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교회 직원
1. 교회 직원의 역사.
1) 구약교회
구약시대 교회의 직원조직 형태는 민족교회 시대 이전까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교회 내에 특별한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지 않았고 따라서 교회 내에 어떤 형태의 조직이 세워지지 않았다. 부족 교회들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은 당연히 족장들이었다. 족장들은 부족의 영수<領首>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 지도자이며 동시에 정치적 지도자였다. 때문에 부족교회의 모든 것은 족장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되었고, 족장들이 대소사<大小事>를 계획하고 진행하고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구약시대 교회가 민족적 교회로 발전하게 되었을 때부터 교회 내에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야곱의 12부족 교회가 애굽의 고센에서 정착하는 동안 민족교회로 발전해 나가게 되었을 때 부족교회의 문제들은 부족의 족장들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것을 진행해 나갔고 부족교회 차원을 넘어서 민족교회적인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에는 각 부족의 족장들이 모여서 그 문제를 협의하여 처결하였다. 그러나 부족교회들이 크게 성장함에 따라 민족교회도 아울러 성장하였을 때 족장들이 부족교회와 민족교회를 이끌어 가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이때부터 교회 내에 직원 조직제도가 세워지게 되었다. 구약시대 교회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직원조직 형태는 장로<출3:1619:7,22; 24:1>였다. 당시의 장로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세워졌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당시 근동 일대의 부족들은 거의 대부분 장로들을 세워 족장들과 함께 부족을 이끌어 가게 하였다<창50:7;민22:7>.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명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에게는 이미 70명 이상의 장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민족교회는 이미 장로라는 직분자들을 세워 교회를 운영했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민족교회는 애굽을 떠난 후 몇 차례에 걸쳐 교회를 조직화한다.
제1차 교회조직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충고에 의하여 실시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출18:13-26> 등등의 제도이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 혼자서 이스라엘 전체 교회를 이끌어 가는 과정에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들을 지적한 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등등의 조직체계를 수립하도록 충고하였고, 모세가 그것을 받아들여 교회를 조직화한 것이다. 그러나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등등은 교회 직원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일반 사회적 직무를 행하는 자들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교회조직이나 국가적 조직이 결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도자들은 교회적 직분과 국가적, 민족적, 사회적 직분을 함께 행사하였다.
제2차 교회 조직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 제도이다<출28장>. 하나님께서는 광야교회를 건축하신 후 모세와 아론이 소속되어 있는 레위 지파를 제사장 지파로 지정하시어 교회를 이끌어가게 하셨다. 이때에 아론을 전체 제사장의 수장인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셨고 아론의 아들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등등을 일반 제사장으로 세우셨다.
제3차 교회 조직은 재판관과 유사 제도이다<신16:18>. 재판관과 유사들은 각 지파별로 세워졌는데 그것은 모세를 통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를 통하여 세워졌다. 재판관과 유사 제도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제도이지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세워진 제도이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통하여 세워진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신16:18>을 근거로 하여 12지파들에게 재판정<裁判廷>을 설립하였고 각 재판정마다 7명의 재판관을 두었으며 그들을 돕는 유사들을 세웠다. 이때의 재판관들은 장로들이었고 이 제도가 훗날 70명의 장로들로 구성된 <예루살렘 공의회-산헤드린-Sanhedrin>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 직원들 중에 실질적인 교회 직원은 제사장들이었고 그 이외의 직원들은 처음에는 교회 직무에 관여하였으나 나중에는 일반적인 차원의 민족적, 정치적, 행정적인 일들에만 종사하였다. 구약교회 시대에 교회적조직이 처음으로 세워진 것은 그들에게 10계명이 주어지고 성막교회라는 외적 형태의 종교적 구심점이 세워진 이후였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여러 계층의 제사장들을 세우셨고 또한 레위 부족들로 하여금 교회를 섬기는 직책을 담당하게 하시어 교회를 조직화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구약교회의 조직은 이스라엘이 남북 왕조로 분리된 이후까지도 계속되었다. 남왕국 유다는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 조직을 이루었고 북 왕국 이스라엘은 사마리아 성전<그리심 산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 조직을 결성하였다. 이스라엘은 비록 남북 왕조로 분리되었으나 여전히 제사장 제도 중심의 교회 조직형태를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남북 왕국이 패망하고 유대인들이 본국을 떠나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게 되었을 때의 교회 조직 형태는 그와 같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멸망하였을지라도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 본토의 국민들은 나중에 성전들이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는 나름대로의 제사장 중심적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제사장들은 레위 지파에 의하여 세습되어지던 관행이 사라지고 정치적 이유와 매관매직<賣官賣職>에 의하여 레위인 아닌 자들이 제사장이 되었다. 때문에 대제사장들이 수시로 바뀌었고 대제사장들은 재임기간 동안 권력과 결탁하여 각종 유익을 챙기기에 급급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 북 왕국 이스라엘은 정복자들의 정책에 의하여 이방인들과의 통혼<通婚>으로 전통적 신앙생활이 유명무실하였고, 따라서 제사장 제도도 같은 상황이었다. 반면에 남 왕국 유다는 아직도 여전히 제사장 제도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당시의 제사장 제도나 신앙적 형태는 이미 과거와 같지 않았다. 제사장들은 종교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관료적인 직분자였고 백성들의 신앙 역시 야훼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민족 중심의 신앙이었다.
한편 국외로 나가 흩어져 살았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제사장 중심적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고 따라서 회당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때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이끌어 가는 구심점은 회당장이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장로들이었다. 회당장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종교적, 신앙적 구심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일상생활의 모든 문제를 지도하는 정치적 행정적 지도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2) 신약교회.
예루살렘, 또는 안디옥으로부터 출발한 사도들에 의해서 교회들이 세워졌을 때, 처음에는 교회 내에 직원조직이 구성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였기 때문에 교회를 조직적으로 구성하여 관리 운영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성도들은 다만 모여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배우며 애찬식을 거행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러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는 교회를 조직적으로 운영하시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설립되자 즉시 교회에 직원들을 세우셨다. 신약 교회 최초의 직원조직은 신약시대 최초의 교회이며 유일한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예루살렘 교회에 성도들이 점차 늘어가는 가운데 교회 내에 직분자들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행6:1-6>.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은 이때에 7명<스데반,빌립,브로고로,니가노르,디몬,바메나,니골라,>의 직원들을 안수하여 세웠는데, 사도들이 교회에 직원들을 세우게 된 동기는 과부들에 대한 구제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교회에 직원들을 세우시는 역사적, 섭리적 제도에 의한 것이었다. 한편 기독교 학자들은 이때에 세워진 7명을 장로로 주장하는 자들과 집사로 주장하는 자들로 양분되는데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그들은 장로가 아닌 집사<현대 장로교회의 안수 집사>였다.
한편 초기 신약시대의 교회들은 거의 대부분 사도들을 비롯한 전도자들에 의하여 세워지고 운영되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지휘를 받았다. 이때에 사도들과 전도자들은 한곳에 계속하여 머무르지 않고 교회가 어느 정도 자립의 기틀을 갖출 정도로 성장하면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교회들을 세워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돌보았다. 때문에 교회는 그들을 <순회 사도> 또는 <순회 전도자>라고 불렀다. 순회 사도 또는 순회 전도자들이 계속하여 교회를 설립해 나감에 따라 더욱 많은 지역에 더욱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자 교회들은 순회 사도 또는 순회 전도자들의 보호로부터 차츰차츰 격조<隔阻>하게 되었다. 따라서 교회들은 자체적인 지도자를 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교회 내의 직원 조직의 필요성도 아울러 절감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곧 이루어지리라고 믿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고 성도들이 계속하여 늘어나면서 교회가 하나의 집단 사회로 성장하게 되었을 때에 교회 직원조직의 필요성은 더욱 시급하게 요구되었다. 이에 사도들은 각지 교회에 집사들과 장로들과 감독들을 세워 그들이 자체적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게 함으로서 교회가 안정을 누림과 동시에 발전하고 성장하게 하였다<딛1:5-9>.
2. 교회 직원들.
1) 구약교회.
구약교회 시대의 교회 직원들은 이미 언급한바 있듯이 제사장 중심이었다. 당시의 제사장들은 대제사장과 차석 제사장과 평 제사장의 3종류가 있었다. 그러나 구약 교회시대 말기인 왕국 교회시대 이후부터는 제사장 외에 또 다른 직분자들이 있었다. 구약시대 교회의 직분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제사장.
구약시대 제사장 제도는 모세 인도하의 광야교회 시대에 공식적으로 수립되어지지만 제사장 제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구약 성경들을 통하여 예시되어 지고 있다. 가정교회 시대에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도 제사장적 기능이 보여지고 있고 부족교회 시대에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욥, 등등의 족장들도 제사장적 직무를 행사하였다. 야곱의 12부족 교회가 애굽에 거할 때에 그들은 애굽의 종교적 제도를 본 따서 자신들의 종교에도 제사장직을 세웠다<출19:22>. 그러나 기독교의 제사장직은 인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예표 하는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창14:17-20>을 통하여 이미 예고되어져 있었다. 하나님께서 구약교회에 공식적인 제사장 제도를 세워주신 것은 모세 인도하의 광야교회 시대 때부터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10계명을 주시고 또한 성막교회를 세우시어 교회의 외적 형태를 갖추신 후에 그들에게 제사장을 세워 교회의 내적형태인 조직 체계를 갖추신 것이다. 구약교회의 제사장 제도는 대제사장, 차석 제사장, 평 제사장 등등의 3가지였는데 그중에 가장 막중한 직무를 행하며 전체 제사장직을 대표하는 것은 대제사장이었다<왕하25:18><대하31:13><느11:11>. 하나님께서 구약교회에 최초로 세우신 대제사장은 아론이었고 그 외의 제사장들도 모두 아론의 후손들로 세워졌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모든 제사장들을 아론의 반차를 따라 세우도록 명령하셨으며 따라서 모든 제사장들은 아론의 후손들이 세습하게 되었다.
