이 하나님이라는 대상에 집중되기 때문에. 하늘에서의 예수님의 선재(先在)하심을 크게 강조한다.

또한 요한의 계시 개념에는 강한 구원론적 요소가 담겨 있다. 이런 특징적인 사상들과는 대조적으로 공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전하신 계시의 가장 근접하는 근원으로서 성령을 거듭거듭 제시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도 물론 성령을 언급하나, 공관복음과 같은 맥락에서 두드러진 언급은 아니다.

 

2. 발전의 문제

 

3. 예수님의 가르침의 방법론

 

직유와 은유

가장 단순한 형식이다. 한 가지 사물이나 사람을 다른 영역에 속한 사물이나 사람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유은 그 비교를 명확하게 하는 반면에 은유는 그 비유하려는 사물을 그 비유하는 표상의 이름을 사용하여 곧바로 지칭하여 그 비교를 직접 드러나지 않게 하는 점에서 다르다. “헤롯은 여우와 같다”는 직유법이며, “가서 저 여우에게 말하란”는 은유법이다.

 

본래의 비유

본래적 비유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옛날에”라든가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갔는데” 등으로 서두를 시작한다. 본래적 비유는 고대 문헌에서 “우화”로 불려지는 加功의 이야기처럼 된다. 이방 세계의 우화들은 동물을 인격화하여 소개하나 주님의 비유들에서 대부분 식물계에서 취한 것들이다.

 

특례적 비유

엄밀한 의미에서 비유의 자료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주님이 사용하신 바 특례(特例)를 통한 가르침의 원리를 채용하기 때문이다. 특례를 통한 교육법이란 어떤 교훈이나 원리를 제시할 때에 이론적으로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시행되는 한 가지 실례를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특례를 통한 방법이 단도직입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비유의 형식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데, 이 경우가 특례적 비유에 해당될 것이다. 그예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이다. 또한 특례적 비유는 가공의 이야기 형식을 빌려서 사용한다는 점에서 본래적 비유와 공통점이 있다.

 

알레고리

 

비유적 가르침의 원리

비유적 가르침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먼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진리를 구체적인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와 닿게 하는 것이다. 다음은, 편견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리를 감추어 놓음으로써 그 진리를 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에게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나 혹은 유익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 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주님이 비유들을 사용하신 원리를 살펴볼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들이 깊은 원리나 법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저 교훈을 주기 위해 창안해낸 것들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차라리 비유들을 영적으로 발견해낸 것들이라 부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이유는 우주는 자연계와 영계로 이루어져 있고, 그리하여 비유들이 창조세계의 그 두 가지 층이 서로 병행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참된”과 “참됨”

 

4. 구약의 책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

예수님 자신의 내면적인 관점에 근거하여 구약에 대한 그의 태도와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다. 예수님을 성경을 대하는 문제에 있어 정통 중에서도 가장 정통주의자이셨다. 때때로 절반쯤은 경멸하는 투로“책의 종교”라 부르는 그것이 바로 주님의 경건의 특징인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의식 속에는 성경의 책들에 대하여 주님만이 홀로 갖고 계셨던 그런 특별한 요소가 있었다.

예수님은 구약 역사의 움직임 전체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감동하신 역사로서 자기 자신에게서 그 목표에 도달한 것으로 보셨고, 따라서 예수님 자신의 역사적 등장과 사역이 제거되면 구약 자체도 그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여기셨다. 예수님이야말로 친히 구약의 확증이시오 완성이셨으며, 이러한 사실이 종교의 세계에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그의 해석의 한 가지 토대가 되었다. 동시에 이것은 그가 구약 종교에 대해 실재적인 견해를 지니셨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책의 종교”

다음은 주님의 종교가 “책의 종교” 즉, 한권의 책의 내용에 속하며 또한 한 권의 책의 언어에 속한 종교였는가 하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1) 주님의 강론은 구약의 책들에서 빌려온 어휘들과 문구들과 표현 양식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의식적으로 구약을 인용하는 예도 무수하게 많다. 이에 대해서 두 가지 특이점이 있다. 먼저, 주님의 가르침이 최고조에 달할 때에 그것들이 흔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높이 올라갈 수록, 구약의 사상과 언어의 세계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다음은 예수님이 생애 최고의 위기들을 만나실 때에 그것들을 사용하신다는 점이다.

(2) 예수님은 구약의 책들을 “신앙과 실천의 법칙”으로 대하신다.

(3)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메시야적 성격과 사역을, 그것들에게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지적하심으로써 확증하신다.

(4) 이상은 간적적인 것들이다. 주님이 구약 성경을 사용하시는 용도를 관찰함으로써 얻어진것들이지만, 그 이외에 성경의 성격과 기원에 관한 그의 명확한 강론들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있다.

(5)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구약 성경에 대한 주님의 태도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의심을 한 적이 없다.

