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위 설치를 제안한다.

 

기독교 사상에는 Being(존재)와 Doing(행위)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being의 감각은 ‘아이가 태어나준 것 만으로 감사하다’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기쁘다’ 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존재 자체의 긍정이다. 그런가하면 doing의 감각은 ’부모의 말을 잘 듣고 따르는 자식이라서 기쁘다, 일류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에 기쁘다 ‘돈을 많이 벌어서 기쁘다 ’지위나 명예를 얻게 되어 기쁘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실로 사람의 생(Life) 전체를 두고 볼 때 being(존재)와 doing(행위) 중 어느 하나만으로 중요하다고 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위가 없는 생은 식물과도 같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행위를 통해 발전을 하고 상승하기를 바란다.

작금의 한국은 현재 제네바에서 진행중인 제 60차 유엔 인권위원회는 유엔인권위 결의를 채택함에 있어서 EU는 작년과 같이 핵심적 역활을 맡았으나 한국의 경우 능동적인 역활은 없었고 투표에서는 작년에는 “투표불참”입장에서“기권”을 했다.

우리는 북한 이탈 주민(탈북자)의 참상을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대두되어 이웃나라인 중국 땅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며 심각한 공포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온 천하가 이미 알고 있다.

탈북자의 아픔을 외면 한 우리정부는 북한과의 상호주의 원칙만을 주장 한다면서 과연 과연 탈북자의 인권은  어디에 있단 말 인가? 또 특히 북한의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이 사상.양심.종교.언론.거주이동.등 자유 뿐 만이나라 북한 탈북을 반역행위로 간주하여 송환시 숱한 고문과 사형을 부과하고 있음이 확연한 사실이다.

그러면 탈북자의 인권에 대해 실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이 중국내 탈북자 중에 "소수의 난민들(A Small Guoup of Refugees)  이 존재한다" 고 인정한 것은 탈북자 문제에 대한 유엔의 진일보한 자세를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탈북자들이 당장 유엔의 의해 난민으로 지정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아직도 난민지정의 가장 큰 발언권을 갖고 있는 중국이 동의하지 않의면 설령 유엔이 난민으로 지정한다고 하여도 망명이  허용되는 ,정치난민,으로 된다는 보장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폭력을 일삼는 정부 권력에 맞서고 있는 비 정부기구인(NGO) 는 북한의 기아와 박해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껴안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 또 탈북자 문제와 관련하여"유엔과 국제사회는 중국에서 기아와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중국은 이들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서는 안된다는"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탈북자 난민 문제는 남북한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라며 필자는 주장하며,특히 우리 정부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한다.

중국정부는 탈북자의 대한 입장은'불법입국자'라는 것이며 중국정부의 정식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국경을 넘어 불법체류하는 북한인을 '탈북자'로 규정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탈북자 가운데 난민이 있느냐, 없느냐 는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정부는 분명하게도 없다 라는 입장을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또 북한의 인권 실상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북한수용소의 처참한 살상과 북한 주민들의 아사에 대해 세계는 침묵하지 말고 북한의 인권 참상을 구체적으로 목소리를 내야한다.

북한은 굶주린 뿐 만 아니라 질병에 대한 치료는 거의 해주지 않의면서 강제노역을 시키고 그리고 노동력이 없는 노인과 어린이들에게도 온갖 학대를 가해 의도적으로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지 않는가 라는 북한주체정권의  도덕성이 의심 할 수 밖에 없다.

이제 탈북자의 인권문제를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 내야 하며 소극적 입장에서 적극적 입장을 취한다면 탈북자도 한민족이요, 동포이며 인권을 지닌 한 사람이다.


또 다시 탈북자를 처형장으로 보내껬습니까 아니면 탈북자의 원칙이 무원칙이 되어버린 현정부에게 김급한 정책대안이 필요하다고 보며 탈북자를 돕기 위한 정부내 공식기구인 북한인권위 설치를 간곡히 제안한다.

정부의 뒤늦은 대응으로 이들의 신음소리를 진심으로 듣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또 국민의 정부이후 햇볕정책의 연장선상 선 현 노무현정부는  탈북자의 참혹한 인권재앙을 쨍쨍비추는 태양처럼 문제의 해법을 없는가 .

끝으로 우리조국의 미래는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이 기본 원칙이며 전 민족적 환원은 분명 탈북자의 인권이 봄이 와야 한다.

