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주도국과 대상국 사라진 21C, 필수 요소는?

세계 선교 지도자들, 연구 및 지도자 개발 논의 [2010-05-18 08:42]

  • ▲앞줄 오른쪽부터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전 원장 폴 피어슨 박사,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박기호 교수, 제삼세계선교협의회 설립자 조동진 박사, USCWM 사무총장 데이브 데이트마 박사,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제후 핸슬스 교수, 뒷줄 오른쪽부터 중남미선교협의회 회장 데시오 드 카발호 박사, 아프리카선교협의회 대표 셋 아뇨미 박사, 아시아선교학회 회장 데이빗 하르토노 박사, 동서선교연구개발원 공동대표 조용중 박사, 아시아선교협의회 사무총장 이은무 박사. ⓒ이지

동서양의 선교학자 및 선교 지도자들이 미완성 선교과업 성취를 위해 협력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선교 연구와 지도자 개발 등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제1세계 서구교회와 제2,3세계 비서구교회를 대표하는 선교학자 및 선교 지도자 60여명은 최근 한사랑교회에서 개최된 2010 동서선교포럼에서 협력선교 시대를 맞아 각 대륙별 선교운동과 리더십을 발표하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동서선교연구개발원, 조동진선교학연구소(DCMI)가 공동주최한 이 행사는 동서선교연구개발원 사역의 활성화와 조동진선교기념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비서구교회의 선교운동’을 주제로 한 이번 포럼에서는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제후 핸슬스(Jehu J. Hanciles) 교수의 세계 교회와 선교 동향에 대한 주제 강연을 시작으로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전 원장 폴 피어슨(Paul Pierson) 박사, 제삼세계선교협의회 설립자 조동진 박사가 각각 서구교회와 비서구교회의 선교운동에 대해 발표했다. 또 아프리카선교협의회 대표 셋 아뇨미(Seth Anyomi) 박사, 중남미선교협의회(COMIBAM) 회장 데시오 드 카발호(Decio de Carvalho) 박사, 동서선교연구개발원 공동대표인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박기호 교수는 각각 신흥선교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아시아 교회의 선교운동을 소개했다.

폴 피어슨 박사는 이번 포럼에서 “우리는 과거 복음 때문에 희생당한 수많은 선교사들을 기억하고 그들처럼 생명을 바치려는 헌신의 자세로 선교적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향후 어느 나라, 지역이든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는 ‘협력’”이라고 강조했다. 피어슨 박사는 “과거 서구 선교사가 일방적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비판을 받았는데, 지금 아시아나 아프리카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이 방법은 다르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주고 싶은 것을 주는 일방적인 선교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선교지 사람들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는 공급자 중심의 선교에서 벗어나 서구교회와 비서구교회가 각각 다른 선교 자원을 가지고 협력선교를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조동진 박사는 70년대 초부터 협력선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제적인 선교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했으나 당시 서구교회에서 ‘피선교국에서 무슨 협력을 이야기 하느냐’며 거절해 결국 아시아 선교 지도자들과 선교 네트워크를 형성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제 제3세계 교회의 권위가 높아졌으니 새로운 선교 환경에서 어떻게 협력선교 모델을 만들어 나갈 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기호 교수도 “과거에는 영국 등 유럽 주도로 선교가 일방적으로 이뤄져 왔지만 지금은 오대양 육대주에서 선교가 이뤄지고 있다”며 “더 이상 선교 주도국과 선교 대상국을 구분해 일방적으로 흐르는 선교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모든 대륙이 다방면에서 협력하는 동반자 사역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서구교회와 비서구교회가 선교 연구와 지도자 개발을 위해 정보를 교환하고 각자의 사명을 깨달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작년 소천한 랄프 윈터 박사가 후계자로 지목한 미국세계선교센터(USCWM) 사무총장 데이브 데이트마(Dave Datema) 박사는 이번에 서구교회의 선교 연구와 지도자 개발에 대해 USCWM과 윌리엄캐리국제대학교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으며 동서선교연구개발원 공동대표 조용중 박사는 비서구교회의 선교 연구와 지도자 개발을, 아시아선교협의회 사무총장 이은무 박사는 조동진 박사의 선교 여정을 각각 소개했다. 또 아시아선교학회(ASM) 회장 데이빗 하르토노(David Hartono) 박사가 전체 발표 내용을 요약한 뒤 참석자들은 서구교회와 비서구교회가 어떻게 협력선교를 할 것인지 라운드테이블 토론을 가졌다. 포럼 마지막날 참석자들은 조동진 박사의 50년 사역의 역사 자료와 문헌을 보존한 조동진선교기념관을 방문해 제3세계 선교운동을 한 눈에 보는 시간을 가지고 양화진 방문, 고궁문화 체험 등을 하며 교제를 나누고 결속을 다졌다.