(2) 장로.
구약교회에 장로 제도가 처음 세워진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교회를 더욱 조직화하였을 때이다<신16:18>. 그러나 그 당시 모세가 장로들을 교회 내에 세운 것이 아니라 이미 세워져 있던 장로들을 부족교회 또는 민족교회의 유사와 재판장으로 세운 것이었다. 당시의 장로들은 근동 일대에 산재하였던 대부분의 부족들에게 존재하는 장로들과 같은 형태의 장로들이었다. 당시 근동 일대의 장로들은 학식이나 군사적 지도력을 겸비한 경우도 물론 있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삶의 경륜이 있는 연장자들로서 부족들을 이끌어가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었고 따라서 부족들로부터 존경받고 추앙받는 지도자들이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부족들의 회의에서 추대된 존재였다. 이와 같이 야곱의 12부족 교회에 존재하고 있었던 장로들도 기름부음 받아 세워진 훗날의 장로들과는 달랐지만 그들은 이미 민족 또는 부족들을 이끌어 가는 민족적, 종교적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장로들은 사실상 교회적인 직원들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차원의 민족적, 정치적, 행정적, 지도자들이었다. 당시의 이스라엘 12부족들이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분명하였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섬김은 다만 하나의 종교적인 전통이요 신앙적인 것이었을 뿐 아직 그들에게는 기독교라는 조직적 형태의 종교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장로들은 매우 중요한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다. 모세는 특히 70인의 장로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대표하게 함으로서 민족교회로서의 조직체계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구약교회 시대에 교회적 조직이 세워지고 제사장 중심의 교회 조직체계가 이루어지게 되었을 때부터 장로들의 지도력은 일반적인 것으로 제한되어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남북 왕국이 멸망하였을 때부터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다시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의 위치로 복귀하였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정복자들이 세운 분봉왕들을 섬기게 되었지만 그들을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또한 분봉왕들과 정치적으로 결탁한 비 진리적 제사장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자신들이 추대하여 세운 장로들을 더욱 믿고 의지하였다. 때문에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백성들의 종교적, 정치적, 도덕적, 지도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여호수아시대 때부터 구성된 성읍의 7장로<재판장>제도와 그것이 발전하여 수립된 <예루살렘 공의회-산헤드린>의 구성원들은 모두 장로들이었다. 장로들의 역할은 이스라엘 남북 왕조 멸망 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더욱 중요하였다. 그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신앙적 구심체였던 회당의 지도자<회당장>로서 예배를 인도하고 율법을 가르쳤으며 백성들의 대소사를 해결해 주는 오직 유일한 종교적, 정치적, 도덕적 삶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이다.
(3) 서기관.
서기관들은 본래 교회직원으로 세워진 자들이 아니라 왕국 궁정의 사관<史官>들과 함께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는 관리들이었다. 서기관 제도는 다윗 시대에 세워졌으나 그 기원은 여호수아 시대에 세워진 재판관들의 보좌관<유사>이다. 다윗은 애굽 왕정의 관리 제도를 도입하여 왕국 관리 제도를 세웠는데 그때에 세워진 관리중 하나가 곧 서기관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국가 역사의 기록자로서의 임무와 국왕의 비서 임무를 맡았는데 이러한 직무적 특성 때문에 율법을 필사하는 임무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율법을 필사하는 임무를 수행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임무까지 행사하게 되었다. 남북 왕조가 멸망한 후 분봉왕들이 세워졌을 때부터 서기관들은 왕국 관리로서의 직무에만 충실하는 자와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나뉘어졌는데 그중에 왕국 관리들은 유대 민족들로부터 거부되어진 반면에 종교적 지도자들은 더욱 존중되었다. 종교적 지도자 위치에 있는 서기관들은 거의 대부분 레위지파 출신의 제사장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들만의 집단을 구성하여 활동하였다. 그들은 이때로부터 서기관으로 불리어지지 않고 선지자 또는 율법학자로 불리어졌는데 그중에 제1인자는 <에스라>였다. 포로기가 종료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됨에 따라 제사장 중심의 신앙생활이 복원되자 제사장들의 직무가 본격화되었고 제사장들은 더 이상 서기관<율법학자>의 직무를 겸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때로부터 제사장 계열과 율법학자 계열의 분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서기관 <율법학자>가 되기 위해서 오랫동안 율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훈련을 쌓았다. 따라서 율법학자가 되려는 자들은 어릴 때부터 율법을 공부했다. 율법학자이며 역사학자였던 요세푸스는 어릴 때부터 율법 교육을 받아 이미 14세 때에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율법학자 지원자는 교사의 개인적 가정이나 율법학교에서 수학한 후 소정의 교육과정을 거치어 그 실력을 인정받으면 보조교사<補助敎師>가 되었고 40세가 되면 안수 받은 후 정식 교사<율법학자>가 되었다. 율법학자들은 <랍비> <교법사>라는 명칭으로도 불리었으며 능력있는 자들은 학파를 형성하여 율법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 가장 유명한 율법학파는 샴마이<Shammai> 학파와 힐렐<Rabbi Hillel>학파였는데 힐렐 학파의 문하에 가말리엘이 었었고 가말리엘의 문하에 사도 바울이 있었다. 그들은 산헤드린의 회원으로도 활약했으며 지방 도시의 재판관의 직무도 수행하였다. 그들은 교회의 내적 직분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국민적인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대제사장들조차도 그들의 권위적 자문을 무시할 수 없었다.
(4) 선지자.
구약교회 시대의 중요한 직분자중 하나는 선지자<선견자>였다. 선지자들의 직무는 제사장들의 직무와는 달리 교회 내의 직무가 아니라 교회 밖의 직무이었지만 신학적인 차원에서는 오히려 제사장들보다도 더욱 중요한 직무였다. 당시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신학적, 신앙적 지도자의 역할을 겸임하였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구분할 때에 제사장들은 신앙적 지도자들인 반면에 선지자들은 신학적 지도자들이었다. 선지자들은 현재적인 상황을 선포하는 동시에 미래적인 것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선지자들은 구약교회 시대를 이끌어가는 신학적 지도자로서 제사장들보다도 오히려 더욱 중요한 직분자 들이었다. 선지자들은 사무엘 시대 이전에도 활동했지만 선지자들의 단체가 등장한 것은 사무엘시대 때부터였다. 한편 선지자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것은 남북 왕국이 분열한 이후부터였다.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엘리야, 엘리사, 미가야, 아모스, 호세아, 등등의 선지자들이 활동하였으며 남 왕국 유다에서는 이사야, 미가, 나훔, 스바냐, 하박국, 예레미야, 등등이 활동하였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시대에는 에스겔, 학개, 스가랴, 오바댜, 요엘, 말라기, 등등의 선지자들이 활동했다. <B.C. 8세기>이후 선지자들의 활동은 문서로 기록되어 구약 성경에 전승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기술선지자<記述先知者>로도 불리어진다.
한편 선지자들은 교회의 행정조직에 편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무에 있어서는 제사장들의 직무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전념하는 특별 직무를 담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은 일반 정치에 대하여서도 관여하지 않는 특별한 직무자들이었다. 세례 요한은 말라기 이후의 선지자로서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의 선지자 직무를 겸임하였다.
2) 신약교회.
(1) 신약교회 직원의 역사성.
바울 사도의 증거에 의하면 기원 1세기 말경의 교회에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다양한 직분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전12:28>
바울이 증거하는 교회 직분자의 중요함을 순서적으로 말하면 사도가 첫째요 선지자가 둘째이며 교사가 셋째이고 그 다음은 능력이고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 교회의 직분에 대한 중요성대로라면 첫째가 사도이고 둘째가 선지자이며 셋째가 교사였다.
한편 이그나티우스의 증언에 의하면 기원 2세기 초에 이르러 안디옥을 비롯한 아시아 교회들에는 집사, 장로들과 함께 왕적인 권한을 가진 감독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 당시에는 사도들이 모두 소천 하였을 때이며 선지자들의 직분도 거의 종료되었을 때였다. 따라서 교회의 교직 제도에는 사도나 선지자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고 집사나 장로나 감독들의 체제로 전환되었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당시에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나타난다. 클레멘트의 서신에 의하면 고린도 교회에는 집사와 장로의 두 직분자들이 있었는데 이때의 장로가 감독의 호칭으로도 불리어졌던 것으로 보아 장로들 중에 감독 직분을 겸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이중적 직분 제도는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통해서도 증명된다.<행20:17><빌1:1><딛1:5-7>
한편 디다케에 나타나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언급을 보면 당시에 집사, 장로, 감독, 등등의 교직자들이 교회의 전반적인 문제를 관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디다케에 나오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언급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주께 합당한 자들을 감독과 집사들로 지명하되, 온유하고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할 것이니, 이는 그들이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임무를 감당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그들이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명예를 함께 나누는 자들이니라.
따라서 성경과 역사학자들과 디다케 등등이 전하는 모든 것들을 근거로 할 때에 우리는 기원 1-2세기의 교회들이 다음과 같이 운영되어졌음을 추론하게 된다.
*사도들과 전도자들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들은 처음에는 사도들의 순회목회 하에 인도되었으나 교회들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사도들의 인도함이 격조<隔阻>하게 되었고, 따라서 자체적인 지도자<집사, 장로, 감독>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인도 관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세월이 많이 지남에 따라 사도나 전도자, 그리고 선지자들은 이제 그 임무를 다하고 소천하였으며 그들의 직분은 그들의 직무 자체가 완결되었음으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음에 따라 완전히 종료되었다. 한편 교사 직분은 그 직무가 여전히 계속됨으로 여전히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장로 또는 감독들이 교사의 직무를 이행하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별도의 존재적 의의가 없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교사라는 직분도 역시 종료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모든 교회들은 전적으로 자체 지도자들인 집사, 장로, 감독들에 의하여 운영되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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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다케.
