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단강 조선민족 민속 거리, 목단강을 한어 발음으로는
무단장이라고 한다.
이윽고
새날이 밝았다.
호텔
조식 뷔페를 마치고 우리는 조선족 거리로 갔다.
김
사장의 식당은 과연 대단하였다.
(김 총경리가 운영하는 "조선족
대반점"은 점심에 랭면만 엄청 나간다. 숫자는
비밀로 하고싶다,)
(세탁소도 눈에 띈다. 뉴욕이나 LA에서
흔히 보던 그림이다. 교통 수단만 다를뿐.)
우리
네 사람은 차를 하나 세내어서 "목단강 시"의 교외 지역으로 한 20분을 달려
어떤
허름한 가옥 서넛이 연립된 쪽으로 들어갔다.
양로원이 있는 "흥룡사 진(興隆寺
鎭)"으로가는 교외 도시 고속 도로---.
흥륭은 "싱룽"으로 읽었다.
(한 때 잘 나갔던 요릿집을 개조하여 양로원이 설립되었다.)
권
여사는 금년 봄에 한번 와 본 곳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혼자이신
친정어머니를 사업한다는 핑게로 잘 모시지도 못하여, 양로원으로
모실까 조사차 왔었으나
아직은 조선인 정서가 허락지 않아서 포기했던 사연이
있었다.
간판에는
“신롱”이라는 표현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나눔의 집”이라는 글자만
뚜렷하여서
우리는 일순 잘못 온 곳이 아닌가 긴장했으나 얼른 쫓아나온 키 크고
담대한
원장께서 이 곳이 바로 “신롱 양로원”이 맞다고 확인을 해 주었다.
(행정적으로는 목단강시, 동안구,
흥륭사진의 양로원이라는 이름만 밝히고 있었다.
이곳의 최종 행정단위 이름은 "흥륭사진"인데 한어로 읽을 때에는 싱룽이라고 박기자가
확인하여 주었다.)
"신롱"이라는 발음으로
처음 연길의 호텔에서 들었을 때에는 농업과 의약을 다루는
중국의
천신,
“신농(神農)씨”와
유관한가 지레 짐작하였는데 알고 보니 이 곳의 행정 단위가
“흥륭사진”
이어서
한어 발음으로 "싱룽 양로원"이었던 것이다.
자칫하면
발음 차이로 놓칠번한 장소였다.
물론
양로원 설립자의 근본 취지는 “나누고 베푸는 정신”이어서 “나눔의 집”이라고
이름
하였나보다.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 가,
생로병사의
사이클은 정말 무엇인가,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보편적인 물음이 이 곳
중국
땅의 변방, 어느 나눔의 양로원에서도 끊임없는 화두로 이 순간 다시 다가왔다.
꼼짝도
않거나 미동만 하는 기력 없고 노쇠한 노인들이 정물처럼 눈앞에 전개되는
정경은
참담하였다.
육신은
그렇다 치고 이 분들의 정신인들 온전할까---.
모두
치매의 경계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연길로 오던 날, 나는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조선말을 하는 어떤 초로의
여자
분을 두 번이나 우연히 연달아 만나게 되자 목단강 가는 길을 물어보았는데,
참으로
놀랍게도 그 분은 목단강에서 양로원을 경영한다며 양로원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번
길에 미리 연락을 하기에는 나의 여정이 너무나 복잡다단하여서 이런 식의 방문이
되고
말았는데,
원장님인
남편 되는 분도 초로의 노신사였으나 키가 크고 위풍이 당당하며 체구도
든든한
모습이어서 보기에 믿음직하고 좋았다.
우리는
식당에서 대화의 자리를 잡았다.
“부인께서는
지금 안 계시는지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더니 몸이 좀 불편해서 누워있는데 곧 나올 것이라고 했고,
이윽고
등장하였는데 과연 연길에 온 첫날 우연히 만났던 그 초로의 단정한 부인이었다.
(빈 의자는 박기자의
자리---.)
“어떤
분이 이리로 언젠가 찾아 올 것이라는 이야기는 집 사람에게서 들었지만 무슨
연고이신가요?”
원장이
카메라로 중무장한 박 기자를 흘낏 보며 내게 물었다.
“아,
제 선친께서 일제 강점기에 아마도 여기 목단강 시에서 크게 정미소와 군량미 관련
사업을
하신 듯 합니다. 빛나는 과거사는 아닐지 몰라도 제가 개인적으로 당시의
정황에
대하여 깊은 호기심이 있어서 좀 살펴보고 싶었고, 또 제가 변변찮은
글쟁이이기도
하여서 송구하지만 작품의 소재를 발굴할까도 싶고---, 그래서
왔습니다.
사실은
선친이 사업을 하신 곳이 여기 목단강 시가 맞는지 아닌지도 잘 모릅니다만---.
동만주라는
말씀은 생전에 얼핏 들은 것 같습니다.