 

5. 예수님의 신론(新論)

 

예수님은 참된 계시자셨다. 그리고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모든 계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그 대상이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에 관한 교의에 무언가 제시하신 바가 있었던 것으로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신론”이 새로운 것이었다는 단언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구약 성경의 가르침이 예수님께 어떻게 보였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각 속에서 바라보도록 힘써야 한다. 또한 하나님에 관한 당시의 유행하는 관념들에 대한 비판을 담은 예수님의 발언 하나하나를 여호와의 본성에 관한 구약의 교의를 비판하는 것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해서도 안 될 것이다. 구약 성경과 유대교를 서로 동일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유대교에 대해서는 주께서 그릇된 것을 지적하신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셨다는 주장을 제기하려면 반드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을 비판하신 예가 전혀없다. 또한 주님이 구약의 신적 기원을 믿으셨다는 것도 이를 입증해 주는 단서가 된다.

서기관들에게서 율법 중에 첫째 가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셨을 때에, 예수님은 신명기 6:4,5에 근거하여 율법의 의미를 정리하셨고, 완전한 신앙을 정리해 주는 말씀을 인용하실 뿐 아니라, 신명기에서처럼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라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를 서두에 붙이셨다.

또한 사두개인들과의 논쟁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셨다. 주님의 논지는 연대기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의 하나님”이라는 문구의 함축적인 의미에 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

주님의 신론의 중심이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에 대한 그의 가르침에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사실과 밀착되어 제시되는 특정한 오해들과 잘못된 추리들은 예수께서 절대적으로 독창적으로 그런 관념을 가지셨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독창성의 문제에 대해 구약을 망각해서도 안되고, 유대교의 사상 체계도 완전히 다 잊어서는 안된다. 물론 구체적인 색채는 서로 달랐지만, 구약에서나 유대교에서나 그 관념이 잘 알려져 있었다.

예수님과 구약의 관념의 차이점으로 다음 세가지가 강조된다.

(1) 구약에서는 아버지 되심이 오로지 여호와만의 행위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2) 구약에 나타나는 관념은 그 범위가 오로지 이스라엘로만 한정되며, 집단적인 자격으로서만 그들에게 적용되며 이스라엘 사람 개개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3)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혹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다른 속성들과 더불어 제시되는 반면에,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의 아버지 되심이 하나님의 성품의 유일한 면으로 나타난다. 곧 하나님은 오로지 사랑이실 뿐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주장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답변할 수 있다.

(1) 구약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외형적인 데에서 내면적인 데에로 나아가지만 신약에서는 그 반대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나타난다는 올바른 관찰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는 계시과정의 일반적인 움직임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2) 예수께서 창조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의 범위를 모든 개개인에게로 절대적으로 확대시키신다는 주장은 예수님의 사상에 대한 그릇된 해석에 근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또한 그것과 관계되는 아들 됨의 관념은 모두 구속적인 것들이다.

 

하나님의 위엄과 위대하심에 대한 예수님의 강조

주님의 가르침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되심과 자비로우신 면 다음으로, 신적 본성의 초월적인 면도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하늘의 위엄이라는 이 두가지 요소를 함께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이 둘이 서로 교류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위엄과 위대하심이 하나님의 사랑에 특별한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의 이 두 가지면이 서로 교류하는 또 하나의 예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의 자비로우신 면이 사람에게 도움과 구원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보응하시는 의

하나님의 본성의 세 번째는 “보응하시는 의”이다. 이는 신적 성품에서 소홀히 다룰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증거를 찾을 수 있는데 징계를 위한 형벌이 아니라 앙갚음을 위한 형벌인 것이다.

예수님이 그리시는 바 하나님의 내면적인 삶의 모습은 추상적인 획일성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가지 동인(動因)을 허용하는 지극한 풍성함과 다중성(多重性)의 모습인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가 점점 쇠퇴하고 그 대신 보응의 원리가 득세하였었다. 하나님을 상업적인 수준에로 전락시켜서 그를 정확한 보복에 근거하여 사람을 처리하시는 자로 만들어 버닐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그 당시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사리자고 있었던 면을 강조하여 제시하신 것이다.

 

6.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

 

1.외형적인 문제들

 

구약에서의 하나님 나라

구약에서는 후에 하나님 나라가 불려질 그것이 본질상 두 가지 다른 개념들과 결부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창조를 통해서 세워졌고 또한 우주에 대한 섭리를 통해서 확대되는 하나님의 통치를 지칭한다. 특별히 구속적인 나라의 개념은 아니다. 구속적인 나라의 개념을 갖는 것이 있다면 보통 “신정통치”라 부른다.

구약에서는 현재적 나라를 말씀하기도 하나 그 나라를 미래의 실체로서도 말씀한다.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미래에 올 것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상대적 발전이 아닌 절대적인 의미에서 새로이 창조되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해명은 다음과 같다.