이창호/본지 주필/열린우리당 종교특위 부위원장/한국평화정책연구소 소장/교육학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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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국 탈북여성들 인권 사각지대  

지난 9일 새벽 3시쯤 중국 지린성 허룽시 후도진 용호촌 부근 산막에서 탈북 일가족 3명이 재중 동포 남자의 도끼에 맞아 살해되는 참극이 빚어졌다.  이번 사건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중국에서 구조화되다시피 한 탈북-인신 매매-도피-사고로 이어지는 탈북자 인권 문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새삼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사망한 탈북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인 김경란(36, 여)씨는 2000년 탈북 직후 중국인에게 인신매매 당해 재중 동포의 손에 넘겨져 그와 살다가 그 해 여름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됐으며, 그 해 11월 모친 박향숙(68)씨와 아들 김철주(11)를 데리고 다시 탈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탈북 후 한동안 중국 공안의 단속을 피해 이 곳 저 곳을 떠돌며 숨어 지냈으나, 굶주림에 지친 나머지 김씨와 박씨가 다시 중국인에게 팔려 재중 동포 남자와 억지 동거살이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씨는 아들을 데리고 이용호라는 재중 동포 남자와 살았는데, 이씨의 잦은 폭행을 견디지 못해 모친 박씨가 거주하던 용호촌 산막으로 도망쳤고, 격분해 뒤쫓아 온 이씨가 현장에서 이들 3명 모두를 도끼로 참살하는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연길시의 한 공안 관계자는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사망자들의 거주지가 밝혀지지 않아 초동 수사에 어려움이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사망 전 북송됐던 김씨의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이들 가족의 신원을 확인했으며, 이들이 함경북도 회령시 강안동 출신이라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이 공안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보기 드문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공안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국경 일대의 탈북자들은 사실 무법 상태에 방치돼 신변의 안전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의 치안 부재도 한 원인이지만 탈북자들의 처지가 도망자라는 약점을 노린 인권 유린 행위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탈북자들이 부당한 가혹 행위를 당해도 신고하면 그 순간 북한으로 송환되기 때문에 신고 자체를 꺼리는데다 현지의 중국인들과 재중 동포들이 이들의 이런 약점을 노리고 인신 매매와 강제 동거를 강요하면서 온갖 인권 유린 행위를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탈북 여성들을 상대로 한 인신 매매가 극성을 부려 2002년경 중국 공안 당국이 이들을 상대로 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행위과 똑같이 처리한다는 내부 법 조항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드러내놓고 자행되던 인신 매매는 외형상 사라졌지만 당국의 단속을 피해 음지에서 좀더 은밀하게 성행하고 있어 적발이 쉽지 않다고 한다.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재중 동포 김명관(가명)씨는 『배가 고파 강을 건너는 조선 여자(북한 여성)들 대부분은 먹을 것만 주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애원하는 처지라 인신 매매의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경 경비가 심해져 장사가 어려워진 북한 장사꾼들도 탈북하기를 원하는 여성들을 안내해 돈벌이를 하고 있다.  국경 지대에서 북한 여성들은 중국 돈 2000~6000위앤(우리 돈으로 25~75만원)에 팔려 중국 내륙으로 들어가면 다시 그 몇 배인 8000~1만5000위엔에 되팔린다고 한다.  국경 지대의 파렴치한 일부 중국인들과 재중 동포들은 북한 여성들이 국경을 넘는 순간 데려가 성폭행하고 물건처럼 여기저기 팔아 넘기며, 이 과정에서 반항하면 공안에 신고해 북한으로 넘겨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최근 입국한 한 탈북 여성은 탈북한 후 1년 사이에 10여 차례 브로커들의 손에 넘겨지며 중국 남방까지 팔려갔으며, 그 과정에서 심한 성폭행과 가혹 행위로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했었다고 말했다.  최근 탈북한 최문기(가명)씨는 자신이 알고 있던 한 북한 여성은 중국 선박에 팔려가 수 개월간 선원 6~7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식모일 등 갖은 노역에 시달리다가 병들어 죽자 바다에 버려졌다고 증언했다.  현재 중국 전역 어디에 가도 숨어있는 북한 여성들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목숨까지 위협 당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공안에 적발되면 결국 강제 북송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오기 때문에 이들은 하소연할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몰려 있다. - NK조선

자유아시아방송 바로가기/ http://www.rfa.org/korean/features/defectors_world/2007/03/14/defectors_detention_center_bangkok/

 

 

 

둥지튼 탈북자들 '고향돌아가고파…'  


                                               "이 땅에서 낳은 우리 아이, 통일인으로 키우고 싶어요."



