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경비대 체포조 중국에 추가 파견”
대북 소식통 “北, 체포 늦어져 제 3국으로 탈출 우려”
“북한 당국은 체포가 늦어지면 탈출한 국경 경비대원들이 남한 등 제3국으로 탈출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추가로 체포조를 파견하는 것은 그 만큼 북한 당국이 이 사건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 데일리NK 김용훈 기자 
“北, 경비대 체포조 중국에 추가 파견”

대북 소식통 “北, 체포 늦어져 제 3국으로 탈출 우려”
[2007-02-09 17:42 ]
▲ 북한의 국경경비대원이 총을 겨누고있는 모습ⓒ연합
북한 당국이 중앙당 합동그루빠(그룹, 검열단)의 체포를 피해 중국으로 탈출한 20여명의 국경경비대원들에 대한 체포가 늦어지자 추가 체포조를 파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8일 온성군 삼봉세관에 보위사령부 합동체포조로 보이는 20여명이 국경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알려왔다.

소식통은 “삼봉세관에 체포조로 보이는 20여명의 사복 요원들이 대열을 이루고, 책임자로 보이는 군인의 지시를 받아 중국으로 건너오기 위해 대기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면서 “탈출한 경비대원들의 숫자가 많고 체포가 늦어지고 있어 북한 당국이 추가로 체포조를 파견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 당국은 체포가 늦어지면 탈출한 국경 경비대원들이 남한 등 제3국으로 탈출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추가로 체포조를 파견하는 것은 그 만큼 북한 당국이 이 사건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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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통은 “이들 체포조 요원들은 삼봉세관을 거쳐 중국 해관에 들어가 긴급수사원증(체포조 요원임을 증명하는 확인서)을 중국측에 제시하고 인원 점검을 받는 등 간단한 절차를 거쳐 중국으로 이동, 체포 활동에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한편 체포조는 현재 중국 국가안전부(우리의 국정원)와 공조 하에 양강도 혜산과 접경한 창바이(長白)와 자강도 만포와 접경한 지안(集安)까지 수색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탈출한 경비대원 중 일부는 현재 중국 국가안전부에 체포됐으며, 아직 북한으로 호송되지 않고 중국측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이들 중 책임자급은 북한에 보내지 않을 예정이어서 북한측과 일부 마찰이 예상된다고 소식통이 알려왔다.

그동안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옌지, 선양, 상하이에 각각 상시 체포조 조직을 두고 지명수배자 및 탈북자 등을 체포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체포조는 중국 국가안전부와의 공조하에 검거 활동을 벌인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검거 대상자들 소재 등의 정보를 체포조에 제공하면 체포조 요원들이 검거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소식통은 “이번 합동체포조도 옌지 등에 있는 조직의 도움을 받아 체포 활동을 벌이고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기본적인 체포 활동은 중국 국가안전부와 공조 하에 이뤄진다”고 말했다.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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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날짜 : 2007-02-16 (16:18)

3주 전 탈북자를 돕는 한 단체가 북한 양강도 혜산시와 마주한 중국 창바이(長白)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들입니다. 탈북자 시체를 담은 것으로 보이는 관은 2~3구의 시체를 한꺼번에 넣은 것 같다고 목격자들은 말합니다.

옌지에서 창바이까지 자동차로 7~8시간 걸리는데 겨울에 죽은 것으로 보이는 완전무장한 인민군 군인이 길가 옆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아마 무장한 채로 탈북하다가 얼어죽어 눈에 묻혀 찾지 못하다가 눈이 녹으면서 발견 됐다고 합니다.

창바이 근처에는 봄만 되면 여기 저기에서 얼어죽은 탈북자들의 시체가 꽤 발견된다고 합니다.

대량 탈북이 이뤄졌던 1990년대 말에는 압록강가에 탈북하다 물에 빠져죽은 시체들이 널려있었고 이 시체들을 건사할 여력마저 없어진 북한에서 시체들을 계속 방치하자 중국이 할 수없이 주변 산에 모두 묻어 주었다고 합니다.

보통 중국 당국은 탈북자가 죽으면 현지에 매장하는데 특별히 관을 짜서 북한으로 보내는 사람들은 북한에서 체포 의뢰를 했거나 시체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북한에서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위 사진은 죽은 탈북자들이 들어있는 관을 북한으로 넘기기 위해 북한 보위부원(검은색 옷)과 중국 변방부대원(푸른색 옷)들이 뭔가를 의논하는 모습니다.