“디다케”<Didache-12사도의 교훈> 또는 <사도들의 가르침-Teaching of the Apostles>은 명칭 그대로 12사도들의 교훈을 집대성한 책으로 알려져 왔다. 이 책은 많은 초기 교부들에 의해서 성경과 다름없이 사용되었는데 한때 사라졌다가 1883년 대주교 브리엔니오스<Archbishop Bryennios>가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1056년경의 사본으로부터 인쇄하여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디다케가 작성된 연대와 목적에 대하여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디다케에 나타나는 교회의 질서에 관한 내용을 근거로 할 때에 그것은 <A.D.70-11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사람은 디다케가 <바나바서-Epistle of Barnabas>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하여 보다 더 후대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디다케는 처음부터 교회적인 여러 가지를 종합하여 작성한 것이었다. 디다케는 기독교에 새로 입문하는 성도들을 도덕적으로 권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일부는 유대인들의 소책자인 <두 가지의 길-The Two Ways>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디다케에는 그밖에 세례의 방법과 수요일과 금요일에 행하던 금식 문제와 하루에 세 번씩 시편을 낭송하던 것과 주기도문의 정확한 형태 및 성찬식 때의 기도 등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지역 기독교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도들에 대한 것과 선지자들 및 기타 방문객들을 대접하는 문제에 대한 것이 들어 있고 마지막 부분에는 사이비 비 진리자들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반면에 디다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속죄적 죽음을 치룬 것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2) 신약교회 직원의 구분.
신약초기 기독교에서 교회 조직의 필요성에 따라 세워진 직분제도는 집사, 장로, 감독, 목사였다. 그러나 교회가 처음부터 집사와 장로와 감독과 목사를 한꺼번에 세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직분자들은 교회의 성장 발전과 아울러 함께 이루어졌던 교회 조직의 확대 과정에서 점진적, 단계적으로 세워졌다. 우리는 여기에서 신약교회 직원들을 구분하여 고찰함으로서 교회 직분자들의 본래적 의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① 사도.<使徒-αποστολος-apostolos> <αποστολη-apostole>
교회의 직원 조직을 논증함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소개해야 할 것은 당연히 사도 직분이다. 사도직은 구약교회 시대의 제사장 제도를 비롯한 모든 교직제도가 종료된 이후 교회에 최초로 세워진 교직이었다. 사도라는 직분은 <파견된 자> <사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샬리아-חילשׁ-shaliach>에서 유래된 것이고 헬라어의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ς-apostolos>와 동의어<同義語>이다. 따라서 사도라는 직분의 정확한 뜻은 <전권이 위탁된 자>이다. 사도직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요13:16>과 <히3:1>에 있다. 따라서 사도란 일정한 사명을 위해 절대적 권위자<하나님>로부터 파견된 <대표자-사자>이다. 즉, 사도는 하나님에 의해 직접 세워진 특별한 직분이었다. 따라서 사도의 권위는 매우 특별한 것으로서 여타 하나님 종들의 권위와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② 교부.
교부<敎父>는 사도<使徒>들의 직무를 직접적으로 계승하였던 자들에 대한 호칭이다. 교부들은 사도의 뒤를 계승하였다는 차원에서 <속사도-續使徒>라는 호칭으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한편 어떤 역사학자들은 속사도와 교부를 구별하기도 한다. 그들은 사도들의 직계 제자들이 사도들의 뒤를 계승하였다는 차원에서 <속사도-續使徒>라고 호칭하고 반면에 속사도들의 직계 제자들을 <교부-敎父>라고 호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속사도와 교부의 호칭은 사도 이후 초기 신약교회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으로 사용되어졌다. 신약교회 초기 시대에 사도들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들은 사도들에 의하여 임명된 교회 지도자들이 사도들의 직계 제자로서 사도들의 직무를 계승하였기 때문에 <사도-속사도-교부> 등등으로 계승되는 교회적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반면에 사도들에 의하여 세워지지 아니하고 다양한 전도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들은 사도들을 전혀 알지 못하고 다만 전도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지도자들에 의하여 인도되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교회적 전통이 세워지지 못했다.
사도 이후 초기 신약교회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사도들을 계승하였다는 차원에서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내세웠다. 특히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의 교부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사도의 권위와 동일한 것으로 선포하였고 서방교회는 로마 감독의 권위를 사도적 권위와 동일한 것으로 주장하여 로마의 감독을 교황의 지위에 추대하였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사도들의 권위와 교부들의 권위를 구별하였으며 특히 로마 교황의 사도적 권위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이 거부한 것은 교황과 교부들의 비 진리적 권위 즉, 그들의 권력적 권위였다. 개혁주의자들은 교부들과 교황이 사도들의 권위를 내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교회와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교부들의 사명적 권위는 오히려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들은 교부들의 사명적 권위가 사도들의 사명적 권위를 계승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권위는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서 교부들의 사명에 대한 아름다운 권위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③ 집사.
사도 직분 이외에 교회에 처음 세워진 직분은 집사였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던 교회에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교회 내에 직원들을 세움으로서 교회를 조직화하였다. 그 첫 번째 조직은 예루살렘 교회를 통하여 세워진 7집사이다<행6:1-6>. 사도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7명의 집사를 세운 것은 구약교회 시대의 <성읍의 7장로> 제도를 계승한 것이었다.
당시에 로마교회나 소아시아 교회들은 기원 3-4세기 경까지 7집사 제도를 존중하였다. 교회가 처음에 집사들을 세운 것은 장로 후보생을 전제로 하여 선출한 것이 아니었다. 교회들은 다만 교회 조직의 필요성과 교회 사명 완수의 필요성에 의하여 집사들을 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집사들은 자연스럽게 장로들에 대한 후보의 위치를 지켜 나갔다. 기원 4세기에 이르기까지 집사들은 순차적인 승진을 거쳐서 장로나 감독의 지위에 올랐고 이러한 관행은 교회의 질서와 전통이 되었다. 그러나 집사들 중에는 장로나 감독으로 승진되지 않고 종신적 집사로 일한 경우도 많았다. 로마와 같이 큰 교회에서는 집사 직분이 매우 중요하였다. 로마 교회들의 집사 직분은 지방의 작은 교회 장로들보다 더욱 권위가 있었다. 한편 교회가 커지고 집사들이 많이 세워지게 됨에 따라 집사직에도 차등이 있게 되었다. 집사직 제도의 차등이 기록상의 문헌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기원 4세기 초 북아프리카 교회에서였다. 북아프리카 교회 역사에는 집사직이 평집사<평집事>와 대집사<大執事>로 구분되어 나타나는데 대집사는 집사장<Archdeacon>으로도 명칭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이러한 집사 직분 제도는 북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에서도 시행되어졌다. 기원 4세기 경 교회의 대집사, 또는 집사장들은 교회의 행정적, 재정적, 책임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장차 장로 또는 감독으로 승차되었다. 그들은 서열상으로는 현대교회의 안수집사와 같은 위치에 있었으나 직무는 오히려 현대교회의 장로들보다도 권위 있고 막중하였다. 당시에는 장로 또는 감독들이 대부분 현대 교회의 목사와 같은 직무를 행하였고 따라서 대집사, 또는 집사장들이 현대교회의 장로직무를 행하였던 것이다. 일반 집사<평집사>에는 여자 집사들도 세워졌는데 그들은 예배의식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구제를 비롯한 교회행사에만 봉사하였다.
한편 집사들로 인한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초기 신약교회는 거의 대부분 장로와 감독들에 의하여 인도되었고 집사들은 감독과 장로들을 보좌하였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집사들이 감독이나 장로들이 하는 직무에 사용되어지기도 하였다. 저스틴 마터의 기록에 의하면 <A.D.150년경> 로마에서는 집사들이 투옥당한 성도들이나 부상, 또는 노환 등등으로 인하여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한 성도들에게 감독이나 장로들이 교회에서 집례한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를 갖다 주어 그들이 성찬식에 참여하게 해주었으며 일부 교회에서는 집사들이 예배 때에 복음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또한 기원 3세기 경에 이르러 성도들이 증가하게 되자 북아프리카 교회에서는 성찬식 때 집사들이 잔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집사들은 또한 장로나 감독들의 명을 받아 교회로부터 먼 지역에 있는 성도들을 심방하여 돌보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집사들의 비 진리적 직무가 성행하기도 했는데 일부 집사들이 장로나 감독의 지휘를 받지 않고 임의로 성찬식을 거행하거나 또는 심방하면서 설교를 하거나 함부로 안수 기도하는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일부 교회들에게 문제가 발생하였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전체 교회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교회는 더 이상 그 문제를 방관하지 않고 교회회의<아를르 회의-A.D.314년> <니케아 회의-A.D.325년>를 열어 집사들의 그러한 활동들을 정지시켰다. 그리하여 예배를 인도하는 일이나 성찬식을 거행하는 임무는 전적으로 장로와 감독들이 맡아 수행하였다.
④ 장로.