(1) 구약에서 “나라”를 뜻하는 몇 가지 단어들이 갖고 있는 지배적인 추상적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나라”를 “왕권”으로 대치한 다음, 그 왕권의 지도 아래 있는 백성들에게 그 왕권이 구원의 위대한 역사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기억하면, 여호와의 나라에 미래적인 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스라엘 역사상 신정왕국이 실제로 완전히 폐기된 적은 없으나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히 새롭게 들여온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할 만큼 그 왕국이 전면적으로 능력을 상실해 버린 시기가 여러 번 있었다. 바벨론 포로가 실례이다.

(3) 메시야에 대한 예언도 이와 비슷한 화법을 취하였다. 장차 오실 것으로 기대되는 메시야적인 왕이 언제나 궁극적인 왕이신 여호와의 완전하고도 이상적인 대표자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왕이신 여호와께서 그의 대리통치자이신 그 메시야적 왕으로 완전하고도 이상적으로 대표되실 때에는, 그 메시야적 왕께서 동시에 종말론적 소망 전체를 실현시키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장차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표현이 전혀 이상스러워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의 가르침과 이런 관계를 갖는다. 유대교는 율법의 종교였다. 그러므로 나라의 관념도, 현재 상태에서 이를 수 있는 것보다 더 완전하게 율법적인 원리가 강화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 나라의 내용을 전에 없던 놀라운 은혜의 구체적인 역사들로 가득 채우셨던 것이다. 또한 그 나라에 대한 유대인의 소망은 정치적이며 민족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었으나, 예수님의 가르침에 나타난 그 나라는 보편주의 쪽으로 나아가는 경향이었다.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의 종말론에는 감각주의가 상당 부분 혼합되어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문자적인 감각주의에 속하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그의 비유적인 사고의 틀의 한 가지 실례였다는 데 있었다 할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는 하늘의 복락들이 그 충만한 실재성을 유지하면서도 그보다 더 높은 영적인 세계에 속하는 면도 똑같이 나타나며, 심지어 육체까지도 그 세계의 한 부분으로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복음서에서의 하나님 나라

복음서에서는 “나라”를 뜻하는 말로 바실레이아가 “하나님” 혹은 “하늘”의 소유격과 더불어 사용된다. 이는 추상적인 용법으로 왕적인 통치의 시행을 의미하며, 구체적인 용법으로는 하나의 조직체를 구성하는 데 소용되는 모든 것들을 지칭한다.

구약에서 나라의 관념이 여호와를 지칭하며, 따라서 추상적인 의미 밖에는 모른다.

예수님께서 구약과 친숙하게 접촉하신 사실로 판단할 때에, 예수께도 “왕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출발점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라는 문구와 더불어 “천국”이라는 문구가 나타난다. “천국”이라는 표현과 유사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용어도 마태복음에만 독특하게 나타난다. 누가복음도 단 한번 그와 비슷하게 “하늘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신약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만 사용되고 있다.

 

“천국” 혹은 “하늘 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현대의 이론들

극단적 종말론자: 하나님 나라의 현재의 점진적인 실현과정과 또한 미래의 격변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켜보면 이 둘 중 전자의 것이 예수님의 사상의 본질적인 요소였다는 것이 최근 들어서 부인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마음에 예비적인 나라, 점진적인 나라라는 관념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인한다.

이러한 현대적인 견해는 그 파급 효과가 매우 심각한다. 이는 예수님의 무오성을 폐기시켜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제시하신 계획에 따라서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이 부인하는 모든 점들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인정할 만한 점이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종말론의 문제를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으로 보아 그것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양면성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사고가 양면성을 띤다는 것은 첫째로 현재적이며 내적이고 영적인 발전의 관념이 있고, 둘째로 격변을 통한 최종적 마무리의 관념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다른 면에 대한 증거를 살펴볼 때 다음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먼저 말씀하는 바 그 나라가 화자의 시점에서 현재적인 것인가? 둘째 그 나라가 내적이며 영적인 실체들에 있는 것으로 연급되는가?이다.

마태복음 12:28과 누가복음 11:20은 일치한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이 그 나라가 임하였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여기서 “임하였느니라”를 “가까이 왔느니라”로 이해해도 이 진술의 무게가 살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갑자기 임하였느니라”라는 의미를 억지로 끌어다 붙여서는 안된다. 고전 헬라어 프따네인이란 동사가 후대의 헬라어와 반드시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7:21이다. 전치사 엔토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다.“...의 가운데”와 “...의 안에”이다. 이 본문에서는 보통 후자의 의미로 번역된다. 이는 그 나라의 현재적 존재와 영적 성격 모두를 나타내는 것이다.

셋째로는 ,서로 병행되는 마태복음 11:12과 누가복음 16:16을 살펴본다.

여기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하나님 나라가 침노를 당하고 있고 또한 침노하는 자들이 강제로 그 나라를 빼앗는다고 선포하신다. 이 비유적인 말씀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이 요한의 때부터 그 나라가 실존한다는 것을 묘사한다는 점이다.