조동진선교학연구소 소장이며 조동진 박사의 딸인 조응옥 박사는 이번 포럼에 대해 “동서 구분 없이 전 대륙의 교회가 효과적인 선교 사역을 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데 모두가 인식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동진 박사 등 1세대 주요 선교 지도자들이 대부분 은퇴하고 세계 선교계에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2~3세대 젊은 선교 지도자들이 이번 행사에 많이 참석했다고 밝히며 “서구교회와 비서구교회 간 네트워크뿐 아니라 1~3세대 선교 지도자들을 아우르는 폭넓은 선교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도 성과 중 하나”라고 말했다.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은 1973년 아시아 14개국 교회와 선교 지도자들이 참석한 ‘범아시아선교지도자컨설테이션’ 결의에 따라 선교 연구와 아시아 선교사 훈련을 목적으로 같은 해 조동진 박사에 의해 설립됐다. 조동진 박사가 원장으로 있던 1973년부터 1999년까지 25년간 총 2천명 이상의 아시아 선교사 후보생과 목회자들을 현장 선교사 및 석박사 과정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선교학자로 육성해 아시아 교회가 서구교회의 미완성 선교과업을 성취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1999년 조동진 박사가 은퇴한 후 조직이 느슨해지면서 활동이 다소 정체되었다가, 2004년 초기 졸업생들이 ‘동서선교연구개발원 재활성화준비위원회’(위원장 박기호 박사)를 구성하고 작년 미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 법인 등기를 마치는 등 본격적인 활동 재개를 준비하여 이번에 첫 공식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70~80년대에 주로 아시아 선교 발전에 집중해 온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이 지금의 세계교회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할 것인지 현실적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지희 기자

기독일보  http://sea.christianitydaily.com/view.htm?code=mw&id=185922

 


 

 
 

 

 

 
 
 
이것은 윌리암 케리의 좌우명이다. 검소한 집안 출신인 영국의 침례교 목사 윌리암 케리는 개신교에서 근대 해외 선교의 아버지로 널리 인정되는 사람이다. 케리 이전에도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이 인도가 가서 복음을 전했으나 케리 자신의 비전과 그의 놀라운 근면성, 그리고 그가 창립한 기관들의 성격이 19세기의 선교 운동을 실제로 주도했다. 그의 업적이 영어를 사용하는 선교의 중추적인 출발점이 되었고 그가 손을 댄 모든 것들이 그의 열성과 인내에 의한 지워지지 않는 영향력이 의해 변화되었다.

  케리의 초년 생활에서는 그가 미래에 얻게 될 명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나 그의 일생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신실한 믿음, 근면과 순종을 사용하셔서 엄청난 반대를 극복하게 하시는 지를 보여 주는 훌륭한 예이다. 케리는 영국 노스앰튼사이어에서 자랐으며 어렸을 때에는 구두수선공의 기술을 배웠다. 그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약간의 교육을 받았지만 대부분 스스로 학습한 것이며 정식교육을 받지 못했다. 세상의 길을 따라 방황하는 시기를 거친 후 17세에 케리는 변화를 받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죄의 용서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구세주께 의존”하게 되었으며 곧 침례교인이 되었다. 집에서 자랄 때에 케리는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놀라운 재능을 지녔었으며 구두 수선 가게에서 일하면서 그는 신약 성경을 헬라어로 읽을 수 있도록 스스로 학습하게 되었다. 그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미게 되었으나 가난했고 종종 굶주리며 빚을 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는 구두 수선공의 일 외에도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에게 세계 지리를 가르치면서 세계에 대한 케리의 비전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가 쿡크 선장의 항해에 대한 책들을 읽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전세계에서 아직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놀라운 것들을 기대하라.”