신약교회 시대의 장로들은 구약교회 시대의 장로들과 달랐다. 신약교회 초기의 장로들은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하나는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어 갔던 장로들<행11:30; 15:2>이었고, 다른 또 하나는 각 교회들이 세운 장로들이었다. 바울은 교회마다 장로들을 세웠다<행14:23>. 그들은 한 지방 교회의 감독으로서<딛1:5> 신자들의 영적 생활을 지도했고 회중을 가르쳤다<딤전3:1-5><딛1:9><약5:14><벧전5:1-4>. 당시에 한 지방의 교회에는 몇 명의 장로<행11:30> 또는 감독<빌1:1>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안수받아 임직된 정규의 교사들이었고 목사들이었다<딤전4:14>. 당시의 장로들은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하였는데<딤전5:17-> 칼빈은 이것을 근거로 하여 두 종류의 장로 제도를 수립하였다. 칼빈은 두 종류의 장로 중에 가르치는 장로를 목사로 세우고 다스리는 장로를 현대교회의 장로로 세웠던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는 24장로가 소개되는데 신학자들은 그것을 구약교회의 12지파와 신약교회의 12사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⑤ 감독.<監督-superintendent>. 주교<主敎-bishop>
예루살렘 교회에는 처음부터 교회의 수장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베드로가 수장이었다가 베드로가 교회를 떠나게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인 야고보가 그 직분을 계승했고 야고보가 순교한 후에도 또 다른 자들이 그 직분을 계승하였다. 이그나티우스의 기록 문서들을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도 이러한 교회 직분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사도들이 퇴진한 이후, 초기 기독교 지교회의 수장들은 처음에는 장로들이었으나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감독들이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감독 또는 주교라는 직분은 헬라어<에피스코포스-επιςκοπος>를 직역한 단어적 명칭이다. 이 직분은 장로와 동일시되는 직분자들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직분은 거의 장로들에게 사용되었으며 신약 성경에서 이 직분은 교회의 목회자들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초기 시대의 초창기에는 교회에 감독이라는 직분 제도가 없었으며 교회에 대한 감독권은 오직 사도들에게만 있었다. 그러나 <A.D. 1세기 말>에 이르러 사도들이 모두 소천<所天>하고 교부들이 교회들을 인도하게 되었을 때부터 교회는 자체적인 운영을 해야만 하였다. 사도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가 없었던 당시의 교회들은 어떤 하나의 특정적 지도자에 의해서 운영되어지지 못했고 따라서 여러 명의 지도자들을 통하여 운영되어지게 되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교회는 점차 조직화 되어갔다. 이때에 교회들은 집사, 장로, 감독들을 세워 교회를 조직화하였는데 초창기에는 장로와 감독간의 뚜렷한 구분이 없었다<딤전3:2><딛1:7>. 그러나 사도들이 없는 상태에서 로마 제국의 극심한 탄압과 각종 이단주의자들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려야 했던 교회들은 강력한 지도자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따라서 감독들을 세우게 되었다. 감독제도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 의하여 시행되었다. 첫째 여러 명의 장로들 가운데 수석 장로를 세워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때에 교회들 간에 서신을 주고받아야 할 경우라던가 또는 교회회의에 대표를 파견해야 한다던가 하는 등등의 대외적인 문제와 또한 교회안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때에 교회 안의 중지<衆智>를 모아야 할 필요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교회들은 교회를 대표하는 직위를 가지고 교회를 일사분란하게 이끌어 가야할 대표적 지도자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둘째 영지주의를 비롯한 각종 이단자들이 범람함에 따라 교회의 통일된 권위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어졌다. 따라서 개 교회들을 대표하는 권위적 지도자와 지역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권위적 지도자와 기독교 전체를 대표하는 권위적 지도자들이 요구되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의 이유들로 인하여 지교회들이 감독들을 세우게 되었다. 이때로부터 감독들은 교회를 더욱 조직화하여 지방감독 제도와 대감독 제도<교구 감독제>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하여 감독들로 하여금 개 교회를 감독하게 하는 동시에 지방교회들을 아울러 감독할 수 있게 하였다. 이로서 교회에는 집사-장로-감독의 교직제도가 수립되었고 감독은 다시 개 교회 감독-지방교회 감독<교구 감독>-대교구 감독의 단계적 권위를 갖게 된 것이다. 이때로부터 감독들은 각급 교회들의 수장<首長>들이 되어 교회들의 대소사를 처결하게 되었다. 당시 대교구는 로마, 안디옥, 알렉산드리아의 세 교구였다.
초기 신약교회 시대에 감독직이 장로들과 같은 직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로들의 권한위의 직무를 행사하였던 것은 이와 같은 교회의 조직체계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감독들은 대부분 존경받는 장로들 중에서 선출되었고 교회의 확장과 발전에 따라 더욱 강력한 권위를 갖게 되었다. 각종 교회회의들은 감독들에 의해서만 소집되었고 운영되었으며 때때로 장로들이 교회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으나 그들에게는 대표권이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다만 감독들의 수행원이나 또는 참관인의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당시의 감독들은 개별적인 행동들에 대하여 절대적인 자유를 누렸으며 각 교회들은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감독들을 선출하였다. 때문에 감독들은 자신들의 임지를 마음대로 결정하여 옮겼으며 새로운 감독을 선출할 때에도 독단적으로 감독을 임명하여 세우거나 또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때문에 감독들의 권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으며 상대적으로 비 진리적 관행들이 속출하였다. <A.D.325년>에 열린 니케아 회의에서는 이러한 비 진리적 관행들을 근절시키기 위하여 감독들이 다른 교구로 옮겨가는 것을 법으로 규제하였으며 새로운 감독들은 그 지역 교구의 모든 감독들의 결정에 의하여 세워지도록 하되 최소한 3명 이상의 감독들의 추천과 결정에 의하여 감독이 세워지도록 하였다. 그리고 아울러 각 지방의 행정수도에 소재한 대교구<大敎區-또는 대주교구-大主敎區>의 대감독<大監督-또는 대주교-大主敎>들에게는 다른 감독들의 임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규는 대교구 감독들의 권위를 더욱 높인 결과를 초래하여 또 다른 비 진리적 폐해들을 양산하게 하였다. 종교개혁 시대에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루터파 교회들은 주교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감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로마 카토릭 교회가 사용하는 주교라는 명칭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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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들의 권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게 되었을 때 감독들로 인하여 비 진리적 만행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당시의 감독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는 것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A.D.?-98/117>였다.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는 감독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카토릭 교회(보편적 교회) 하나 밖에 없으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려면 누구나 반드시 교회에 소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감독은 사도의 계승자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서 선택받은 사람이며 실제로 제사장과 같은 존재이다. 감독은 지상교회를 이끌어 가는 하나님의 대표자이며 천국에 대응하는 지상의 그림자이므로 성도들은 주님을 대하듯 감독들을 대해야 한다. 성례전을 집전하는 중대한 직무는 오직 감독들에게만 주어진 고유적 권한이며 따라서 교회 밖에서 행하는 어떤 성례전도 무효이다. 교회의 모든 결정권은 오직 감독들에게만 있으며<마16:18>,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감독들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감독들에게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감독들의 결정에 불순종하는 분파주의자들은 이단이며 그들을 따르는 자들도 모두 저주받을 사단의 수하들이다.>
이러한 그의 교회론은 어거스틴에게 그대로 전수되어서 보다 확고한 서방교회의 감독정치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고 그것이 더욱 발전되어 훗날에 교황정치 체제를 이루는 발판이 되었다.
감독들의 이러한 오류적 주장들은 결국 교회를 교권주의적 행정체제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교권주의적 행정 체제하에서의 교회들은 교권주의자들의 독재와 만행의 통치로 연계되어졌다. 교회는 드디어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교권주의자들의 교회로 전락되어져 갔던 것이다,
⑥ 목사.
신약성경에 목사라는 직분적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엡4:11>이다. 그리고 목사에 대한 성경의 증거는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또한 오직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목사라는 직분은 이미 <목자> <목양자> 등등을 통하여 예표 되어진 교회의 지도자였다. 목사라는 직분을 교회에 도입한 개혁주의자들은 <목자> <목양자> 등등에서 목사의 직분을 찾음과 동시에 <딤전4:14><딤전5:17->에 나타나는 두 종류의 장로 중에 가르치는 장로를 목사의 근원으로 세운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체계적인 조직을 요구하게 됨과 동시에 전문적인 지도자들을 또한 요구하게 되었을 때부터 가르치는 장로<목사>와 치리하는 장로<현행의 장로>들로 구별되어졌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성경적 원리에 의하여 개혁주의 교회들은 목사와 장로를 같은 반열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초기 개혁주의 시대의 교회들은 목사와 장로를 같은 반열에서 존중하였으며 목사들은 <행6:1-6>을 근거로 하여 오직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과 성도들을 위한 기도에 전념하는 목회 전문의 사역을 하였고 장로들은 교회 운영의 전반적인 사항을 돌보는 치리하는 사역을 전문적으로 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되었다.
3. 교회 직원들의 선출 역사.
1) 구약교회.
구약 교회 시대의 교회 직분자들은 거의 임명제이거나 또는 세습제였다. 민족교회 시대 이전까지의 구약교회 지도자들은 족장들이었으며 따라서 그때까지의 교회 지도자는 당연히 족장들에 의한 세습제였다. 민족교회 시대에 이르러 교회가 크게 성장했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족장들이 연합하여 교회를 이끌어갔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모세시대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모세시대의 광야교회로부터 제사장 제도가 수립되어지고 장로들의 역할이 크게 신장되어짐에 따라 교회 지도자들의 역할도 아울러 크게 신장되었다. 이때에 제사장 제도는 레위 지파에 의한 세습제였고 장로들은 임명제였다. 모세는 70 장로들을 세워 민족교회를 인도하게 하였는데<민11:16>, 그 역시 족장들 중에서 선발되어졌기 때문에 세습제와 임명제의 연합이었다. 구약교회의 직분자들에 대한 선출방법은 신약교회 시대 이전까지 그대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남북 왕조의 패망 후 정복자들에 의한 분봉 왕 제도가 실시되었을 때에 제사장이나 장로들의 전통적 선출 방법이 무시되었다. 레위지파 아닌 자들이 금품으로 왕을 매수하여 제사장이 되는가 하면 정치적 이유에 의하여 왕들의 측근들이 제사장이 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장로들조차도 족장들의 반열에서 세습되어지지 않고 재력과 권력에 의하여 장로가 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특히 장로들의 정치적, 종교적, 기관이었던 <산헤드린> 의회가 명예와 권력을 행사하게 되자 산헤드린 회원이 되기 위하여 많은 비 진리적 행위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2) 신약교회.