넷째로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마13장,막4장,눅8장). 여기서는 그 나라의 현재적 실재성과 영적 본질 모두가 명확히 묘사되고 있다. 극단적 종말론자들은 이 비유들에 나타나는 증거의 힘을 부인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 비유들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덧붙여진 해석들에서 종말론을 희석시키는 이런 특징들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적 실재의 관념의 흔적들을 완전히 제거하기가 힘든 곳에서는 그들은 비유의 주제를 바꾸어서 ‘복음 전파는 이와 같으니“ 등으로 읽을 것을 애써 주장한다.

본문의 증거를 희석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좀 더 주해적인 성격을 띤다.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바 하나님 나라가 현재 임재해 있다는 것을, 그 나라의 전조가 되는 징후들이 있다는 뜻으로나 그 나라의 처음의 미미한 시작이라는 뜻으로 축소시켜 버리는 것이다.

다섯째로 누가복음 18:17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것“과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서로 명확하게 구별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두가지 표현들은 하나님 나라의 점진적이며 영적인 면과 또한 최종적인 명을 두 가지를 묘사하는 것으로 절묘하게 어울려 보이는 것이다.

여섯째로 마태복음6:33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과 양식과 의복 등 이 땅의 것들을 그 나라에 덧붙여질 것들로 서로 나란히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13:16, 누가복음 10:23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많은 선지자와 왕들이 보고자 했어도 보지 못한 것들을 그들이 보고 들으니 그들이야말로 복되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의 이 두 가지 면이 갖는 차이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점진적으로 임하나, 최종적 하나님 나라는 격변을 통하여 갑작스럽게 임한다.

(2)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주로 눈으로 볼 수 없는 내적인 영역에 임하나, 최종적 하나님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눈에 드러나는 형태로 임한다.

(3)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마지막 종말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있다. 그러나 최종적 하나님 나라는 불완전한 점들이 전혀 없을 것이고,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영적인 과정들 속에 남아 있는 불완전한 것들이 완전해 질 것은 물론 그 최종적 하나님 나라가 더해 줄 새로운 요소들도 완전한 것들일 것이다.

 

2. 하나님 나라의 본질

 

예수님은 무슨 이유로 오셔서 선포하시고 도입하시는 그 새로운 사물의 질서를 “하나님 나라”라는 명칭으로 부르셨나?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라는 명칭을 선호하니 전정한 의미는 바로 그의 하나님 중심의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말해,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종교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그 용어는 “하나님의 나라”를 뜻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의 현실적인 실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지상권의 실질적인 시행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지상권이 최종의 목표를 향하여 시행되는 세 가지 주된 영역이 있는데, 권세의 영역, 의의 영역,그리고 복락의 영역이 그것이다.

 

권세의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지상권

권세의 요소는 구약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나라의 관념에서도 이미 두드러진다. 복음서에서는 주님 가르치신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서 “권세”가 그 나라를 구성하는 첫째 요건으로 나타나난다. 이 영광송은 이 고대의 기도를 사용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관념과 더불어 무엇을 연상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마태복음 12:28은 메시야의 주권 뿐 아니라 신적이 나라의 권세를 드러낸다. 이는 “시대의 표적들”로 그 나라가 가까웠다거나 임하였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표적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키는 권세는 성령과 결부되어 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성령은 계시와 이적의 주재자이시다.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관련되는 믿음

권세로서의 하나님 나라에 믿음이 함께 연관되어 나타난다. 상호관계가 완전한 것은 아니다. 믿음은 신적 권세에 못지않게 신적 은혜와도 뚜렷한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서에는 믿음이 대개 이적의 문맥 속에서 나타난다. 여기의 믿음은 객관적인 이적의 사실에 상응하는 주관적인 요소인 것이다. 우린 두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로, 이적들은 자비로운 구원의 행위들로서 신적 은혜를 드러내며 그 수혜자들에게 신뢰의 상태를 유발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것이 주안점이 되서는 안된다. 이적의 독특한 것은 하나님의 절재적인 초자연적 권능을 확증하는 것이다. 이적의 동력인은 사람이 아무것도 공헌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초자연적 에너지가 발휘되는 데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은혜에 의지하는 데에 믿음의 종교적 근거가 있다. 믿음이란 사람 편에서 그 나라의 구원의 역사가 오로지 하나님의 역사임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믿음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원리에서 볼때, 믿음이란 사람이 임의적으로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고 또한 갖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다. 믿음 이면에는 동기 부여가 있는 법이다. 또한 믿음을 하나의 비이성적인 신비로운 충동이 솟구쳐 오르는 것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믿음은 지식을 전제로 한다. 믿음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정신작용으로 채워지는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영혼의 인식 작용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불신앙의 원인들에 대한 주님의 진술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불신앙의 원인이 정보를 제공하는 지식이 없는데에 잇는 것이 아닌 이상, 어떤 경우에는 “실족하는 것”이 그 원인일 수도 있다. 이 용어는 헬라어로 스칸달리제스타이이다.