북한에는 시체를 나를 만한 보트도 없어 중국측에서 고무보트까지 다 준비해왔다고 합니다.
관을 보트에 싣고 있는 모습입니다.




운반된 관을 북한군 경비병들이 인도받고 있습니다.




탈북자 시체가 넘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압록강에 구경나온 혜산 시민들 입니다. 이름있는 사람들이 강제 북송 돼 끌려 오거나 관속에 넣어져 북한에 보내 질 때는 많은 사람들이 강변에 나와 구경하는 모습이 흔히 목격되기도 합니다.




혜산시 모습입니다. 이 사진을 본 혜산 출신의 탈북자들에 따르면 몇 년 사이 혜산시는 폭살 늙어버린 사람처럼 모든게 엉망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혜산시 앞 압록강은 강폭이 좁아 탈북 루트로 각광받던 곳이었는데 김정일의 강력한 지시가 하루가 멀다하게 혜산으로 떨어져 지금은 탈북하기 힘든 곳으로 변했습니다.

1997년 부터 혜산시에는 "혜산 청년들이 없어도 우리는 사회주의를 할 수 있다"는 김정일의 지시가 내려져 수십명의 밀수꾼들과 탈북자들을 도왔던 브로커들이 공개처형 당했다고 합니다. 이들 뿐 아니라 부패된 당간부들과 보위부 요원들, 국경경비대 군관(장교)들까지 변을 당했다고 하니까 당시 혜산시의 살벌했던 광경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지금도 국가안전보위부는 혜산시를 요주의 도시로 낙인찍고 집중 검열과 단속을 벌이고 있습니다.

자유를 찾아 떠났다가 싸늘한 주검이 돼 북한에 송환됐거나 낮선 중국땅에 묻힌 우리 동족들의 이런 비극이 언제면 끝날까. 참담한 심정입니다. 멀리서나마 관속에 누워 있는 탈북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2007-02-23 (12:03) 구국기도 http://www.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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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자유스럽게 치기위해 탈북하여 귀순한 음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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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노동단련대에서 통나무를 들고 기합받는 수감자들 <사진:MBC>

“이번에 강제송환된 7명의 탈북자들은 방송에 나왔기 때문에 모두 죽는다”

탈북자 이지철(35세, 2002년 탈북)씨는 “모두 죽는다”라는 말을 나지막히 반복하며 강제 송환의 공포를 표현했다.

지난 8월 29일 텐진(天津) 한국국제학교에 진입했던 탈북자 7명은 모두 북송 됐다. 강제 송환된 이들 7명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은 잡히는 순간부터 ‘짐승’ 취급을 받는다. 특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탈북한 것이 밝혀지면 그들은 이지철씨가 말한 것처럼 ‘죽은 목숨’이다.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체포되면, 먼저 중국 공안에게 탈북한 이유에 대해 취조를 받는다. 탈북자들은 송환될 적정인원이 채워질 때까지 중국내 간수소(구치소)나 변방대(국경 수비대) 감옥에 감금된다. 한번 송환되는 인원은 보통 15명에서 20명이다.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중국 간수소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증언한다. 중국에서는 그나마 ‘사람’으로 취급받지만 북한으로 넘어가는 순간 ‘동물’로 취급 받기 때문이다.

중국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함경북도 맞은편 지역에서 체포된 탈북자들은 변방대, 간수소에 있다가 투먼(圖們)집결소로 보내지고, 결국 북한 온성군의 남양 보위부에 넘겨진다.
▲변방부대 감옥
▲ 중국 공안 구치소


- 이00 (여, 35세, 1999년 강제송환 경험, 2002년 입국)

“구치소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계호원(간수)들은 구타를 하며 옷을 벗긴다. 남녀 상관없이 옷, 단추, 지퍼, 팬티, 브래지어까지 벗기고 모든 물건과 돈을 회수한다. 그리고 알몸상태에서 신체검사를 받는데 치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김00 (남, 45세, 2003년 강제 송환 경험, 2004년 입국)

“구치소 방에 열흘 있었다. 열흘동안 2명이 죽어 나갔다. 대략 6-7평 남짓의 방에 120명이 생활했다.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고 다리를 바짝 세우고 잠을 자야 했다. 방에 마련된 소변통이 있지만 사람들 때문에 소변보기 힘들었다”

남양 보위부로 이관된 탈북자들은 북한의 형사소송법에 의거해 '거짓 진술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진술서를 작성한다.