신약교회 시대 최초의 교회직원이었던 사도들과 전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임명하였다. 바울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임명하여 세운 사도였다. 반면에 사도 이후의 교회 직분자들은 사도들에 의하여 세워지거나 또는 속사도 및 교부들에 의하여 세워졌다. 초기 신약교회 시대의 집사, 장로, 감독들은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되었다. 성경은 교회의 직분자들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에 처음으로 집사들이 세워졌던 <행6:1-6> 경위를 근거로 할 때에 그리고 사도 바울이 집사와 장로와 감독들에 대한 자격을 명시한 <딤전3:1-13>을 근거로 할 때에 초기 신약교회의 교회 직분자들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장로와 감독들의 선출은 성직자들과 일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선출했으며 전체의 만장일치 찬성에 의하여 선출하였고 선출이나 임직식은 주일날에 거행하였다.
그러나 교회 직분자들의 권위와 권력이 점차 강화되어지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특히 교회에 감독의 직분이 세워지고 그들에게 교회 지휘에 대한 전반적인 권한이 주어졌을 때, 그리하여 감독들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었을 때부터 교회 직분자들의 선출 문제에 이상 기류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감독들은 집사나 장로들을 세움에 있어서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들을 위주로 하였으며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을 제외시켰다. 그들은 또한 새로운 감독을 선출할 때에도 독단적으로 감독을 임명하여 세우거나 또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리하여 교회 직분을 받기 위해서 감독들의 눈치를 보거나 감독들의 비위를 맞추는 자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교회 직분자들을 선출함에 있어서 황제를 비롯한 정치 권력자들의 비 진리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황제와 정치 권력자들은 교회 직분자, 특히 감독들을 세우는 일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기중심의 사람들을 교회 직분자로 세웠던 것이다. 기원 4세기 경에 이르러 황제들이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 내분이 있는 교회들이나 큰 도시 교회의 중요한 감독들은 황제가 임명하는 제도를 신설하였다. 그러나 때때로 황제의 감독 임명이 편파적인 것이 됨으로 교회 내에 더 큰 갈등과 내분을 야기시켰고 그로 인하여 교회의 갈등과 혼란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3) 교회 직분자들에 대한 안수.
교회 직분자들을 세울 때에는 안수례<按手禮>가 거행되었다.
안수례에 대한 역사적 증언은 히폴리투스<Hippolytus:A.D.200?-220>의 저작인 <사도의 전통-Apostolic Tradition>을 통하여 전승되어진다. <사도의 전통>에는 성경 이외의 안수식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들어 있는데 그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집사 안수.
집사에 대한 안수에는 장로들이 동참하지 않고 감독 혼자만이 안수하였다. <사도의 전통>은 그 이유를 <집사들은 사제직분으로 안수 받는 것이 아니라 감독을 보좌하는 직분으로 안수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 장로 안수.
장로에 대한 안수에는 장로들과 감독들이 함께 동참하였다. 당시에 교회에서 장로 안수식이 있을 때에는 타 교회의 장로들과 감독들도 초청되어서 함께 안수하기도 하였다.
(3) 감독 안수.
처음으로 감독이 세워지게 되어 감독을 안수하여 세울 때에는 장로들이 안수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 감독을 안수하여 세울 때에는 장로들과 감독들이 함께 안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감독들이 많아지게 되었을 때에 장로가 감독을 안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감독들의 권위를 강화하려는 감독들에 의하여 제기되었는데 물론 장로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았다. 감독에 대한 장로 안수 문제는 로마 카토릭 교회가 교황권을 포함한 교직자 제도를 크게 강화하기 전까지는 종전대로 유지되어 장로와 감독들이 함께 감독을 안수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는 3세기 경까지 장로와 감독들이 함께 감독을 안수하였다. 한편 로마교회에서는 감독을 세울 때에 자체적으로 안수하지 아니하고 타 교회에서 감독들을 초청하여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감독들을 안수하게 하였다.
4. 직원의 위치와 권위.
교회 직원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하나님 나라의 직원이며 하나님에 의하여 관리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따라서 그 직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직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귀와 영광과 명예>의 권위와 권세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직원들에게는 직분적 우열이나 서열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고유한 은사와 사명이 있으며 그 은사와 사명을 통하여 하나님께 부여 받은 직무를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무를 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직원들과 <연합하여 선을 이루는-요8 : 28>것이다. 따라서 아무도 그들을 홀대하거나 무시할 수 없으며,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최고의 예우와 최대의 존경과 최상의 섬김을 받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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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다수의 교회들이 이와 같은 진리를 외면하고 교회 직원들을 계급적으로 분류하여 담임목사를 최고의 자리에 앉히고 동역하는 목사들과 강도사, 전도사들을 담임목사의 부하 직원으로 만들며, 또한 장로와 권사들을 목사를 보좌하는 보좌관으로 취급하고 있는바 그것은 참으로 야단맞아 마땅한 행악이다. 심지어 어떤 부흥강사 목사는 <목사가 가는 천국과 장로가 가는 천국이 같은 줄로 아느냐?>고 호통을 치는가 하면, 같은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들이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들을 무시하고 경시하기까지 하는데, 그것은 참으로 자신의 신학적 무지를 스스로 들어내는 한심한 작태들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실한 모든 종들을 전혀 구별하지 않고, 오직 <착하고 충성된 종-마25 : 23>으로 예우하고 있으며 그들의 사역에 대하여 크고 작은 것, 많고 적은 것을 구별 하지 않고, 다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마25 : 23>고 칭찬하면서 그를 높이시고 예우하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선포하고 증거 한다. 이렇듯 성경이 증거 하는 바와 같이 교회의 직원들은 하나님의 종이지 목사의 부하가 아니며, 그들은 모두가 같은 반열<하나님의 종의 반열>에 위치함으로서 우열이 없으며, 그들의 권위와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것으로 우열도 있을 수 없다. 교회의 모든 직원들은 동등한 예우를 받으며 동등한 존경을 받으며 동등한 섬김을 받아야한다. 따라서 호칭부터 바로 정립하여야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동역하는 목사들을 <부목사> 또는 <부교역자>로 호칭하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호칭 앞에 <부>라는 용어가 붙을 이유가 없다. 그들은 다만 그들의 직책과 직무에 맞는 명칭으로 호칭되어야한다.
5. 직원의 자격.
교회 직원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일반 사회가 요구하는 자격들로부터 자유 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는 신체적인 결함까지 제한적 요소가 되었지만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 : 32>의 원리에 의하여 자격에 대한 일반적인 구속력이나 제한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직원들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보다 더욱 강하고 엄격한 구속력과 제한성을 받게 된다. 성경 <딤전 3장>은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자격을 요구한다.
1) 신학적인 온전성을 갖추어야 한다.
교회 직원들은 먼저 신학적으로 온전하여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서 진리와 비 진리를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하며, 특히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를 정확하게 정립하여야한다. 자신의 사명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할지라도 신앙의 선배로서 특히 초신 자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정도의 신학적 온전함을 갖추어야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신학적인 개념이 바로 정립되어져 있어야한다. 하나님 앞에 자신은 어떤 존재이며 <가정, 교회, 이웃, 직장, 사회, 민족, 국가> 등등에 대한 자신의 존재와 그것에 대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신학적 차원에서 바로 정립하여 자신의 신분에 합당한 신학적 삶을 살수 있도록 하여야한다.
2) 신앙적인 온전성을 갖추어야한다.
교회 직원들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이 정립되어져 있어야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신앙이 있어야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하거나 절망하는 일이 없이 항상 범사에 감사하고, 범사에 만족하고, 범사에 행복하고, 범사에 평안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보다는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고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신앙의 온전성을 갖추어야하는 것이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의 온전성을 갖추어야하며 교회적,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인 제반 법규와 질서<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들을 준수하여 타의 모범이 되고 규범이 되는 신앙의 온전성을 갖추어야한다. 교회 직원의 신앙은 반드시 실천적인 신앙이어야 한다. 가정, 교회, 직장, 사회 등등 자신이 소속된 영역에서 어떤 경우에나 누구에게나 교회 직원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실천 신앙적 삶을 살아, 그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기뻐하심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자가 되어야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직원들의 신앙이 이중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데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 <교회 내>적인 것과 <교회 외>적인 것으로 구분되어지며, 그 정도의 차이가 심지어는 극과 극의 교차를 이루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특히 교회 직원>들의 삶은 이중적일 수가 없다. <교회 내>적인 것과 <교회 외>적인 것의 구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교회 직원들의 삶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오직 동일하여야 한다.
3) 인격적인 온전성을 갖추어야한다.
교회 직원의 신학과 실천 신앙적 삶은 당연히 내면적으로 다져져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자연스럽게 외면적으로 표출될 수 있어야한다.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까지도 세련되고 품위가 있어야하며 그야말로 멋이 있어야한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반면에 강하고 담대하여야하며 차분하고 여유가 있되 결단성과 추진력이 있어야하고 사랑과 자비가 넘치되 의와 진리를 위해서는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기개가 넘쳐야한다. 교회 직원에게 이와 같은 인격이 요구되는 것은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증거 되고, 선포되기 때문이다.
4) 사명 완수를 위하여 노력하는 자이어야 한다.
교회 직원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는 자이어야 한다. 사명 완수를 위하여 자신에게 부여된 은사를 끊임없이 계발하고 항상 쉬지 않고 기도하며 말씀에 정진하는, 사명자로서의 노력적 삶을 살아야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자를 기뻐하시지 아니하시며,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소홀히 여기는 자를 준엄하게 책망하신다<마25 : 14-30>.
6. 직원의 사명 완수.
교회의 직원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다양한 사명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사명은 다양하지만 사명을 완수하는 원리는 동일하다. 교회 직원의 사명 완수에 있어서 반드시 유념해야할 몇 가지를 고찰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교회 직원은 하나님의 섭리를 위하여 세움 받은 하나님의 종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보다 그 신분이 우선 할 수 없다.