믿음의 행위를 묘사하는 데에 사용되는 동사의 구문에서 믿음의 행위의 실미가 드러난다. 그 동사는 피스튜에인이고, 형용사는 피스토스로서 ‘믿어지는“, ”믿을 만한“ 등의 수동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복음서에는 이것이 오로지 아피스토스의 부정적인 형태로만 나타난다.

 

요한복음에서 사용되는 “믿음”

믿음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은 몇가지 특징이 있다.

(1) 예수께서 하나님의 복제시라는 사상에 근거하여, 믿음이 시종일관 예수님에 관한 것으로, 또한 하나님에게 관한 것으로 제시된다.

(2) 믿음이 예수님과 신자 사이의 계속적이며 습관적인 관계의 성격이 더짙다. 반면, 공관복음서에서는 믿음이 대개 이적들이 행해진 자들의 편에서 행하는 하나의 순간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3) 미래의 것을 미리 예상함으로써 믿음은 영광을 입으신 예수님을 붙잡는다.

(4) 믿음과 지식 사이에는 지극히 밀접한 연관이 있다.

(5) 불신앙과 그 근원 사이의 연관에 대한 가르침이 공관복음서에서 보다는 요한복음에서 더 분명히 제시된다. 불신앙이란 하나님을 향한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람의 본성적 태도에서 샘솟아 나오는 것이다.

(6) 믿음의 군원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묘사되고 있다.

㉮ 믿음은 행실의 과정의 결과다. 진리를 행하며 진리 안에 행하는 자들이 믿는다.

㉯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믿음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올바른 영적 인식의 결과다. 아버지께로부터 배웠거나 혹은 들은 자들이 믿는다.

㉰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믿음은 진리 안에 있다고 묘사되는 그런 존재 상태의 결과다.

㉱ 마지막으로 궁극적인 근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믿는 자들은 바로 주권적 선택의 원리에 따라 아버지께로부터 아들에게 주어진 자들, 혹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이끄신 자들이다.

 

의의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지상권

하나님 나라에서의 하나님의 지상권은 의의 영역에서 시행된다. 우선,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의”라는 성경적 개념을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 의하면, “의”란 하나님과 일치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며,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오로지 하나님만이 그것을 판단하실 수가 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거기에 관여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과 상관되는 의는 결코 신앙적 삶의 작은 일부분이 아니다. 윤리적으로 생각할 때에,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전체를 다 포괄한다. 따라서 의롭다는 것은 곧 참된 신앙을 소유하며 실천한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 곧, 의가 경건과 동일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성경적인 의의 관념은 하나님 나라라는 성경적 관념과 지극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주님이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해 가르치신 상호 간의 밀접한 동일성과 연광성을 규명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방향에서 관찰할 수 있다.

(1)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의와 동일한 것으로 가르치신다. 이 둘은 서로가 서로의 안에 존재한다. 이유는 의를 행하는 것이란 결국 하나님의 왕권을 실질적으로 인식하고 증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의가 그 나라의 결과로 나타난다. 곧,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가 그 구성원들에게 값없이 베풀어주는 여러 선물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3) 둘 사이의 전후 순서가 바뀌어, 의가 먼저 오고 하나님 나라가 그것에 이어지는 상급으로 그 다음에 온다. 이것은 종말론적인 나라에 관한 것으로 이해하여, 그 나라를 이 세상의 삶에서 의를 실천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보상으로 약속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유대인들의 윤리에 대한 주님의 비판

주님은 유대인들의 윤리에 대해 비판을 하셨다. 유대인들은 이신론에로 기우는 경향과 자기 중심적 사고에 오염되어 있어 윤리의 근본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심각한 과오들이 초래되었다.

(1) 외형주의. 하나님이 중심을 살피신다는 생각으로 율법을 준수한 것이 아니었다.

(2) 잘 조직된 상태에서 철저히 와해된 상태에 이르도록 율법을 깨뜨려 버림. 큰 원리들을 구별하지 않았고, 또한 그 큰 원리들에 비추어 작은 문제들을 판단하지 않았다.

(3) 유대교의 율법 행위의 큰 특징을 이루는 부정주의도 동일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4) 예수께서 그렇게 혹독하게 비판하신 “자기 의”도 동일한 뿌리에서 자라난 것이다.

(5) 이처럼 율법을 준수했다는 착각으로부터 외식(外飾)의 과오가 생겨난다.

 

회개

하나님 나라의 의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은 회개에 대한 가르침과 연관을 맺고 있다. 회개에 대한 가르침은 그 나라의 의의 면과 관계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복음서에 나타나는 주님의 선포가 회개와 믿음 모두에 대한 요구로 시작한다. 복음을 제시하는 배경으로서 언제나 죄가 전제되고 있다는 항구적인 증거가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회개라 부르는 것으로 묘사되는 마음의 상태는 복음서에서 그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헬라어 단어들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그러나 더 이상 본래의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도 있을 가능성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1) 메타멜레스타이: 문자적으로 “뒷 근심”이라는 뜻이다. 이는 과거의 행동이나 처신에 대한 후회의 감정적 요소를 지칭한다. 감정적인 의미 때문에 종종 이 단어를 회개를 하나의 표면적인 경험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부정확한 것이다.