케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회 사역뿐만 아니라 선교를 위해 자신이 부름 받았다고 느끼게 되었으며 인근 침례 교회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대인관계가 확장됨에 따라 그는 다른 목회자들과 외국 선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선교하기 위해 나가는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는 조직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의 이야기는 믿음으로 가득차었다. 케리는 겸손하고  친절한 평민이었으며 그가 사역하고 설교를 할 때 종종 선교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으며 열심히 기도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것들을 주시리라고 기대했다. 수년간의 학습기간과 많은 기도, 그리고 단체를 하나 세우자는 지속적인 간청이 있은 후에 마침내 그는 침례교 목사들의 지원을 얻게 되었으며 1792년에 해외선교협회를 세우게되었다. 그러나 케리는 침례교 선교협회에 대해 꿈을 꾸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 형성된 협회의 지원 하에 해외로 나가는 첫 선교사가 되고자 희망했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시도하라.”

케리의 믿음과 비전은 용감한 담대성과 근면과 희생에 대한 헌신과 연결되었다. 그는 1793년 1월 17일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에서 “거룩한 용도를 위해 희생양처럼 헌신하고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위대한 임무입니다. 저는 힌두인들을 위한 선교사로서 동인도의 벵골로 보내지게 되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1793년 가을, 협회의 첫 선교사로서 인도를 향해 출발했으며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거기서도 그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세속적인 직업을 병행해야만 했다. 케리는 세부적인 것들을 다 기록한 일기를 썼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내면적인 생각에 대해 알 수 있다. 그의 일기 속에는 다양한 고난들이 후렴구처럼 반복된다. 그는 그가 섬기기 위해 온 사람들의 죄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복음이 열매 맺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는 선교사로서 자신이 적합하지 못하다는 생각들을 하기도 했다 ”나는 보다 영적인 삶을 살 필요가 있다“라고 그는 기록하고 있으며 ”보다 복음적인 정신 상태가 내게 필요하다. 나는 진실한 믿음이 내게 충만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내게는 가르칠 수 있는 능력과 준비가 너무도 필요하다.“ 마지못해 그와 함께 인도로 동행했던 그의 부인은 그의 사역에 대해 협조적이지 못했으며 정신 질환을 앓게 되어서 마침내 시설에 수용되어야만 했다. 케리는 “온유하고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며 참으로 좋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역경과 실망들이 그의 사역을 방해하지는 못했으며 그는 즉시 언어를 습득하는 일에 착수했다. 케리는 창의적인 사고의 소유자가 아니었으며 교사나 설교자로서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일에 열중하는 능력을 지녔었고 뛰어난 관찰력과 세부적인 상황을 잘 기억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힘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비전에 대한 순종과 주어진 임무를 끝까지 마무리하고자 하는 그의 강한 결심에 있었다. 그는 매일 그의 모든 힘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만 활용했으며 열심히 일하는 것에 전적으로 헌신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행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선정했으며 이는 종종 자기 자신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일시적인 만족을 거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윌리암 케리가 이룬 업적은 무엇인가?

그는 아시아에서 최초의 기독교 대학을 창설했다. 세람포르 대학은 오늘도 건재하다. 세람포르 대학에서 케리의 지도 하에 약 수심만 권의 성경과 복음서가 인도에서 여러 언어와 방언으로 출판되었다. 벵골어로 된 성경 이후에도 마라타어와 타밀어로 된 성경이 출판되었다. 모두 합해 그는 스물여섯 개의 언어와 방언으로 된 번역서를 출판했으며 그 과정 가운데 그는 수많은 문법서, 사전, 그리고 언어 학습서를 출판했다. 케리 자신은 1801년에 포트 윌리암 대학의 산스크리트, 벵골어, 그리고 마라타어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사망한 인도인의 과부를 화형시키는 인도의 관습인 수티 제도에 대한 그의 반대는 그 관습을 폐지시키는 데에 공헌했다. 무엇보다도 사역에 대한 그의 헌신은 후세에 온 수많은 선교사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었다.우리가 받은 보잘 것 없는 은사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힘을 다해 이 은사들을 지혜롭게 활용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이루실 수 있겠는가? 윌리암 케리의 인생은 달란트의 비유를 연상케 하며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가 아닌 두 달란트를 받은 자를 생각하게 한다. 이 사람은 효율적으로 투자했으며 주인이 돌아왔을 때에 두 달란트를 더 돌려드릴 수 있었다. 케리는 그가 받은 특별한 은사를 솔직히 인정했으며 그의 온 정성을 다해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믿음, 기도, 그리고 비전의 인물로서 케리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기대했었다. 순종의 사람으로서 그는 그의 제한된 능력과 엄청난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시도했다. 그리고 충성된 종으로서 케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위대한 일들을 성취했으며 이러한 업적의 바탕에는 순종과 근면이 있었다. 그의 삶에서 중심 되는 성격을 적절히 설명한 케리 자신의 말을 인용하자면 “나는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어느 분명한 목적을 위해 인내할 수 있다. 이에 내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제임스 E, 브래들리 / 풀러 신학교 교회역사학 교수
 