교회 직원들 중에 하나님의 섭리보다 자신의 신분에 대한 자존심과 명예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를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종>의 도<道>에서 떨어져나간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고 포기하여야한다. 성경은 이와 같은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증거하고 선포한다<빌2 : 5-8>.
2) 교회 직원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세움 받은 하나님의 종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보다 종의 입장이 우선 할 수 없다.
교회 직원들 중에 하나님의 교회보다 자신의 입장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이와 같은 개념은 마치 자신을 위하여 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착각하는 것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다. 교회 직원을 위하여 교회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하여 교회 직원이 세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직원은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바치고 자신을 포기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적인 사명을 완수하여야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자신의 입장보다 아버지의 입장을 더욱 귀히 여겼다<마26 : 42>.
3) 교회 직원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세움 받은 하나님의 종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보다 종의 입장이 우선할 수 없다.
교회 직원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 세워진 존재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세워진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교회에 직원들을 세우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섬김의 정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진리는 <종>과 <자녀>의 신분의 차이에서 명백하게 증거 된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 받은 <상속자>이고, 교회 직원은 그 상속자들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세워진 <종>이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섬김의 정도를 가르치셨고<요13 : 4-5>,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마25 : 35-40>.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 직원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모르고 오직 섬김을 받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는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없다. 성경은 섬길 줄 모르고 섬김 받기만을 즐거워하는 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 한다 <저희는 이미 자기상을 받았느니라.-마6 : 16>
4) 교회 직원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위하여 세움 받은 하나님의 섭리적 도구이다. 따라서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드려야한다.
교회 직원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기뻐하심을 위하여 사용되어지는 도구이다. 도구에게는 도구로서의 역할만 강조되어질 뿐 그에게 어떤 칭찬이나 감사나 사례가 돌아가지 않는다. 비록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푸실지라도 <종>은 다만 도구의 위치를 철저하게 고수하여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모든 영광을 오직 아버지께 드림으로서 이와 같은 진리<종의 위치 고수>를 몸소 이행하셨다. 오늘날 많은 교회 직원들이 이와 같은 진리를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셔야할 온갖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고 있는바,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것으로서 정죄 받아 마땅한 행악이다. 교회 직원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아름다운 결과는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고, 불미스러운 결과들은 자신의 실책으로 돌리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요 자신은 겸손한 하나님의 도구의 위치를 고수하여야한다.
5) 교회 직원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세움 받은 하나님의 종이다. 따라서 오직 하나님의 법에 근거하여 맡은바 사명을 완수하여야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의는 불의를 싫어하며 그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필연성을 갖는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의는 오직 정의<正義>와 준법<遵法>만을 요구한다. 성경은 이와 같은 사실을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딤후2 : 5>이라고 경고하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 : 23>고 호령하신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제목 하에 온갖 불의, 불법, 탈법, 편법, 위법을 자행하고 있는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자 는 이러한 불법을 오히려 미화 하여 <꿩 잡는 것이 매다 > 라고주장하면서 결과만 좋으면 되었지 방법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 고 한다. 그러나 꿩을 잡아도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먹을 수 도 없고 박제를 만들 수 도 없게 꿩을 잡는다면 그것은 차라리 잡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낳다. 불의, 불법, 탈법, 편법, 위법으로 이루어진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 저들이 하나님의 법대로 일하지 않고 온갖 불의한 일들과 권모술수를 동원하는 것은 물론 신학 부족에서 비롯되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멀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자랑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법까지 무시하고 외면하는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다.
6) 교회 직원은 다투거나 혈기를 부려서는 안 된다.
교회 직원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다투거나 혈기를 부려서는 안 된다. 비록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고 진리이며 따라서 자신의 주장대로 하지 아니하면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언성을 높인다거나 혈기를 부린다거나 다투어서는 안 된다. 비 진리적 사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서되 온유하고 논리적이며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여 주어진 법과 질서 하에서 끝까지 비 진리에 대항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진리가 채택되고 진리가 거부되면 남은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조용히 물러나야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지 않게 하는 일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만약에 <정의에 불타는 사명감에 의해서> 혈기를 부리거나 어떤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다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 결론은 언제나 하나님께 맡겨야한다. 그리하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들의 욕심을 책망하실 것이며 비 진리 자 들의 일시적인 승리를 오히려 부끄럽게 하실 것이다.
7. 직원의 전출.
교회 직원들이 전출하게 될 때에 교회는 그들에 관한 행정일체를 전출하는 교회에 보내주어야 하며, 교회 직원을 맞아들이는 교회에서는 전임 교회에서의 그의 직분을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 교회 직원은 <비록 담임목사에 의하여 임명된 경우라 할지라도> 그 직분의 본래 임명 자 는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하나님의 종들을 당연히 받아들여야한다. 교회에게는 하나님의 종들을 받아들이느냐? 또는 거부하느냐? 하는 결정권이 없다. 교회에게는 하나님의 종들을 받아들여야하는 의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이비 또는 이단>에서 받은 직분이나 또는 정상적인 기독교 교회에서 받은 직분이라 할지라도 불법적으로 받은 경우에는 교회가 그것을 심사하여 거부해야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이와 같은 원리를 무시하고 적법 절차를 밟아 하나님께 임명받은 하나님의 종들을 거부하고 무시하는가 하면, 오히려 불법적으로 <하나님과 관계없이> 직분을 받아 행세하는 자들을 교회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경우들이 허다한바, 참으로 괴이한 일이라 아니할 수없다.
8. 현대교회 직원.
1) 직원의 종류.
현대교회 직원은 교파와 교단에 따라 다르나 대부분의 경우 목사, 강도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등등이며 집사는 안수집사와 평집사<서리집사>로 구분된다. 그중에 목사, 강도사, 전도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항존직으로서 노회 소속이다. 평집사<서리집사>는 교회 소속으로서 임기는 1년이다.
2) 직원의 선출.
현대교회 직원선출 방법은 직분에 따라 다르다. 장로교회를 기준으로 할 때에 목사는 목회자로서 정규 신학과정을 이수한 후에 노회의 시험과 인준을 거친 후 노회 주관 하에 안수 받아 장립된다. 강도사, 전도사는 정규 신학과정을 이수한 후에 노회의 시험과 인준을 거친 후 노회 주관 하에 안수 받아 장립되지 않고 임명된다. 장로, 안수 집사는 남자에 국한되며 공동회의<교회총회>를 통하여 선출하고 노회의 시험과 인준을 거친 후 노회 주관 하에 안수 받아 장립된다. 반면에 권사는 여자에 국한되며 공동회의<교회총회>를 통하여 선출한 후 노회로부터 임명받아 세워진다. 평집사<서리집사>는 당회에서 심사하여 임명한다. 장로와 안수집사가 남자로 제한되는 것과 권사가 안수 받아 장립되지 않고 임명되는 것은 기독교 역사에 여자가 안수 받아 장립되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직원 제도는 근래에 이르러 크게 바뀌었다. 최근의 어떤 교단에서는 권사를 세울 때에 안수하여 세우고 있다.
9. 현대교회의 직원 선출에 대한 오류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교회의 직원 선출과정에서 심한 비 진리와 오류적인 관행들을 계속하고 있는바 그중에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들은 디음과 같다.
1) 장로, 권사 선출.
(1) 선출과정.
① 정책적 오류.
장로와 권사를 선출하는 과정에 교회적인 정책이 적용되는 경우가 있는바 그중에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A. 교회건축을 비롯한 교회의 각종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정책적 차원에서 장로와 권사들을 세우는 경우.
B.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적 권세와 권위를 도모하기 위하여 측근들을 장로와 권사로 세우는 경우.
C. 성도들이 목사의 파행과 전횡을 막기 위하여 바른말 하는 자들을 장로와 권사로 세우는 경우.
② 목회자들의 농간.
장로와 권사를 선출하는 과정에 목회자들이 농간을 부리는 경우가 있다. 현대교회 목사들 중에 많은 자들이 교회에 장로나 권사를 세움에 있어서 자신의 측근들 위주로 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이나 비협조적인 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목사들은 자신의 목회에 어려움을 준다고 하여 아예 장로들을 세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부 목사들 중에는 목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교회에 장로들을 세울 수 있으나 목사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교회에 장로들을 안 세울 수 있다는 자체적인 규약까지 세워서 장로들을 세우지 않고 있는 경우들도 허다하다.
이러한 목사들의 만행이 교파적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시행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교단<침례교>에서는 장로들이 목사의 목회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장로 제도를 아예 폐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장로제 폐지에 대한 자신들의 내면적인 이유를 감추고 장로 직분에 대한 성경의 해석을 근거로 제시한다. 저들은 성경에 나오는 장로와 감독과 목사를 목사, 한 사람에 대한 다양한 호칭이라고 주장한다. 저들은 목사가 곧 장로요 감독이기 때문에 교회에 장로를 세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장로 직분에 대한 유권해석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저들의 주장이 사실은 장로들을 세우지 아니하려는 거짓된 주장이라는 사실을 그들 자신도 분명하게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의 교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들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증명된다. 저들은 교회의 장로제도가 비성경적이기 때문에 장로를 세울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들의 교회에 장로 직분자들을 존재하게 함으로서 스스로 자기 모순을 입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침례교회에서는 장로를 세우기도 한다. 저들이 장로 직분을 불법이라고 하면서도 장로들의 전입을 허용하거나 심지어는 교단법을 어기면서까지 장로들을 세우는 이유는 불을 보듯 뻔하다. 장로들이 내는 거액의 헌금과 장로들로 인한 교세의 확장 때문이다. 한편 어떤 목사는 자신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장로와 권사를 세우고자 할 때에 문제 있는 자들을 의도적으로 장로와 권사로 세워 교회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2) 금품의 요구.
장로와 권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금액의 헌금이 요구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장로와 권사로 세움 받은 자들은 교회가 <묵시적으로> 지정하는 일정액을 교회에 헌금하는데 그것은 거의 강제적이다. 어떤 교단에서는 장로와 권사로 추대되었으나 교회가 지정해주는 헌금을 하지 않는 경우 그들을 장로와 권사로 세우지 않는다.