(2) 메타노에인: 누스의 변화 혹은 역전(逆戰)을 뜻한다. 누스는 좁은 의미의 정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의지와 감정을 포함한 의식적인 삶의 전체를 뜻한다.

(3) 에피스트레페스타이: “자기 자신을 돌이키다”라는 뜻이다. 이는 앞의 두 단어들처럼 마음의 내적 상태가 과거를 반영하는 것이나 혹은 내적인 마음의 변화로 정반대의 상태로 돌아서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새로운 반대의 목표를 향하여 돌아서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회개”보다는 “회심”과 일치한다.

둘째로 회개라는 요구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점이다.

더 특별한 것은 회개의 하나님 중심적인 성격이다. 회개가 발생하는 출발점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 관념자체가 세속적 윤리적이 아니고 종교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회개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새로운 삶의 방향은 모든 욕망과 목적과 함께 그 삶 전체를 절대적으로 오직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복락의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지상관

하나님 나라는 복락의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지상권이다. 하나님의 왕권과 복락의 관계는 부분적으로는 일반적인 종말론적 성격과 하나님 나라와 관계되는 특별한 종말론과 결부되는 성격을 띤다. 최후의 완전한 질서가 또한 최고의 복락의 상태를 가져오는 질서가 될 것이라는 것이 종말론적 관념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왕권의 시각에서, 동방에서는 왕의 직분이 그 나라의 백성들에게 복락을 베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일상적인 믿음과 기대가 그 직분 자체와 결부되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나라로 말미암아 베풀어지는 복락은 소극적 복락과 적극적 복락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구원의 복락, 아들 됨의 복락, 그리고 생명의 복락이 주된 개념이다. 구원의 복락은 소극적, 적극적인 면을 다 포괄하며, 때에 따라서 둘 중의 하나가 강조된다. 생명의 복락과 아들 됨의 복락은 적극적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

하나님 나라가 교회의 형태로 조직화 되는 것에 관한 주제이다.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에 대한 주니의 객관적인 가르침에 발전이 있다는 한 가지 분명한 증거가 가이사랴 빌립보 사건에서 발견된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점에서 첨부나 발전을 보여준다. 곧, 하나님 나라에 외형적인 조직체를 부여하는 것과 또한 성령의 새로운 역동적인 역사하심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지지하느라 교회를 경시하는 자들이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런 태도를 갖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첫째 “반 분리주의”가 작용하고, 그리하여 그 용어 자체의 혐오스러움이 복음적 가르침의 진실성을 파괴시키기도 한다. 둘째 신학자들이 소위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를 서로 구별하면서 후자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고 전자를 그 나라에서 배제시키려 애쓰기도 한다.

마태복음 16:18-20의 단락을 연구하며 이런 다양한 입장들이 가치를 지닌다면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닐까 하는 의문이 해결된다. 첫째 여기서는 교회와 하나님 나라가 분리된 기관들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예수께서 “내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당시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내 교회”란 메시야의 교회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이제 종결된 구약의 교회 조직체와 대비시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18절에 나타나는 “음부의 대문(大門)”에 대한 진술이 이러한 역동적인 역사를 지칭하는 것 같다.

교회를 건물의 표상으로 묘사하는 것 외에, 주님의 다른 말씀들도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긴밀한 연관성을 세우는 것으로 가끔 인용된다. 주님은 자신이 오실 것과 그 나라가 임하는 일이 매우 가까웠다는 것도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종말에 임하는 일이 가까웠고 또한 그 일이 강력하게 진행될 것임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마태복음의 그 단락은 신약의 다른 어떤 본문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그저 선전의 도구로서나 선교 기관으로나 혹은 구성원들이 본질적인 관계 속에서 지향하는 어떤 목표로 보는 식의 교회관을 거의 장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제 1 장 서론: 성경 신학의 본질과 방법론

 

신학이란?

1. 어원적 정의: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다.

2. 종교학적 정의

1) 종교를 주관적으로 이해하여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종교적 현상과 경험들의 총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취하면, 신학은 이미 사람의 정신적인 삶을 다루는 인류학 분야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될 것이다.

2) 종교를 객관적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이 제시하였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반드시 따라야할 정상적인 의무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이 어째서 다른 종교가 아닌 바로 이 종교를 요구하시느냐 하는 것이 의문이 들 것이고, 이 의문에 대답은 오로지 하나님의 본성과 뜻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을 다루게 되어 있는 것이다.