"Dean's
December"라고 미국의 버나드 맬러머드라는 유태계 작가가 쓴 소설이
있는데
그 대단한 작가의 표현 방식을 차용하고 싶기도 했거든요. 외람스럽지만---. ”
“그렇군요.
듣고보니 제대로 찾아오신 것 같군요. 이 곳이 바로 관동군 병참기지가 있던
곳입니다.
전투 사령부는 신경(新京), 그러니까 지금의 장춘(長春) 쪽에 있었지만 병참
사령부는
여기 목단강에 있었거든요.
제가
여기를 떠난 것이 열 살 때쯤이니까 환히 알지요.”
나는
무릎을 치고 싶었다.
내
시원찮은 글재주가 감당치 못할 거대 서사를 꿈꾸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의문 속에
있던
과거사의 한 조각이 확실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위풍당당한
원장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정신이 아주 좋은 아흔 살 가량의 조선족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얼마
전에
그 분의 아들이 찾아와서 영안 시 쪽으로 도루 모셔갔지요. 좀 일찍 오셨더라면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그 분이 참 많은 이야기들을 갖고 계셨는데요.”
“원장님은
그러니까 여기 태생이군요?”
내가
물었다.
“그럼요.
제 선친께서도 여기에서 큰 사업을 하시고 영혼 구하는 일도 하시고
그러셨지요.
열심히 일을 하신 게 꼭 친일이나 부역 쪽으로만 몰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일제 패망 후에 시기를 놓치고 나가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 어찌어찌해서 중국을
빠져나가
삼팔선을 넘고 한국으로 갔다가 캐나다로 이민을 갔지요. 여기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건 한 7-8년 됩니다. If you wanna write a story, stay here tonight.
Even
I can tell you six or more dramatic stories at least---."
그는
이제 영어로 말을 이으며 더 있다 가기를 권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와 박 기자는 오후 3시 45분 기차표를 이미 사 놓은 상태였고 거기에 맞추어
연길에
가서 할 일도 있었다.
그런
사정을 이야기하니 원장께서는 다음에라도 꼭 와서 하루 밤 자고 가라고 한다.
내가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중국을 떠나기 전에 포착할 수 있을는지는 지금도 자신이
없다.
“일제
시대에 여기에 와서 열심히 일한 자체는 이렇다 저렇다 무시기 따져내기 힘들
것임다.
김좌진 장군도 정미소 해서 독립군 군자금 충당했고, 우리 부친도 여기 경찰
서장
하시면서 독립군 많이 빼주었다 이 말임다.”
김
사장이 거침없이 대화에 끼어들었고 우리는 고난의 시대를 지나온 후예로서의
방만함을
조금 즐겼다.
“저는
전에 여기 양로원에 한번 왔었다 말임다. 친정엄마를 모실까하고---. 하지만
아직은
우리네 정서가 그렇게 헐하지 않았슴다.”
권
여사도 대화에 허심탄회하게 참여하였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마침내 이 양로원의 운영 전반에 대하여서도 한참
설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관동군이
빠져 나간다음 군수기지 사령부는 일주일 동안이나 불에 탔지요. 내 그때
기억이
생생해요. 그리고 지금 여기 양로원 건물은---.”
“이거
노래방도 있던 큰 요리 집, 식당 아이었슴둥?”
김
사장이 말을 툭 가로챘다.
“맞소.
저 산 밑쪽에 공산당 훈련원이 있어서 예전에야 잘나갔다 말이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고 경영이 엄중해져서 이 건물도 방치된 걸 내가 인수하여 고친
게요---.”
이번에는
사람들 사이에 한동안 세월 이야기가 나왔고 마침내 시계를 보며 우리는
재회를
인차 약속하고 또 인츰 기대하는 가운데 아쉽게 일어섰다.
원장
부부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밖에서 기다리던 고물 차를 다시 타고 나오는데,
박
기자가 조금 느닷없이 여기에서 “해림(海林)”이 가까우냐고 모두에게 물었다.
“왜서요?”
권여사의
응대였다.
“거기
김좌진 장군 기념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갔다 올 시간이 될까요?”
그러면서
박 기자가 얼른 해림까지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중국인 사기에게 물었더니
사기는
20분이면 된다고 하였다.
“아이구,
그 말 믿지 말기오. 야들이 20분이라면 두 시간 갖고도 앙이 되고 세 시간이나
걸려도
될가말가요---”
김
사장은 자기는 사업 때문에 더는 안 되겠다고 시내에서 내리고 우리는 권여사와
함께
해림(海林)으로 달려갔다.
김
사장은 내리면서 하여간 황구 한 마리를 잡아놓았으니 빨리 갔다 와서 점심을 때
맞추어
함께 먹어야 된다고 걱정스레 신신당부하였다.
김
사장의 걱정과 예단은 척척 맞아떨어지면서 우리가 길 따라 다시 한 고생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룹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