(3) 안수문제.
초기 신약교회는 장로와 집사를 안수할 때에 장로들이 그 직무를 행사하였다. 그러나 로마 카토릭주의자들은 교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하여 장로들의 안수를 크게 제한하였다. 감독<현재의 목사>과 장로는 장로와 안수 집사를 안수할 수는 있으나 장로는 감독을 안수할수 없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개혁주의자들에 의하여 시정되었다. 그러나 현대 목사들 중 일부는 목사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목사와 장로는 장로를 안수할 수 있으나 장로는 장로와 안수 집사는 안수할 수 있는 반면에 목사는 안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들이 이와 같은 규례를 만들은 것은 목사들의 권위를 장로들의 권위위에 두고자 한 것이다. 저들은 목사와 장로가 같은 반열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장로들을 목사의 권위 하에 두기 위하여 이와 같은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목사의 권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목사의 권위는 목사가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대로 목회하며 그 진리의 말씀에 동행하는 실천 신학적 삶을 살 때에 비로소 세워지는 것이다. 비 진리와 오류로 일관된 신학적, 신앙적, 인격적, 사명적 삶을 살면서 제아무리 목사의 권위를 세우려 한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납하시지 아니하시며 성도들도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는 비 기독교인들까지도 그러한 목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2) 여자목사 여자장로에 대한 오류.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는 성경에 없으며 기독교 역사에도 전혀 유례가 없다. 현대 교회에서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의 기독교들 중에 소규모 이단교파들이 여자목사, 여자장로를 세우고 있으나 그들의 활동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는 현대 한국 기독교에서만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1) 여자목사 여자장로 장립의 역사.
한국 기독교에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가 최초로 거론된 것은 1920년대 초였다. 기독교를 통하여 유입된 서양문화는 한국의 전통적인 남존여비 문화를 서서히 무너뜨렸고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점점 신장되면서 여자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여자들의 활동은 특히 교회를 통하여 확장되었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감리교회가 가장 먼저 여자 장로들을 세웠고 1930년에 남북 감리교회가 연합하면서 14명의 여자목사를 세웠다. 장로교회는 1932년 제21차 총회에서 여자장로 제도에 대한 의제가 상정되었으나 거부되었고 그 후에도 계속하여 그 문제가 상정되었으나 여전히 총회에서 부결되었다. 해방 후 이단으로 정죄되어 장로교단으로부터 축출된 기독교 장로회가 여자장로를 합법화하였으나 장로교단은 여전히 여자장로 제도를 거부하였다.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는 감리교에만 존재하였고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등등의 교단에서는 계속하여 거부되어 왔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등장한 순복음 교회가 최자실을 목사로 장립하면서 여자목사 여자장로 문제가 더욱 활발하게 거론되었고 군소 교단들이 그 제도를 채택함에 따라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였다. 특히 여자목사들로 구성된 교단들이 설립되어지고 여자목사가 되려는 자들이 신학교에 대거 입학하면서 여자장로 문제보다 여자목사 문제가 더욱 크게 부각되었다. 결국 20세기 말에 이르러 장로교 <통합 측>이 여자장로 제도와 여자목사 제도를 합법화함에 따라 다른 교단에서도 그 문제로 인하여 점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2) 여자목사 여자장로 장립에 대한 성경적 근거.
성경에는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에 대한 근거와 전례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성경은 오히려 여자목사 여자장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거부한다.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 하노니 오직 종용할 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딤전 2:11-14>
이 말씀은 여자의 가르치는 직무 <복음 전파 및 성경의 교육> 자체를 불허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가르치는 직분 <여자목사 여자장로>을 불허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서>를 통하여 말하는 <여자의 가르치는> 것은 <가르치는 장로>를 말하는 것으로서, 현대교회의 <목사>를 말하는 것이며 <여자의 남자를 주관 하는 것>은 <치리하는 장로>를 말하는 것으로서 현대교회의 <장로>를 말하는 것이다. 당시에 교회에 남녀평등 사상이 주입되면서 여자들의 직분과 직무에 대한 의견이 분분 하였고, 드디어는 여자들의 직분과 직무에 대한 주장들이 강력하게 제기됨에 따라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하여 이 문제를 신학적으로 분명하게 정립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왜 여자목사와 여자장로가 세워 질수 없는가? 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통하여 선포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대표로 아담 <남자>를 먼저 창조 하신 후 여자<이와-하와>를 창조 하셨다. 때문에 아담 <남자>는 이와 <여자>로 인하여 죄가 인류사회에 도입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대표자로서 <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원리에 의하여 구약시대의 장로나 제사장들은 모두 남자로 세워 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남자들에 비하여 진실과 성심으로 순종하는 여자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사도>의 반열에 세우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자신을 저주까지 하면서 불순종한 남자들을 제자<사도>로 세우셨다. 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오직 남자들만을 교회의 지도자<목사 장로>로 세워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의 전통이 현대교회 <특히 한국의 기독교>에서 무너지고 있다.
(3) 한국기독교가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거부한 근거.
지금까지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거부한 자 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거부하지 않고 교회 헌법을 근거로 하여 거부해 왔다. 장로교 교단을 예로 들면 <장로교 교회 헌법 제5장 제3조, 장로의 자격>에 <만 35세 이상 된 남자 중....>으로 명시되어 있다. 반면에 <장로교 교회 헌법 제4장 제2조, 목사의 자격>에는 남자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문자적으로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딤전3:1-7>라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남자라는 것이 묵시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은 교회법 보다는 아직도 남존여비 사상에 의하여 여자에 대한 비하적 개념 때문에 거부한 것이었다. 만약에 저들이 하나님의 섭리, 성경, 교회법, 등등에 의하여 지금까지 그 제도를 거부해 왔다면 이제 와서 그 제도의 시행을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이유가 성립되지 않거니와 여자장로 여자목사들을 세운 후에도 여전히 그들을 무시하고 홀대하여 중요한 직무를 함께 하지 아니하는 명분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향하여 지금까지 그 제도를 반대했던 성경적 근거는 과연 무엇이며, 이제 와서 그 제도를 시행하는 성경적 근거는 또 무엇이냐고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저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두 가지의 변명을 내어놓고 있다. 하나는 <시대와 문화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요 다른 또 하나는 <성경을 자세히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 이었다>는 것이다. 저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합법화시키기 위하여 여선지 <드보라>의 사사 직무 수행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 할 것이요-행2:18>를 근거로 제기한다.
(4)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찬성하는 자들이 제시하는 근거.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찬성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근거로 제시한다.
① 미리암의 여선지 직<민12:9-16; 신24:9>
② 드보라의 여선지 직<삿4:5-23>>
③ 남종과 여종<<행2:18>
④ 시대와 문화가 여자목사와 여자장로를 요구 한다.
⑤ 하나님의 남녀평등
⑥ 그동안 성경을 잘못 보았다.
우리는 저들이 제시하는 근거들을 다음과 같이 신학적으로 반박한다.
① 미리암의 여선지 직<민12:9-16; 신24:9>에 대하여.
성경에는 구약시대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여선지자들의 활동이 있었다. 그러나 여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고하고 가르치는 직무를 행하였으나 교회, 국가, 민족, 등등을 대표하는 수장<首長>적 직분자는 아니었다. 미리암이나 드보라를 비롯한 여선지자들은 남자 선지자들이 행하는 선지자의 직무는 행하였으나 교회, 민족,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직분과 직무는 허락되지 않았다. 구약시대의 교회 대표는 대제사장들이었고 민족대표는 장로 또는 국왕이었다.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찬성하는 자들은 미리암의 여선지직<민12:9-16; 신24:9>을 근거로 제시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저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반박하는 증거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미리암과 아론이 자신들의 지위가 모세와 대등한 것으로 착각하여 월권을 행사하자 즉시 그들을 징계하셨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여 범죄하였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지도자 위치를 세워주시기 위하여 아론과 미리암을 즉시 징계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징계에도 차등이 있었다. 아론은 다만 책망을 받은 반면에 미리암은 문둥병의 징계를 받았다. 그것은 아론이 대제사장으로서 교회의 대표자였기 때문이다.
② 드보라의 여선지 직<삿4:5-23>에 대하여.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찬성하는 자들은 드보라의 여선지 직<삿4:5-23>을 근거로 제시하지만 그것 역시 오히려 저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반박하는 증거가 된다. 사사 시대에 여선지 드보라가 선지자의 직무를 행할 때에 가나안과의 전쟁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에 여자 <드보라>를 대표로 세우시지 않고 남자 <바락>를 대표로 세우신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한 바락에게 승리를 주시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하여 여선지자들이 선지자 직분을 받아 선지자 직무를 행사하지만 교회의 대표로 세움 받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③ 남종과 여종<행2:18>에 대하여.
<그때에 내가 내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행2:18>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찬성하는 자들은 <행2:18>의 남종과 여종을 목사로 내세워 여자목사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행2:18>의 남종과 여종에 대한 저들의 오류는 저들의 신학적 무지함을 더욱 자증 한다. 이 성경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미 <요엘2:28>을 통하여 말씀 하신 것으로서 하나님의 종들이 성령의 조명하심 속에서 능력을 받아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남종과 여종은 목사와 장로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모든 하나님의 종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 되는 것이다. 따라서 <행2:18>을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제시 하는 것은 자신들의 신학적 무지를 스스로 들어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의 종들은 오직 목사에게만 국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④ 시대와 문화가 여자목사와 여자장로를 요구 한다는 것에 대하여.
시대와 문화가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 제도를 세운다는 변명은 신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주장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규례와 법도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해석 원리와 적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규례와 법도가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해석 원리와 적용이 달라진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될 자격이 없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은 그분은 영원한 능력과 절대적 능력과 완전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와 계시록의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완전성을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 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4:12-13>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시대와 문화의 요구에 부응하는 차원까지도 모두 감안하시어 기독교의 법과 질서를 완전하게 세우셨다. 따라서 이제는 시대와 문화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여자목사 여자장로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을 부인하는 악행이며 자신들이 소경 적 지도자임을 자증하는 것이 될 뿐이다.