겨울햇살이 유난히 따스하던 지난달 10일, 김상균(가명, 37) 이명숙(가명, 28)씨 부부에게 첫 아들 현우가 태어났다. 북한이탈주민으로 중국에서 만나 결혼한 뒤 한국 땅에 발을 디딘지 4년만에 또 다른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아이를 품에 안은 이명숙씨는 "우리 아이만은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키우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우리나라에 둥지를 튼 북한이탈주민수가 6천명을 넘어섰다. 2002년 1천2백명, 2003년 1천4백명, 2004년 1천8백명 등. 최근 3년사이에 입국한 사람만 4천명을 웃돈다. 이런 추세라면 몇년대에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1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90년대만 해도 이들은 귀순용사, 북한동포 등으로 국민적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베트남 등 제3국을 통한 대규모 입국이 잦아지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서울 오목교 인근에서 통닭집을 운영하는 김상균씨 부부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오후 2시면 문을 열어 새벽 2시에 함께 귀가한다. 김씨는 탈북 전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10년 넘게 무역을 했다. 러시아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그지만 한국에서 직장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30여곳에 이력서를 넣어 어렵사리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했으나 그마저 2년 만에 퇴사했다. 같은 동료들끼리 경쟁하는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퇴사 후 북한이탈주민 직업훈련기관인 자유시민대학에 다니며 창업교육을 받아 지금의 가게를 냈다. 김상균씨는 "통일이 되면 러시아, 중국을 넘나들며 다시 무역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97년 탈북, 2002년 입국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조영희(가명,33)씨는 "남쪽에 와서 배고픔은 면했지만, 행복하진 않다."고 말한다. 춥고 고단한 북에서의 삶을 버리고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왔지만 당장의 허기를 면했을 뿐 소외감과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 하다. "남한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낄 때마다 이곳에 온 것이 후회된다"며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북한이탈주민이 제대로 된 직장을 잡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 수준. 한국의 경기침체와 실업문제가 이들에게도 예외일 리 없다. 작년 북한이탈주민후원회와 인크루트가 북한이탈주민 7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북한이탈주민 사회적응 실태조사'에 따르면 무직인 경우가 36%에 달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탓이 크다. 경제활동을 한다고 해도 이들은 대부분 단순노무직이나 아르바이트일을 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경제활동을 돕기 위해 정부는 올해부터 현행 생계지원방식을 장려금제도로  전환할 예정이다. 최근 발표된 통일부 개선안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에게 지급되는 2천8백만원의 초기정착금을 내년 1월부터 1천만원으로 줄이고, 직업훈련이나 자격취득에 적극적인 탈북자들에게 장려금이 추가 지급되는 방식으로 바뀐다.



탈북청소년들의 교육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까지 입국한 탈북청소년은 모두 8백여명. 이 가운데는 가족이나 보호자 없이 홀로 입국한 무연고 청소년도 2백여명에 달한다.  "보통 학생들처럼 일반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도 갈 만한 학교를 찾을 수 없었어요." 올해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새내기가 되는 최금희(22)양은 검정고시로 꿈에 그리던 대학에 합격했다. 2001년 한국에 온 최양은 처음보는 교과서와 호기심어린 시선에 적응할 자신이 없어 정규학교를 포기하고 독학으로 고입, 대입검정고시를 차례로 패스했다. 최양은 그나마 학업의지가 남다른 경우고 대다수 탈북청소년들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탈북청소년 중,고등학교 취학률을 보면, 중학생 나이의 청소년 167명 가운데 49%인 82명만이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고등학생 나이의 412명 가운데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27명으로 6%에 불과하다.(교육인적자원부 2004년 통계) 이들은 적게는 3개월 많게는 3~4년씩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학업을 중단했다가 한국에 온다. 다시 학교에 들어가더라도 나이 어린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교과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곧 중도탈락하게 된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 이강철(가명,20)군 역시 "학교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친구들이 있는 탈북청소년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현재 셋넷학교와 같은 탈북청소년교육기관은 전국에 10여 군데. 그 형태는 셋넷학교, 하늘꿈학교와 같은 대안학교형, 돈보스꼬센터, 마자렐로센터와 같은 직업훈련학교형, 안산 다리공동체와 같은 생활공동체 등이다. 하지만 몇몇 기관을 제외하곤 정규과목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에는 시설이나 교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셋넷학교 교장 박상영씨는 "탈북청소년들에게 중간디딤돌이 될 교육기관이 절실하다"며 "탈북청소년대안학교의 효과적인 지원방안과 학력인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탈북청소년의 교육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경기 안성에 기숙형 한겨레학교(중고등학교)를 짓고 2006년 첫 입학생 2백 8십여명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사회에 발을 디딘 탈북청소년들이 지방의 기숙사에 얼마나 자발적으로 입학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과 한국 사회에서 똑같이 소외받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성장해온 사회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전쟁터에 몸을 내던졌고 또 다시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한다. 모든 것이 낯설고 막막하다. 멀고도 험한 사선을 넘어 꿈에 그리던 땅에 왔으나 그 꿈은 점점 흐려지고 현실은 너무나 또렷하게 삶을 짓누른다.얼마전 정부는 북한이탈주민,탈북자 등의 용어를 '새터민'으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제는 정부지원책 뿐아니라,이들을 시민의 일원으로 수용하려는 사회전체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오래 잊고 지낸 가족이 고향집에 온 것처럼, 체제와 이념으로 분단된 마음의 강을 훌쩍 건널 수는 없을까.  "우리를 편견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세요. 모두가 이 땅에서 살기위해 눈물겹게 노력하고 있어요."  한 북한이탈주민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글,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http://www.kida.re.kr/shell-cgi/technote/read.pl?board=usa05&y_number=1324&back=