 
세계 선교의 문을 연 윌리엄 케리
 

구두 수선공이 위대한 Vision의 선교사로

1761년 햇볕이 따사로운 8월의 어느날 영국의 노스햄프턴셔의 작은 마을에서 우렁찬 음성이 들렸습니다.
'응 애!!'
그것은 윌리암 캐리
(William Carey, 1761-1834))
가 하나님나라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음을 알리는 울음소리였습니다.

캐리는 어려서 꽃과 나무와 새 그리고 곤충을 벗하며 자라난 전형적인 촌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주특기는  나무타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부에  대한 욕구도 강했습니다.

당시 문맹률이 매우 높던 시절,  그는 끈질긴 도전으로 글을 깨우쳤습니다.
더 나아가 외국어인  라틴어와 헬라어에도 손을 대었습니다.

고교를 졸업한후 캐리는 아버지의 압력으로  구두수선공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두발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구두수선은  유망직종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평생 신발만 어루만지다 죽을 팔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의  팔자를 고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779년 캐리가 19살 때, 한 기도모임에서 히브리서 13장 13절 말씀을 심령으로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그는 이 한 말씀을 통해 그동안의 세상과 타협하여 살던  미지근한 신앙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세상에서그리스도와 함께 고난과 능욕을 받고자하는 분명한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생애를 그리스도께 헌신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그는 다른 어떤 학문보다 성경공부에 전념하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구두공장 공장장에서  예수님의 선전부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은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가  이끄는 영적 부흥운동이 전 영국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세계선교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비레인 교회에서 목회에 전념하고 있던 캐리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나 캐리가 '쿡 선장의  마지막 항해' 라는 책을  읽고있을 때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인생을 바꾸어 놓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쿡선장은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며 태평양의 알려지지 않은 섬들과 원주민들의 원시적인 삶에 대해 자세히 기술해 놓았습니다.

문명의혜택을 못받아 옷도 없이 코난과 포비처럼 살아가는 부족, 사람을 맛있게 먹는 풍습을 지닌 부족등...  
그리고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해 주려고 하지않습니다. 거기에는 명예도 유익도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 책을 읽고 있던 청년 캐리의 가슴은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맥박은 힘차게 고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케도냐인의 끈질긴 외침을 들었습니다.
그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내가 여기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결단했습니다.
그 때부터 캐리는 세계지도에 이미 알려진 나라의 인구,종교등을 표시하며 선교지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도는 그의 기도 목록이었습니다.
그는 세계지도를 꼭 껴안고 세계를 품고 기도하는 기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18세기 영국교회는 캘빈주의의  영향으로 선교운동에 눈을  돌리지 않았으며, 선교는 예수님이 사도들에게만 주신 특별한 사명으로 국한 시켰습니다.

세계선교에 눈을 뜨게 된 캐리는  교회안의 무감각한 그리스도인들을 일깨워야겠다고 방향잡았습니다.
어느날 목사들의 모임에서  캐리는 해외선교에대한 그의 원대한 계획에 대해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러자  한 원로목사가 일어나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그만 열내고 자리에 앉게나, 만약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려고 한다면 자네나 우리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수 있을걸세.'

이것은 그의 선교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캐리안에 불붙은 세계선교에 대한 vision과 성령의 불은 더욱 크게 타올랐습니다.