⑤ 하나님의 남녀평등에 대하여.
하나님의 남녀평등을 근거로 내세우는 것도 역시 마찬 가지로 자신들의 성경적 무지함을 스스로 들어내는 어리석은 짓이다. 인류사회의 남녀평등 원리는 모든 면에서 적용 되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이지만, 반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을 동시에 대표로 세우시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남자>를 대표로 세우셨다. 그것은 대표가 둘이 되면 사회질서가 성립 되지 않기 때문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은 사회의 질서원리 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지함을 스스로 자증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남녀평등 원칙을 세워주셨지만 교회의 질서를 세우심에 있어서는 남자를 대표로 세우셨다.
⑥ 그동안 성경을 잘못 보았다는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거부하다가 그 제도를 합법화 하는 자들 중에 성경을 자세히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그동안 성경을 잘못 보았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신학적 무지함에서 비롯되어 진 것 이라기보다는 참으로 악함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라는 책망을 받아 마땅하다. 이미 논증 한바 있듯이 성경은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오히려 그것의 확실성을 더욱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비 진리적 주장을 하는 것은 사실상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진리를 비 진리로 바꾸려는 악행이 되는 것이다.
3) 여자장로, 여자목사 장립에 대한 반대.
우리는 지금까지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시행하여 왔던 자들이나 여자목사 여자장로가 된 자들이나 앞으로 여자목사 여자장로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들을 두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신학적으로 무지한자 들이요 다른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 둘은 결국 하나이다. 신학적으로 온전한 자라면 성경이 그 제도를 절대 불허 한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그리고 신학적으로 온전한 자들 이라면 하나님의뜻을 거부 하면서 자기욕심을 채울 수도 없다. 신학적으로 온전한 자들 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뜻을 거부 하면서 까지 자기욕심을 채우는 것이며 욕심 때문에 신학이 온전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둘은 결국 하나인 것이다.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둘러싸고 욕심에 휘말린 자들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여자목사 여자장로가 되어 권위와 권세를 누리려는 자들이고 다른 또 하나는 그 제도를 통하여 어떤 유익을 얻으려는 자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욕심으로 인하여 죄를 범하는 자들을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하나님께서 남자들에게만 목사나 장로의 직분을 부여하신 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성경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부족한 것이 수없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남자를 교회의 대표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였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피조가 그것을 찬성하느냐? 또는 거부하느냐? 하는 것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오직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반대되는 것은 목숨을 다바쳐 물리쳐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절대 순종하여 여자목사, 여자장로 제도를 다음과 같이 거부한다.
(1)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 대표권을 부여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남자를 먼저 창조하셨고, 그에게 모든 대표권을 부여하셨다. 반면에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동역자, 동반자>로 창조되어졌다. 남자가 대표권을 갖는 것은 여자가 먼저 죄를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증거 되어진다.
(2) 성경이 증거 한다.
여자 장로, 여자 목사를 주장하는 자들은 미리암, 드보라, 등등의 여자 선지자들의 활동을 근거로 내세워 여자 장로 및 여자 목사의 합법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성경이 증거 하는 바에 의하면 그들은 오히려 여자 장로 및 여자 목사장립의 불법성을 증거 해주고 있다. 미리암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으나 대표자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 당시의 대표자는 분명히 남자<모세>였으며,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이 모세의 대표권에 맞서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모세가 지도자답지 않은 행동을 하였을 때, 미리암이 그것을 통하여 모세를 대적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은 것이 증거하고 있다<민12 : 1이하>. 뿐만 아니라 여선지자 드보라에 대한 성경 역시 여자 장로 및 여자 목사의 불법성을 증거 한다. 여선지자 드보라는 사사로서 재판장의 위치에 까지 있었으나 국가적인 행사<가나안과의 전투>에는 남자<바락>을 대표로 내세웠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이 증거 하는 바에 의하면 구약 시대는 물론이요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도 여자가 안수 받아 <기름 부음 받아> 장로 또는 목사가 된 전례가 없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 장로, 왕, 등등의 부족적, 사회적, 민족적, 국가적, 지도자<대표>들은 모두가 한결 같이 남자였으며 신약 시대의 사도, 장로, 목사들도 모두가 남자였다. 여자는 단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성경의 증거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3) 성경에 전례가 없다.
오늘날 여자 장로, 여자 목사장립 문제로 인하여 교회 회의<총회>들이 상당한 논란을 벌이고 있는데 여자 장로, 여자 목사안수와 같은 제도는 교회 회의 같은 것을 통하여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하여 제정되어지는 것이며 교회는 성경의 증거에 따르면 된다. 그것이 만약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하여 허용된 것이라면 성경에 반드시 그에 대한 전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고찰한 바 있듯이 성경은 그러한 전례를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만약에 여자 장로, 여자 목사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단 한명의 여자 제사장이나 여자 장로들을 세우지 아니하셨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찌하여 12제자들 중에 단 한명의 여자도 허용하지 않으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사도 시대교회는 물론이요 현대 교회에 이르기까지 여자 장로, 여자 목사가 안수되어 장립한 바가 없는 교회의 역사와 전통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전례를 따라야한다. 성경의 전례를 따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항하는 것으로서 용서받지 못할 불충이요 대죄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항하는 불충한 자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4) 신학 부재 때문이다.
과거에 일부 교파에서 여자 장로, 여자 목사를 안수하여 장립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항하는 불충이요, 대죄인 것을 알지 못했던 신학 부재에서 비롯되어진 불미스러운 결과였다. 저들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섭리를 전혀 알지 못하였고 더욱 이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는 상상조차 할 수없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여자 장로, 여자 목사를 안수하여 장립한 교파의 신학을 보면 분명하게 나타난다. 저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그 주권적 섭리에 의한 예정론을 이해하지 못한다. 때문에 하나님의 예정을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것을 적용하지 못하고 주저하면서 신앙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현재에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자장로 여자목사 제도가 하나님의 섭리에 위배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그리하여 여자장로 여자목사 제도를 성경적인 것, 합법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5) 욕심 때문이다.
여자장로 여자목사가 되기 위하여 고군분투 하는 자들 중에 대부분은 신학적 부재 때문이라기보다는 여자장로 여자목사에 대한 욕심 때문에 여자장로 여자목사가 되려고 한다. 저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일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궤변이다. 저들에게는 여자장로 여자목사에 대한 욕심만 있을 뿐 하나님의 섭리는 전혀 안중에 없다. 물론 저들은 이와 같은 우리의 주장을 단호하게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양심을 속이지 말고 묵상하며 기도하여 보라> 만약에 진정으로 욕심 때문이 아니라면 그들은 신학을 모르는 자들이다.
(6) 양심의 문제이다.
여자 목사, 여자 장로를 안수하여 장립하였던 과거의 전례가 신학 부재에서 비롯되어진 결과였던 반면에, 그것을 목숨 걸고 반대했던 교파 및 교단들이 이제 와서 그것을 슬그머니 허용한 것은, 신학적인 문제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신앙의 양심을 내다버린 한심한 작태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다. 저들은 현대의 시대적 환경과 문화적 발전이 여자 장로, 여자 목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을 반대할 명분이 없게 되었다고 너절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그것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저들이 여자 목사, 여자 장로를 안수하기로 결정한 것은 여자들이 그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때문이기보다는 그것이 자기들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총회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만, 사실적으로 말하면 여자 장로문제는 교회적인 문제요 여자 목사문제는 신학교의 문제이다. 교회들은 여자 장로를 세움으로서 얻어지는 유익 때문에 그리고 신학교는 여자 목사 안수로 인하여 얻어지는 유익 때문에 그들을 세운다. 그리고 그 유익이란 신학적, 신앙적 차원의 유익이 아니라 순전히 금전적 유익이다. 금전적 유익을 위하여 일부 교회에서는 교단을 옮기면서까지 여자 장로를 세우고 있고 일부 군소 교단신학교에서는 총회의 반대 결의에도 불구하고 여자 목사를 세우기까지 한다. 저들에게는 이미 신학적 양심이나 신앙적 양심 같은 것은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쳐진지 오래이다. 저들에게는 이제 하나님의 섭리 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유익만이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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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들은 성경에 여자 장로 또는 여자 목사를 세우지 말라고 한 것이 없다고 항변한다. 우리는 그러한 어리석은 항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책망한다. <그렇다면 성경에 여자 장로, 여자 목사를 세우라고 한 적이 있는가?>
뿐만 아니라 성경은 미리암, 드보라를 통하여 여자목사, 여자장로의 불법성을 선포하였고 오직 남자로만 구성된 장로, 제사장, 12사도를 통하여 여자목사, 여자장로의 불법성을 선포하였으며, 특히 <딤전 2:11-14>을 통하여 여자목사, 여자장로의 불법성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선포하고 있다.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 하노니 오직 종용할 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딤전 2:11-14>
<딤전 2:11-14>에는 여자목사, 여자장로의 불법성을 창조 원리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선포한다. 따라서 우리는 여자목사, 여자장로를 고집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성경은 분명히 여자목사, 여자장로의 불법성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대들이 성경이 문자적으로 그것을 금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그대들의 주장에 맞게 충고한다. 성경이 어떤 것을 하라, 또는 하지 말라고 분명히 정해주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성경에 증거 된 역사적 또는 전통적 증거들을 따르면 된다. 성경 어디에 여자목사, 여자장로들이 존재하였던가? 성경이 증거 하는 역사적 전통적 전례들은 이미 논증한 바대로 여자 장로 여자목사의 장립불가를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오직 욕심에 눈이 멀어 성경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있도다. 악하고 불쌍한 자들이여 더 이상 욕심 부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진리에 바로 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