3. 신학을 하나님에 간한 학문으로 정의해 놓고 보면, 신학이 계시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이 뒤따르게 된다. 비인격적인 대상들을 과학적으로 다루는 경우에는 우리들 자신의 편에서 그 일을 주도한다. 하나님 속에 감추어진 그의 뜻의 내용은 오로지 하나님 편에서 자의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셔야만 비로소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족스럽게 알기 위해서 반드시 계시가 필요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처하여 있는 비정상적인 처지 때문이다.

 

신학의 네 가지 분과

1. 신학의 4가지 분과 : 주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2. 주경신학이 포괄하는 과목

1) 성경의 실질적인 내용 연구

2) 서론: 저자, 저작 연대와 배경, 가능한 전거 등 성경 각 권들의 기원에 대한 연구

3) 정경론: 성경 각 권들이 어떻게 하나의 성경으로 묶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

4) 성경신학 : 시공간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일을 연구함

3. 신적인 활동의 관점에서는 순서는 성경 신학, 정경론, 서론, 성경의 실질적인 내용 연구 이다.

 

성경 신학의 정의

성경 신학은 주경 신학으 한 분과로서 성경에 저장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 과정을 다루는 것이다.

 

 

 

 

1. 계시 과정의 역사적 점진성

계시란 구속의 역사다. 계시는 홀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계시에 관한 한) 하나님의 또 다른 활동, 구속이라 부르는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계시의 과정과 구속의 과정이 서로 전적으로 범위가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속은 일부 객관적이요 중심적이며, 일부는 주관적이요 개인적이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행위들을 중심적이라 부르는 것은, 그것이 구속이라는 중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전 범위에 독같이 관여하며 또한 반복이 필요 없고 반복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주관적 영역에 속한 행위들을 개인적으로 부르는 것은, 그것들이 각 개인마다 별도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계시는 오로지 객관적이며 중심적인 구속 과정에만 수반되며, 그렇기 때문에 구속이 계시보다 더 나중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2. 역사 속에서 계시가 실질적으로 구체화 됨

계시의 과정은 역사와 공존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역사 속에서 구체화된다. 우리는 행위 계시를 말씀 계시 옆에 두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첫째, 이 두 가지 면을 지닌 행위들의 주목적은 계시를 초월하는 것이요,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관계되는 면을 지니며, 오로지 그 면에 의존해서만 교육적인 목적으로 인간에게 관계되는 것이다. 둘째, 행위 계시들은 절대로 자기 혼자 말하도록 내버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 계시들에 앞서서 혹은 그 뒤에 반드시 말씀 계시가 있는 것이다.

 

3. 계시 속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 과정의 유기적 본질

계시의 점진적 진전은 유기성을 띤다. 유기적 과정은 씨앗의 형태에서 시작하여 충만한 성장을 이루는 데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우리는 질적인 면에서 씨앗이 성숙한 나무보다 덜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처음 등장할 단계에서도 진리가 구원론적 충족성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해 준다. 구속의 움직이 유지적 성격을 띠고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므로, 계시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경에서 심한 정도의 가변성과 상이성을 들추어내는 일은 성경의 절대성과 무오성을 믿는 믿음에 치명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들 주장한다. 그러나 진리는 본래 풍성하고 복잡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러하시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제를 삼는 태도는 전체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본성과 세상과 그와 관계에 대한 그릇된 견해에 근거한 것이요, 이신론적인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의도에 따라 계시의 모든 기관들을 사용하시고 통제히시므로, 그것들 하나하나를 정확한 목적에 맞추어 형성시키신 것이다.

 

4. 성경 신학의 연구를 결정지어주는 계시의 네 번째 면은 그 실질적인 적용성에 있음

하나님의 자기의 자기 계시가 우리에게 주어진 주된 목적은 지성적인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서 드러내신 모든 것은 그의 백성의 실질적인 신앙적 필요들에-그것들이 역사의 과정 속에서 제기됨에 따라서-부응하여 주어진 것이다.

 

성경 신학이라는 명칭으로 계속 지칭되어온 갖가지 것들

처음에는 조직 신학 연구에 동원된 증거 본문들을 모아 놓은 뜻을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 다음에는 경건주의자들이 교의학의 극단적 스콜라주의적 방법론에 대응하여 사용하였다.

요한 가블라에 의해서 성경 신학의 구체적인 차이이점이 성경 본문을 역사적으로 다루는 원리에 있는 것으로 올바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가블러가 속한 학파는 이성주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점은 진리와 믿음의 영역에서 하나님에 대항하여 부당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운다는 사실이다.

진리를 역사적으로 추적해 들어가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과거에는 하나의 장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경건이 결핍된 상태로 그런 일이 해해지자, 그 자체를 신학이라 부를 권리조차 스스로 상실하고 말았다.