캐리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하시는 예수님의 유언적 명령이  곧 우리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1792년 봄 그는 '이교도 개종에 대한 크리스챤의 의무에 관한 연구'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세계선교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임을 역설하였습니다.

이책은 루터의 95조항과 함께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세계선교열풍을 전 유럽으로 확산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 캐리는 침례교회연합회 모임에서 이사야서  54:2,3 '네 장막터를 넓히라.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항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곳이 되게 할것임니라' 말씀을 전하며, 간절한 기도가운데 여러목사들에게 하나님의 비젼을 심었습니다.  

그는 늘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는 지금이 바로 하나님이 나와 당신을 통해 위대한
세계선교의 역사를 이루실 때인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시도하라했습니다.

그의 비젼이 넘치는 메시지에 감동을 받은 목사들이 당장에 그 다음날로 유명한 침례교 선교회를 만들었습니다. 7년동안  아무도 그를 이해하거나 도와주지 않고 배척했지만,  그가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리라는 믿음으로 현실에 절망치 않고 끈질기게 도전하였을 때 18세기의 타락한 영국을 구원하였을뿐 아니라 세계각지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였습니다.
 

위대한 시도

1793년 캐리가 32세 되던 해, 그는 인도영혼들을 향한 상한 목자의 심정을 안고 인도 선교사로 가고자 결단했습니다. 그러자 그 길을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들이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그의 아버지 였습니다.
아버지는 캐리의 말을 듣고 딱 한마디 했습니다.  
'미친놈'.  

둘째는 그의 아내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문맹의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녀는 아기랑 캐리랑 아기캐리한 삶을 살기 원했습니다.

그녀는  캐리에게 '여보, 인도는 절대로 안돼요, 제발 우리 아기들도 좀 생각해 주세요...엉엉엉'.
여자가 눈물을 흘릴 때, 갈대와 같은 남자의 마음은  얼마나 흔들리기가 쉽습니까?

그러나 캐리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고,  나는 그 부름에 응답했기 때문에 이제 돌이킬 수가 없소.'  
캐리는 사랑하는 가족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셋째는 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하비레인 교회의 성도들은 캐리와 같은 훌륭한 목회자를 잃는다는 생각으로 교회의 장래를 위해 절대로 목사님을 보내지 않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곧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간절히 기도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캐리의 중심을 보신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사랑하는 가족 모두와 처제, 그리고 토마스라는 선교 동역자와 함께 인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습니다. 그들이 인도땅에 도착했을 때, 인도는 선교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힌두과부들은 사티(Sati)라는 제도에 따라 남편이 죽으면 함께 불에 타야했고, 갠지스 강가에선 'Gunga mai kai jai (갠지스강의 여신이여 영광을 받으소서)' 외치며 어린아이들을 악어가 득실한 강에 던지는, 그런 미신이 가득한 나라였습니다.

또, 당시 인도는 동인도 회사의 점령아래 있었고, 선교를 절대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캐리는 추방을 면하기위해  내륙으로 이동했는데, 그곳은 말라리아 창궐한 곳이었습니다.  
아내 도로시와 큰아이  2명은 이질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한 아들을 잃게 되었고, 아내는 정신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열대기후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도 고난이 되었습니다.
캐리는 멋지게 선교를 하려던 이상적인 꿈이 산산이 깨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캐리는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시며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이 하나님을 바라보았을때, 나의 모든 근심을 내어 맡길수 있었습니다. 내가 설사 이곳에서 생명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나에게 이 고귀한 사명이 맡겨진 사실만으로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겠습니다.'

캐리는 자비량 선교의 본을 보였습니다.
그는 결코 본국의 선교회를 의지하지 않고 자립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인디고 공장의 감독으로 취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캐리는 충분한 선교비를  벌면서 선교의 기초가 되는 인도어 정복에 온힘을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1년후부터  그의 위대한 시도가 구체화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캐리는 성경번역과 더불어 말씀을 전파하고 또 여러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벵갈에서 7년간 땀흘렸지만 단 한명의 인도인 개종자가 없었습니다.
큰 아픔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1800년, 19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동인도  회사의 추방령으로 캐리는 선교기지를 덴마크 영내인 세람포르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캐리가 인도에서 흘린 모든 눈물과 땀의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쉬나 팔이라는  첫 번째 개종자가 탄생했습니다.
그가 카스트제도와 우상숭배를 거부하자  2천명의 군중이 그를 재판장으로 끌고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와 변화의 역사가 줄기차게 일어나 그 후 18년간 600명이 세례를 받고 수천명이 예배에 참석하는  승리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세람포르 역사가 흥왕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합심동역에 있었습니다.  