탈북 청소년 돕는 '아름다운 3인'
연고 탈북 청소년(꽃제비)들이 모여 살고있는 안산의 '다리공동체'./조선DB


사재 털어 안산 '다리공동체' 9년째 운영

북한을 이탈해 남한 품으로 들어온 탈북자가 1만명을 넘어섰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홍수와 가뭄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입국 탈북자 수는 지난 3,4년 사이 매월 200∼300명 수준으로 급격히 불어났다.

이들 중 2천명 가량이 청소년이며, 이 청소년들 가운데 500여명은 남한에 의지할 곳이 전혀 없는 무연고자들이다.

몸을 기댈 곳 없는 이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시설은 전무하다. 전국적으로 민간 차원의 시설 5,6곳이 운영되다 이마저도 독지가들의 후원이 끊기면서 하나 둘 문을 닫고 경기도 안산시에 유일하게 '다리공동체'가 남아 있을 뿐이다.

남한과 북한을 잇는 다리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안산 다리공동체에는 무연고 탈북 청소년 17명이 기거하고 있다.

다리공동체는 서른을 훌쩍 넘긴 3명의 노총각에 의해 꾸려지고 있다. 이들 '아름다운 사람'은 이영석(36.운영위원장), 마석훈(37.사무국장), 차승만(35)씨.

이씨와 차씨는 제주도가 고향인 친구 사이로, 1998년 중국을 떠도는 탈북 소년 '꽃제비'의 처참한 실상을 보도를 통해 알고는 가지고 있던 돈을 털어 중국 옌볜(延邊)으로 향했다.

당시 차씨는 기술고시에 합격해 특허청에서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었고 이씨는 개인사업을 준비중이었지만 꽃제비들의 참상이 눈에 밟혀 편히 갈 수 있는 행로를 접었다.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불끈 치미는 열정에 이끌려 '편안한 삶' 대신 '무모한 길'을 택한 것이다.

곧바로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한 마을에 꽃제비들을 위한 보호시설 '쉼터'를 여는 것으로 다리공동체의 전신인 '꽃지모(꽃제비들을 지원하는 모임)'의 활동은 시작됐다.

3년여 탈북 소년들을 돕는 일을 하다 2001년부터 본격화된 기획탈북으로 중국 공안당국의 단속이 강화되자 보호하고 있던 무연고 탈북 소년 5명을 데리고 귀국해 안산에 정착하면서 다리공동체가 탄생했다.

마석훈씨는 귀국 탈북자 적응시설인 하나원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이 소년들을 첫 제자로 맞은 것이 인연이 돼 다리공동체에 합류했다.

"다리공동체는 새터민 청소년들을 위한 새로운 가정입니다.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키워주는 보금자리로 만들고 싶습니다."
다리공동체를 이끄는 세 젊은이는 미혼으로 조카같고 동생같은 탈북 청소년들을 돌보느라 스스로의 가정을 이룰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들의 헌신적인 배려 덕분에 다리공동체에서는 3명이 대학과정까지 무사히 마치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리잡았고 올 대학입시에서 2명이 당당히 합격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국내 중.고교 과정을 중도에 포기하는 새터민 청소년 비율이 70%를 넘는 점을 감안할 때 예사롭지 않은 성과로 평가된다.
마 국장은 "사춘기 아이들이라 학교를 빼먹고 배회하거나 인터넷 게임에 중독돼 공부를 소홀히 하면서 속을 썩이기도 하지만 다행히 큰 말썽없이 잘 자라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순수 민간시설인 만큼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재원 마련이 늘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푸드뱅크를 통해 음식물을 지원받고 주변의 독지가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안정적인 주거공간의 확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4층짜리 다가구주택은 한 종교단체가 빌려준 전세금으로 마련한 것으로, 다음달말 계약기간이 끝나면 전세금을 돌려줘야 할 처지다.

마 국장은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을 쪼개 월세금을 낼 수 있는 거처를 찾고 있으나 쉽지 않다"며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동체의 세 운영자는 새 거처를 마련할 걱정에 밤잠을 설치지만 이를 알 턱 없는 아이들은 돌아오는 설 연휴 때 가기로 한 제주도에서 조랑말을 타고 놀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연합http://nk.chosun.com/news/news.html?ACT=detail&cat_id=10&page=1&res_id=92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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