진술서는 탈북목적과 과정, 중국에서의 생활 등을 날짜별로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진술서 작성을 마치면 족쇄를 채워 구치소로 호송된다. 각 지역 보위부로 호송될때 까지 남양 보위부 구치소에 감금 된다.

이곳에서 신체검사가 실시되고 탈북자들이 갖고 있던 물품과 돈은 회수당한다. 구치소 작은 방에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 명 이상이 생활을 하게 된다. 구치소에서는 옥수수 국수와 옥수수 가루를 볶아 끼니 때마다 세 숟가락을 준다.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화장실도 간수의 허락을 맡아 간다. 이런 열악한 생활로 인해 각 지역 보위부에 넘겨지기도 전에 사망하거나 극도의 영양실조 상태에 빠진다.

▲평안남도 북창군 인민보안서 감옥
▲함경북도 무산군 인민보안서 감옥


- 신00 (남, 43세, 2002년 강제송환 경험, 2003년 입국)

“각 지역으로 이동하면서도 우리는 개 취급을 받는다.족쇄(수갑)를 채우고 화물차에 처넣는다. 이동하는 동안 머리를 일체 쳐들지 못하게 하고 눈에 거슬리면 가차없이 구타를 당한다”

- 김00 (남, 51세, 2001년 강제 송환 경험, 2003년 입국)

“각 해당 지역 보위부에서 말을 잘해야 한다. 남한 이야기나 중국 내의 교회 도움을 받았다고 밝혀지면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나 55호 단련소로 보내진다. 55호 단련소는 10명이 들어가서 6명이 죽어 나온다는 곳이다”

각 지역 보위부원들이 탈북자들을 인계 받아 주소지 지역으로 호송한다. 각 지역의 보위부에서는 탈북자를 취조해 형량을 결정한다. 먹고살기 힘들어 탈북한 생계형 탈북의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형량을 받고 노동단련대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최소 2-3개월, 최고 6개월 동안 강제 노동을 하게 된다.

정치적인 이유가 있거나 자진 탈북한 경험이 여러 번인 경우 중형이 선고된다. 이후 교화소나 정치범수용소 및 55호 단련대로 보내진다. 혐의가 있는 탈북자들은 보위부내 간부들이 직접 형량 결정 문건을 작성한다.

작성된 문건은 시 감찰과, 군 검찰소, 도 검찰소를 통해 중앙 검찰소까지 제출되어 비준을 받는다. 비준이 완료되면 각 해당 지역 감찰과로 내려보내 형을 집행하게 한다.

열 명이 들어가면 여섯 명은 죽어나온다는 '55호 단련대'

- 최00 (남, 39세, 2002년 55호 단련대 수감, 2003년 입국)

“새벽 5시에 일어나자마자 질통(흙,모래 따위를 져 낼 때 쓰는 통)을 매야 한다. 질통에는 각자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간수를 잘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뛰어야 한다. 단련대에서 걸어다니면 가차없이 채찍이 날아든다. 흙을 채워 넣으면 질통의 무게는 20킬로그램에 육박한다. 너무 무거워 뛰기 힘들어도 뛰는 시늉을 해야 한다. 새벽부터 작업을 8시까지 하고 식사를 한다. 식사는 강냉이와 강냉이 줄기를 섞어 가루로 만든 다음 시루에 쪄서 150g정도 주고 간장물에 염장 배추를 띄운 염장배추국을 준다. 식사는 공사현장 땅바닥에서 먹는다. 죽지 않을 정도로 배급된 강냉이 죽을 먹고 바로 작업을 한다.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하면 온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이렇게 몇 개월을 하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영양실조에 걸리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 속출한다. 결국 10명중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간다”

90년대 후반 탈북자들이 많아지자 북한은 탈북자들만 따로 수용하는 55호 단련대를 2000년 신설했다.

55호 단련대는 함남 함흥 영광에 위치해 있다.명칭은 ‘22호 교화소’를 ‘55호 단련대’로 개칭했다. 이곳에는 죄질이 안 좋은 일반 수감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여러 번 탈북을 시도한 탈북자들이 수감되어 있다.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의 배급과 혹독한 강제 노동으로 몸은 죽기 직전의 상태이고 이 상태에서 항상 뛰어야 한다. 그래서 죽는 사람들이 많으며 살아서 나온 사람들도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한다.

형량을 마치고 나온 탈북자들은 단련대와 별반 차이 없는 북한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더욱 커져 십중팔구 재탈북 한다.(데일리엔케이)

영상출처: http://kbs.co.kr 추적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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