캐리와 워드와  마쉬만, 그들은 세람포르의 삼총사라 불리웠는데 23년간 팀을 이루어 서로간의 긴밀한 사랑의  교제로 힘을 얻으며 믿음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대형화재로 인해 수년간 작업하여 완역한 성경원고와 두권의 문법책,다국어 사전들이 소실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캐리는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삼총사는 팀웍을  새로이 갖추고 다시 도전했습니다.

캐리는 편지에 '잃어버린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길을 두번 가는 것이 비록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처음보다 훨씬  더 충실한 결과를 낳아 더 유익이  될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벌써  다시 시작했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낙망치 않고 도전하여 결국 수 많은 인도방언과 중국어 버마어 말레이어등 44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 출판했습니다.

윌리암 캐리는 이처럼 그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함으로 인도선교의  기초를 쌓았습니다.  

캐리는 1834년 73세의 일기로 그토록 사랑했던 인도 세람포에 묻혔습니다.
윌리암캐리는 그의 그칠줄  모르는 열정과 도전으로 18세기 침체된 영국을 선교사를 파송하는 제사장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인도에 끼친 영향은 언어학적 업적, 교육적인 공로, 목회사역뿐 아니라 과부의 화형이나 유아살해 같은 인도의 나쁜 관습을 폐지하고 좋은 전통을 계승시켜 나가는데까지 미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인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도 국외적으로도 런던선교회,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 선교회, 네덜란드 선교회, 교회 선교회, 영국 해외 성서공회, 미국 해외 선교위원회, 미국 침례교 선교협회, 미국 성서 공회가 창설되어 오늘날 선교의 기틀이 되게 한 중요한 업적이 있습니다.

그는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세계선교의 불을 댕긴 위대한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그의 믿음으로 근대선교역사가 시작되었고 19세기 선교황금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인도의 한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정 근대 선교의 문을 활짝 연 근대선교의 아버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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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출처; http://www.onnuritv.com  /   http://www.cgntv.net >
 
 
 
그래프로 보는 세계선교상황
매년 선교상황에 관한 자료를 발표하는 오퍼레이션 월드(Operation World) 부책임자인 제임슨 만드릭(Jason Mandryk)은 2006년 세계선교상황을 발표했다. 발표내용은 세계종교분포상황과 세계선교상황, 서구권과 비서구권의 선교변화상황 등 세계선교상황이 소개되어 있다.
  세계 미전도종족 분포도 2007. 01 .10  15:31
  그래프로 보는 세계종교상황 2007. 01 .10  15:31
  기독교, 서구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 2007. 01 .12  16:44
  종교별 미전도민족 분포 2007. 01 .20  13:10
  복음이 필요한곳엔 선교사 턱없이 부족 2007. 01 .20  15:19

중동르포, 생명의 땅 이라크를 가다
고대문명들이 서로 교류하며 찬란하게 꽃피운 땅 각종 동식물, 과일, 야채들이 풍성하고 부요한 땅 위대한 영웅호걸들이 그들의 꿈을 세우고 도전하는, 지금도 그 꿈이 새겨져 있는 땅. 이런 위대한 땅이 있다. 하지만 이 세계를 호령한 땅이 지금은 전쟁과 테러로 점철되고, 석유라는 검은 황금이 넘치지만 오히려 이로 인한 세계 각국의 이권 쟁탈전이 되어버렸다. 상처와 고통속에 신음하고 호소하는 생명들이 있음에도 그들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이 하나 없는 소외된 땅이 되어버린 것이다. 호소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울리지만, 메아리로 그치는 땅. 바로 오늘날 이라크라 불리는 땅이다.
  [중동 특집] 생명의 땅 이라크 첫번째 걸음 2006. 03 .08  10:18
  생명의 땅 이라크 2번째 걸음 2006. 03 .16  11:04
  중동특집 시리아 2006. 03 .28  12:22
  2월5일 이라크 대사관을 찾아서 2006. 04 .1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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