진화론적 철학에 의하여 영향 받은 오늘날 성경 신학은 첫째로 진화의 가설이 세계의 전개 과정에서 찾는 질적인 진보가 종교적 진리의 출현까지 확대된다는 점이다. 둘째로 진화론 철학은 실증 철학과 한 가족이다. 실증 철학은 현상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주도적인 원리들

1) 계시의 무오한 성격을 이 용어를 정당하게 신학적으로 사용할 때에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격적이시며 의식적이라면, 그가 자기를 드러내실 모든 양상이 그의 본성과 목적을 오류 없이 표현하는 것이라는 추론이 불가피해진다.

2) 성경 신학은 계시라는 기반의 객관성을 인정해야 한다. 진정한 의사소통이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 외부로부터 온다는 것을 뜻한다. “주관적 계시”란 곧 성령께서 인간의 잠재의식의 깊은 곳에서 내적으로 활동하심으로써 거기서부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특정한 생각들이 나오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부로부터 오는 것들의 범주에 집어넣는 현대의 경향에 대해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3) 성경 신학은 영감의 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한다. 성경 신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그 주제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계시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권위에 의해서 “진리‘로 보게 되는 한 가지 요인으로서 영감의 사실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성경 자체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완전 영감”이거나 아니면 전혀 아무 영감도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계시들의 신빙성은 그 계시들이 나타나는 역사적 정황의 신빙성 여부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성경이 우리에게 그 자신의 유기체의 철학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성경 신학”이라는 명칭에 대한 반론들 (문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성경적 신학”이다)

1) 이 명칭은 너무 폭이 넓다. 일반 계시를 제외하고는 신학은 모두가 성경에 근거를 두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2) “성경적”이라는 말을 그것 혼자만이 성경적 전거를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고 다만 특수한 방법론을 지칭하는 말로-즉, 형식을 달리 바꾸지 않고 본래의 성경의 형식 그대로 진리를 재생시키는 방법을 뜻하는 말로-이해하면 된다고 답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 신학의 경우에는 그 원리가 역사적 성격을 띠며, 조직 신학의 경우는 논리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3) 그 명칭은 나머지 신학에 대한 명명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적절치 못한다.

이런 모든 이유로 볼 때에 “특별 계시의 역사”라는 명칭이 훨씬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용되어 이미 고정화된 명칭을 다른 것으로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성경 신학과 신학의 다른 분야들의 관계

1) 성사(성경의 역사)와의 관계: 성사에는 구속이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계시를 끌어들이지 않고 구속을 다루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떤 특정한 행위들은 구속적인 동시에 계시적이기 때문이다. 이 두 영역은 존재의 영역과 지식의 영역이다. 존재의 영역에서는 세상을 올바른 상태로 돌리는 데에 구속의 과정이 채용되며, 지식의 영역에서 세상을 올바른 상태로 돌리는 계시의 과정이 사용된다. 전자는 성경의 역사를 후자는 성경 신학을 산출하는 것이다.

2) 성경 서론과의 관계: 특정한 경우들에서는 성경 문서의 연대와 저술의 상황들이, 계시의 체계 속에서 그 문서를 통해서 전해지는 진리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

3) 조직 신학과의 관계: 성경에 밀접하게 근거하는 면에 있어서는 둘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다. 둘 사이의 차이는 변형을 이루는 원리들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성경 신학의 경우, 그 원리는 역사적 성격을 띠며, 조직 신학의 경우는 논리적 구성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성경 신학의 방법

성경 신학의 방법은 주로 역사적 발전의 원리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계시의 과정을 특정한 시기들로 구분하게 된다. 그 시기들을 임의적으로, 혹은 주관적인 선호에 따라서 결정해서는 안 되고, 계시 그 자체에서 드러나는 간격의 선들과 철저하게 일치하도록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주기성의 원리와 더불어, 각 시기들의 한계 내에서 진리의 여러 요소들이 함께 묶여지고 또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성경 신학 연구의 실제적 용도

1) 성경 신학은 특별 계시의 진리들의 유기적 성장을 밝히 드러낸다

2) 성경 신학은 이성주의적 비평의 가르침들에 대항하는 데 유용한 방어 수단을 제공해 준다.

3) 성경 신학은 진리를 그 본래의 역사적 정황 속에서 보여줌으로써 진리의 새로운 생명과 신선함을 부여한다.

4) 오늘날의 반 교리적 경향에 대해 성경 신학이 잘 대응할 수 있다. 종교의 자발적이고 감정적인 면들에 대한 강조가 너무 지나치게 두드러지고 있는 현실에서, 성경 신학은 우리의 종교적 구조에 교리적 기초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증언해 준다.

5) 성경 신학은, 심지어 믿음의 근본적인 교리들조차도 혼자 고립되어 있는 몇가지 증거 본문들의 증언에 주로 의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불행한 상황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다.

6) 성경 신학 연구의 가장 높은 실제적인 유용성은 성경 신학 학도에게 유익이 되는 것과는 전혀 별개로 성경 신학 그 자체에 속하는 유용성이다. 모든 신학이 다 그렇지만, 성경 신학의 최고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신학은」하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을 가르치며,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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